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한바탕 훑고 지난 탓에 하늘이 가을이 무색할 정도로 푸르고 시계가 길었다.
"아이고 이 미련한 놈아, 그렇다고 이렇게 야심한 밤에까지 그러고 있단 말이냐!"
워낙 빈농이라 삯군들을 사실 형편이 못 되어 멀찌감치도 떨어져 있던 여러 군데의 손바닥 만한 밭들을 가꾸기 위해서는 순전히 부모님과 여섯 남매들 손이 필요했었다. 때문에 다른 집 아이들이 동네 어귀에서 뛰어놀던 시절에 우리 남매들의 휴일은 거의 논이나 밭이 무대가 되었다. 장남인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아버님께서는 '너도 이제 곡괭이질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나의 키에 맞춰 자루를 잘라서 만든 곡괭이 한 자루를 내어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랬자 72명의 급우 중 세 번째로 작은 키였으니 상당히 작은 몸집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아버지하고 엄마와 누이들은 서당골로 갈 테니 오늘 이 밭은 네가 책임지고 다 갈아엎고 집에 들어가거라."하시며 400여 평 정도의 밭을 가리키셨다. 마침 내 전용 곡괭이도 생겨서 신도 났던 터라, "알았슈"하고 호기롭게 대답은 했는데...
파종을 하기 전에 집에서 2km 정도 되는 그 밭에 똥지게를 메고 어지간히 퍼다 뿌렸었는데 어디 그렇다고 예전에 신발을 신고 일할 생각이나 했던가. 아버님께서 식구들과 서당골로 떠나시지마자 그 밭에 맨발로 뛰어들어 씩씩하게 곡괭이로 뒤집어 엎기 시작했는데 어머니께서 준비해 두고 가신 점심을 먹고 나서 죽어라 파대다 보니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쓰리고 아팠다. 그러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려가는데 아직도 3분의 1은 족히 남았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푸른 하늘을 도화지삼아 흡사 누가 붓을 놀려 수채화를 그리듯 구름들을 채색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여름해가 길다 해도 일단 해가 서산에 숨고 나면 어둠은 금방 찾아온다. 그렇지만 워낙 엄하셨던 아버님의 지엄하신 명이라 집에 갈 생각은 꿈조차 못 꾸고 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둠 속에서 씨근덕거리며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데 소쩍새 우는 소리에 머리털이 곤두서며 멀리 보이는 공동묘지 쪽을 자꾸만 흘끔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집 쪽 고개 너머로 회중전등임직한 조그만 빛 하나가 나타나 일렁이며 다가오는데 아버지셨다. "어이구, 미련한 놈 같으니라고 허허. 어여 집에 가자. 배는 안 고프냐?" "야, 그런데 아직 많이 남았는데요?" "애비가 농담으로 그런 거지 설마 이 밭을 네가 어찌 하루에 다 갈아엎겠느냐? 어서 가자." 아무튼 이 일로 이틑날부터 발바닥에 똥독이 올라 온통 물집이 잡혀 며칠 고생했다.
▲발원지가 그리 멀지 않은 탓에 아무리 물이 불어도 비가 그치면 금방 수위가 내려가는 중랑천이지만 아직 징검다리는 물 속에 잠겨 있다.
7,8월 지긋지긋한 장마에 밭의 풀들을 매다 보면 밭 하나를 아직 김을 다 못 맸는데 어제 맸던 앞쪽 이랑에 벌써 풀들이 또 돋아나기 시작하기 일쑤였다. 뙤약볕에서 일을 하다가 꿀맛 같은 점심을 먹고 나면 부모님께선 아버님께서 궐련 한 대 피우신 뒤 그대로 땡볕으로 나가셔서 여전히 김을 매셨지만 자식들에겐 휴식 시간을 주시는 걸 잊지 않으셨다.
"저 쪽 소나무 그늘이 좀 시원하겠다. 거기서 좀 쉬다가 오너라."하시곤 했는데 커다란 소나무 그늘 밑에 곤한 몸을 누이면 늘 청명한 여름하늘이 다가왔다. 눈이 시도록 새하얀 구름들이 두둥실 떠가는 그 하늘을 늘 바라보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했었던가. 온갖 모양으로 변신하여 나타나는 구름들을 보며 나의 상상은 또 얼마나 펼쳐졌었던가. 조그만 새끼 구름들은 입안에서 솜사탕이 녹듯 점차 푸른 허공 중에 흩뿌려지며 뿌연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지곤 했다.
그러다 곤한 잠에 빠져들곤 했는데 잠을 깨게 되는 경우는 세 가지였다. 첫째, 너무 오래 잤지만 피곤한 모습이 안쓰러워 내내 참으시다가 깨우시는 아버님 목소리와 둘째, 분명 잘 무렵엔 그늘이었는데 움직이는 해에 그늘이 저만치 벗어나 땡볕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 바베큐가 되기 직전에 놀라 일어나는 경우였고, 셋째는 개미란 놈이 당차게 물었을 때다. 특히 거시기를 물렸을 때는 아버님께서 깨우시는 목소리가 들렸을 경우보다 기상 속도가 현저히 빨랐다. 허겁지겁 졸린 눈을 뜨고 바지를 내려 떨구려 해도 이놈들이 잘 놓아주지 않아서 애를 먹었었다.
벌써 그로부터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엔 힘들고 고되고 귀찮던 시절이 지금은 왜 그렇게 눈물이 나고 가슴이 저미도록 그리운 건지 모르겠다. 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꽃같은 시절이여! 자전거를 세우고 그늘에 앉아 청명한 여름 하늘을 한 시간 넘게 바라보았다.
청명한 여름하늘에서 그리운 시절을 만나다.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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