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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 멘붕이다. 금강산 라이딩이 그립다.

mandolin2013.01.10 11:36조회 수 3779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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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멘 붕이다.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

울화통이 터져 끊었던 담배도 한 대 피워보지만 답답하기만 하다.

한 노인 자전거여행가로서 죽기 전에는 꼭 북한에 자전거 여행을 가 보겠다는 자그마하고 소박한 꿈은 이제 좀처럼 이루어 질 것 같

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결코 거창하지 않은 꿈을 잉태하기 시작한 것은 그러니까 막 MTB를 시작한 무렵인 12년 전인 200111월 중순 금강산 자전

거대행진이란 이름의 대회에 참가하면서 부터다.

그로부터는 자전거 핸들을 잡을 때 마다 얼핏 하면 아련한 금강산의 추억이 떠오르고 목이 말라진다. 이런 목마름 탓인지 북한 북쪽,

중국쪽의 백두산은 물론  몽골을 두 번이나 갔다 오고 심지어 러시아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 까지 갔다 왔지만 결코 그 갈증은 해소

되질 않았다   

12년 전의 그 자전거 대행진단은 후

원업체들에서 지원해준 자전거 5

대를 북한에 기증하겠다는 목적으

로 동해서 설봉 호 편으로 북한 장진

외항에 도착했다. 입국절차를 밟고

현대아산 측이 마련해둔 버스로 갈

아타고 꼬부랑길을 오르고 올라 금

강산 초입의 한 주차장에 도착하니

북한의 남녀 가이드들이 우리들을

맞았다. 우리들은 이들의 안내로 금

강산 계곡을 오르고 소 봉오리에 올

라 절경을 만끽하고는 하산했고 주

차장에서 뒤쳐진 일행을 기다리며

쉬고 있었는데 이때 자연스레 가이드들과 자유대화가 이뤄졌다.

솔직히 우리는 그들의 초라한 복장에 우선 좀 연민을 느꼈다.

30살 안팎으로 보이는 결코 부태스럽지 않은, 가냘프면서도 경쾌한 몸매에 아주 명석하면서 예리해 보이는 한 남자 가이드는 벌써

좀 쌀쌀한 날씨에도 얇은 천의 점퍼차림이었고 25살가량의 여자 가이드는 치마저고리에 털실 목도리를 목에 감고 있는, 마치 50

대의 여성 옷차림 그대로 였다.

내게 닥아 온 그 남자 가이드는 다른 몇 명에 비해 책임자처럼 보였고 그래서 틀림없이 김일성대학 출신의 기관원일 것으로 짐작됐

. 그리고 옆의 나무 그루터기 위에 앉은 두 여성 가이드 가운데 얼굴이 곱상한, 털실 목도리 여인은 특히 그 얼굴 모습이나 옷차림

이 꼭 옛날 고교시절 경북산골 외갓집에 갔을 때 내가 유난히 좋아했던 사촌 누나 모습을 방불케 해 절로 연신 눈길이 쏠렸다.

나는 그들의 노고에 답례라도 하는 양 담배를 꺼내(지금은 금연한지 1년이 지났다.) 그 남자 가이드에게 권해 봤더니 현격한 세대 차

이에도 불구하고 스스럼없이 받으며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 주고, 그도 그것이 그쪽 풍속인 양 감히 맞담배질이다그 당시의 평소 내

습관대로 담배 한 모금을 머금고는 또 에이~ 담배값을 올린다니..”라는 불만 투의 말을 내 뱉자 그는

누가 올린답니까?“

누군 누구여..이해찬 이지.”

누구라고요?”

이 해 찬이라니까.. 우리 정부의 실세 인물이지.(당시는 국무총리가 되기 전이었으며 한 신문 지상에 흡연인구를 줄이기 위해 담배

값을 올려야 한다는 그의 말이 실렸었다.)

이렇게 우리 현 정부에 불만을 토로하자 그는 옳거니 하는 표정이 돼 신이 나서 바짝 붙어 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한다.

어떻습니까? 금강산 경치가? 또 언제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훌~륭하지. 쉽게 올수 있다면 언제라도 직접 차를 몰고 올 텐데.. 말이여

선생님은 아주 높은 분들과 많이 친하시지요?.”

높기는 뭐가 높아?. 오래전에 일 손을 놓고 이제 회갑을 맞은, 그냥 평범한 한 늙은이에 불과한데..”

어느 대학 출신에 전공은 무얼 했죠?“

“K.....”

이렇게 까지 응대해주자 그는 남쪽의 거물급 인사라도 만난 양 좀 놀란 표정이 되어

~ 정말 대단한 분인 것 같군요.”

웃기지 마셔.. ㅎㅎㅎ

이렇게 얘기가 삽시간에 전개되자 아니나 다를 까 정말 정치적(?)인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통일이 된다고 봅니까?”

사실 나는 이 말이 틀림없이 나올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고 또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마음속으로 `옳거니` 하고 쾌재를 올리며,

우선 영구적인 권좌에 안주하려는 자들을 모조리 바다에 쳐 넣어야 해.”

란 말을 해주자 그의 눈이 큼지막해지며 경악하는 얼굴이 됐다. 그 뿐이 아니다. 다른 안내인도 놀라는 표정이었고 심지어 분당여성

자전거회원 몇 명 등 옆에서 이 말을 들은 우리 단원들도 당장 무슨 사건이라도 나는 것 아닌가 하고 두려워하는 표정이 되어 당혹스

러워 하는 것이 역력했다. 그 뒤로는 모두가 별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상 아무 일도 없었고 버스에 올라 하산했다.

 다음 날은 금강산을 바라보며 북측에 기증할 자전거 5백대를 단원들이 타고 온정 각에서 절경의 삼일포(왕복 24km)까지 달리는,

영원한 추억으로 남은 쾌거를 가졌지만 해금강 입구서 잠시 대기 중 일 때 금지되어 있는 그들과의 `사진을 함께 찍자`는 농담을 하

며 한 여성 가이드양의 허리를 옆으로 살짝 안아 보기도 했는데 악수를 해보니 손도 야들야들하고 얼굴도 곱상한데 허리 촉감은 엄

청나게 너무나 딱딱해 웬일인지 섬직한 느낌이 들어 한 동안 놀란 마음을 스스로 달래며 진정시켜야 할 지경이었다.

갈 때는 5백 여명이 경주하듯 달려 좀 경황이 없었으나 올 때는 해금강의 경관에 몰입하고 사진을 찍

느라고 뒤처지는 통에 출발 전에 정비반에 가서 안장을 내 체격에 맞춰 높여 세팅해 잘 달리던 내 자전

거는 누가 먼저 타고 가버려 안장이 아주 낮아 내 체격에 전혀 맞지 않는, 남은 마지막 한대의 앉은뱅

이 자전거를 겨우 몰고 맨 꽁지로 혼자 돌아오는 통에 주위를 제대로 찬찬히 둘러 볼 수 있었다.

온정 각에서 삼일포까지의 2차선 너비의 비포장도로는 주민과 접촉 가능성이 있는 쪽에 철책이 쳐 있

었고 그 너머는 잿빛 일색의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주택들과 주민 복색들, 쇠바퀴 우차, 남여 젊은이

들의 삽 만으로의 도로정비 공사 등등 마치 50년대의 영화장면을 보며 나도 모르게 가슴 북 바쳐 올랐

. 멀리서 우리들이 다 지나가기까지 경비병에 의해 통행이 차단된 채 길 한가운데서 멍청하니 서 있

던 주민들, 그리고 멀리 보이던 그 초라한 교사의 그 시골 초등교의 개구쟁이 학생들의 모습 등을 보면

서 절로 어떤 울분이 치솟아 계속 한 손을 흔들면서 목청껏 `안녕하시오?`라는 등의 소리를 외쳐 대고 있었다.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 시인 고은 씨가 울부짖듯 통일을 소망하던 그 시낭송-당시는

그 격한 어조가 이해 안 되었었지만 바로 내가 이렇게 울부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때 비로소

그의 뜨거운 열정의 울부짖음이 이해가 되었다.

귀로의 배에 올라서는 몰래 간 크게도 눈 덮이고 구름에 가린 금강산을 한 컷 찍었다.

원래 북한의 군항인 장전 외항에 정박 중인 설봉 호 선상에서는 금강산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항상 뭍 쪽에서 북측이 감시하고 있어 걸리면 큰일 난다는

거다. 그래서 가까운 육지 쪽서는 전혀 안 보이는 상갑판의 둔덕아래에 쪼그리

고 앉아 숨어서 디지탈 카메라로 한 컷 눌렀는데 지나고 보니 니콘 큰 카메라

로도 시도 할 껄 하는 후회가 생겼다. 이런 앵글의 사진은 사실 그들의 보안

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리라 보이지만 하여튼 금지된 앵글이어서 좀 스릴

느꼈다..

특히 그 당시 마산의 한 노부부가 소형차를 캠프 카로 개조해 허가를 받아 단독으로 금강산을 갔다 온 소식

은 우리 라이더들을 매료시켰으며 북한의 묘향산, 백두산등지를 자전거로 누비는 꿈을 유도하기에 충분 했

.

그러나 이제 요즘 `극우주의자`, `보수꼴통`들이 강세인 이 시대에서는 생전의 이런 꿈의 실현이 점점

원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항상 북으로 달리는 꿈만을 꾼다는 이유로 어느 누가 이 늙은이를 `좌빨`로 몰아치는 일이 생겨 난 이래

국정원에 들어 간 여자 조카 때문에 외가 쪽의 제일 웃어른이라는 입장에서 신원조회를  다 받은 인물

내 세워야 할 정도의 울적한 시대가 다시 도래할까 염려스러운 것은 역시 노파심이기를 바랄뿐이다..

 

 

당시에 홈피에 올렸던 금강산 라이딩 얘기는 다음 주소에,

http://user.chollian.net/~mogab/ku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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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하루속히 통일이 되어 누구나 잔차를 타고 금강산 가기를 소원 빌어 봅니다..

  • 저도 당시에 다녀왔는데 안내원과 대화할수있는 시간이 있었나봐요

    뒤따라다니면서 통제하고 식사시간에만 자유로왔던기억이

    그리고 남자분 한분이 노상 방뇨하는일이있어서 여성 안내원에 날키로운 섬득한목소리가 생각나고

    저는 만물상 정상까지 올라같다왔는데

    당시 장관회담이 제대로안되어 설봉호에 출발이 늦어저서 속초에 도착후 손해배상 운운 하며 소란하고

    인기가수였던 김현우는 가서 공연도 못하고  기증한자전거는 거절하여 출입국 관리소에 방치되어  녹슬어버렸다하고

    암튼 그때는 자주 갈수있으려니했던 꿈이 벌써 세월이 참 많이 지나같네요 .

  • 예전에 라이딩기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항상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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