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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이야기

목수2011.11.10 22:21조회 수 1218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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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친구가 있습니다

벌써 20여년 된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얼굴을 보진 못합니다
가끔은 다른 친구들을 통해서 안부를 묻기도 하고
몇년만에 한번 얼굴을 봐도 말갛게 웃으며 한살어린 저에게도
항상 이름뒤에 씨자를 붙여주는 친구입니다
 
20여년을 넘게
항상 짧은 쑈트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두툼한 뿔테안경, 허스키한 목소리, 그리고 해맑은 미소...
마흔을 넘기고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결혼은 생각도 않고
어려운 일이 있는 곳에는 항상 누구보다 먼저 가 있던 친구였습니다

2003년엔가 회사동료가 죽은 이후로
친구장례를 치루고 와서 방에 보일러불을 피우는 자신이 절망스러워서
그 죄책감에 몇년째 아직까지도 한겨울 엄동설한에도
방에 불을 피우지 못하는 마음 여린 친구입니다

이 미련하고 대책없는 친구가 지난 1월 6일
2003년에 그 회사 동료가 몸을 던진 크레인위로
아무도 모르게 한밤중에 올라가서
아무도 올라오지 못하게 문을 용접해 버리고는
자기는 살아서 내려가서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딛겠다고 하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본 사람들은 압니다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 볼 때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그리고 300일이 넘게 흘렀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
누우면 머리와 발은 벽에 닿고
몸 뒤척이기도 어려운 공간에서
얼마나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지냈을지...

그리고 한참이 지난후에

많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그녀가 누군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그녀를 살려서
걸어 내려오게 해야한다고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할때도
친구라고 생각하는 저는
부끄럽게도
한번도 내려가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그녀가 자신이 한 약속대로
"살아서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디뎠습니다"

지난 300여일동안
연락 한 번 못하고
혼자 속으로만 마음 아파하고 눈물을 삼켜왔지만
오늘은 소리지르고 싶습니다

"진숙씨 사랑해!!!"

그리고 오늘 밤 마음껏 울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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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달려들면 무서워요. (by 靑竹) 쭈꾸미와의 만남 (by 탑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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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 뉴스 검색을 하고서야 상황을 이해합니다.

    아픔을 공유할 줄 모르는 이기적 삶이 부끄럽습니다.

    좋은 친구를 두셨군요.

  • 탑돌이님께
    목수글쓴이
    2011.11.11 21:16 댓글추천 0비추천 0

    그런 불편한 마음이

    우리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하는

    "힘" 이겠지요

    가끔 잔차가 말썽을 부린다는 소식을 올리셔도

    워낙 멀어서

    도움도 드리지 못하는 군요

    먼 이국땅에서 항상 건강하시길...

  • 목수님 친구시군요  ~~~

    정치에 대해서 잘 모르고 ~~  더더욱 노동운동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오늘   김진숙씨 ( 성이 맞나요 )가 내려왔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그  뉴스를 듣는 제가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 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

    목수님 ~~~  축하합니다 ~~~~

  • 줌마님께
    목수글쓴이
    2011.11.11 21:18 댓글추천 0비추천 0

    그 뉴스를 보면서

    기뻐하는 분들의 마음들이 모아져서

    진숙씨가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을 겁니다

    줌마님 감사합니다

  • 오늘 뉴스에서 나왔듯이

    앞으로 잠정합의안...그대로 지킬지...궁금하네요..

     

     

    전에 삼성역에 있는 한 매체 면접내용이 기억나네요.

    데모경력, 이적행위 여부, 정치성향을 물어봐서 뒤도 안돌아보고 나왔던... 

  • mtbiker님께
    목수글쓴이
    2011.11.11 21:26 댓글추천 0비추천 0

    2003년 그 85호 크레인에서 김주익 위원장이 몸을 던지고

    그 열흘 후에 곽재규라는 현장 조합원이 도크에 몸을 던지고 합의한 것이

    "향후 정리해고시에는 노동조합과 합의하겠다" 였습니다

    그리고 7년 후에 이런일이 또 벌어진거죠

    참 약속을 지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지...

  • 상생정치란 이런 것이겠지요?

    "생즉사 사즉생"이란 어구가 떠오릅니다.

    부디 이런 해피엔딩이 앞으로도 주욱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santa fe님께
    목수글쓴이
    2011.11.11 21:29 댓글추천 0비추천 0

    저도 노사간에

    갈등과 폭력 보다는

    대화와 타협이 항상 함께하길 빕니다

    문제는 이러한 타협이 항상 갈등의 극단에서

    결국은 정치권과 시민들이 나서야 해결되니까 문제겠죠

     

  • 그간 신문에서, 잡지에서 먼 발치에서 찍힌 사진만 봐왔습니다. 희망버스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마음만 갔었구요.

    어제 내려온 취재영상을 보니 2002년에 병원 로비에 몇 번이나 와 주셨던 그 진숙 누님이 아니더랍니다.

    9년만에 너무도 삭으셨습니다.TT

    진숙 누님 고생하셨고 절반이긴 하지만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엉엉엉~~~!

  • 십자수님께
    목수글쓴이
    2011.11.11 21:32 댓글추천 0비추천 0

    그 맑고 환한 웃음은

    그대로지만

    많이 늙었더군요

    그래도 그친구

    우리 모두가 화면에서 본 것처럼 여전히 씩씩하더군요

  • 어떻게 그리 견뎌낼 수 있었는지..

    작지만 강한 그녀의 몸짓이 세상을 바꾸는 힘입니다.

    환하게 웃으며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더군요.

  • 목수글쓴이
    2011.11.11 21:34 댓글추천 0비추천 0

    이런걸 대할 때마다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훨씬 더 강하다는 걸 느낍니다

    토굴속에서 마늘과 쑥만 먹고 100일을 견뎌낸

    곰의 후손들이라 그럴까요? ㅎㅎㅎ 

  • 목수글쓴이
    2011.11.11 21:44 댓글추천 0비추천 0

    요며칠 그 소식에

    몸과 마음을 졸였다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

    몸살기가 있습니다

    며칠 앓고 나면 괜찮겠죠

    (참 그런거 보면 제가 꽤나 나약합니다)

    오늘 뉴스에 보니까 또 이런 가슴아픈 소식이 있더군요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5066.html

    외자유치를 하겠다고 만든

    정리해고 비정규직화가

    아니, 그렇게 유치한 외자가

    우리자본을 얼마나 망가뜨리고

    우리의 삶을 얼마나 황폐화시키는지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사태를 보면서

    우리사회가 이제는 노동시장 유연화 문제를

    다시 돌와봐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 두 분 , 머리 스탈이 똑같아요~


  • 정병호님께
    목수글쓴이
    2011.11.12 00:46 댓글추천 0비추천 0

    아녀요

    전 꽁지 머리고

    그 아줌씬

    20년 넘도록 쇼트머리 ㅋㅋㅋ

  • 항상 짧은 쑈트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두툼한 뿔테안경, 허스키한 목소리, 그리고 해맑은 미소...
    마흔을 넘기고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결혼은 생각도 않고
    어려운 일이 있는 곳에는 항상 누구보다 먼저 가 있던 친구

    ==> 이 부분에서 소금꽃 김진숙씨인 것을 미리 알았습니다.^^

  • 김진숙씨의 고통스러웠던 300일은 한진이나 정부의 꼼수로 당장은 장미빛 결과를

    안겨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크고 아름다운 장미꽃을 피우는 아주 훌륭한 밑거름이 되리라는건

    압니다.

  • 링크 괜히 봤습니다. 쩝~~~~~~~~! 마음 아픕니다. TT

    이런 날 목수님과 막걸리 한 잔 들이켜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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