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께만 해도 50여 마리로 번성하던 구피 왕국이 멸망하기 직전까지 갔다.
작년에 막내동생과 막내처남에게 퍼(?)주고 나서 달랑 성어 열두 마리가 남았었는데
무려 5개월 동안이나 도통 번식을 않는 것이었다.
'거참, 이것들이 이제 수명도 얼마 안 남았을 텐데 큰일이 났네.'
하며 혀만 차고 있었는데....
그렇게 5월이 되었다. 단식이라도 하듯 잘 먹지 않던, 마누라가 사 온 바뀐 사료를 버리고
수족관에 가서 구피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사료를 샀다. 수족관 사람의 말대로 역시 먹이를 잘 먹었다.
사료를 바꾸고 나서 열흘쯤 지났을 무렵, 드디어 치어가 보인다.
머리털이 곤두서면서 어항 옆에 쭈그리고 앉아 성어들이 잡아먹기 전에 치어들을 건져냈다.
'흐흐, 여덟 마리닷! 이제 구피왕국이 멸망할 일은 없닷!'
왜 그렇게 신이 나던지.
그런데 문제는 며칠 뒤였다. 암컷 성어가 여섯 마리였는데 이 녀석들이 날을 잡았는지
밤 열 시부터 세 시간 동안 연달아 치어를 낳는 바람에 잠도 못 자고 새끼를 건졌는데 무려 38마리다.
에효효~ . 보름인가 뒤에 또 열 한 마리. 또 열흘인가 뒤에 열댓 마리. 아고고.
기나긴 장마를 겪으면서 7월이 되자 백 마리를 넘기고 말았다.
"여보, 새끼 안 낳는다고 걱정이더니 이제 어떻게 감당하시려우?"
"뭔 걱정여? 낳는대로 거실에 빙 둘러서 어항을 들이는 거지 뭐."
"그래도 넘치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하시려고?"
"음...그..뭐, 하루에 한 바가지씩 퍼서 매운탕이나 끓여서 먹지 뭐."
"아이고, 저 냥반 실없는 소리는 호호호."
아들과 딸아이 친구들 중에 구피를 키울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 싫다고 한단다.
마누라 친구 중에 키우겠다는 사람이 있어 8월에 30여 마리를 기쁘게 분양했다.
치어들이 나오면 조약돌 사이로 계속 숨어 있으면 좋은데 이 녀석들이 세상이 궁금한지
밖으로 나왔다가 성어들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을 보면서
'에효효~이제 인구 아니, 어구도 많이 늘었는데 굳이 애써서 건질 필요가 있겠어?'
'자연 생태계에서도 치어들 생존율이 아주 낮다던데 살 놈은 살고
먹히는 놈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어?'
하는 좀 야비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곤 했지만 요즘도 치어들이 보이면 반사적으로 건지려 달려든다.
며칠 전에 치어들을 건지는 동안에 눈앞에서 세 마리가 잡아먹히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화가 나서
하루를 굶긴 적이 있는데, 다음날 사료를 주면서 녀석들을 굶긴 인간적인 잣대가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아흔 중반이 되도록 장수하던 분이 자손이 번성해서 한 마을에 모두 모여 사는 이야기를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자손들 숫자가 무려 80여 명이 넘었단다.
너무 많으니 장수 노인장께서는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 어려워
동네를 걷다가 꼬맹이를 만나기라도 하면
"얘, 너는 뉘 집 아들인고?"
하며 묻곤 했단다.
열두 마리일 때는 구피들에게 이름까지 붙여 줄 정도였었는데
물 반, 고기 반이니 내가 그 꼴이다.
그렇지만 구피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때론 한 시간이 넘도록 들여다보기도 하니까.
"한 자짜리 어항을 두 자짜리로 늘려야 할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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