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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비상금

靑竹2010.06.11 21:41조회 수 1658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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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같이 자주 라이딩을 했던 동호인 중에 자전거 핸들바 속에 비상금으로 5만 원을 꼭 넣고 다니던 사람이 있었다. 당시엔 '지갑이나 주머니만 있으면 되지 뭘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난 토요일에 모처럼 상암동까지 왕복 90km 라이딩에 나섰다가 호되게 경을 친 뒤로 생각이 달라졌다.

 

 

 

 

 

▲길 가에 화사한 장미가 지천으로 피었다.  

 

 

 

 

 

 

자고 일어나니 아침밥 생각이 별로 없던 데다가 '불광천에 접어들기 전의 마지막 강변 매점에서 늘 그렇게 했듯 도착해서 컵라면이나 하나 사서 먹자'고 마음을 먹고 출발하면서 점심도 거른 상태였는데 결국 사단이 나고 말았다.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인 걸 모르고 방풍자켓을 떡하니 걸치고 현관문을 열고 나섰는데 복도에서 열기가 확 다가드는 게 아닌가. 부랴부랴 되돌아와 방풍자켓을 벗어던지고 반팔 저지만 입고 출발했던 것인데 지갑이 그 방풍자켓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던 것이다. 엉엉.

 

상암동 매점에 들려 버릇대로 돈부터 확인을 했는데 주머니가 텅....아뿔싸~!. 상도동에 산 세월이 30년이라 전화 한 통 해서 '나와서 밥 좀 사 다오.'하면 두말 않고 나올 후배들이 몇 있긴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염치도 좀 알아가는지 그런 주변머리도 발휘하지 못하고 쫄쫄 굶은 배로 퇴각을 하자니 이만저만 기력이 빠지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조그만 병에 담아 갔던 보리차는 무더위에 이미 떨어지고 둔치의 수둣물을(아리수라나.) 세 통이나 받아서 오는 중에 마셨다. 끄억~염소 향기. (물배라도 채운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방학동 인근에 다다를 무렵엔 거의 탈진해서 벤치에 한동안 널브러져 있었는데 누군가의 고함이 들렸다. "친구를 보고 아는 척도 않는 거얏? 그런데 뭔 낮술을 그렇게 마셨대?" 내가 너무 지쳐서 걸음을 비실비실 걸었더니 술을 마신 줄 아셨나 보다. 이 냥반이 나보다 열 살이나 위이신, 그러나 엄청난 내공을 가지신 분인데 몇 년 동안 '어르신, 어르신'했더니 기분이 좋지 않다며 "그냥 친구 먹자고." 하시는 바람에 근 5년여를 서로 만나면 '친구~" 하면서 반기며 지내는데 요즘은 내가 한 술 더 떠서 그 형님이 '어이~ 친구 반갑네!" 하면 "내가 생일이 1월이라서인지 사실 친구 소릴 들을 때면 약간 서운해요."하며 적반하장인지 땡깡인지를 부리고 있다.

 

 

 

 

 

 ▲환갑 기념으로 로드바이크를 장만할 생각이었는데 주위에서 권하는 이가 하도 많아서 아무래도 5년쯤 계획을 당겨야겠다.

 

 

 

 

 

 

아무튼 원군을 만난 게 너무 반가워 "빨리 먹을 것 좀 사 주세요."하고 소리쳤다. 삶은 계란 두 개, 망고 쥬스 한 개를 허겁지겁 먹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사연을 들은 그 냥반, "역시 친구밖에 없지?" "누가 아니랍니까. 하하하. 정말 친구밖에 없습니다." 삽십여 분을 이런저런 이야기로 보내다가 집을 향해 페달을 밟는데 역시 한결 가뿐했다.

 

앞으로 나도 불의의 상황에 대비해 단돈 3만 원이라도 핸들바 속에 꽁치고 다녀야겠다.

 

 

 

 

 

 도로를 질주하고 땀을 많이 흘린 뒤라 마시긴 했는데 역시 난 술엔 숙맥이다. 500cc 한 잔에 어질어질, 가슴이 콩닥콩닥...에잇!

 

 

 

 

여러분도 자전거  어디에 비상금을 넣어 두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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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느분이 알고 계실것같아 ..... (by 하늘기둥) 내일 뭐하세요? (by 송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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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 발이 넓으셔서 무작정 나가셔도 지인을 만나시는군요.

    저는 30대 중반 밖에 안됐는데 한강나가면서 하나씩 놓고 나간게 생각나서

    현관 앞에서 몇 번을 들락거렸습니다. ㅡ.ㅡa 

  • 허허
    그 궁색한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저는 뭐 아는 사람도 없지만
    동네만 한 바퀴 도는지라 가방도 없이 나가고 있습니다.
    비상금이야 멀리 가시는 분들이 필요한 것이지
    동네용인 저에게는 필요 없는 일입죠. ㅎㅎ

  • 혹시나 아는 사람들 만날까봐

    항상 주머니속에  만원한 두장을 꼭 넣고 다닙니다  ^^

    예전에는   누가 사주는것 얻어 먹어도   괜찮은 나이였는데

    지금은 내가 사주어야 마음이 편한 나이라서   준비는 항상 하고 다닙니다  ^^

  • 음,,,, 핸들바 전문 절도범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는 1인......^____^

  • 비상금을 넣고 다니실정도로 여유가 있으시군요

     

     

     

     

  • 얼마전 공원에 주차하고 면티에 7부바지 입었더니 주머니가 없어

    차 삑삑이로 일단 잠금장치 누르고 자전거를 빼는데

    경사진 차 문이 스르르 움직이더니 삑 하면서 닫혀버렸네요. 차 문을 당겨보니 힘 두 안준 차문이 어찌나

    잘 닫혔는지 안 열리더군요. 그때 눈에 들어온게 차키를 넣은 베낭과 지갑등이 모두 차안에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상쾌하게 분당 불곡산 한바퀴 생각하고 왔는데 벼락을 맞은거져.

    그래도 다행히 공원에 번데기 파시는 할아버지 전화빌려 긴급출동으로 차 열고 라이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차 보험이 9월 갱신인데 긴급출동 다 사용해서 마누라가 한소리 하더군요)

    생각지 못한 일을 대비해 핸들바에 비상금은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저도 오늘 저녁에 몇장 넣어야겠습니다.

  • 이건 분명 1급 비밀인데, 청죽님께서 누설을 하셨군요.ㅎㅎㅎㅎ다른 데를 찾아 봐야 하는디.. 누구 아시는 분???? 암튼 그 고통은 당해 보신 분만이 안다는 사실...

  • 청죽님도 참....그러시믄 잔차 프레임이라도 팔아서 드시고

    휠셋에 안장 올려서 타고 오시믄 되시쥬... 역시 사람은 히프를 써야디야...^^

    캡틴님 강원도 10개령 라이딩 계획을 잡으셨던데요...하여간 디단들 하셔요...옴~매~!!

  • eyeinthesky7님께

    좋은 아이디업니다.

    프레임 없으면 불편하니까 앞 바퀴 떼어 팔고 윌리로 오면 되겠군요

    청죽님 실력이면 추운할 듯 싶은데 ==3=333333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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