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난 다음 날 아침에는 틀림없이 안개가 낍니다.
이 동네는 강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산도 연해 있으므로
안개가 자주 끼는 곳입니다.
작년에는 별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안개폭포'가 방송에 보도되기도 했죠.
여기 사는 우리들은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그러려니 하지만
외지 사람들에게는 멋있는 자연현상으로 보이기에 부족함이 없나봅니다.
잠에서 일찍 깨어나서 밖을 내다봅니다.
안개가 낀 날 아침에 가까운 능에 있는 소나무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었기 때문입니다.
안개가 조금 낀 모습이 보입니다.
조금 더 누웠다가 다시 내다보니 전보다는 조금 더 끼었는데
이 정도의 안개가지고는 안될 것 같습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번에는 뒷편 발코니에 가 봤습니다.
안개가 스물스물 숲을 덮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는 동작은 뜬데 성격은 급한편입니다.
서둘러 양말을 끼어신고, 삼각대를 챙기고 카메라와 렌즈를 챙깁니다.
아침 찬 공기를 걱정해서 바람막이도 걸쳐입고, 모자도 챙겼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과 발길은 동동거립니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길에는 안개가 가득합니다.
잘 될 것 같은 기대와
전에도 한 번 시도했다가 망한 기억들~~
사거리 신호가 길기만 합니다.
어제 반기지도 않는 회식에 다녀와서 정로환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잤습니다.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는 날은 정로환을 먹고 자야되는데
그걸 잊어버린겁니다.
뱃속이 꾸룩거리는데 혹시 급한 증상이 오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능 앞,
차단해 놓은 도로 끝에 자동차가 한 대 서 있습니다.
'누가 벌써 사진을 찍으러 왔나?'
그러나 인적이 없습니다.
두리번 거리며 좋은 포인트를 찾아봅니다.
전에도 아침에 와서 찍은 적이 있는데 적당히(?)눈을 가리는 철제 담장 때문에
사진찍기에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용기를 내서 담장 안으로 잠입하고 싶기도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그런 용기는 없습니다.
신사는 아니어도 시정잡배 또한 아니라는 옹색한 자부심은 가지고 사니까요^^;;
물기 머금은 안개가 상쾌합니다.
필카를 가지고 올 용기가 없어서 디카만 가지가 온 자신이 초라합니다.
이럴 때 필카의 웅장한 셔터소리를 들어야 사진 찍는 맛이 나는데
다섯 통 사 놓은 필름에서 며칠 전에 노루귀를 찍고 두 통이 남았는데
그걸 쓸 용기가 나지 않는겁니다.
그만큼 신중을 기할 용기가 없고,
그걸 현상하고 스캔해서 CD에 담아야 하는 비용을 걱정하는 옹졸한 가슴이 문제입니다. ㅎㅎ
숨은 점점 차오릅니다.
삼각대를 가지고 왔지만 삼각대를 고정하고 찍기에는 화각이 마음에 들지 않고
그냥 찍자니 셔터속도가 턱없이 느리기 때문입니다.
자리를 계속 옮기면서 조금 높은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여기는 삼각대를 쓸 수는 있지만 나무와 너무 멀어졌네요.
싸구려 써드파티 렌즈 두 개가 전부인데
그래도 망원으로 찍는 것이 낫겠습니다.
셔터속도 걱정이 없으니 조리개도 줄여봅니다.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다리가 버티고 이젠 더 찍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노출을 달리하고 구도를 달리하고
그렇게 아침내 찍은 사진들입니다.
어떤 작가가 소나무 사진을 찍었는데
외국의 유명한 스타가 백지수표를 주었다죠. 아마~~!
그런 사진은 아니지만
구름선비가 아침내 코 평수를 늘리면서
헐떡이며 찍은 사진이니까
예쁘게 봐 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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