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자전거 등산로 주행 놓고 논란
내리막 타며 산길 훼손·빠른 주행에 사고 위험
지자체 무관심… "산길 보수하며 타기가 대안"
주말마다 경기 성남시 일주등산로 영장산을 찾는 김모(45)씨는 최근 등산을 하다 깜짝 놀랐다.
평소 산악자전거(MTB)가 자주 다녀 불편했는데 이번에는 산악용 오토바이 2대가 굉음을 내며 등산로를 내달렸기 때문이다. 김씨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친구들과 광주 오포∼분당 불곡산 코스를 자주 찾는 이모(40ㆍ여)씨는 MTB들 탓에 계속 깎여 나가는 등산로를 보면 짜증이 난다.
등산로 가운데에 흉측한 골이 생긴 것은 물론, 나무 뿌리까지 잘려나가는 데도 누구 하나 흙을 부어 보수하는 사람이 없다.
MTB로 인한 등산로 훼손이 늘면서 곳곳에서 등산객과 동호인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등산객들은 "등산로에 따라 MTB 통행을 제한하는 등 관리규정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동호인들은 "MTB로 인한 산길 훼손이 입증되지 않았는데 통행을 제한한다면 행복추구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등산객들이 MTB에 불만을 쏟아내는 것은 등산로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남시 분당에서 불곡산을 자주 찾는다는 김모(43)씨는 "내리막 경사에 흙이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계단을 설치해 놓았는데 MTB 이용자들이 계단 바깥쪽으로 다니면서 더 넓고 깊게 등산로가 훼손됐다"면서 "지방자치단체가 보수에 나서든지 아니면 MTB 출입을 통제하든지 조치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실제 불곡산 광주방면 등산로에는 MTB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좁게 패인 골이 여럿 발견됐다.
골이 깊어지면서 나무뿌리가 잘리는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특히 MTB나 등산객이 자주 부딪치는 도심 근교 산의 경우 서로 피하느라 거미줄 등산로가 만들어지는데도 지자체는 주요 관리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일손을 놓고 있어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MTB가 등산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동호인들도 일정부분 인정하고 있다.
A동호회 K씨는 "오르막이나 평지를 운행할 때보다는 아무래도 다운 힐(경사를 빠르게 내려오는 것) 때 브레이크를 걸면서 흙이 많이 깎여나갈 수 있다"면서 "경사가 심한 곳은 자전거에서 내려 들고 가도록 권유하고 있으나 다운 힐을 특히 좋아하는 동호인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등산로에서의 MTB 이용을 규제할 법적 장치 도입까지 요구한다.
하지만 MTB가 등산로 훼손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동호인들의 반발도 만만찮다.
주말마다 MTB를 즐긴다는 김호석(32)씨는 "등산로를 탈 것을 이용해 편하게 오르내리는 데 대한 반감이 MTB의 등산로 훼손을 실제보다 부풀렸을 수 있다"며 "MTB 동호인도 등산객인데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 김정훈 박사도 "등산로는 조건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MTB로 인한 토양침식을 계량화하기가 어렵다"면서 "특정 조건을 제외하고 MTB가 등산객보다 토양 침식을 더 야기한다는 연구결과는 아직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MTB 동호인들은 '야전삽 갖고 다니기' '올바른 라이딩' 등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훼손이 심각한 등산로를 메워가면서 라이딩을 즐기자는 것으로, 등산객과의 대립을 해소할 현실적인 방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대전 MTB연합회 우기택(44)사무국장은 "대회나 라이딩을 즐긴 뒤 야전삽과 쓰레기봉투를 들고 훼손된 코스를 삽으로 보수하거나 등산객들이 버린 쓰레기를 줍고 있다"면서 "등산객들이 박수를 쳐주며 격려하는 등 호응이 좋아 복구활동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산림청은 MTB로 인한 등산로 훼손을 막기 위해 동호인들에게 전국적으로 1만㎞에 달하는 임도(林道)를 이용해 줄 것을 당부하는 한편, 체계적 조사를 통해 등산로 보호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 산악자전거(MTB) 에티켓
-등산객과 마주칠 때 인사하거나 정지한다.
-등산객의 뒤쪽에서 접근할 때 휘슬 등으로 알린다.
-등산객이 많은 계절과 시간대는 피한다.
-타이어자국이 남지 않도록 주의한다.
-점프 등을 즐기기 위해 지형을 훼손하지 않는다.
-자주 이용하는 코스가 훼손될 경우 복구한다.
이범구기자 gogu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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