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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정혜를 보다.

퀵실버2005.04.26 02:57조회 수 32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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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왜 울지 않는가?

끝의 그 나즉한 통곡은 울음이 아니리라.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이윤기 감독은 관객을 대단히 곤혹스럽게 만든다.
불안하게 조금씩 끊임없이 흔들리는 앵글.
그럼에도 어디에서도 불안요소는 찾을 수 없다.
정혜의 손에 쥐어진 칼을 보여주는 순간에도.
내내 여자의 복판에서 사지를 절단하는 고통의 전쟁이 벌어지는 순간에도 불구하고
외롭고 나른하고 무의미한 일상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솜씨.
관객은 그런 여자의 내부를 전혀 통찰하지 못한다.
감독은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서 관객을 사물의 건너편으로 몰아낸다.
관객은 사물의 뒤로 쫒겨나 여자의 동태를 살펴야 한다.
심지어는 화면을 벽으로 절반이나 쪼개서 보여주기도 한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제발 여자한테 간섭하지 말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이나 하라고 강요한다.
내내 여자를 훔쳐보는 관객.
그러나 묘한 호기심은 전혀 발동하지 않는다.
또한 감독은 여자의 지난 시간을 현재와 중첩시켜 관객에게 현재상황의 원인을 파악할 단서를 제공하는데
지남과 지금의 시간차를 교묘하게 버무려 관객으로 하여금 아릿한 어지럼증을 느끼게 한다.
림프액이 계속 돌려고 하는 힘을 거스르면 느낄수 있듯이...
하나의 공간에 두개의 각기 다른 시간을 동시에 같은 높이로 가만히 올려놓아
관객은 그 시간차로 인해 잔잔한 어지럼증을 느끼는데 과거의 행위와 현재의 행위가
동일 공간속에서 동시에 일어나니 관객은 포커스를 어디에 맞추어야 할지 몰라 당황해 한다.
여자의 엄마가 '조용히 해요, 애가 듣겠어요, 하는 장면에서는 특히 그렇다.
여자가 들으면 대단히 괴로워할 이야기를 여자의 엄마에게 여자의 고모가 이야기 하는 장면인데
고모는 목소리를 낮춘다던가 여자가 듣지 목하게 속삭이던가 하지않고 대담하게 소리를 높혀 이야기 한다.
화면을 주시하던 나는 '저런 이야기를 하면 여자가 들을텐데' 하는 불안감에 휩쌓였는데
여자는 TV를 보며 소파에 누워있다가 두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냉장고의 물을 마신다.
물론 물을 마시는 여자는 현재이고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와 고모는 과거이니
그녀가 고모의 이야기를 들을리 없다.
그렇다면 과거에 그녀는 고모의 이야기를 들었었을까?
두 행위에는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어떻한 경계선도 없다.

여자는 어째서 닦고 닦고 또 닦는가?
마치 닦아내지 않으면 않될 기억이라도 있는것처럼 여자는 닦고 닦고 또 닦는다.


무단횡단을 하면서까지 급하게 뛰어가
작가남자를 집으로 초대하고도 그러나 거의 눈치채지 못할 만큼만 들뜨는 여자.
여자 스스로 억누르고 있는걸까, 아니면 정말 그만큼만 들떠 있는걸까?
호박부침과 잡채를 만들고 국을 끓여내는 여자.
찾아오지 않는 남자.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다가 언제나의 일상처럼 혼자 저녁식사를 하는 여자.
남자를 초대하는 장면을 놓친 관객이라면 어떤 변화가 지나갔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너무나 저력이 부족한 배우를 기용한 슬픈 취객과의 씬은 또 한번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는 왜 등장한 것일까?
칼을 손에 넣고 고모부를 떠올리다?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했던것 같은데 이장면은 나로써는 분명 동의할 수 없는 장면이다.
사실 이 장면은 너무 억지스러운데다가 세련되지도 못했으며
게다가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거부감마져 들기까지 한다.
여자, 정혜는 그리 파격적이지 않은 영화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니면 감독은 이 영화가 파격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냥 찾아가서 조용히 앉아있다가 가만히 돌아오는게 더 나을뻔 했으리라.
그랬다면 그는 최악으로 비참했겠지.
우는장면도 없었으면 더 좋을뻔 했다.
그냥 화장실의 거울에 반사되는 여자와 조용히 눈을 맞추고 있는게 나을뻔 했다.
감독은 관객의 심장 중심을 비통하게 관통시킬 비장의 화살하나를 준비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억지스러운 슬픈 취객과의 씬도 없었을테고...
물론 슬픈 취객을 연기한 배우에게는 미안하지만...
좀 더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방법은 없었을까?
칼이라니...

엔딩.

사과를 하며 '혹시 괜찮으시다면...' 하고 말하는 남자와 마주선 여자의 미세하게 흔들리는 완곡한 눈동자.
그리고 깜짝 놀랄만큼 갑자기 찾아오는 어둠과 엔딩 크레딧.
감독 이윤기는 나쁘다.
마지막까지 감독은 관객에게 짐을 지운다.



뒷말

배우 김지수와 여자 정혜.
그녀들은 예쁘게 꾸미지도 않고 예쁘게 걷지도 않는다.
아주 못생긴 구두를 신고 커다란 핸드백도 어깨에 걸치지 않고 축 늘어진 손에 들고 그냥 터벅거리며 걷는다.
무질서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말년의 삿갓처럼.
그녀들은 왜 그렇게 말랐을까?
밤새워 홈쇼핑 방송을 보던데 뭘 좀 샀을까?
아작거리는 총각김치와 구두를 사긴했지만...
김미성의 능력?
고양인 어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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