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일 즉, 자전거를 멀리하는 일이 실제로 제게 일어났습니다.
이런 저런 심정적인 이유들로 인해서였지요.
제 블로그를 문득 들어가 보니 봄날에 관한 이야기가 끝이었으니 폐가처럼 잡초가 무성하더군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들어오던 왈바도 몇 달이나...
그래도 마음 한켠으로는 늘 왈바가 그리웠습니다.
요 며칠 전부터 자전거를 다시 타기 시작했답니다.
여러분 모두 추석 명절 즐겁게 쇠십시오.
靑竹 拜上
갑자기 휴가를 냈다며 지독한 장마가 계속되던 8월초.
이선비(고산)께서 강원도로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자며 불쑥 제안하셨다.
그동안 일에 치어서였는지 자전거가 어지간히 고프셨나 보다.
자전거로 영월, 정선, 평창, 횡성을 돌아보기로 작정하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숙부의 손에 무참하게 죽어간 어린 단종이 묻힌 장릉을 마주하니
지독한 뙤약볕 아래임에도 서늘한 서러움이 묻어난다.
눈이 시리도록 강렬한 태양과 짙푸른 소나무 숲을 바라보자니
어린 조카를 죽이면서까지 차지했던 권력이란 게 정말 무상할 거란 상념이 들다.
서울 경기 지방은 내내 비가 내렸지만
우리가 도착하기 전날까지 비가 줄기차게 내렸다던 강원도는 내내 태양이 이글거렸다.
척박한 땅에 옥수수 몇 포기를 키우기 위해 들였을 공이 실로 놀랍다.
그간 내린 장맛비로 강물이 온통 황톳빛이다.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며 아우라지 뱃사공더러 "내 좀 건너 주게" 했지만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했던 걸 보면
올동박이 떨어지는 걱정은 기실 넋두리였을 것 같다.
땡볕에 고개를 넘느라 허덕이다가 문득 옆을 내려다 보니
더할 나위 없이 그윽한 소나무숲이 눈에 확 들어온다.
정선 장에 들러 부꾸미와 탁배기로 허기를 달래다.
가리왕산 임도를 오르는 길에 만난 조그만 폭포.
평창군 미탄면이란 고장에 있는 해발 1200미터에 무려 600마지기의 고랭지 채소밭이 있었다.
한낮의 라이딩으로 저으기 지쳤으므로 "에효, 난 여기(이 사진을 찍은 장소)까지밖에 못 오르겠소.
혼자서 정상까지 다녀오시구랴." 하며 한사코 못 올라가겠다고 버텼더니,
"헛 참, 정상에 가면 사진찍을 만한 곳이 많을 텐데요. 하는 수 없죠 뭐."하시더니
정말 혼자서 올라가신다. 1분쯤 호흡을 고르다 안 되겠다 싶어 뒤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의 의지력이란 것에 외경심까지 든다.
지금은 정상까지 도로가 나 있어 그렇다 쳐도
제대로 난 길도 없던 예전엔 어찌 이런 곳에 농사를 짓고 살았을꼬?
한나절 중 오르고 내리는 시간 빼면 언제 땅을 갈 시간이 있었을까?
이효석 기념관. 어려서 '메밀꽃 필 무렵'을 읽으며 뛰어난 감성의 세계에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봉평장 어디쯤에 허생원이 있을 것 같다.
눈이 머무는 곳마다 절경이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강원도란 고장은 너무도 아름답다.
횡성호. 댐이 생기는 바람에 다섯 개의 부락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고향을 잃은 실향민 아닌 실향민들이 기념관을 지어놓은 곳에서 찰칵.
장마철인지 우기인지 여름 내내 비가 지독히도 내렸지만,
고산님께나 내게나 자전거는 타는 듯한 가뭄이었다.
사흘 동안의 강원도 자전거 여행은 우리 둘이 겪고 있던 자전거가뭄을
해갈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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