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의 일이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친구 두 녀석과 작당하여 과수원에 잠입해 복숭아를 서리했는데 아직 덜 익을 무렵이라 대부분 풋것이었다. 씨알이 제법 실했지만 급하게 따느라 벌레먹은 것들과 덜 자란 조그만 것들이 많이 섞였다. 그래도 가져간 망태기에 수북한 것이 셋이 배불리 먹고도 한참 남을 만한 양이었다.
망태기를 메고 인적이 없는 숲으로 들어가 소나무들 사이로 난 풀밭에 쭈그리고 앉아 복숭아의 까실까실한 털을 잔디에 문질러 먹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그런 꿀맛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 친구 중 한 녀석이 아주 수줍음이 많고 소심했다. 이 친구 먹는 작태를 가만 보자니 작고 벌레먹은 것만 자꾸 골라서 풀에 문지르는 게 아닌가. "에라, 이 삼식아. 좋은 걸 골라서 먹어도 배가 터질 텐데 뭔 궁상여?" 나와 한 친구가 그 꼬라지가 웃겨서 혀를 차며 박장대소하자 그 친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응, 난 괜찮아. 그런데 작고 벌레먹은 것도 정말 맛있어."
▲그간 신었던 신발은 바닥이 미끄러워 싱글코스에서 끌바할 때 고생했는데 바닥 모양새를 보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빈한한 살림에 이 정도의 물건은 내게 엄청난 사치다.
각설하고,
몇 년 전에 아는 교수님과 사이즈 문제로 자전거를 통째로 교환하면서 아주 값비싼 안장이 따라왔다. 이것저것 따지는 사이가 아니니 그냥 통째로 교환한 것인데 이 값비싼 안장이 도무지 적응이 안 됐다. '뭐 몇 달 타면 엉덩이가 알아서 적응하겠지.' 생각하며 탔지만 일 년이 지나도 영 적응하기 어려웠다. 결국 교수님께 이야기했더니 "그렇다면 청죽님께 다른 안장을 하나 사 드릴 테니 그걸 나 한테 주세요."하셨다. 내가 고른 게 그 안장의 3분의 1 정도 가격의 안장이었는데 타 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적응기고 뭐고 곧바로 편안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값비싼 초록색 헬멧을 몇 년 썼는데 늘 머리 한 귀퉁이가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결국 8만 원을 주고 새로 장만했는데 그게 또 그렇게 가볍고 편했다. '음, 내가 아마도 싸구려 체질인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복숭아 서리를 하던 시절의 소심했던 친구녀석이 떠오른 건 물론이다.
이 싸구려 체질이 오늘 대단한 사치를 부렸다. 5년을 신은 클릿 신발이 바닥이 너덜너덜해져서 새것을 사려고 벼르고 벼르다 겨울용 방한화를 장만한 것이다.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작..이 아니고 라이딩을 해 봤는데 일단 괜찮은 것 같긴 한데 비싼 물건인지라 슬그머니 걱정된다.
'이것마저 내 체질에 맞지 않으면 어쩌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인 조국의 현실이 서럽다.
심란함 속에서도 계절의 변화는 무상할 정도로 여전하다.
▲일이 바빠 늘 자전거가 고프시다는 갑장님.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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