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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고아 돌보며 30년 삼거리 커피숍 ‘천사 아줌마’

눈바람2006.09.22 08:30조회 수 665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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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고아 돌보며 30년 삼거리 커피숍 ‘천사 아줌마’

[조선일보 2006-09-22 03:02]    


  

36명 보살피느라 손가락 굽고 손톱 빠지고…
“내게는 친정엄마·친자식”

[조선일보 선정민기자]

삼거리 커피숍을 처음 찾는 손님들은 그녀를 ‘이 마담’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홀로 사는 노인과 고아들에게 그녀는 ‘천사 며느리’ ‘친엄마’로 통한다. 30년 동안 서울 왕십리에서 다방을 운영해온 이은주씨 얘기다.


좁은 지하 계단을 내려가니, 흰색 천을 걸친 가죽 소파와 고동색 칸막이 너머로 나훈아의 ‘갈무리’가 흐른다. 이 영락없는 80년대식 다방 곳곳에는 비밀이 숨어 있다. 구석에는 20㎏짜리 쌀 포대가 수북이 쌓여 있다. 주방은 10가지 잡곡밥과 생선찌개, 낙지탕, 무국, 나물 반찬이 담긴 식기들로 가득하다. 냉장고 4대는 반찬거리와 김치로 모자랄 지경이다. 모두 독거(獨居)노인과 고아들을 위해서다.


이씨가 지금까지 돌봐온 노인은 17명, 아이들은 19명이다. 연고 없이 죽은 노인 5명의 장례를 직접 치렀고, 아이들 14명을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거나 군 제대 후에 세상으로 내보냈다. 현재는 월셋방을 얻어 노인과 아이들 12명을 보살피고 있다.


커피숍은 이씨가 봉사를 실천하는 공간이다. 한 테이블당 1000원씩은 꼬박꼬박 돼지저금통으로 들어간다. 헌혈 증서를 들고 오면 그 테이블 커피값이 공짜다. 4대(代)가 같이 사는 가족이 오면 인근 미용실로 노인들을 데려가 염색과 파마를 해드린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일일 찻집도 추진 중이다.


이씨의 선행은 30년 전 시작됐다. 신부전증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절에 다니다 한 할머니를 만났다. 아들을 교도소에 보내고 홀로 사는 노인이었다. 길 모르는 할머니를 모시고 면회를 다니다보니 정이 들었다. 다방에 딸린 방에서 아예 모시고 살기로 했다. 이씨는 “홀로 꿋꿋이 살아가는 할머니에게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눈을 돌리니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이 많았다. 오갈 데 없는 고아들,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와 가출한 어머니를 둔 초등학생, 전 재산을 물려주고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할머니…. 이들을 돕느라 정신 없이 바쁜 나날 속에 이씨의 병도 거짓말처럼 나았다.


좋은 날보다는 힘겨운 날이 더 많았다. 매일 노인들 똥오줌 묻은 속옷을 손빨래 하다 보니 이제는 손가락이 굽어 말을 듣지 않는다. 지난 번 급식대란 때는 아이들 4명의 도시락을 매일 싸주느라 손톱이 빠져 버렸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 자기도 힘들다. 다방 문 닫고 인근 노인들 월셋방을 돌고 나면 자정을 훌쩍 넘긴다.


그래도 이씨를 지탱하는 건 보람 있는 기억들이다.


지난 3월 별세한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속옷에 ‘어멈아 애썼다. 내가 가서도 잊지 않겠다. 건강해라’라고 써 놓은 메모 쪽지를 보고 혼자 펑펑 울었다. 공고에 다니는 아이가 자격증을 따고 “엄마!” 하고 달려와 품에 안기던 날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지금도 동네 목욕탕에 할머니를 모시고 가서 “우리 친정엄마”라고 하면 “친정엄마가 매번 바뀌니 대체 몇 분이야?”라며 주인이 넉살 좋게 웃는다.


엄하게 큰 자식들은 반듯하게 자랐다. 아이들은 용돈을 스스로 벌어 쓰고, 할머니들 사는 월셋방을 오가며 안마를 해준다. 이제 장성해 외지로 떠난 자식들은 엄마의 선행을 도우려 매달 작은 정성을 보내온다.


남편과 다섯 자녀를 둔 그녀지만 데려온 아이들도 똑같이 혼내고 보듬으며 길러 왔다. 이씨가 아이들에게 못하게 하는 금기사항이 있다. 머리에 물들이는 것과 신발 접어 신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또 아이들이 술·담배를 멀리하게 하려고 다방에서 맥주 한 병 팔지 않았다. 교복은 항상 깨끗이 빨아 다려 줬다. 이씨는 “혹시나 ‘부모 없는 자식’ 소리 들을까봐 독한 맘 먹고 혼낸다”고 말했다.


이씨는 결혼을 앞둔 8명의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데려온 날부터 매달 부어온 적금, 결혼할 때 가져 갈 금팔찌와 반지 등 패물 그리고 앨범 8개다.


앨범에는 아이들의 성장사(史)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운동회와 학예회, 입학식과 졸업식, 군대에서 보내 온 사진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아이들마다 따라 다니느라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결혼할 때 번듯이 잘 자란 아이들이란 걸 보여주려고 전부 모아놓았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이잖아요.”


이씨는 “자식 버리고 부모 내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며 “자식 낳아 기르고 부모님 모시고 사는 건 삶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매년 그랬던 것처럼 이번 추석 때 지난 1년간 모아놓은 돼지저금통 7개와 쌀 30포대를 들고 전국의 양로원과 고아원을 찾을 계획이다. ‘천사’가 따로 없다.



(선정민기자 sunny@chosun.com )




우리도 서로서로 도우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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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저도 오늘 아침 기사를 보았습니다
    신문1면에는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어머니가 가출한 뒤 힘들게 아이들을 보살피다 간암말기진단을 받은 아버지를 둔 ㅇㅓ려운 남매이야기도 실려있고...
    남을 돕는다는 건 풍족함을 나누는게 아니라 저마다 부족함가운데서도
    실천하는 작은 행동이 필요한 것 같아요
    모두가 자기가족(부모님과 형제자매)만 잘 보살핀다해도 힘든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는 않을텐데
    라는 생각을 잠시해봅니다
  • 천사가 따로 없네요.... 따뜻한 뉴스 입니다. ^^
  • 우리 사회가 따뜻하게 남을 수 있는 것은
    이런 분이 계시고 이런 일에 가슴 따뜻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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