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야..

나는 너같은 손녀라도 있었으면 좋겠구나.
니가 나의 썩어가는 육신을 보지 않았으니, 그렇게 말짱한 입술로
맹랑한 생각을 하였는지 몰라도,
난 그래도 너같은 손녀라도 있었으면 좋겠구나.



한때..나도 너만큼이나 뽀얀 속살로 벌판을 누비며,
홍조띤 얼굴로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며 제잘거리던
너만큼이나 철없던 계집아이 시절이 있었단다.
부자집은 아니어도 건장한 청년 만나서
초가삼간에 살아도 이쁜 아이 낳아 옥수수 심고
고추심어 나즈막히 사는 것이 소원이었던 사람이었단다.



처음엔 무서웠단다.
조금 지나니 고통스럽더라..
그래도 세월이라고 시간이 흐르고 차라리 죽을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
여길 즈음..난 고향으로 돌아왔단다.
살아 있다는 것이 악몽이라는 걸..니가 지금 느끼느냐?

나는..수십년을 그렇게 지옥속에서 살았단다.
나는..나를 놓은지 오래다.
나는..여자인지 오래다..
너는..마음만 먹으면 너처럼 고양이 눈을 한 딸아이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내속에는 아이를 만들 수 있는 땅이 없단다.
그들이 다 파먹었으니..
수십명의 개떼들에게 내 몸 하나 파먹힌건 그래도 별거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향이라고 돌아와 발디딜 곳 하나 없이 만들어 놓고
개떼들의 습격이 마치 내 의지인냥 나를 화냥년 취급하던
내 사랑하는 조국이 나의 숨통을 더 죄인것 같다.



내가 너를 미워한다면..그건 니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니가 여자이기때문이다.
니가 나를 모른다 하지말아라..
나는 그저 너를 대신하여 개떼들에게 끌려간 것일 뿐이다.
너들 너들한 육신을 안고 돌아와..
온전한 햇볕한 번 못보고 산 내가
지금와서 너에게 사진의 모델이나 되라고 하니..
내 산것이 오늘 이 꼴을 보려고 한 것이구나.



나를 동정하지 말아라..
내 조국이 날 버리던 그때부터, 난 누구의 동정따위를 바라며 산 것이 아니다.
나에게 카메라를 비추지 말아라.
내 육신이 비록 너들 너들하나 너희들이 아무곳에나 들이대며
후레쉬 터트릴 그런 삶은 아니었다.


애야..


어떨때는 니가 무슨 죄냐..싶었다.
동물원 구경 오는 심정이었을지도 모를 너에게
나를 고스란히 옮겨 놓을려는 내 욕심이 어리석은 것이라 여겼다.
너처럼 부풀은 젖가슴을 나도 가졌었단다.
너처럼 고운 등짝을 나도 가졌었단다.
개한마리 세워놓고, 니가 얼굴에 숯칠을 한다고 정녕 니가 나 일 수 있겠느냐?
니가 그 고운 등짝을 들이밀고, 풀어헤친 저고리 고름 사이로
뽀오얀 젖가슴을 들이민 것은,
사치였다.
그건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냥 살아도 조국속에 묻힐 것이다.
아마도..
내 눈감을 그날까지 나는 그저 개떼들의 습격속에서 다행이도 살아온
병들고 썩어가는 늙은 할머니로 기억될 것이다.
그것이 안타까워 나인냥 하지말아라.
정녕..너는 내가 아니다.



고양이 눈을 한 애야..
들끓는 사람들을 미워하지말아라.
그들이..나다.
왜 진심을 몰라주냐며 억울해 하지말아라.
수십년을 소외된 채 사회와 단절된 나도 살았온 땅이다.
내 언제 너에게 많은 것을 바란적 있더냐..
내 언제 너에게 손벌린적 있더냐..
정녕 니가 나이기를 원한다면, 조용히 눈감고 기도해다오.
내 젊은 시절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게 평온히 잠들도록..



그리고..
내 힘없는 조국을 그래도 안고 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