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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힐이 힘들 때면

靑竹2010.08.02 22:57조회 수 1649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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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자전거 출입을 통제하는 산이 많아 저녁에 주로 산을 오르게 된다. (8/1 호암사)

 

 

 

가파른 고개를 자전거로 오르다 지칠 때면  무거운 지게를 짊어지시고 한 번도 쉬지 않고 기나긴 고개를 넘으시던 아버님을 무엄하게도 떠올린다. 베잠방이 아래로 보이는 아버님의 종아리엔 굵은 힘줄이 솟았고, 허름한 베적삼 위로 더운 땀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버님의 뒤를 고작 연장 몇 개 들고 투덜투덜 따랐던 철없던 시절이여. 자전거로 오르다 이마에 흐른 땀이 눈에 들어 쓰릴 때면 두툼한 지게끈 한 귀퉁이에 매달고 다니시며 이따금씩 땀을 훔치곤 하시던 아버님의 때절은 수건을 떠올린다.

 

포기하고 내릴까 하다가도 가끔씩 '휘~' 하는 소리를 내시며 깊은 숨을 내쉬시던 아버님의 호흡을 흉내내며 포기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던 아버님. 그러나 늘 따라다니며 맡던 아버님의 땀냄새가 좋았다. 세상을 바꾸려는 자들도 있지만 세상에 순응하려는 편에 속하셨던 나의 아버님. 이제 팔순을 넘긴 아버님의 서슬이 퍼랬던 안광은 촛점이 약해지시고 풀이 죽은 어깨는 한없이 작아 보인다. 일전에 치매 증상이 있으신 어머님을 씻겨 드리다 어머님께서 살짝 넘어지시며 다치시는 바람에 그 무섭기만 했던 아버님께서 눈물을 다 보이셨다. 

 

"네 어머니가 수십 년을 날 위해 희생했는데 이제 내가 네 어머니를 위해 희생해 봤자 앞으로 얼마나 더 산다고."

 

 

대가족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무거운 지게를 지셨던 아버님을 단순히 즐거움과 건강을 위해 자전거를 타며 떠올리노라니 그 불경스러움에 그저 송구하고 면목이 없다. 여름이 간다.  

 

 

不孝父母 死後悔(불효부모 사후회)

 

  

 

 

 

 

 

 

 

 

 

 

 

 

 ▲자전거 인구가 확실히 늘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이 호젓한 호암사엔 늘 혼자였는데 요즘은 누굴 만나도 만나게 된다. 의정부에서 방학동까지 자출하신다는 분을 만나다.

 

 

 

 

 

 ▲내가 최초로 탔던 기종인 휠러7900zx를 이 분께서 타신다. 5년 동안 무려 75,000km를 달리며 얼마나 정이 들었던 프레임인가. 원래 쓰던 물건을 내다 파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팔기가 아까워서 외삼촌께 평생 대여해 드렸다.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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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 청죽님 살이 빠지니 20대 청년으로 보입니다^^

     

    6월 보리베고 난 천수답 모내기 할때 쯤

    모 한바작 지게에 지고 산비탈을 올라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찌그덕...삐그덕..........' 한걸음 한걸음 떼실때마다

    어께쪽 지게끈과 지게의 마찰음이 지금도 들리는 듯 하군요.

    그 소리만 들고도 짐의 무게를 쉽게 가늠해 볼 수 있지요.

    멀리서는 발정난 까두리의 '교성'이 들리고

    할머니 무덤같은 하얀 찔레꽃 덤불아래 새순에는 '뱀이 뱉어 놓은 침'이 뽀글뽀글 산들바람에 흩날리곤

    하였습니다. 

  • 탑돌이님께
    靑竹글쓴이
    2010.8.4 10:19 댓글추천 0비추천 0

    발걸음을 떼실 때마다 엄청난 무게로 지게에서 '끼익 끼익'하며 나던 소리를

    탑돌이님께서도 정확히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

     

  • 오래된 잔차를 보니 정겹네요.

    요새 지름신이란 미명하게 프렘 수명이 1년 넘기기 힘든 세상에

    참 오래 살아남아 빛을 발하네요. 아버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더.

  • 훈이아빠님께
    靑竹글쓴이
    2010.8.4 10:21 댓글추천 0비추천 0

    감사합니다. 훈이아빠님.

    제 크로몰리 프레임은 나중에 아들놈에게 물려 줄 생각입니다.

  • 아버지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올 1월에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니 더욱 더 어렸을 때의 추억이 생각나더군요

  • 백팔번뇌님께
    靑竹글쓴이
    2010.8.4 10:22 댓글추천 0비추천 0

    그러셨군요.ㅠㅠ

    무척 상심이 크셨겠습니다.

    대단히 엄하셨던 아버님이시지만 요즘들어 왜 그렇게

    나중의 일이 걱정되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7900zx는 대청봉님이

    저는 5900zx로 입문한 기억이...^^

  • 뽀 스님께
    靑竹글쓴이
    2010.8.4 10:23 댓글추천 0비추천 0

    아, 갑장께서도 이 기종으로 입문하셨군요.ㅋㅋ

    워낙 정이 들어서 그런지 좋고 나쁨을 떠나

    누가 타고 다니는 걸 보면 눈이 번쩍 뜨입니다.

  • 두분 다 헬멧은?.....

  • 열린마음이고픈님께
    靑竹글쓴이
    2010.8.4 10:17 댓글추천 0비추천 0

    누가 가져갈 것 같지 않아서

    뒷쪽 벤치에 올려 놓았습니다.ㅋㅋ

  • 아버님에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글이군요  항상 건강하십시요

  • bikewith님께
    靑竹글쓴이
    2010.8.5 14:10 댓글추천 0비추천 0

    제가 불효가 막심해서 그렇지

    큰아들인 저에 대한 아버님의 사랑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답니다. ㅠㅠ

  • 참 좋은글 잘봤습니다.

  • soonifan님께
    靑竹글쓴이
    2010.8.5 14:10 댓글추천 0비추천 0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 청죽님의 글은 정말.. 두세번 다시 읽어도

    "끝내줍니다.!" 라는 말 밖에 안나오네요.

  • 낭만페달님께
    靑竹글쓴이
    2010.8.5 14:11 댓글추천 0비추천 0

    에구, 이런 쭈글쭈글한 글을 두세 번씩이나 읽으시다니.

    아무튼 감사합니다.

    낭만페달이란 닉네임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항상 들어요.

    행복하십시오.^^

  • 눈팅이만 하는데 좋은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 알통공장님께
    靑竹글쓴이
    2010.8.6 22:04 댓글추천 0비추천 0

    아차, 무등산 알통공장님도 계셨네요.

    가끔 이렇게 소식이라도 전해 주시면 얼마나 반가운데요.^^

    조국의 산하 중 꼭 한 번 들르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무등산입니다.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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