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당시 명칭 광덕 국민학교 2학년 8반에 다닐 시절이었습니다.
2학년후반에 들어서는 매일같이 저를 교실문까지 태워주고,
퇴근시 집까지 다시 태워주던 버스보다 고마웠던 어른만한 진돗개가 없어졌던 때였던것 같습니다.
정확치는 않지만 이제 말씀드리려는 사건을 미리 생각해볼때 그때는 없었던것 같습니다.
있었다면 제가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겠죠. 1~20분만에 집에 갔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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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이 끝났는데 정말 응가가 마려웠습니다.
화장실에는 10여칸 정도가 되는 재래식 변기가 있었음에도, 그날따라 완전히 무슨 똥잔치라도 한듯 화장실이 난리였습니다. 뭐 그때는 다 그랬지만, 그날따라 왜 그랬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에 무슨 행사가 있었을지도요~~
집까지 걸어서 3~40분이면 가니까 참아보기로 합니다.
그런데.......정말 응가가 마렵습니다.
정말 뒤질것 같습니다.
수세식 화장실이 좋아? 엄마가 좋아? 하고 누군가 제가 묻는다면.
수세식 화장실이요!!!!!!!!!!!!!!!!!!!!!!!!
하고 주저없이 소리쳤을것 같습니다.
아니 정말이지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습니다.
아직 학교를 벗어나기도 전입니다.
저는 제 인내심을 테스트하기 시작합니다.
앞에는 학교 선생님도 아닌데 왠 양복입은 아저씨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아마 그 아저씨도 화장실에 응가 범벅을 해놓고는 태연하게 아닌척 하며 걷는걸로 보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아마 우리 학교에 와서 응가를 발라놓고 간건 아닐까 할 정도로 장난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제가 그 아저씨를 추월 했습니다. 집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미스테이크!!
아저씨가 뒤에 어느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도저히 참지를 못했습니다.
이성과 본능의 괴리를 정말 제대로 느꼈습니다.
저의 육체는 저를 버렸습니다. 정말이지 너무 오래 참다가(사실 수업시간 내내 참았습니다) 한순간에 뿜어져 나온 나의 응가는....오른발을 따라 바지안에 꽉 찬 느낌이었습니다.
[ 더러운 얘기 죄송합니다. 늦었지만, 임산부나 노약자 만 18세 미만 청소년들은 패스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미성년자는 상관없는 얘기군요..]
다시 걸음을 멈춰 아까 그 신사분의 뒤로 쳐집니다.
혹시라도 나의 응가냄새를 알아챈다거나, 혹은 바지 밑단으로 내려오는 청국장닮은 그것을 그 분이 알아챈다면 낭패이기 때문입니다.
아....저는 어렸을때부터 이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한건 아닐까요?
3~40분정도를 세상과 싸우며 그렇게 집으로 도착해서 마당문을 열자마자.
"아이쿠~~ 우리 재영이 학교같다 왔어?"
하면서 어머니가 허벅지를 끌어안아 들어올리려는 것입니다.
저는 발악....아니 미친 개 발악을 했습니다.
하지만, 순간이었습니다.
내 몸이 만두가 되어, 그 누군가..나와 DNA 가 많이 일치하는 누군가가.....세상의 역경을 모두 이기고 여기까지온 저의 인내에 대해 배신을 때린것 같은 허탈함과함께....저의 몸은 그저 만두를 쥐어짜는듯한 느낌과 함께.....
힘들었습니다. 순간.
그것도 잠시.
" 어머 이게 뭔냄새야?"
그날이후 저는 한동안 "우리 아들 똥독올라 죽을뻔 했다" 는 소리를 들으며 그날의 수치심을 이겨내왔습니다.
조용히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깨끗이 씻고,
마치 어느 부유한 친구집에 따라가서
당시에는 국내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비데] 라도 하고 온듯이~ 의기양양하게 다시 태어나리~~ 하고 다짐하며 입에 피가 나도록 굳게 참고 버텨왔던 퇴근길이었습니다.
응가와 쉬야를 제가 유난히 잘 참습니다.
정말 장난 아닙니다.
일부러 참는건 아니구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견딜만큼은 참습니다.
아마 유년시절의 그 기억때문은 아닐까요.
청죽님의 똥독 발언에 화끈해져서 저도 유년생활이 생각났습니다.
뭐 제가 이정도 얘기했으면, 여러분들도 응가에 얽힌 얘기 한가지씩 해주셔야 하는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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