▲52년 만에 처음 찾은 네잎클로버
"청죽님은 눈을 아예 감고 다니시나 봐요. 호호호."
"엥? 왜요?"
"중랑천에 산보를 나갔는데 맞은편에서 달려오시기에
손짓 발짓을 열심히 했는데 못 보시고 그냥 지나가시더라고요."
안 그래도 벼멸구가 낀 눈이라고 자처하고 사는 터다.
자주 들리는 샵의 여주인이 눈뜬 장님이라고 놀리자 대답이 궁색해져
"거참, 이상하네?"
"왜요?"
"인물이 어느 정도만 받쳐 줘도 내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는데?"
하며 얼버무렸는데
언제나 그러듯 여사께서는 절대로 말싸움에 지지 않는다.
"너무 눈이 부셔도 못 보시는 수가 있어요. 호호호홍."
▲한강변에서 세 번째 눈에 띈 네잎클로버. 두 번째 것까진 신기한 마음에 뜯었지만 세 번째부턴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각설하고,
어려서 촌에서 자랐지만 네잎클로버를 한 번도 발견한 적이 없다. 친구들은 간혹 클로버 군락지를 더듬어 잘도 찾았지만 나의 눈에는 도통 띄지 않았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서울로 이사온 뒤로도 이따금씩 네잎클로버를 찾아 나섰지만 나이 쉰둘이 되도록 결국 못 찾았는데 얼마 전에 생애 최초로 네잎클로버를 찾았다.
정말 부러운 사람들이 있다. 밖에서 한 번 잠시 스친 얼굴을 용케 기억해내고는 정확하게 화판에 스케치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의 타고난 눈썰미에 정말 감탄한 적이 있다. 여나므 번 이상을 내가 운영했던 가게에 방문해 외상 거래를 튼 거래처 사장을 몰라보고 "첫 거래시니 현금 영수증을 끊어 드려야죠?" 하고 묻다가 타박을 들은 적이 있을 만큼 눈썰미가 꽝인 위인인지라 어찌 그들이 부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사물을 들여다 볼 때 하나 하나 차근차근 분별하는 게 아니고 전체를 그냥 막연하게 바라보는 습성 탓에 52년 동안 네잎클로버란 놈이 나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석계역에서 바라본 중랑천의 야경. 역시 야간 라이딩은 시원하기 이를데 없다.
그런데 지천명에 접어든 뒤 사물을 막연하게 보는 시각이 나도 모르게 변했나 보다. 네잎클로버를 한 번 발견한 뒤로 클로버 군락지에 앉아 찾기만 하면 꼭 발견하니 말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도 풀, 꽃, 나무들의 이름을 별로 알지 못한다. 너른 풀밭에도 각기 이름을 가진 야생초들이 즐비하건만 내겐 그냥 한 가지로 보이는 풀밭일 뿐이었다. 꽃도 장미, 튜울립, 코스모스 등, 몇 종류를 빼고는 거의 알지 못한다. 엊그제 상암동까지 다녀오는 길에 중랑천 습지 식물들을 모아서 전시 재배하는 곳(석계역 근방)에서 한 시간 이상을 머물며 평소 막연하게 보고 지나치던 식물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왔다.
▲잠수교 아래서. "온바이크님, 제 자전거입니다. 로키마운틴 블리자드죠.ㅎㅎ."
자전거를 타면서 유구한 세월 반복되는 사계의 변화를 보통 사람들보다 아무래도 가까이서 체감하게 되면서 '누렇게 말라버린 황량한 들판에서 가장 먼저 싹을 틔우는 저 풀은 대체 이름이 뭘까?' 하는 궁금증이 요즘 들어 생기기 시작했는데 고놈들 이름을 알고 만나면 감격이 더할 것 같은데 당최 모르니 답답한 마음이 많았다. 식물도감이라도 하나 사서 차근차근 들여다 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눈에 낀 벼멸구가 나이가 들면서 걷히는 낌새가 드니 이제 꽃, 나무, 풀들의 이름들을 잘만 하면 눈에 새길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아주 좋다.
(그나저나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던데 요즘 매일 하나씩 찾으니 장차 굴러들 복을 다 어찌 감당할꼬?)
자전거가 좋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