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자전거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몇 년 전 금연하게 됐던 가장 커다란 동기가 업힐을 잘 하기 위해서였으니 좀 우습긴 하다.분명 다리엔 힘이 남아 있는데 호흡이 꽉 막혀 도중에 낙마하다 보니 화가 났었다. '젠장 호흡만 터져 주면 충분히 올라갈 만한 코스인데 열받네'하는 생각이 자주 들다가 급기야 끊게 되고 일 년 하고도 반 년을 잘 참아냈다. '에휴, 다시 피울 건 뭐람.' 다시 피우게 되니 그간 못 피운 걸 벌충이라도 하려는지 전보다 훨씬 심각한 헤비 스모커가 되어 있는 날 발견하고는 소름이 돋았다. 예전엔 많이 피워야 하루 두 갑 정도였는데 다시 피운 뒤로는 보통 하루 세 갑에 심할 땐 그 이상도 피워댔다. 오죽하면 현관 앞에 있는 종이류 쓰레기 분리수거함에 빈 담뱃갑이 산더미처럼 쌓여 "어휴~영감태기 때문에 내가 동네 창피해서 못 살아요. 담뱃갑이 어느 정도라야지 참내."하며 계속되는 마누라의 푸념에 귀에 따그랭이가 앉을 지경이었다.
▲오뚜기령을 넘으며.
자, 어차피 피운 건 할 수 없고 다시 담배 없는 세상으로 가는 거다. 담배 없는 세상이 어디 있겠냐만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는 법, 내가 피우지 않아서 손댈 일이 없으면 이 세상에 담배는 없는 것이다. 금연을 시작할 때의 사뭇 절박했던 심정은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아주 짧은 시간)'한 개비만 피웠으면'하는 간절한 욕구에 점점 희미해지며 '까짓 몰래 한 개비만 피울까?' '평생 벗이었는데 굳이 끊을 필요까지 있을까?' '어쩌면 식후에 한 개비씩만 피워서 하루 3개비로 견딜 수도 있을 거야.'(<----요거 천만에다.) '에이,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 낭만적인 담배를 끊으려고 한담?' 하는 등의 온갖 속삭임이 악마처럼 파고들어 그 속삭임에 넘어가는 자기 기만을 저지르게 되어 대부분 금연에 실패한다.
▲지난 8월초 강원도 자전거 여행 중 정선의 아우라지에서.
자, 이번이 35년 골초 인생에서 두 번째 시도하는 금연이다. 하루 피워댔던 세 갑을 금액으로 환산했더니 에구구. 일 년에 무려 270여만 원이란 거액이다. 거금을 들여 몸을 망치는 4대강(4대강이 갑자기 나오냐..ㅡ,.ㅡ) 아니, 바보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담배를 끊어 절약할 수 있는 돈으로 이웃 돕기 등, 얼마나 바람직하고 보람찬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꼭 필요한 물건이나 가족들 선물을 살 수도 있을 것이고. 어쨌든 담배를 끊어서 생기는 건강의 호전, 또는 금전적인 이익을 비롯한 여러 가지 즐거운 일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있다.
산악자전거에 미친 나 같은 인간에게 헤비 스모킹은 그야말로 독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데 있어서 가장 장애가 되는 게 흡연이니까. 다리에 아무리 힘이 남아도 숨이 콱 막혀 그야말로 죽음이다. 집 뒤에 산사가 하나 있는데 거의 매일 일과처럼 해거름에 자전거로 오르곤 하는데 일 주일 정도 계속 오르다 보면 다리 근육이 뭉쳐서 허벅지며 종아리에 뻐근한 통증이 몰려오는데 밤에 편히 잠들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금연하게 되면 평소 통증을 느끼던 근육 부위가 무슨 약한 전기에 감전이라도 되듯 찌릿찌릿해지며 간질간질한 느낌이 드는데 아픈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으면서 잠도 잘 온다. 생체학에 아는 건 없지만 아마도 세포들에 산소 공급이 원활해지는 탓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금연 후 호전되는 증상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걱정은 있다. 군에서 제대하고 직장에 다니는 아들놈이 꿋꿋하게 내 뒤를 이어 골초다.(망할 녀석. 가업도 아닌데.)놈의 방에 가면 언제나 싱싱하고 희고 늘씬한 미녀들이 알록달록한 종이 포장지 안에 다소곳이 도열해 있다. 그걸 부디 극복해야 한다. 같이 끊자고 구슬러 보기도 했지만 '알았다'는 대답뿐이니 머리가 여문 녀석을 두들겨 팰 수도 없고 에효효.
난이도로 보면 전국적으로 순위에 드는 업힐 코스가 하나 있는데 흡연할 때는 등정이 불가능하다. 조만간(올해가 가기 전에!!!!) 거기에 도전하리라. 금연 만세다.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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