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의 일곱번째 날.
오늘은 무령을 오를 예정이다.
무령은 대만의 동부 산맥을 넘는 고개로
해발고도가 3275미터에 이르는 높은 지대이다.
대만의 최고 권위의 클라임대회인 무령컵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무령컵은 화련에서 출발해서 무령 꼭대기까지 도착하는 대회로
프로선수들과 아마추어 선수들도 참가하는 대회이다.
화련에서 출발하면 100킬로미터의 코스 길이가 나온다.
나도 화련에서 출발하고 싶었지만 대만 방문하기 직전
태풍이 대만 동부지역을 강타하면서 화련쪽 타로코 계곡이 산사태로 붕괴되어
길이 막히는 바람에 푸리 방향에서 오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덕분에 생각지도 않았던 아리산 고개도 넘게 된 것...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해가 뜨는 풍경이 장관이다. 어제는 비였는데 아침은 맑다. 기분 좋은데?
아직 해 뜨기전 펜션 앞 풍경.
구름들이 산을 휘감아 오르고 있다.
장관이다.
동쪽엔 해가 뜨려는 지 하늘이 벌개진다.
구름에 가려 해를 보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일출이다.
내가 이렇게 빨리 일어난 적이 있었던가?^^
맑은 하늘과 구름을 보면서
오늘 하루가 왠지 기대가 된다.
사실 눈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풍경이고 뭐고 감상하기도 힘들었거니와
오르막도 사실 힘들었다.
얼마나 올라야 하는 지 알아야 마음이 조금은 편한데
시야가 가려진 업힐은 정말 힘들다.
대관령을 자전거여행하면서 네 번 정도 넘었는데
첫 번째 업힐하는 날은 비가 엄청나게 오는 날이었다.
강릉 방향에서 올랐는데 비가 오고 구름이 끼어 있으니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느낌이었다.
나머지 세 번은 맑은 날이었는데 확실히 오르는 게 편했었다.
그런 전차로 오늘도 맑기를 기대해 본다.
해가 완전히 떠올랐다.
숙소에서 준비해 준 아침을 먹고 업힐을 시작한다.
아침은 죽하고 토스트.
배고플 것을 대비해서 든든히 먹었다.
드디어 출발.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룰루룰루루~~
출발이라 허벅지가 퍽퍽하긴 하지만 기분은 좋다.
왠지 이 기세로 금방 올라갈 거 같은 나만의 즐거운 상상을 하며
업힐을 시작~~!!
어제 맥주 사러 걸어갔던 세븐일레븐에서
대만 타이중에서 온 라이더를 만났다.
몸매가 업힐 최적화이다. 날씬하고 다리가 길다.
나는? 요샛말로 로뚱이다. 흐흐
올라갈 수록 경사가 세어지니 조심하라고 이야기하면서 같이 오르다
먼저 올라가라고 했다.
이 친구 페이스 맞추다간 무령 중간도 못가서 퍼질 것이 뻔하다.
순식간에 휘리릭 사라져버린 대만 라이더.
짜요우~~!!
취봉에 도착했다.
해발 2309미터.
아직까지 힘도 마음도 여유가 있다.
털썩하고 바닥을 깔고 앉아 숨을 잠시 고른다.
이 아침에도 제법 차들이 올라간다.
아마도 타로코 방향으로 가는 차들일 것이다.
화련이 막혔으니 이곳으로 해서 역으로 가면 되기는 된다.
취봉을 지나니 이제 슬슬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런...
구름 아래로 저멀리 마을들이 보인다.
미니어처를 보는 듯 재미가 나는데 몰려오는 구름은 뭔가 불길하다.
어제처럼 비만 오지마라. 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업힐을 시작하였다.
나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
구름이 길을 막아 오리무중이 된다.
시야는 10미터 정도?
앞이 보이지 않으니 길을 가늠할 수 없다.
경사가 어떤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으니
오르막을 오르는 일이 점점 더 힘들게 느껴진다.
제발 비만 오지마라...
해발 2500정도이다.
아직까진 사진기를 꺼내서 사진 찍을 여유가 있다. 흐흐
썩소를 날리면서 앞으로 전진 또 전진.
비야 오지마라~~!!
야호. 날이 개인다. 만세!!
멀리 보이는 마을이 정겹다.
구름아 흩어져라.
구름아 물러가라~~!!
나의 간절한 기도와는 달리
구름은 다시 몰려들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금새 쏴아아 하면서 땅을 적셔 주신다.
열이 올랐던 몸이 금새 식기 시작해 잠깐은 기분이 좋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추위가 느껴졌다.
해발 고도 2700미터 정도나 되었으려나?
기온은 20도 초반이었을 것이다.
다운힐 때 쓰려고 놔두었던 윈드자켓을 꺼내 입었다.
조금 따뜻해진다.
쉬고 있으니 대만의 라이더가 한 사람 내려온다.
위로 갈 수록 경사가 어떻냐 물어보니 점점 세어진다고
힘 안배 잘해서 가라고 충고해준다.
무령 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가던 라이더를 만났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같이 올라갔다.
왜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오르냐고 물어보니 훈련중이란다.
나는 한 번에 오르기도 힘든데 연속적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다니 대단하다.
세 번을 만난 거 같다.
보기에도 보통 사나이가 아니라서 물었다.
혹시 선수 아니냐고? 프로 선수?
프로는 아니고 아마추어인데 무령 대회에 참석한단다.
작년 무령컵 업힐대회 챔피언이라고 한다.
오호. 역시~~!!
같이 페이스 맞춰 올라가니 너무 힘들다.
이럴 때 아쉽지만 안녕을 해줘야 한다.
인사를 나눔과 동시에 댄싱을 치면서 올라가 버렸다.
비 오는 거릴 걸었어~~ 니가 걷던 이 길을~~
비가 오면서 시야는 조금 넓어진다.
칭징까지는 정말 차가 많았는데 이 길은 한산하다.
간간히 오르는 차들이 있을 뿐 대부분 고요하다.
쉬고 오르고를 반복하면서 오른다.
비가 내린다.
신난다.
오르막은 비가 와도 좋다.
열도 식혀주고, 시야도 구름만 낀 것보단 낫다.
이제 비가 대놓고 퍼붓기 시작한다.
나무 그늘에 앉아 쵸코바를 먹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태양을 피하고 싶었는데
이제 비를 피하고 싶다.
해발 3000미터 언저리까지 줄기차게 퍼붓는 비를 맞으며 오른다.
비는 처음 젖을 때 찝찝하지 완전히 젖어버리면 오히려 시원하다.
비 오는 날 축구를 해 본 사람이면 이 마음 이해가 갈 것이다.
곤양에 도착했다.
해발 3020미터. 아직 200미터를 더 올라가야 한다.
빗줄기는 조금 가늘어지긴 했지만 계속 내리고 있다.
여기서부터 타로코 국립공원 지역인 모양이다.
지나가는 차를 세워 비닐봉지를 얻었다.
뒷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과 여권이 물에 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내리니 윈드자켓으론 비를 커버할 수가 없다.
이제 거의 다와간다.
저 길의 끝이 무령인 모양이다.
3000미터가 넘어서면서 급격하게 댄싱을 치면 머리가 아프다.
끌다 타다를 반복하면서 무령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무령도 안개에 덮혀 있으면 울 것 같았는데(억울해서)
다행히 무령이 구름을 걷어내고 그 모습을 보여준다.
지나가던 차량들이 짜요~~!! 를 외치면서 지나간다.
그래 화이팅이다. 다 왔다.
으아앗~~!! 도착했다.
내리는 비를 뚫고 내 두 발로 페달을 밟아서 드디어 도착이다.
감격스럽다.
여행을 다녀오니 누군가가 물었다.
힘들게 오르막을 뭐하러 그리 올라가냐고?
우리 나라에 없는 고도의 고개를 올라가면 재미있잖아?^^
무령 고개에 올라서니 관광객들이 박수를 쳐준다.
주자창 건너편에 무령 고개 기념탑이 있다.
그 곳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무령, 해발 3275미터.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올라온 관광객들이
서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부탁해서 기념사진을 찍고,
셀카로도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래 오래 있고 싶었다.
그러나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기온이 낮아 도저히 있을 수가 없다.
비까지 내리니 추워서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
아마 10도 초반의 기온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 내리막길은 어쩌지?
예약해 놓은 온천까지 60킬로미터를 오로지 다운힐로 가야 한다.
감격에 젖은 사진.
지금도 그 때 생각하면 울컥한다. 흐흐
내려 오는 길엔 딱 이 사진 한 장.
올라갈 때 찍었던 곳이다.
비가 계속 내리니 내리막질이 더 고역이다.
춥고 시야도 확보 안되는데다가
계속 되는 비에 젖은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는다.
오 마이 갇뜨...
속도를 내면 죽을 거 같다.
긴장해서 내려오다 차랑 부딪힐 뻔 하기도 했다.
칭징농장쪽에 차량이 많았는데 이 사람이 유턴하면서
내려오는 나를 못 본 모양이다.
갑자기 차를 획!! 돌리는데 가까스로 피했다.
그리고 한국 욕 작렬 "!@#$%^&*%$#%^^""
예약한 하코우네 온천까지 계속 비가 내렸다.
차들이 엄청 많았는데 다행히 내 뒤에 따라오는 차는
멀찌감치 여유를 두고 따라와 주었다. 고맙다. 운전 매너 최고다.
브레이크가 많이 밀려서 앞차와 거리를 많이 두고 내려갔는데
거의 십여킬로미터 넘게 저 멀리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것이었다.
나중에 길이 넓어지면서 헤어지게 되었을 때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 감사를 표했다.
푸리를 얼마 안 앞두고 하코우네 온천이 있었다.
싱글룸 1900대만 달러. 조금 비싸긴 하지만
일단 노천탕을 비롯한 온천을 할 수 있고, 저녁 및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어서
아까운 돈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점심을 먹지 않았다.
쵸코바 몇 개로 점심을 떼운 셈이다.
물론, 업힐하기 전 아침을 먹었고 다운힐만 했으니 그리 힘들진 않았다.
숙박비에 포함된 저녁을 먹으러 가서 대만 골드 메달 비어 신청.
캬... 시원하다.
저 앙증맞은 잔을 보라.
640미리 큰 병이라 한 병만 먹으면 배가 부르다.
기념으로 두 병을 먹었다. 자전거여행은 여기까지.
이어서 가지고 온 저녁 식사.
메로 조림, 유부 조림, 감자당근샐러드, 오믈렛, 양배추볶음. 밥, 미소된장국
음 맛있다. 맛있어~!!
이 맛이 바로 성취 후 행복이 아닐까 싶다.
시원한 맥주 하나, 그리고 맛난 저녁밥.
그리고 나에게 주는 선물이 하나 더 남았다.
그것은 바로 온천~~!!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근다.
아무도 없다.
비 오는 온천에서 혼자 노천탕을 즐겨보았는가?
기분 쥑인다.
힘들어서 혼났던 업힐
추워서 식겁했던 다운힐이
기억속에서 흘러간다.
여유롭게 탕에 앉아 홀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완벽하다.
이게 천국이다.
온천 시설이 좋다.
온천물도 상당히 좋았다.
투숙객들이 좀 있었는데
온천을 하는 사람들은 나 혼자 밖에 없었다.
으... 뜨끈 뜨끈 쥑인다.
숙소에 들어와서 젖은 옷을 빨고,
흙물을 닦아내고 편안히 누워서 텔레비젼 시청을 하였다.
한국 드라마, 영화 채널이 따로 하나 있다.
아니 한 두 어개 있었다.
좀 지난 영화지만 '하모니'를 보면서 혼자서 훌쩍거렸다. 흐흐
에어컨 빵빵에 한국 드라마. 거기다 편안한 휴식.
그래 이 맛이야.
격전으로 걸레가 된 옷들을 씻었다.
흙물이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네?
한국 가서 다시 깨끗하게 손빨래 해야지.
이제 자전거여행은 여기까지이다.
내일 푸리에 가서 자전거 상자를 구해 포장한 후
고속버스를 이용해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는 타이베이로 이동
휴식을 겸한 3박 4일의 자유여행을 즐길 것이다.
살이 지금 많이 빠졌는데 보충해야지.^^
그동안 고생한 내 몸, 자전거, 저지, 헬멧, 장갑 모두 수고했다.
짝짝짝~~~~~ 저도 박수 보냅니다 ㅎ
벽에 걸어논 국대저지가 부끄럽지 않군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