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추위로 영원할 것만 같았던 겨울이
이렇게 풀리기 시작하더니
척박한 환경에도
메말랐던 대지에도
담쟁이도
민들레도, 온갖 들풀과 꽃들이 만화방창하며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담장 밖이 궁금한 개나리리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밀고
산수유도 만개하여 마음을 적신다.
목련이 자태를 혼곤하게 뽐낼 무렵,
이렇게 일촉즉발하던
벚꽃도 이렇게
저렇게
활짝
만개했다.
이름모를(엥?) 샵 쥔장은 마냥 신이 났고 늙은이는 애마와 함께 봄볕 아래 졸고 있을 때 ('신시티'란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네?)
요로코롬(왼쪽)
조로코롬(오른쪽) 생긴 분이
요렇게 생긴 올마를 새로 장만했다며 끌고 급작스레 찾아와 방해하는 바람에 춘몽에서 깨어나다. 바람을 쐬러 왔다는 이 분의 말에 처음에 문득 스쳤던, '자전거 자랑하려고 온 거 아냐?'하는 생각을 급히 접다.
변변히 대접할 재간이 없는 위인은 돼지껍데기와 탁배기로 어물쩍 넘기려는데
"어? 왜 청죽님이 돈을 내세요?"하며 자신이 술값을 내겠다며 남의 동네에 와서 감히 말리시는데
아마도 영역의 개념과 오랜 역사에 관한 인식에 착오를 일으키신 탓일 것이다.
"그나저나 청죽님."
"네."
"어떤 논네 한 분께서 꽤 성화십니다. 월급을 탔으면 용돈을 줘야 할 거 아니냐고요."
"누구신데요?"
"산xxxx이님이시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아다마다요. 그래 용돈 좀 드렸습니까?켈켈"
"참내, 나이가 깡패라고, 바랄 걸 바라셔야지요.어림도 없습니다.헐헐."
이러던 이 분께서 술값을 못 내게 했더니
"청죽님 담배는 뭘 피우세요?" 하시더니만 말릴 새도 없이
한 갑도 아닌 두 갑이나 덜컥 사서 기어코 내 주머니에 넣어 주신다.
나야 어른 대접을 받아서 좋긴 하지만 차별받는 분이
서울 어디쯤에 분명 존재하는 현실에 생각이 미치자니
한편으로 마음이 무겁다.
위의 대화에 등장하는 분이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다.
앞마당의 남새밭과
동네 앞 들판에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면
그 분이 간혹 떠오르기는 한다.
행여 이 글을 그 분이 읽으시고 아지랑이와 함께 올라온 청개구리처럼 팔짝팔짝 뛰시거나
왕 삐짐에 마음이 툰드라의 겨울이 되는 일이 없으시길 간절히 빈다.
왜냐면 이 글은 단순히 봄날에 관한 이야기일 뿐,
염장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순수한 글이기 때문이다.(겔겔)
가시는 길에 배웅차 따라나서서 천변에 머물며
이런 저런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한참 피우다 보니 날이 저물고 말았다.
자신에게 들이닥친 애절한 가정사에도 불구하고
시종 날 위로해 주며 격려하던, 가는 그의 뒷모습을 문득 돌아보니
저으기 마음이 짠하다.
어슴푸레한 가로등 빛을 받은 채,
대낮의 화려하기 이를데 없었던 열정을 숨긴 벚꽃을
자전거를 세우고 물끄러미 바라보자니,
그렇게도 신명나했던, 자전거를 향한 열정을 숨긴,
심드렁한 요즘의 나의 모습 같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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