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동아시아까지 분포되어 있던 사자는 호랑이 등쌀에 밀려 인도까지 밀려가고 아프리카에 그들의 굳건한 왕국을 건설했으며, 유럽 대륙의 용맹한 색슨족들은 더 용맹한 훈족에 밀려 잉글랜드로 건너가 켈트족을 작살내고 앵글로색슨 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나당 연합군의 등쌀에 못 견딘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대륙으로 건너가 말갈족과 더불어 발해 왕국을 건설한다.
그런데 스키타이족인지 스카이족인지(일설에는 쭈꾸미족이란 설도 있다)와 앗시리아인지 아지롱이인지(일설엔 지렁이족이란 설도 파다하다)의 연합군에 밀린 청죽은 그 물 좋고 산 좋은 도락산 지경에서도 밀려나 결국 돌텡이길뿐인 척박한 길을 오르고 또 오르는 고난의 행군 끝에 오뚜기령과 강씨봉에 근거를 잡기에 이르렀으니 이 어찌 통분할 일이 아니겠는가.
지둘려라. 고토를 회복할 날이 머잖아 오리라. 오늘도 청죽은 강씨봉 정상에서 안장에 올라 말 아니, 자전거 아래로 산하를 굽어보며 발해의 꿈을 꾼다. 음훼훼.
음...암튼지간에 이 무더운 여름, 두 분 모두 건강하시길..
=3=33
▲아침나절에 보이는 오뚜기령이 운무에 휩싸여 있다. 올랐을 즈음엔 거의 걷혔지만 신선처럼 운해 속에서 노닐 뻔했다. 歸天(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평이하고 무난한 길은 당시엔 일면 편하고 좋지만 기억에서 곧잘 사라지곤 한다. 섭씨 33~34도를 오르내리는 뙤약볕 아래서 수백 킬로미터의 장거리 라이딩을 감행했던 일들과, 진눈깨비에 옷을 적시고 이른 봄의 차디찬 비를 하루 종일 맞으며 덜덜 떨며 남해안 도로를 일주했던 일과, 영하 15도의 매서운 혹한의 강풍 속에서 울퉁불퉁 얼어붙은 퇴근길 40여km를 5시간 넘게 자전거로 달려 집에 도착했던 일 등은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하게 자리잡고 있다.
▲장마철인 탓인지 사람의 왕래가 적어 길 가의 산딸기들이 거의 손을 타지 않았다. 오르다 둘이 따서 먹은 산딸기가 한 됫박은 족히 됐다. (간식은 왜 싸간 겨?) 이번에 오른 오뚜기령은 돌텡이 길이 끊이없이 이어지는 지리한 오르막길이라 젖은 흙이 달라붙은 자전거 바퀴가 미끄러지져 여간 오르기 힘든 곳이 아니다. 때로 가파른 돌텡이길 구간을 오르면서 힘을 내랴, 미끄러지는 자전거 위에서 중심을 잡으랴, 기진맥진하면서 올랐다. 이렇게 해서 정상까지 오른 기분을 그 누가 아랴. 천상병 시인은 이승에서의 삶을 소풍에 비유했다. 나 죽어 저승에 갔을 때 행여라도 이승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을까 두렵다. 평이하지 않은 고통이란 자극을 기억의 처방으로 쓰는 건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명리는 다 부질없는 것. 마음이 맞는 벗과 어울려 자전거로 산천을 누비며 소박한 기억들을 담으면 그걸로 족하다. 여름 속에 머물다.
▲밀어를 나누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리한 오르막길. 고산님과 나는 오르막길에서 헬멧을 쓰지 않기로 합의하다. 이 곳이 오뚜기령 등정길에 정해 놓은 포토 존.
▲원래 좋아하지 않았는데 신 과일을 정말 맛있게 먹곤 하던 마누라에게 물들어 나도 요즘은 신 과일을 곧잘 먹게 되었다. 시큼달달한 자두의 향이 오뚜기령의 수려한 풍광과 뒤섞여 입안 가득 퍼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돌텡이길.
▲강씨봉으로 오르는 급경사 구간. 경사가 심한데다가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 오르느라 애를 먹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덕분에 대단히 즐거운 하루였소이다. 갑장님. 자전거가 좋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노을 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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