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게으름 부리다 미뤘던 여행기 이제 마무리하게 되는 군요.
용님도 스위스서 멈춘 여행기 퍼뜩 다시 시작하시기를~~!!
러브호텔에서의 편안한 잠자리에서 일어나
커텐을 걷어보니 생각지도 못한 바다가 떠억하니 앞에 버티고 있네요?
창너머로 가고시마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제 마트에서 미리 장만해 두었던 컵라면을 꺼내서
아침 요기를 간단하게 마치고
시마바라로의 여행을 준비합니다.
더위 때문에 여정이 많이 변경되었네요.
시마바라로 가는 시골길에서
반사경을 이용해서 사진 하나 박아봅니다.
우리나라의 여느 시골마을과 다를 바가 없군요.
시마바라로 가는 도중 헤이세신산 기념박물관을 들러봅니다.
이곳은 평성19년(1992년) 시마바라의 산이 화산활동을 일으키며
매몰된 곳을 재건축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자연의 무서움을
알게해 주는 곳입니다.
재훈이를 이곳에 데리고 온 이유입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 봅니다.
매몰된 상태로 그대로 보존된 집들이
당시의 참혹함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 같군요.
기와집 너머로 화산폭발이 일어났던 산이 보이네요.
그리고 기념관을 나와서 어제 야영할까 망설였던 곳을 들러봅니다.
유치원생들이 놀러와서 놀더군요.
유치원 선생님이랑 간단하게 일본말로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되는 거 보니 이제 일본 생활 적응이 많이 되었나 봅니다.(^,.^)
유치원생들의 간바떼 구다사이를 뒤로 하고
화산체험관으로 향했습니다.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화산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학생들은 꼭 한 번 가볼만한 곳이라 생각됩니다.
재훈이를 시바바라로 데리고 온 이유중의 두번째이지요^^
그리고는 오늘의 여행지 시마바라로 향했습니다.
왼쪽으로 헤세신산이 보입니다.
강처럼 보이는 이 골을 따라서 화산류가 흘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시마바라.
여전히 날씨는 다시 더워지기 시작하네요.
시마바라는 아주 작은 소읍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현찰이 다 떨어져가는데 이 촌동네는 카드 결제가 되는 곳이 없습니다.
경비를 대충 계산해보니 난감합니다.
하루 정도 버틸 정도의 돈 밖에 없는데
들르는 은행마다 현금서비스도 인출도 되지 않네요...
이런 측면에선 정말 우리 나라 만셉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난감합니다.
결국 후쿠오카로 버스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거기는 카드 사용에 문제가 없단 생각에 말이죠.
원래는 운젠을 넘어 하야부사로 가서 버스로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아쉽습니다.
후쿠오카행 버스표를 예매를 하고 동네 한바퀴 들어갑니다.
잉어가 사는 마을이라는 곳을 가봤습니다.
그리고 동네 빙빙 돌아 댕기다가
족욕을 할 수 있는 곳에 가서 족욕도 하고 온천수도 한 잔! 캬~~!!
돈이 적어 값싸고 저렴한 나가사키 우동으로 점심을 때우고
시마바라 성으로 올라갔습니다.
학생들이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저희 부자를 응원합니다. 귀여운 것들^^
그리고 시마바라성...
성 구석구석을 구경을 하고
사무라이들이 살던 동네로 구경을 갔습니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느낀게 참 작은 것 하나까지 잘 보존해서
상품화해서 판매한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후쿠오카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캡슐호텔에 묵었습니다. 카드가 된다고 하기에
원스톱으로 숙박과 식사해결이 가능한 곳입니다.
배부르게 정식과 생맥주와 음료를 먹었습니다.
그간 돈이 딸려서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소금기에 고생한 장갑이 걸레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법 깨끗한 넘이었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단잠을 자고 다음날 후쿠오카 페리 터미널에 가려고 짐을 맡기려니
호텔에서 짐을 맡아주지 않네요. 나원참...
짐 맡기고 표 끊은 후 후쿠오카 구석구석을 돌려고 했는데 말이죠.
하는 수 없이 트레일러를 달고 터미널에 가서
가장 가까운 시각에 출발하는 쾌속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아들과 무사한 여행에 감사하며 한 방 박아 봅니다.
편안한 앞자리에서 푹 기대어 앉아 이웃집 토토로를 즐겁게 보다 보니 벌써 부산입니다.
은린 너머로 영도가 보이네요.
편안한 집이 그리워집니다.
일본 만만하게 보고 갔었는데
복병인 더위에 시껍했습니다.
그 당시 오사카 육상대회에서도 폭염으로 난리가 났었죠.
일본여행은 우리 부자에게 큰 의미로 남았습니다.
특히 초반 다친 다리로 끝까지 이겨낸 훈이에게
가장 큰 의미가 될 거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여행기를 위해 또 준비를 합니다.
오데로 가지?
게으름 부리다 미뤘던 여행기 이제 마무리하게 되는 군요.
용님도 스위스서 멈춘 여행기 퍼뜩 다시 시작하시기를~~!!
러브호텔에서의 편안한 잠자리에서 일어나
커텐을 걷어보니 생각지도 못한 바다가 떠억하니 앞에 버티고 있네요?
창너머로 가고시마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제 마트에서 미리 장만해 두었던 컵라면을 꺼내서
아침 요기를 간단하게 마치고
시마바라로의 여행을 준비합니다.
더위 때문에 여정이 많이 변경되었네요.
시마바라로 가는 시골길에서
반사경을 이용해서 사진 하나 박아봅니다.
우리나라의 여느 시골마을과 다를 바가 없군요.
시마바라로 가는 도중 헤이세신산 기념박물관을 들러봅니다.
이곳은 평성19년(1992년) 시마바라의 산이 화산활동을 일으키며
매몰된 곳을 재건축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자연의 무서움을
알게해 주는 곳입니다.
재훈이를 이곳에 데리고 온 이유입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 봅니다.
매몰된 상태로 그대로 보존된 집들이
당시의 참혹함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 같군요.
기와집 너머로 화산폭발이 일어났던 산이 보이네요.
그리고 기념관을 나와서 어제 야영할까 망설였던 곳을 들러봅니다.
유치원생들이 놀러와서 놀더군요.
유치원 선생님이랑 간단하게 일본말로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되는 거 보니 이제 일본 생활 적응이 많이 되었나 봅니다.(^,.^)
유치원생들의 간바떼 구다사이를 뒤로 하고
화산체험관으로 향했습니다.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화산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학생들은 꼭 한 번 가볼만한 곳이라 생각됩니다.
재훈이를 시바바라로 데리고 온 이유중의 두번째이지요^^
그리고는 오늘의 여행지 시마바라로 향했습니다.
왼쪽으로 헤세신산이 보입니다.
강처럼 보이는 이 골을 따라서 화산류가 흘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시마바라.
여전히 날씨는 다시 더워지기 시작하네요.
시마바라는 아주 작은 소읍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현찰이 다 떨어져가는데 이 촌동네는 카드 결제가 되는 곳이 없습니다.
경비를 대충 계산해보니 난감합니다.
하루 정도 버틸 정도의 돈 밖에 없는데
들르는 은행마다 현금서비스도 인출도 되지 않네요...
이런 측면에선 정말 우리 나라 만셉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난감합니다.
결국 후쿠오카로 버스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거기는 카드 사용에 문제가 없단 생각에 말이죠.
원래는 운젠을 넘어 하야부사로 가서 버스로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아쉽습니다.
후쿠오카행 버스표를 예매를 하고 동네 한바퀴 들어갑니다.
잉어가 사는 마을이라는 곳을 가봤습니다.
그리고 동네 빙빙 돌아 댕기다가
족욕을 할 수 있는 곳에 가서 족욕도 하고 온천수도 한 잔! 캬~~!!
돈이 적어 값싸고 저렴한 나가사키 우동으로 점심을 때우고
시마바라 성으로 올라갔습니다.
학생들이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저희 부자를 응원합니다. 귀여운 것들^^
그리고 시마바라성...
성 구석구석을 구경을 하고
사무라이들이 살던 동네로 구경을 갔습니다.
일본 여행을 하면서 느낀게 참 작은 것 하나까지 잘 보존해서
상품화해서 판매한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후쿠오카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캡슐호텔에 묵었습니다. 카드가 된다고 하기에
원스톱으로 숙박과 식사해결이 가능한 곳입니다.
배부르게 정식과 생맥주와 음료를 먹었습니다.
그간 돈이 딸려서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소금기에 고생한 장갑이 걸레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법 깨끗한 넘이었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단잠을 자고 다음날 후쿠오카 페리 터미널에 가려고 짐을 맡기려니
호텔에서 짐을 맡아주지 않네요. 나원참...
짐 맡기고 표 끊은 후 후쿠오카 구석구석을 돌려고 했는데 말이죠.
하는 수 없이 트레일러를 달고 터미널에 가서
가장 가까운 시각에 출발하는 쾌속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아들과 무사한 여행에 감사하며 한 방 박아 봅니다.
편안한 앞자리에서 푹 기대어 앉아 이웃집 토토로를 즐겁게 보다 보니 벌써 부산입니다.
은린 너머로 영도가 보이네요.
편안한 집이 그리워집니다.
일본 만만하게 보고 갔었는데
복병인 더위에 시껍했습니다.
그 당시 오사카 육상대회에서도 폭염으로 난리가 났었죠.
일본여행은 우리 부자에게 큰 의미로 남았습니다.
특히 초반 다친 다리로 끝까지 이겨낸 훈이에게
가장 큰 의미가 될 거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여행기를 위해 또 준비를 합니다.
오데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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