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MTB의 존재를 잘 모르던 시절 , 심심풀이 겸 운동할 요량으로 아는 회사후배의 도움을 받아 제 생각에는 획기적인 자전거를 하나 샀습니다. 이름하여 ‘풀샥 접는 자전거’ 기어도 변변히 없는 자전거만 타다가 모양 갖춘 기어에다 엉덩이가 편한 뒷샥에 게다가 접어서 차 안에 넣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최고의 자전거였죠..잘 둔 후배덕에 좋은 자전거 타 보는구나 싶었습니다..물론 무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평소 꿈인 내집 마련을 위해 서울에서 경기도 화정으로 이사를 갔지요..공기 좋고 길 넓고 온통 평지고 전망 좋고 진작에 이사올걸 했었습니다..이것은 자전거 생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봄날 일요일 햇살 찬란한 느즈막한 아침 , 창밖을 문득 바라보다 멀리 논밭지대를 지나 있는 야트막한 구릉지대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오밀조밀 집과 나무가 섞여 있어 저 속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다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는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던 ‘풀샥 접는 철티비’를 끌고 길을 나섰습니다.
이곳저곳 햇살 받으며 상큼한 바람 느끼며 다닌 동네 한바퀴 자전거 여행은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논길 밭길을 지나 흙과 나무가 가득한 전원풍경을 정신없이 감상하다보니 2~3시간이 금방 지나더군요.
이윽고 귀환을 재촉하는 뱃속에서의 아우성이 들리면서 아쉽지만 첫 유람을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본론>
논밭길을 지나 5~6개의 꽃가게들이 늘어선 왕복 6차선 정도의 건널목을 건너려 짝궁뎅이로 다리 짚고 신호대기를 하고 있던중 이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다 문득 10미터 뒤에 dung색 개한마리가 눈에 들어 오더군요..그녀석 허시퍼피처럼 축 늘어진 귀에 땅바닥에 턱을 궤고는 측은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 보더군요. 눈망울이 크고 더없이 착해 보였습니다. 마치 꽃가게 아가씨처럼….워낙 개를 좋아하는 데다 주변에 인적조차 없었기에 그녀석이 들릴만한 소리로 말을 걸었지요..
“안녕…나 여기 첨 이사와서 동네 한바퀴 돌고 집에 간다(씨익)…내 자전거 멋지지?…이게 소위 말하는 풀샥에 접는 자전거야…최고의 자전거라고 할 수 있지…^^”
마치 알아 듣는 모양으로 그 녀석 흘끔 눈길을 주더니 관심있게 들으려는 듯 앞다리를 세워 앉더군요…지나가는 dung개에게 말 거는 사람이 그리 흔치는 않아 그동안 많이 외로왔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얼마정도 다정한 눈빛으로 개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다가 신호가 바뀔때 쯤인가 하여 건널목쪽을 바라보았으나 차들은 여전히 씽씽… 건널목 신호는 여전히 빨간 불이었습니다
‘사람이 워낙 없다보니 신호가 좀 긴 모양이군..그래..맞아..이런데선 좀 기다려도 돼..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차들도 좀 달려야지..’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하며 다시 그 dung 개쪽을 향해고개를 돌렸습니다..햇살에 어울리는 은은한 미소를 짓고 말입니다..
그 녀석 제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딴청을 하며 딴데를 쳐다 보고 있더군요..그러다가 자기에게 쏠린 눈길을 의식하고는 이내 저와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그러는 사이 문득 나와 개와의 거리가 아까보다 조금 가까워진 것 같다는 느낌이들었습니다..가만히 살펴보니 한 2~3미터 정도 개가 앞으로 움직인 듯 했습니다..처음과 같은 자세로 앉아 있길래 첨에는 몰라 본 것 이었죠..게다가 않 움직인 것 처럼 딴청마저 하고 있으니….
‘허참 저게 사람을 놀리나…..--;…아냐..사람이 그리운걸게야..^^ ’
이렇게 또 한번 기특한 생각을 하며 아까보단 덜하지만 여전히 따스한 미소로 녀석을 또 잠시 응시했습니다..그 녀석 화답하듯이 저와 같이 제 눈을 멀뚱멀뚱 바라보더군요..그렇게 한 10초가 흘렀을까… 이제쯤 신호가 바뀌었겠지 하고 뒤를 돌아 봤습니다…그런데 차들은 여전히 60~70km 속도로 연신 지나가고…
'우이쒸, 신호가 뭐 이리 길어…신호등 고장난거 아냐? ..여기 혹시 사람이 버튼 눌러서 신호 바꾸는덴가?…(두리번두리번) 없네 --;…’
그리곤 다시 dung개 쪽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저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개가 바로 3m앞에 와 서는 여전히 아까와 같이 앞다리만 들고 뒷꽁무니는 내린채 아무런 미동도 없이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라… 이거 개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네..허 참…내 평생 이런 경우는 첨이다…**. ’
그런 생각도 찰나….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직감하며 그 녀석을 가까이서 찬찬히 보니 아까와는 영 딴판으로 꽤나 내공이 느껴지는 눈을 하고 있더군요..그렇게 그 녀석과 눈을 마주치고 있자니 서서히 그 녀석 눈이 커지면서 슬그머니 뒷다리를 일으키더군요..허걱~ ..그 순간 갑자기 온몸에서 소름이 쫙 흐르는게 뭔가 대단히 잘 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거 꼬였네...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이제 전 3m 전방의 적으로부터 어케하면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을까 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우선 저의 짝꿍뎅이 스탠딩으로 적에게 완벽하게 노출된 왼쪽다리가 우선 걱정이 되었습니다..어릴때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왼쪽 다리를 개에게 물려서 한동안 고생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자라 see 뚜껑 see 가슴 벌렁’ 이라던가 ...전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습니다..
‘녀석이 다리를 물려 달려 들면 왼 다리로 아구통을 쳐버릴까…. 아냐..그러다 실패하면 ‘카운터 바이트(bite)’를 당할 수 있어..
그럼 왼다리를 잽싸게 안쪽으로 집어 넣고 자전거를 방패로 삼아서 대적할까? … 아냐… 녀석이 날아서 달려들면 어쩌려구…’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달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적과의 눈 싸움은 피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제가 온통 수비에만 골몰하고 있는 사이 그 녀석은 어케 저를 공격해야 잘했다고 동네에 소문날까를 고민하는 듯했습니다…그사이 어느덧 녀석의 뒷다리는 이미 공격개시를 위해 완벽히 장전되고… 덩달아 녀석의 얼굴도 영화 쥬라기 공원 초반부에 나왔던 부채공룡의 얼굴로 변해가고…
이젠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녀석이 공격하기 전에 전 무조건 어디론가 도망가야 했습니다…에라잇~…후다다다다다다다다닥~
짝궁뎅이 스탠딩에서 번개같이 롸이딩 자세를 갖춘후 훽~ 자전거 핸들을 돌려 꽁무니를 개에다 돌리고는 냅다 페달질을 해서 앞으로 달려 나갔습니다….인도로 갔다간 머지 않아 잡힐 것(?) 같아서 차도로 뛰쳐 나갔습니다..그런데 하필 그게 역주행일 줄이야…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개죽음은 마찬가지… 여전히 페달질에 가속을 붙여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그러나 3m의 사정거리는 그리 먼 것이 아니었습니다…나름대로 힘차게 밟았건만 어느새 녀석은 인도위를 달리며 거의 저의 옆에서 짖고 있더군요..적과의 거리는 위도상 1m…
다행히 바쁘게 움직이는 장딴지에 영점을 맞추기 쉽지 않았던지 녀석은 공격 타이밍을 늦추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이 그리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전 영점조준이 끝나기전 전 필사적으로 도망가야 했습니다..것두 인도에서 멀리 떨어져서…
힐끗 앞에서 달려오는 차들을 봤습니다….차선을 점거하고 달려오는 한 광인의 질주에 마주오던 차들이 놀라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1차선에서 오던 차들이 휘청하며 급히 차선을 변경하는 것이 보였습니다..덩달아 2,3차선의 차들이 휘청거리며 허둥지둥대며 빵빵거리더군요..
쪽 팔렸습니다….마치 개하고 노는 것처럼 표정만은 백조처럼 우아하게 하고 달려 볼까도 생각했습니다…그러면 광인 취급은 않 당할 것 같았습니다…그냥 ‘씹때끼’만 되는거 겠지요…그러나 그마저 쉽지 않았습니다…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이 웃을수 있다면 그건 진짜 미친것임에 틀림 없을 겁니다.
죽을 힘을 다해 페달링을 한 덕분인지 , 차를 향해 돌진해 가는 저의 무모함에 놀란 탓인지 한 30~40m쯤 달리고 나니 녀석과의 거리가 차츰 벌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이 속도로만 가면 안전하겠구나 싶었습니다…그러나 안도의 한숨도 잠시…
갑자기 3~4마리의 개들이 도로 옆 풀 숲에서 함성을 지르며 뛰쳐 나오더군요….아마 그 녀석의 똘마니들인 것 같았습니다... 짓는 소리들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Dung개의 세계에도 조직이 있을줄이야….
전 또 죽어라 페달질을 해댔습니다… 한 마리라면 어찌 해보겠지만 너덧한테 잡히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았습니다….그런 생각이 들수록 전 인도에서 더 멀리 떨어져 달리고….마주오던 차들도 덩달아 더 휘청거렸습니다
그렇게 또 50m를 달렸을까…필사의 탈출 덕분인지 조직폭력견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녀석들과의 거리를 점차 더 벌리며 그렇게 또 50m를 더 달려 나갔습니다..한참 속도를 줄인 후 뒤를 바라 보니 조직들이 멀찍이서 아쉬워하며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살았다’…………..콩당거리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모처럼 삶 자체가 주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결론>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도망쳐 온 길을 다시 돌아가서 건너야 했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습니다..그래서 멀리 동네 한바퀴를 돌아 집에 돌아가야 했습니다..어느정도 정신을 수습하고 집으로 가다보니 오른 손목이 시큰거리고 아픈 것을 느꼈습니다…아까 그 dung개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획~하니 자전거 꽁무니를 뒤로 하다가 손목에 무리가 갔던 것 같았습니다..그 아픈 손목이 2개월 정도 갔으니 참 오래도 갔지요..
집에 오니 마누라가 왜 이리 늦었냐고 하더군요..그래서 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개’ 얘기를 해 주었더니 배꼽을 빼고 웃더군요..아마도 개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한 사람은 제가 처음일거라면서요..죽을뻔 했는데도 말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동안 그 근처로는 절대 가지 않았음은 물론입니다..
출퇴근 길에 차를 타고 가다가 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개’를 혹시나 볼까 고개를 내밀어 찾아 보기도 했지만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삼복의 재물이 된 것은 아닌지…요즘같이 더울때면 더욱 생각이 납니다..
** 그런데 말입니다….전 요즘도 혼자 자전거 타고 나가면 자주 개한테 쫒겨서 도망다니곤 하니 전생에 개와 꽤나 깊은 관계에 있었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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