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에서 며칠만 지나면 귀촌한 지 1년이 된다.
이사 올 집은 여기가 아니었는데 그 집 주인이 이십여 일을 남기고 이사를 못 가겠노라고 해서
부랴부랴 구한 집이 지금의 집이다.
여기서 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거기는 동네 이름도 몽산리로
지금 내가 몽산포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실제의 이 동네 이름은 달산리다.
말하자면 서울 인근에 사는 사람이 타지에 가서 서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몽산포는 알아도 달산포를 아는 사람은 드무니까 ㅎ
1년이 다 되어 가면서 이제는 동네 사람도 좀 알고
이곳 생활에도 적응되어 가고 있지만
얼굴이 검게 변했다고 해서 완전한 이 동네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주치는 사람이 적고,
상가도 멀고 문화도 먼 곳에 오다보니
그야말로 식물과도 대화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찌보면 타지에 와서 기댈 것이 그만큼 없어졌다는 이야기.
내 취미생활만 보더라도
살던 곳에서는 친구들도 있고 나를 아는 사람도 있었지만
여기 와서는 맨땅에 헤딩한다는 식으로
사람사귀기도 쉽지 않았다.
이곳 생활도 점점 일상화 되어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은 똥개 맹이에게 먹이를 주고
단 세 마리 기르는 청계들에게 먹이를 챙겨 주는 일이다.
딸내미나 마누라가 맹이의 먹이를 주는 경우는 있지만
닭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내 전담이 되었다.
주인도 알아보고 갖은 아양을 떠는 똥개와는 달리
더 하등동물인 닭은 그야말로 닭대가리다.
제 먹이통에 똥을 싸고
그 똥과 같이 있는 먹이를 먹는다.
단 이틀이라도 물에 신경쓰지 않으면
틀림없이 똥을 한 두 번 싸서
그 물을 먹고 있다.
오늘은 누군가가 준 맛없는 라면을 간식으로 주기로 했다.
스프를 뿌려 주었더니 안 먹어서
그냥 먹이통에 손으로 부숴 주는데
장갑을 안 끼고 부수려니 잘 부숴지지 않는다.
닭에게 주다 보니 맹이도 생라면을 좋아하니
조금 남겨서 맹이에게 주기로 했다.
닭에게 먼저 먹이를 주면 질투를 하는지
닭장을 보며 엄청 짖기 때문에 먹이를 먼저 주었기 때문에 밥그릇에 줄 수는 없고
맹이의 장난감이 된 큰 스텐레스 그릇을 찾아 거기다 부숴 주려고 하는데
먹던 먹이는 안 먹고 라면을 먹으려고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이놈이 똥개가 확실한 것은 먹이를 줄 때만 복종하는체 하는데
그 약점을 파고들기로 했다.
라면 부스러기를 한 조각 잘라서 맹이 앞에서 우걱우걱 씹는다.
끓이면 맛이 없는데 먹을만하다.
맹이가 계속해서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나는 그 놈이 알아 듣는 몇 마디 언어와 몸짓 중에서
엎드려! 기다려를 쓰기로 했다.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위에서 아래로 그 놈의 얼굴에 맞춰 내리면서
엎드려를 하면 엉거주춤 앉는다.
앉고 나면 손끝을 하늘로 세우고 그 놈 얼굴을 향해서 기다려를 하면 말을 듣는데
아까 말한대로 밥을 줄 때만 그렇다.
그 순간이 재미있는데 눈을 나와 마주치고
그야말로 애원의 눈초리를 보낸다. ㅎㅎ
그리고는 기다리는게 힘들다는 것인지 꼭 끄응 소리를 내는데
그게 제일 재미있다.
일부러 라면 한 조각을 다시 입에 넣고 씹었다.
그리고 그놈의 얼굴을 본다.
너무 지나치면 집중을 안하므로
라면을 조금 부스러뜨려 주었다.
냉큼 주워먹는다.
어찌보면 가련하기도 한 녀석의 행동을 보면서
시원찮은 나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놈이 때린다고 나를 배반할 리도 없고
혼냈다고 해서 앙심을 품거나 나를 미워할 리도 없다.
오로지 밥을 주는 내 눈치를 보면서
그저 친밀한 눈빛과 충성으로 일관하겠지.
배반을 일삼는 인간보다 나은 점이 그것이라는 생각.
똥을 치워주고 먹이를 주는 일이 싫지 않음은
똥개나마 어찌보면 동반자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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