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에 세워둔 자전거를 살피다 보니 싯스테이 부분에 뭔가 걸려 있다. 뭔가 자전거에 치인 것 같은데 아주 조그만 노가리처럼 바짝 말라붙어 있다. 샵 쥔장은 "새끼뱀을 치셨군요."한다. "헛,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나. 정말 그랬나 봅니다." 엊그제 동행과 왕방산을 다녀오던 길에 농로와 시골 마을길을 달리다 차에 치어 죽어 있는 뱀을 세 마리나 보았는데 나도 그만 나도 모르게 한 마리 치었나 보다.
어려서 뱀은 내게 늘 두려움과 저주와 징그러움의 대상이었다. 대개의 아이들이 그랬지만 뱀을 무서워하면서도 보면 도망치기는 커녕 기를 쓰고 때려잡았다. 아마도 두려움보다 저주와 징그러움으로 인한 적개심이 더 컸기 때문이리라. 때로 살모사 같은 독사들은 나뭇가지로 때리면 도망가는 게 아니고 달려드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땐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도망치기 바빴다. 산은 모두 산이고 들은 고스란히 들이고 물도 온전한 물이던 시절이라 그런지 그 시절엔 그리 특별히 동물 사랑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인도의 자이나교인가(맞는지 모르겠다.) 하는 교파의 승려들은 비가 오면 바깥 출입을 삼간다. 물 속에 있을지 모를 미물들에게 행여라도 해를 끼칠까 염려해서란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점차 나이가 들면서 뱀에 대한 적개심은 누그러지고 인간과 함께 자연을 구성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이 앞선다. 어릴 때 같으면 집에 거미가 보이면 분명 손으로 눌러 죽였을 테지만 지금은 화장지로 살짝 감싸서 밖의 화단에 놓아 준다. 내 생명이 중하면 남의 생명도 중한 것이다.
"얘, 아빠가 뱀을 치었나 보다." "어? 정말이네?" 놀란 딸아이는 눈을 가까이 대고 요모조모 자세히 뜯어보더니 "푸하하하하"하고 웃는다. "엥? 왜 웃냐?" "아이고, 아부지. 요거슨 뱀이 아녀라. 오징어 다리잖아요. 아빠는 요즘 도시락을 이렇게 싸 가지고 다니세요? 큭큭."
손으로 조심조심 떼어서 거실로 들어와 하얀 종이 위에 놓고 정밀하게 감식한 결과 딸아이 말대로 빨판의 흔적이 있는 오징어 다리가 분명했다. 날이 갈수록 눈에 벼멸구가 심해지는지라 시시때때로 마누라 돋보기를 빌리곤 하는데 그게 귀찮아 지난 주부터 돋보기를 한 개 사려다 차일피일 미룬 게 잘못이다. 에효효~ (그나저나 나보다 예닐곱 살이나 젊은 샵 쥔장이 더 문제여..)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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