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치 :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산 89번지
삼국통일의 공신인 김유신(金庾信)은 595년(진평왕 17년) 충북 진천
에서 만노군(萬弩郡:진천)의 태수이던 서현(敍玄)장군의 첫아들로
태어났다. 김수로왕의 13대손인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17세에
고구려,백제의 잦은 침략에 삼국통일의 큰 뜻을 품고 서라벌 서쪽
산에 있는 석굴에 들어가 목욕재계하고 천지신명에게 고구려,백제,
말갈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4일만에 한 노인이 나
타나 김유신의 인내와 정성을 가상히 여겨 비법이 담긴 책과 신검
(神劍)을 주었다고 삼국사지,동국여지승람,동경잡기에 소개되어있다.
김유신은 이 신검으로 고구려, 백제와 싸울 때마다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며 당시의 화랑들이 수도하던 산에서 김유신은 이 칼로 무술연마를
하면서 바위들을 베었다고하여 이름이 단석산(斷石山)이 되었다.
이 산은 건천읍 송선리 산89번지 우중골에 있으며 산 7∼8부 능선 4개
의 바위가 둘러싸인 천연굴이 있는데 옛날에는 상인암 (上人巖:일명
탱바위)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화랑들은 이 바위굴속에 불상을 새기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석굴사원을 만들었다. 이 절을 신선사(神仙寺)
또는 단석사(斷石寺)라고 부른다. 내부의 마애불상은 국보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단석산은 경주에서 가장 높은 산(827m)으로 백제에 대한 신라의 국방
의 요충지였다. 이 지역은 진달래군락지로 봄철 산악애호가들의 사랑
을 받고 있으며 인근 조래봉(657m)과 더불어 등산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김유신의 유적지는 충북 진천에 담안밭 탄생지, 태를 묻은 태령산,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 연보정,말을 훈련시켰다는 치마대와 투구모양의
투구바위가 있으며 길상사는 흥덕왕 10년(835)에 흥무대왕으로 추봉
된 후 사당으로 건축되어 장군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경주에는 김유신장군묘와 금산재비각이 있다. 사귀던 천관녀의 집터
는 천관사로 남아있다. 천관(天官)이란 여인의 집에 자주 드나들자
어머니 만명(萬明)부인은 왕과 부모에게 기쁨을 주기를 기대했는데
술과 여자를 즐기느냐며 울며 타이르자 다시는 그여자 집에 가지 않
기를 맹세했다. 그러던 어느날 말은 유신을 태우고 눈에 익은 길을
따라 천관녀의 집에 다다르자 유신은 말의 목을 베어버리고 그 집을
떠났다. 천관은 원사 한곡을 지어 속세를 떠났다고 한다. 고려의 문
인 이규보(李奎報)는 이에 아래와 같이 읊었다.
절 이름 천관사 옛부터 연있더니
홀연 지낸 일 듣고 한 번 슬퍼라.
삐딱이 취한 공자 꽃아래서 놀고
애원하는 미인 말앞에서 우네.
적토마 다정해서 오히려 길을 알고
상노는 무슨 죄로 채찍을 받았더냐.
다만 남은 것은 한 곡조 좋은 가사
휘영청 달빛 아래 만고에 전해지네.
김유신은 엄격한 성품을 신라 국민정신과 화랑정신으로 승화시켰
는바, 이 엄격함은 가훈을 어긴 아들 원술과 부자의 연을 끊어버리기
까지 한데에서도 잘 나타나고 당나라의 영토적 집착을 단호히 물리
친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 고구려를 멸하여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은 태대각간의 직위를 받고 673년 78세로 세상
을 떴으며 사후 162년후 인신으로서 대왕(흥무)에까지 오른 전무후
무한 기록을 남겼다.
누이 문희(文姬)는 김춘추에게 출가하여 무열왕비가 되어 문무대왕
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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