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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궂이 - 천보산 자락에서

靑竹2010.08.07 21:21조회 수 1219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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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려 가평 계곡으로 1박2일 일정으로 놀러갔는데 하필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로 잘못 택일하는 바람에 숙소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며 전화로 투덜거렸다. '헛, 이런 맹꽁이가 날궂이를 좋아하는 나의 유전인자를 어디다 분실한 건가?'

 

아무튼 자전거를 끌고 또 한강 나들이나 할 요량으로 집을 나섰는데 중랑천에 들어서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고글을 때리는 바람에 앞이 잘 안 보인다. 그래도 우중라이딩을 즐기는 라이더들이 요즘들어 꽤 많아졌다는 느낌이 든다. 이 장대빗속을 앞서서 달려가는 라이더를 추월하면서 "안녕하십니까?"하는 순간에 갑자기 눈앞이 번쩍하면서 "꽈르르"하는 굉음이 하늘을 깨뜨려버리기라도 하듯 울린다. 인사하다 말고 둘 다 자전거가 흔들릴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지은 죄가 많아 비는 안 무서운데 당최 천둥번개는 무섭다. 하는 수 없이 가까운 샵으로 대피를 했다. 수다를 떨면서 한 시간여를 보내니 비가 그쳤는데 한강으로 가려던 계획을 천보산으로 바꿨다. 

 

 

 

 

 

 ▲운무에 휩싸인 수락산

 

 

천보산 아래에 당도하니 또 비가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천둥번개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바위를 오르다 한 번 넘어진 뒤로 내가 가진 천부적인 재능 중에 끌바신공이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깨닫고 대체로 끌바로 오르다. 약숫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에 고글을 걸어 놓고 100여 미터쯤 오르다 '아차'하는 생각에 되돌아 내려왔는데 고작 100미터를 가서 고글을 생각했다는 사실에 상당히 고무되고 말았다.

 

올해 분실한 장갑이 벌써 세 켤레다. 때로 주위 사람들에게 치매라고 모함을 받는 나의 인간문화재급 건망증 증상이 상당한 차도를 보이는 듯해서 산아지랑이님이나 쭈꾸미님보다 적어도 이 깜빡이 증상에서 대단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던 것도 잠시, 물속에 풍덩 뛰어들어 조그만 폭포까지 뒤집어쓴 뒤에 지갑이며 휴대폰이며 담뱃갑이 바지 주머니에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 뒤엔 우위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돈이 젖은 것이야 상관이 없는데 아버님께서 스물다섯 살 때의 사진과 어머니, 딸아이 사진이 물에 흠뻑 젖고 말았다. 징징. 다행히 휴대폰과 담뱃갑은 주방용 비닐 주머니에 둘둘 말아서 침수까지는 면했다. (사진은 주로 오르면서 찍는다. 다운힐 재미에 여간해서 내려올 땐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이 무더운 날씨에 천보산에서 몇 시간을 꼼지락거리면서 그럭저럭 살 만하던 시절, 큰 비용을 들여 동해안으로 놀러다녔던 기억들보다 훨씬 더 유쾌했으며 또 대단히 서늘한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이 간다.

 

 

 

 

 ▲장대비에 평소 메말랐던 조그만 지천들까지 빗물을 사정없이 흘려보내고 있었다.

 

 

 

 

 

 

 

 

 

 

 

 ▲빗물에 잠긴 징검다리로 인해  여물목이 생기고

 

 

 

 

 

 ▲쉼터는 비 탓에 객이 없다.

 

 

 

 

 

 ▲시민의식의 결여가 아쉽다. '장수'라는 좋은 뜻이 이런 땐 곤혹스럽다.

 

 

 

 

 

 

 

 

 

 

 

 ▲체온을 보전하기 위해 우중라이딩엔 비옷을 걸치고 다니는데 업힐을 하려니 땀이 범벅이라 벗어서 배낭에 넣었다.

 

 

 

 

 

 ▲일전에 평행봉에 올려 주었더니 마다해서 이번엔 턱걸이 운동을 할까 싶어 올려 주었더니 또 잠잠하다. '인석이 당최 운동엔 소질이 없는 모냥여.'

 

 

 

 

 

 

 

 

 

 

 

 ▲중간쯤 오르려니 뜻밖에도 볕이 짬을 내 주었다.

 

 

 

 

 

 

 

 

 

 

 

 ▲물이 깊지 않은 듯 비가 내리는 날의 약숫물은 한겨울 풀민님 콧물처럼 수량이 풍부하다.

 

 

 

 

 

 ▲'내가 이런다고 이 비가 내리는 산 속에서 설마 누가 보기야 하겠어? 켈켈.'

 

 

 

 

 

 

 

 

 

 

 

 

 

 

 

 

 

 

 

 

 

 

 

 ▲비에 흠뻑 젖은 숲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문득 창조주의 숨결을 느끼다.

 

 

 

 

 

 

 

 

 

 

 

 

 

 

 

 

 

 ▲너무 많이 마셔서 한 번 끊을까 생각했던 커피. 천변으로 내려와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대단한 위안을 준다.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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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보고 TT (by 십자수) 제주도 잘 다녀왔습니다. ^^ (by byca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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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 컥~~~ 울렁이는 사진도 있네요.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면 빨려 들어간다는...

     

    게다가 그 위 사진에 가운데 흐르는 물줄기는 흡사... 어렸을 적 외할머니 댁에서 가래떡 찍어먹던 조청색깔. ㅎㅎㅎ

    시원한 사진 고맙습니다.

    미리 공지했더라면 청죽님도 꼬드겨 함게 가는건데 그랬습니다. ^^

     

    자러 간담서 머던다니?

  • 靑竹글쓴이
    2010.8.7 22:39 댓글추천 0비추천 0

     

     

     

    그러게요?

    왜 여태 안 주무시고? ㅋㅋㅋ

    제 어머니께서 조청을 만드시는 솜씨가 일품이셨죠.

    가정방문을 오신 선생님들께서 맛을 보시고 다들 극찬을 하셨더랬습니다.

    아무튼 빨리 나으십시오.

     

    ▼비에 홀딱 젖어 급 말리고 있는 중 ㅠㅠ

  • 잔차가 엎드려 뻣쳐 벌서기를 하고 있군요.

    폭포아래 모습...개구짓이 보통이 아닙니다^^  

  • 탑돌이님께
    靑竹글쓴이
    2010.8.8 17:46 댓글추천 0비추천 0

    아들놈과 딸아이가 그럽니다.

    "친구들 집에 가면 아빠들이 우리 아빠 같지 않고

    대개 근엄해서 어려워요."

    아마도 제가 지극히 엄한 아버님 슬하에서 성장한 탓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ㅎㅎㅎㅎ...저도 일전에 청계천 4가에서 하도 무더워 옷을 입은 채(자전거복)

    풍~덩~을 했더랬는데 반바지 주머니에 있는 열쇠고리에 USB가 달려있다는 것을 깜박하고

    5분여 몸을 담구고 나와서 생각이 나서 걱정을 했고 집에와서 말리고 꼿아보니

    다행이 되더군요...하여간 깜빡증의 출중한 내공들이 있는 사람들 뒤만 쫒아 다녀도

    연봉이 기본 2천 5백은 넘을 겁니다...>.<ㅎ

    넘 시원해 보이네유....건강 하세요...^^

  • eyeinthesky7님께
    靑竹글쓴이
    2010.8.8 17:47 댓글추천 0비추천 0

    스카이님과 제가 죽이 맞아서 늘 같이 다닌다면

    잘 하면 연봉 5,000만 원짜리가 탄생하겠군요. 푸핫

  • 오호 라이딩 비상금이 4만원이시군요. 부자십니다.ㅎㅎ

  • 훈이아빠님께
    靑竹글쓴이
    2010.8.8 18:30 댓글추천 0비추천 0

    (핸들바 속에 꽁쳐둔 절대비상금 2만 원은 비밀로 해야겠다. 재벌 소리 들을라)

     

    딱히 쓸 데가 없어도 혹시나 해서 가지고 다닙니다.ㅋㅋㅋ

    훈이아빠님께서는 얼마나 가지고 다니시나요? ㅎㅎㅎ

  • 청죽님의 푸르른 글과 사진 덕분에 눈이 환해졌어요. 감사합니다.

  • kdblaw님께
    靑竹글쓴이
    2010.8.8 18:32 댓글추천 0비추천 0

    감사합니다. kdblaw님.

    말복이라 삼계탕 한 그릇을 비우고 밖에 나왔더니

    근래 지독히도 무덥던 것과 달리 저녁 바람이 제법 시원합니다.

    어제가 말복이었는데 선조들께서 공연히 절기를 정해 놓은 게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늘 행복하세요.

  • 청죽님 글에 자주 등장하는 따님을 처음으로 보게 되네요. ^^

    그런데 저는 당췌 몸이 젖는걸 싫어하는지라...우중 라이딩은..ㅎㅎ

  • kuzak님께
    靑竹글쓴이
    2010.8.8 18:35 댓글추천 0비추천 0

    ㅎㅎ 그러시군요.

    젊어서는 가사 일이라고는 손 하나 까닥 않는 성격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게 바뀌더군요.

    요즘은 밥 짓는 건 물론이고 설거지, 빨래 등을 즐거운 마음으로 합니다.

    우중라이딩에 따르는 잡다한 빨랫감들이 제겐 즐거운 소품이 되는 것이죠.ㅋㅋ

    신혼 생활은 재미 있으시죠?

     

    kuzak님 가정에 사랑과 행복이 항상 넘쳐나길 기도합니다.

  • 靑竹님
    관리하는 까페에까지 납시었는데
    댓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만두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구름선비님께
    靑竹글쓴이
    2010.8.9 00:20 댓글추천 0비추천 0

    이런, 죄송하실 것 까지야.

    내심 선비님께서 직장 문제로 마음이 많이 심란하실 것이라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말처럼 쉬운 건 아니겠지만 자칫 병이 되기 전에 어느 정도 마음에서라도 훌훌 털어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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