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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 "아버지, 달이 밝습니다. 손잡고 싶습니다"

jackson.2004.09.24 18:57조회 수 58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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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아! 아버지

한가위라 대보름, 달 휘영청 밝습니다.
아들 딸 손목 잡고 고향 집에 갑니다.
어릴 적 내 작은 손, 아버지는 어떠셨던가요.
늘 앞서 걷던 어른 무섭기도 했는데.

몸 크고 머리 컸다, 집 떠난 지 벌써 몇 년.
아버지 두텁던 손 물기 없이 바싹 말라,
고함에도 힘이 없고 가끔은 잔눈물 바람.

아버지, 어머니 없는 고향은
고향이라도 고향이 아니라던데….
역전에 자전거 받쳐놓고
온종일 기다리셨으련만
“왔냐” 한마디 던지시곤
애꿎은 손자 머리통만 쓰윽.

아버지, 달이 밝습니다.
손잡고 싶습니다.


추석이면 한복을 입지요. 그런데 남자 한복 대님 매는 일이 쉽지가 않아요. 이걸 요리 돌리나 조리 돌리나 한참을 갸웃대다 보면 절로 아버님 생각이 나지요.

살아생전 아버님은 추석 때만 되면 제게 대님 매는 법을 가르쳐주셨어요. 한 번 배워도 두 번째는 또 잘 모르겠는 거라. 해마다 그렇게 잊어버려도 아버지는 귀찮다, 한심하다 안 하시고 늘 차근차근 가르쳐주셨어요.

아버지는 천생 선비 같은 분이었어요. 피부가 곱고 몸이 가볍고 책 읽기를 즐기셨지요. 흰 두루마기를 입으면 선이 착착 살고, 같은 상복을 입어도 태가 났어요. 울산 모랫골에선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나름껏 내세울 만한 지식인이었는데, 그만 20대 후반에 폐결핵과 간 질환을 앓으시면서 삶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어요. 이후 1991년 돌아가실 때까지 고생을 참 많이 하셨지요.

열 살 때 아버지 병을 고쳐보겠다고 큰 병원 많은 부산으로 이사했어요.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단칸방에 모셔두고 어머니는 집 앞에서 오뎅, 풀빵, 떡볶이 장사를 했어요. 그만으로는 호구가 안 돼 사글셋집 1층을 빌려 하꼬방만한 만홧가게도 열었지요. 아버지가 주로 자리를 지키셨어요.

존경받던 선생님이 아이들도 내놓고 무시하는 만홧가게 아재가 되다니. 어머니는 하루 서너 시간밖에 못 자는 고생을 하시면서도 그런 아버님으로 인해 늘 노심초사하셨어요. 후에 “장사를 하면서도 혹 그이가 약이라도 털어넣지 않을까 염려돼 방문을 확 열어젖히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으니까요.


△ 1984년, 울산에서 분식집을
하시던 시절의 부모님. 고향 마을에서야 추석 하면 축제요 행복이었지만, 부산에서는 그렇게 한가할 틈이 없었어요. 그날이 대목이거든요. 오랜만에 잔돈푼이나 생긴 아이들이 만화 보고 군것질하러 몰려들잖아요. 어찌나 복작대고 소란스러운지, 어머니는 지금도 “명절이라고 찾아온 손님에게 자장면 시켜드렸던 송구스러움”을 잊지 못하고 계시니까요. 새 옷 입고 친척집 인사 다니고, 제겐 그런 모습들이 딴세상 일로만 여겨졌어요.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저는 그림 그린답시고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만 했어요. 그런 아들이 밉기도 하시련만 부모님은 좀체 싫은 소리를 안 하셨어요. 우리 아버지 참 대단하신 게, 제가 부산고 1학년 때 전교 꼴찌를 한 적이 있거든요. 어려서는 전교 1등도 하던 녀석이…. 그런데도 성적표를 보신 아버님은 딱 한 말씀만 하셨어요. “1등이 있으면 꽁지도 있는 법이지.”

캔버스 산다고 남의 집 바둑판을 훔쳐 팔아 난리가 났을 때도 아버지는 한 말씀 안 하셨어요. 좋은 학교 가라, 그림을 그려라 마라 잔소리도 없으셨고, 없는 살림에 그저 묵묵히 뒷바라지해주실 뿐이었지요. 그런 아버지가 딱 한 번 화를 내셨는데, 제가 하도 그림 그린다고 늦게 다니니까 한번은 방에 걸어둔 제 그림을 집어던지신 거예요. 저도 눈이 뒤집혔지요. 감히 내 그림을…. 그림을 발로 팍 밟아 뽀개놓고 밤 돼 들어와 보니 어느새 아버지가 얌전히 고쳐서는 벽에 다시 걸어두셨어요. 우리 아버지가, 그런 분이었어요.

저는 아버지 임종을 못했어요. 그때 한창 한겨레신문에 시사만평을 연재하던 때라 상복을 입고도 만화를 그렸지요. 지금도 속이 아픈 것이 그때 아버지 곁을 일주일이라도 지켰으면,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곁에 있었더라면. 사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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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읽고 또 읽고.. 감동의 물결이 심금을 울리더군요~
저는 찾아갈 시골은 없지만, 어릴때 엄청 막히던 성묘길조차 그리워 짐니다.  
추석, 말만 들어도 설렜었는데..  지금의 이 무미건조함 덩어리를 어찌 손봐야 할지~
추석연휴 기간이라도 어디 도망갈 생각 말고, 집에 붙어 있으면서 장녀 노릇쫌  해야겠습니다.   우리 다함께~ 따뜻한 추석 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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