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도라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듸 업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재의 시조입니다.
500년이나 수도였던 개성을 한 필 말로 돌아보니
산천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어디론가 가고 없으며
국가의 흥망성쇠는 무상하다는 내용입죠.
오늘 오래 간만에 자주 다니던 싱글을 타 보았습니다.
폭우가 온 뒤로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이라
걱정스러웠지만 천천히 다니면 별 문제 없을 것이라는
자기최면을 걸었지요. ㅎㅎ
저희 동네도 비가 많이 온 편이라 자전거가 다니면서
낙엽이 없어진 길은 적지않게 패어 있었습니다.
나무뿌리도 많아지고, 큰 돌들이 많이 나와서
쉽게 올라가던 곳도 포기했고,
잘 내려오던 곳도 내리게하더군요.
여름,
엄청난 폭우가 저를 겸손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나무가 쓰러져서 길을 막거나
기울어져 있던 나무가 더 기울어지면서 고개를 숙이지 않고는 통과할 수 없으니
이 또한 오래간만에 가는 저를 겸손하게 하는 것이었죠.
다운힐이 거의 끝나는 곳,
도로로 내려오는 길이 있는데
풀이 한 길은 자랐습니다.
그 중에는 딸기나무와 한삼덩굴,
이름을 모르는 가시달린 풀들이 우거져서
양쪽 무릎,
얼굴까지도 상처를 내고 왔습니다.
저만 이 아니라 그 길을 다니던 다른 사람들도 가지 않았나봅니다.
본시는 그들의 영토였으니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옳겠지만
한 마리 필마로 개성을 돌아보는
길재의 마음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며칠 안으로 낫과 톱을 가지고 다시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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