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사진으로 보이는 길이 사진상으로는 아주 좋은 길 같지만 실제 모습는 3번 사진과 같이 아주 경사가 가파른 100% 돌길입니다.
고헌산 ?
고헌산은 울주군 언양읍 상북면과 두서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 1,033m의 높은 산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도성이나 각 고을을 진압하는 주산을 진산이라 불렀다.
울산도호부의 진산은 무룡산인 반면 당시 언양현의 진산은 고헌산이다.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들은 한 발자국이라도 태양에 가까운 높은 산은 태양신에 접근하기 쉬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 하늘의 신이 하계 할 때는 하늘에 가까운 높은 산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 고헌산은 언양 사람들이 가뭄이 되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비가 내리고 안 내리는 것이 오로지 신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 믿는 우주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용샘이 있는 높은 정상에서 부정을 피해 하늘과 산신과 비를 다스리는 용신에게 정성껏 비를 빌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언양 인터체인지에서 서북방향으로 9㎞ (석남사길)쯤 들어간 장성리 쪽에서 북으로 보이는 산이다.
서쪽으로 가면 가지산이 나온다. 남으로는 신불산을 비롯 간월산과 영취산(취서산)이 이어져 있으며, 산꼭대기는 돌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 아래 동쪽에는 사연댐이 있다.
한 때 헌산현(獻山縣) 이라 불리기도 한 고헌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언양현조에는 다음과같이 적고 있다.
본래 신라의 거지화현으로 경덕왕 때 헌양현으로 고쳐 양주(지금의 양산) 의 속현으로 했고 고려 현종때 울주에 예속 시켰다.
인종때 감무(監務)를 두었고 뒤에 지금이름으로 개칭하였는데 조선조에 들어와서 그대로 하고 현감을 두었다.
이기록으로 미뤄보아 헌의 고음(古音)은 “언” 이었으며 언(獻)이 변화해 언(彦)이 됐다는 애기다.
고헌산의 옛말은 “고언산” “고언뫼”였던 것이며 또 고헌산은 높은 봉우리란 뜻을 가지고 있어며 주변사람들은 고헌산을 진산, 숭산,성스러운 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고헌산 산정에는 용샘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주 산내면 사람들은 고헌산을 “고함산”이라하는데 그연유를 알아보자.
경주군 산내면 중말이란 마을 뒤에 문복산이 있는데 이산 중간에 “디린바위” 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이바위에는 석이 버섯이 많았다고 한다.
어느날 한 젊은이가 이 바위에 자라는 석이를 따기위해 줄을 메달고 석이 따기에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런데 이 디린바위에는 키같은 지네와 솥뚜껑만한 거미가 살고 있었는데 마침 석이를 따는 것을 본 거미는 젊은이가 매달려 있는 줄을 물어뜯어 끊을려고 했다.
그러나 석이따기에 열중한 젊은이는 전혀 이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때 동쪽 고헌산에서 나무를 짊어지고 내려오다 쉬던 나뭇꾼이 이사실을 보고 거미의 장남으로 젊은이가 죽을 위기에 처한걸보고 나뭇꾼은 “여보시요, 여보시오 석이따는 젊은이. 보시오, 석이따는 젊은이. 거위를 조심하시요.” 하고 몇 번 고함을 질러댔다.
젊은이는 이소리를 듣고 위를 쳐다보니 과연 거미한 마리가 줄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러자 얼른 몸을 피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이산을 고함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헌산은 두루뭉술한 산세에 비해 골짜기가 많다.
대통골, 곰지골, 연구골, 홈도골, 도장골, 큰골,등 수많은 계곡이 있는데 곰지골은 곰이 자주 나타났다하여 붙혀졌고, 연구골은 영고사라는 큰절이 있는곳인데 조선조 말에 폐사되어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
홈도골은 아름다운 폭포를 숨기고 있고 , 도장골은 골짜기가 길을 감추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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