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끝이라지요?
날씨가 너무 요상해서
요란한 빗소리에 잠이 깨었습니다.
장마가 물러나고 불볕더위가 예상된다고 하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요즘 직장의 일로 골치가 좀 아파서 아무런 생각 없이 지냈습니다.
가끔 왈바에 들어오기도 하였지만 그저 무덤덤히 여러분이 쓰신 글의 제목과 내용을
빠른 스크롤로 훑어 보고는 나갔습니다.
댓글을 쓸 용기도 없었던 것이죠.
서울을 다녀가신 쌀집잔차님과 9개령에 도전하셨던 '자장구타고 돌아댕기는 아자씨'의 글,
좋아하는 靑竹님의 글도 대강 훑어보고 요즘 올라온 스카이님의 사진까지는 봤습니다.
사진을 보면 곧잘 댓글을 올렸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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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에게 가까운 계곡엘 같이 가자고 하였더니
안 간답니다.
실은 비가 제법 내린 것 같아 사진을 찍으러 가려는 것인데
집에서 할 일이 있다는군요.
마누라가 같이 가면 버스를 타고 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차를 가지고 간다는 말도 안되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절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오랍니다.
통을 하나 싣고 차를 가지고 갑니다.
자전거를 탈때 입는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데 요즘은 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음과 진동이 요란한 차이니 음악은 필수입니다.
음악을 크게 틀면 소음이 들리지 않으니 그렇게 하는 겁니다.
어쩌다 본 BOB타이들에서 알게 된 Four Play라는 4인조인데
세션도 하고 같이 활동도 하는 사람들의 음악을 들으며 갑니다.
볼륨을 한계치까지 올리면 다리를 치는 스피커의 바람이 좋습니다.
몇 가닥 되지도 않는 털이 스피커에서 나온 바람에 떨리고
큰 소리가 나올 때마다 바람이 간지럽히니 그 느낌이 좋습니다.
산지는 꽤 오래 된 차인데 주행거리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얼마전부터는 자주 차를 끌고 나갑니다.
비가 오거나 직장에서 필요할 것 같아 가지고 다니고
또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서 땀 흘리는 것을 싫어하는 본색이 다시 나타나나봅니다.
일요일이라 계곡은 만원입니다.
항상 사진을 찍던 자리에 가 보니
몇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물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계곡 윗쪽으로 가 봐야겠습니다.
계곡이 깊지 않으니 장마가 져야 그나마 물이 좀 많아서 그림이 되는 곳입니다.
그러니 상류로 올라간다는 것은 수량이 적어지고 그림도 별로지만
사람이 많으니 갈 수 밖에는 없겠습니다.
전에 초등학교 친구들이 등산을 온다고 해서 얼굴이나 본다고 자전거를 끌고 한 번 올라가 본 것이 전부로
계곡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습니다.
그 때는 겨울이어서 자세히 보지도 않았고
어떤 풍경이 나오는지 가물가물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사람들은 계곡의 아래쪽,
그렇지 않은 성인만 있는 사람들은 상류에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사람 심리가 다 같은지 그림이 될 만한 자리,
주변에 평평한 곳은 모두 피서객들이 차지하고 있네요.
아침일찍, 또 평일 오후에 사진을 찍으러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어디 한 군데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자꾸 상류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계곡을 따라가다 보니 청설모의 짓인지 잣의 표피와 껍질을 자주 보게 됩니다.
몇 군데 자리를 옮기다 보니 잣 한 송이가 떨어져 있습니다.
어려서는 잣을 가져다가 쇠죽을 쑤는 아궁이에 넣어서
'불잣'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잣의 겉 껍질이 불에 타고나면 꺼내서 발로 몇 번 문지르면 잣이 후두둑 떨어지는데
그걸 불잣이라고 불렀지요.
조심스럽게 잣을 들고 보니 가져갈 방법이 없습니다.
청설모 녀석이 따놓고 잃어버렸든지 아니면 지금 어디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잠시 궁리를 하다가 원시인이 되기로 하였습니다.
주변에서 끝이 날카로운 얇은 돌을 집어서
그걸 칼로 사용하기로 한 거지요.
발로 잣을 밟고 조심스럽게 잣의 껍질을 깝니다.
돌은 제법 날카로와서 조금씩 껍질이 벗겨집니다.
조금씩 발로 밀면서 까다보니 송진은 거의 다 떨어지고
덜 끈적입니다.
물이 좀 괴어 있는 곳으로 가서 남아있는 껍질을 돌에 문대봅니다.
닳아서 떨어지는데 물로 한 번 헹구고 다시 문지르니 진한 잣의 향기가 진동하면서
잘 벗겨집니다.
어렸을 때
어쩌다 잣을 따는 삼촌뻘 되는 분들을 만나면
낫으로 껍질을 쓱쓱 까서 주던 생각이 납니다.
조금씩 떼어내고 돌에 문지른 모습이 그 때 낫으로 깎아 주던 그 모양이 되었습니다.
물봉선의 잎을 몇 개 따서 잣의 몸에 옷을 입힙니다.
대 여섯 장의 물봉선 잎으로 온 몸을 감쌀 수 있으니 아직 다 크지 못한 잣이군요.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이 대견합니다.
성취감이 있습니다.
바지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고는 두어 장 찍고 올라가고 또 찍고 올라갑니다.
수량이 적으니 그림은 별로지만 습관적으로 찍는거지요.
나무토막을 치우는데 어떤 여자분이 내 모습을 보고 서 있습니다.
'그림에 방해가 돼서요.'
'저도 사진을 찍거든요.'
'그러세요? 오래되셨어요?'
'사 년째요.'
파인더와 디스플레이창을 보여주면서 얘기를 나누다보니
꽤 멋잇는 여성입니다.
'아침에 오세요. 사진 찍으러….'
'어머 아침에요?'
'혼자 즐기기에는 아침이 좋더군요.'
'그래봐야겠는데요. 호호호'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그 분이 내가 나무토막을 치울 때 셔터를 한 번 끊었나보다.
몸은 간데 없고 다리만 찍힌 사진이 있는 것을 보니….
계곡을 벗어나니 누리장나무의 요상한 향기와 지금은 문제의 식물이 되어버린 칡꽃 향기,
은은한 싸리꽃, 주머니에서 솔솔 올라오는 잣의 향기까지
내 자신이 자연속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아 즐겁습니다.
돌아오는 길,
그렇다할 사진이 없어도 행복합니다.
옛날 월급봉투를 내 놓을 때 보다도 호기롭게
마누라를 향해 잣 한 송이를 던져 줄 수 있으니까요.
여기가 오늘 찍은 곳 중에서 가장 그림이 될 것 같은 곳이다.
골포스트처럼 나무가 서 있고 거기에 작은 폭포를 넣어 보았다.
카메라에 선명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
필요로 하지 않아 사용하지 않다가 한 번 적용해 보았다.
사람들에게 밟혀 드러난 잣나무의 뿌리,
그 뿌리 저 쪽에 작은 폭포가 있다. 여기서 묘령의 여자분과 사진 얘기를 나누었다.
싸리꽃 향기를 아시나요?
숨은그림 찾기用입니다. 숨은 그림이 보이세요?
전에 사진을 찍던 곳,
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텐트, 깔판 등을 널어 놓아 그것을 피해서 찍다보니 전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흑백으로 찍어 보았다. 천천히 기다리면서 찍으면 좀 낫겠지만 그냥 몇 장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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