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덕에 새벽에 춥기까지 한 경험을 하면서
정말 단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여행중 피로를 푸는데 한 번씩 이용을 하면 좋을 것 같더군요.
아그라는 인도에서 가장 감동이 적었던 곳 같습니다.
제가 워낙 적게 머무른 것도 원인이 되겠고,
따즈마할이 너무 유명해서 그럴 수도 있겠죠.
그곳에 오래 머물면 또 그곳 나름의 풍취를 느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워낙에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까 그 감흥이 적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도 경주 같은 곳보단 작은 동네에서 감동을 느끼니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배낭을 분주히 챙겼습니다.
이제 짐 싸는 것이 이력이 나서인지
10여분이면 완전무장입니다. ^^
배낭을 짊어지고 게스트하우스 리셉션으로 나왔습니다.
숙박비를 지불하고, 일부의 경우는 전기세라든지, 기타 잡비를
청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는데 이곳에선 그런게 전혀 없었습니다.
문밖으로 나서자 빗방울이 듣기 시작합니다.
<내리는 빗속에서 사이클릭샤 왈라들이 하늘만 바라봅니다.>
아... 이거 난처한데요.
오늘은 빠떼부르시끄리로 이동을 해야 하는 날입니다.
모자를 눌러쓰고 빗길로 나섭니다.
일단 식사를 하기 위해 맞은편의 조니스 플레이스 식당으로 갔습니다.
어제 가려고 하다가 말았던 곳인데
한국말로 추천을 상당히 많이 해두었더군요.
라면을 시켜서 먹었습니다.
인도에서 한국 음식하는 식당 중 이 식당 추천할 만 하더군요.
라면맛도 괜찮았구요.(국산 스프를 사용하더군요. 면은 인도산^^)
김치도 열무를 가지고 맛을 흉내를 내어 더욱 좋았습니다.
시큼한 김치와 라면을 같이 먹으니
오랜만에 아주 기분이 좋더군요.
4그릇을 먹고 두 그릇을 더 시켜서 먹었습니다.
식사를 맛있게 마치고 나가려는데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식당에 앉아서 기냥 저냥 시간만 떼우고 있습니다.
이제 빗줄기가 약간 가늘어졌네요.
버스스테이션으로 가기 위해
식당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이클릭샤꾼들에게 다가갔죠.
이드가 버스스테이션 갑시다.
50루피요. 4명이니까 2대에 나눠타고 100루핍니다.
허거덕~~!! 아유 키딩?
바로 몸을 돌려서 걸어나갔습니다.
인도 교통수단 선택 만고불변의 진리!!
지나가는 오토릭샤를 잡아라.
역시 영어를 안쓰는 릭샤왈라. 딱 마음에 듭니다.
주변 상점주인의 도움으로 협상끝.
이드가 버스스테이션으로 출발~~!!
이드가 버스스테이션에 도착하니 좀 썰렁합니다.
델리의 ISBT 도 그 허접함에 다소 실망을 했는데
아그라라고 하는 도시의 버스터미널로선
조금 부족하단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이드가 버스스테이션입니다.>-영어로 된 설명은 절대 없음
터미널로 들어서자 외국인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그곳 사람들의 눈길이 한꺼번에 쏠리더군요.
호객꾼이 빠떼부르시끄리로 가는 버스라고 타라고 하는데
티켓 창구의 아저씨가 말립니다.
버스에 자리도 없고 비싼 버스라고 타지 말라고 하더군요.
15분 기다리면 다른 버스가 온다고 다음 버스를 타라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나는 인도인들의 이런 친절함이 참으로 좋습니다.
간혹 댓가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어서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자그마한 인심들이 우리로 하여금 인도를 못잊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버스가 오면 말해줄테니 걱정말고 편안하게 앉아서 쉬라는 겁니다.
기다리기 지겨운지 아이들이 가게에 가서 5루피짜리 사탕을 사옵니다.
저도 몇 개 얻어서 쪽쪽 빨아먹었습니다.
옛날에 많이 먹던 눈깔사탕 맛이었습니다. 음 고향의 맛...
이윽고 버스가 도착을 하고 우리는 차량에 승차를 하였죠.
야... 근데 차가 아주 끝내줍니다.
<이 고색창연한 버스를 보십시오. 간다는 것이 기적같지 않아요?^^>
과연 이 차가 파테부르시끄리까지 우리를 데리고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물차였습니다.
사람들이 한 둘 타기 시작하고 우리는 차장에게서
승차권을 끊었습니다. 16루피 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반값이었습니다.
3명분 차비만 받았으니까요.
조금 앉아서 차가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차내에 계신 신사 숙녀 여러분~~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아닌가요?
<차내에 계신 신사 숙녀 여러분~~>
1개 사면 4개를 끼워주는 우리의 지하철 버스의
장사꾼 같은 아저씨입니다.
바늘을 팔고 있었는데 후크에, 실에, 오만때만 선물을 주더군요.
그모습에 우리 모습이 겹쳐져 가족 모두의 입가엔 웃음이 번집니다.
드디어 기사 양반 시동을 걸고(당연히 일발 시동 아니었습니다.)
버스는 이드가 버스스테이션을 벗어나 아그라의 교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중간 중간 사람들을 많이 태우더군요.
그래도 좌석은 여유가 많았답니다.
빠테부르시끄리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평온한 시골길이었습니다.
지평선 사이로 펼쳐진 논과 밭에서는 곡식들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고
내리던 비도 이제 그치고 햇볓을 쏟아냅니다.
콧노래가 룰루 나올 정도의 기분 좋은 길
"내가 놀던 정든 시골길, 소달구지 타고 놀던 길
나 어릴적 친구 손잡고 노래하며 걷던 시골길~~"
임성훈씨의 시골길 노래가 절로 생각나는
평화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그라에서 빠떼부르시끄리로 가는 가도의 모습입니다.
중간에 어느 마을에 들르니 아이들이 비닐봉지에 담긴 물을 팝니다.
탄다빠니~~ 탄다빠니~~(탄다 는 시원한, 빠니는 물입니다. 시원한 물이네요.)
우리가 따라서 탄다빠니~~ 노래를 부르니
이 아이가 우리 보고 웃다가 그만 내리는 순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기사 양반은 조금 가다가 내려주었는데
고놈 더운데 제법 걸었을 것 같습니다.
사주고 싶었지만 정수된 물이 아니라서 배탈을 걱정이 되어 말았습니다.
자 이제, 저기 멀리 흘러내린 성벽의 흔적들이 보입니다.
빠떼부르시끄리에 거의 도착을 한 모양입니다.
45분쯤 걸려서 우리의 버스는 빠떼부르시끄리 버스정류장에
우리를 내려줍니다.
이곳에도 호객꾼들은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두세명이 오더군요. 그래도 귀찮을 정도로 적극적이진 않았습니다.
머우랴 게스트하우스로 갈 것이라고 하니까
짐을 들어주겠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우리힘으로 갈거라고 말하니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일단 첫인상 좋습니다. ^^;
그런데 시계탑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골목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나가는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머우랴를 묻습니다.
머우랴? 머우랴 게스트 하우스?
저어기 밑에 있는디유?
우리가 너무 많이 올라왔군요. 쩝...
도로 50미터 정도를 내려가서 왼쪽으로 꺽어 올라가니
저마머스지드의 뾰족한 성벽이 보입니다.
옆에 같이 걷던 아저씨가 여기가
머우랴 게스트하우스라고 말을 해주더군요.
(아마도 우리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입니다.)
푸른 숲 정원에 덮혀 있는 가정집 같은 게스트하우스였습니다.
중세의 히맘 옆에 있는 이 게스트하우스 앞에
인상이 아주 좋은 청년이 서 있습니다.
이 친구가 바로 께무입니다.
공손하게 우리를 맞이하는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방은 여러종류가 있었는데
손님은 우리 밖에 없더군요. 흐흐...
그냥 입구 2층의 방을 잡았습니다.
방에 짐을 풀고 통가에서 찢어진 바지를 수리하러
아까 봐둔 옷수선 집으로 갔습니다.
얼마드릴까? 물어보니까 업투유랩니다. 흐흐
업투유라... 이거 까딱 잘못하면 골병 드는 것인데...
일단 이 동네를 믿어보기로 합니다.
수선을 마치고 돈을 건네어주자 고맙답니다.
바라나시 수선비의 반값도 안들었습니다. ^^
방으로 돌아와서 짐을 정리하고 샤워를 끝내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께무에게 점심을 부탁했습니다.
께무 그 친구는 그 게스트하우스의 매니저이자, 주방장이자, 웨이터였습니다.
필요할 때 항상 께무~~ 하고 불러달랍니다.
언제나 부르면 항상 밝게 대답을 합니다.
인도 한 달을 다니면서 그처럼 밝고 맑은 사람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계란볶음국수, 짜파티, 쌀밥 등으로 점심을 해결하였습니다.
께무는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엄청나게 덥고 고생했는데
당신들은 행운아라고 합니다.
그 뒤론 오는 내내 하두 비가 많이 와서 레인메이커란 별명도 얻었지요. ^^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엄청나게 내리더군요.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던 주인집 할아버지가 아는체를 합니다.
할아버지의 성함은 윌리싱,. 이 지역의 의사라고 하더군요.
아들 둘은 핀랜드에 둘이 가있고 큰아들은 교통사고로 사망을 해서
지금 며느리하고 셋째아들 내외와 같이 지낸다고 하더군요.
마을에서 낮에는 간단하게 진료도 하고 처방전도 내려주는 의사선생님이셨습니다.
<윌리싱 할아버지와 아제이 그리고 누이. 멋쟁이 할배는 염색했습니다.^^>
물론 여기 아들은 머우랴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이구요.
사진 왼쪽의 주인장 아들의 이름이 아제이인데 이놈이 아주 명랑합니다.
우리 아이들하고 아주 잘 놀더군요.
할아버지는 참으로 부지런하고 엄격한 분이셨는데
한국에 대해서 참 궁금한 점이 많으신 것 같았습니다.
결혼은 언제쯤 하냐? 인구는 얼마냐? 한 달 월급은?
인도가 어떻냐? 여행하기 힘들지 않느냐?
한국사람은 영어도 공용어로 사용하느냐?
(전에 외국인을 위한 배낭사이트에 그런 글이 있단 얘기를
들었는데 진짜로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 많아서 열 받았심다)
기타 등등 질문을 많이 하셔서 답변한다고
고생 좀 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요
인도에 가면 은근히 종교간 갈등이 있지 않습니까?
힌두와 이슬람 말이죠.
그런데 할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이곳 빠떼부르시끄리는 마을의 구성원이 종교상 반반이어서
종교간이 갈등이 없는 아주 평화로운 곳이라고 합니다.
빠떼부르시끄리 이름의 뜻이 승리의 도시란 뜻입니다.
두 종교간에 서로서로 화합하며 윈윈하고 있다면서
마을 사람들이 평화롭고 친절하다고 자랑이 많으십니다.
하긴 힌두 업소에도 이슬람 직원이 있고,
사장 친구도 이슬람 교도 힌두교도 섞여 있었으니까요.
손자 아제이는 옆에 앉아서 큰눈을 굴리며 열심히 이야기를 듣습니다.
식사와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앞 발코니(발코니라고 할 것도 없지만... ^^)
시원한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천장의 선풍기가 꺼지는게 아닙니까?
정전으로 인해서 한참을 있었습니다.
비가 오니 저마머스지드나 올드시티로 갈 수가 없더군요.
하는 수 없이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낮잠을... 히히
아마 이무렵이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인 것 같습니다.
머리만 갖다대어도 잠이 펑펑 쏟아졌거든요. ^^
적응하는 기간의 클라이맥스였던 것 같습니다.
잠을 자고 있으니 께무의 친구라면서
가이드 하는 친구가 왔더군요.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저마머스지드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정식 가이드증을 보여주었습니다.
얼마냐 물어보니 온리 업투유랍니다.
마음에 안들면 안줘도 되겠네? 예스~!!
나중에 6시쯤 오라고 했습니다.
어둑할 때 올라가서 조용히 관람을 하고 싶었지요.
따즈마할에서 하두 많은 사람에게 치여서...
이윽고 시간이 되자 그 친구가 다시 우리를 부르더군요.
써어~~ 써어~~!!
가족과 같이 저마머스지드로 올라갔습니다.
웅장한 계단 위로 사원의 입구가 높다랗게 펼쳐져 있습니다.
<저마머스지드의 웅장한 입구>
가이드의 안내로 곳곳을 구경을 합니다.
사원 안쪽은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이 많아서
사진촬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맨발로 비내린 사원바닥을 밟고 다니니 일견 시원하더군요.
여성들의 기도소, 사원과 관련한 여인들의 무덤,
그리고 이맘들의 무덤 등등을 둘러보았습니다.
덕이 높은 분과 그의 가족은 저마머스지드 안쪽에
무덤을 만들어서 따로 모셨더군요.
이슬람 사원의 특징은 간결성과 연관된 웅장함에 있는 것 같습니다.
화려한 조각보다는 큰 바윗돌들을 이어 붙이고
웅장함을 더 강조한 듯한 느낌이었죠.
저마머스지드를 한 시간 가량 돌아보았습니다.
<붉은색 사암으로 웅장한 갑옷을 입은 저마머스지드>
신발을 맡기기 위해 들어간 기념품샾에서도
별다르게 물건을 사달라거나 이런 말은 하지 않더군요.
대체적으로 이미지가 아주 좋았습니다.
물건을 사는 것은 당신 마음이어서 존중한다고 하더군요./
인도에서 그런 장사꾼은 또 처음 만났습니다. ^^
기념품점 앞을 나오니 사람들이 뭔가를 먹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옆에 붙어서 한 조각 먹었죠. ^^
양고기에 야채 고춧가루 등을 넣어서 튀긴 것을
빵에 넣어서 햄버거처럼 먹더군요.
살짝 매우면서 야채의 상큼한 맛이 제법 입맛을 돋우었습니다.
맛있다고 하니까 주는 아주머니 아주 좋아합니다.
저마머스지드를 벗어나서 인근의 올드시티를 잠시 보았습니다.
<엘레펜트팜이죠. 멀리 비가 많이 와서 잠긴 논밭 보이시죠>
엘레펀트 팜이라고 하는 곳 근처의 풍경이었는데
이제 해가 거의 진 모습에 황량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더군요.
중간중간 동네 건달로 보이는 놈들이 보입니다.
보아하니 술을 마시면서 도박을 하는 친구들입니다.
보기에도 인상이 별로 안 좋더군요.
저런애들은 질이 좋지 않다면서
가이드가 더 이상 가는 것은 좋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 때 아주 멋진 광경을 보았습니다.
<까맣게 날아가는 것은 박쥐떼의 모습입니다.>
저마머스지드의 무덤옆
지하터널은 아그라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악바르가 왕비들을 보기 위해 말을 타고 이 지하터널로
다녔다고 하더군요.
물론 지금은 들어갈 수 없게 막아 두었지만
그곳에 아주 많은 박쥐가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성의 창을 통해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박쥐떼...
약 10분간을 그렇게 끝도 없이 토해내더군요.
장관이었습니다.
밤이어서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게 아쉽군요.
어둑어둑해진 길을 내려와서 머우랴 게스트하우스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게스트 하우스엔 우리 밖에 아무도 없습니다.
바깥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모기향을 사러 시장으로 갔습니다.
시장에선 아까 낮에 우리가 올라온 것을 봤던 사람들이
아는체를 하였습니다.
아까 오는 것 봤다고 하면서 어디서 왔냐구 물어보더군요.
꼬리아... 아~~! 꼬리아! 반응이 좋았습니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잘 처신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자파니(일본인)보다 꼬리안이 좋다고 하더군요.
(모르죠 자파니 앞에선 자파니가 좋다고 할지... 흐흐)
모기향을 사고 망고를 샀습니다.
망고가게 아저씨 앞에 가니까
주변의 상인들이 모두 주의 집중입니다.
망고 더 많이 줘라, 싸게 해줘라.
만나서 반갑다. 이런 환대는 또 처음이었죠.
인도인들의 이런 모습이 지금도 가슴속 깊이 남아있습니다.
거의 모두가 영어를 안쓰는 사람들이나 그 중 한둘은
통역이 되어 열심히 의사소통을 합니다.
찐한 인심을 느끼면서 기분좋게 골목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거기 아니고 한 골목위라고
막 고함을 쳐 줍니다.
흐뭇함을 가슴 한 가득 안고 올라가는 길
짜이를 한 잔 먹었습니다.
아버지와 꼬마 아들이 하는 짜이집인데
이녀석 하는 짓이 아주 야무져서
남는 잔돈을 줬더니 절대로 안 받더군요.
자기가 일한 값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버지도 주지 마라고 부탁하더군요.
짜이도 아주 맛있고 부자의 프라이드가 자랑스러운 짜이집
빠떼부르시끄리는 역시 기분 좋은 곳입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저는 식구들을 데리고
옥상에 있는 식당으로 올라갔죠.
사온 모기향을 켜서 사방에 붙이고(비가 오니 무기가 부쩍 늘었습니다)
탄두리 치킨, 짜파티, 커리 등으로 저녁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 우리끼리 앉은 그 시간
낮에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에는 정말 많은 별들이 우리를 내려보고 있었고
적막을 뚫는 간간히 들리는 개짖는 소리만이
이곳이 사람 사는 곳이란 느낌을 남겨줍니다.
가족과 함께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누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다른 이가 없는게 이럴 땐 정말 좋습니다.
손님 대접도 제대로 받고, 인도인들과 실컷 이야기도
나누어볼 수 있으니까요.
이야기 도중 께무가 우리 가족이 외국인과 사진을 찍어보는게
소원인데 우리집에 방문해 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더군요.
저희들은 흔쾌히 예스라고 대답하였죠.
왜냐하면 인도 서민들의 생활모습을 아이들에게
직접 체험하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아내와 아이들이 먼저 내려가고 저는 께무와 더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한 달에 받는 돈이 1500루피이고 사장이 보너스를 더 주고
팁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한 달 2000루피 정도를
버는 것 같습니다.
그 돈으로 가족이 지내고 자기는 여기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하더군요.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다더군요.
꿈을 물었더니 자신의 레스토랑을 하나 가지고 싶답니다.
너는 충분히 그 꿈을 이룰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거짓하지 않고 이 성실함을 그대로 지키면 자넨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이
새로운 게스트 하우스를 굉장히 좋게 짓고 있답니다.
그럴 경우 주인은 그곳을 맡게 되고 이곳은 자신이 매니저를 맡게 되어
월급도 오르고 좋아질 것이라고 하더군요.
업소를 비우고 사장이 이 친구에게 전권을 맡기는 것으로 보아
신뢰가 대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꼭 께무의 꿈이 이루어져 언젠가 께무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길 같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정말 께무는 말 하나 하나에 진실하다는게 느껴졌습니다.
대략 눈빛과 말투로 사람을 알기는 힘들지만 진실함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까 가이드를 한 친구가 내일 약속을 잡자고 올라왔습디다.
내일 오전에 올드시티하고 왕궁을 구경하기로 하고
그 친구와 세명이서 이야기를 나눴죠.
맥주를 더 시켜서 마셨습니다.
가이드가 말하길 자신은 오늘 저희 가족에게 상당히 고마웠답니다.
사원 주변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자신의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 이웃들인데
보통 잡상인이 붙으면 상당히 귀찮아하고 밀쳐내는 서양인들도 있는데
당신네 가족은 물건이 필요 없어 못산다. 미안하다.
어깨를 살짝 잡아서 돌리면서 잘 가라...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참 친절하다 느꼈다고 말하더군요.
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구요.
하지만 계속 그러면 끈질기게 장사꾼들이 달라붙으니까
쌀쌀맞게 대할 때도 있어야 한다더군요.
나도 혼자라면 그렇게 했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있는데
그럴 수는 없다라고 이야기해주었죠.
한국사람은 다 친절하고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달리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이야기 해주었죠. 또한
아이들이 아빠가 밀쳐내거나 쌀쌀맞게 대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인도인들은 그렇게 대해도 된다고 오판할 수도 있다고 말이죠.
께무와 가이드 친구는 수긍을 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면서도 항상 조심해라고, 친절하다고 완전히 믿지 말고
빠떼부르시끄리와 다른 도시는 다르다고 연신 강조를 하더군요.
(이랬던 빠떼부르시끄리가 이젠 사기꾼과 협잡꾼이 버글댄다고 하니 세월 무상입니다.)
알았다 고맙다 말을 나누며 살아가는 이야기,
그들이 하고 싶은 일들, 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도인들의 딱딱한 발음을 이해하고 난 뒤 훨씬 인도인하고 이야기 하는게
재미가 있더군요.
대화를 마치고 밤 10시가 넘어서 내려와보니
아이들은 오늘의 여행기와 그림을 정리하느라 바쁘더군요.
내린 비로 시원해진 방에 누워서
잠을 청합니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 하나 같이 물고...
빠떼부르시끄리, 정말 마음에 듭니다. 순박한 사람들... 조용한 동네...
내일은 더 좋은 경험을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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