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가 있습니다
벌써 20여년 된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얼굴을 보진 못합니다
가끔은 다른 친구들을 통해서 안부를 묻기도 하고
몇년만에 한번 얼굴을 봐도 말갛게 웃으며 한살어린 저에게도
항상 이름뒤에 씨자를 붙여주는 친구입니다
20여년을 넘게
항상 짧은 쑈트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두툼한 뿔테안경, 허스키한 목소리, 그리고 해맑은 미소...
마흔을 넘기고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결혼은 생각도 않고
어려운 일이 있는 곳에는 항상 누구보다 먼저 가 있던 친구였습니다
2003년엔가 회사동료가 죽은 이후로
친구장례를 치루고 와서 방에 보일러불을 피우는 자신이 절망스러워서
그 죄책감에 몇년째 아직까지도 한겨울 엄동설한에도
방에 불을 피우지 못하는 마음 여린 친구입니다
이 미련하고 대책없는 친구가 지난 1월 6일
2003년에 그 회사 동료가 몸을 던진 크레인위로
아무도 모르게 한밤중에 올라가서
아무도 올라오지 못하게 문을 용접해 버리고는
자기는 살아서 내려가서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딛겠다고 하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본 사람들은 압니다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 볼 때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그리고 300일이 넘게 흘렀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
누우면 머리와 발은 벽에 닿고
몸 뒤척이기도 어려운 공간에서
얼마나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지냈을지...
그리고 한참이 지난후에
많은 사람들이
말 그대로 그녀가 누군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그녀를 살려서
걸어 내려오게 해야한다고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할때도
친구라고 생각하는 저는
부끄럽게도
한번도 내려가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그녀가 자신이 한 약속대로
"살아서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디뎠습니다"
지난 300여일동안
연락 한 번 못하고
혼자 속으로만 마음 아파하고 눈물을 삼켜왔지만
오늘은 소리지르고 싶습니다
"진숙씨 사랑해!!!"
그리고 오늘 밤 마음껏 울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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