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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렵 라이딩 -연천 동막골

靑竹2009.05.10 00:17조회 수 408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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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나와 천렵에 함께한 제대 500여 일을 앞둔 고산주니어. 내 아들놈보다 꼭 일 년 늦게 입대한 이 아이는 정말 꽃미남이다. 위의 사진은 깨끗하게 손질한 꺽지들.




겨울의 추위도 첫 한파가 매서운 법.
한파를 호되게 한 차례 겪고 나면 몸이 적응하게 되면서
다음에 닥치는 한파에 어느 정도 면역성이 생긴다.


폭염도 마찬가지다.
무더위를 최근 몇 차례 경험했으니
이제 폭염예방주사를 맞았다고 해야 할까?



며칠 전,
만나면 의당 라이딩을 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때이른 폭염으로 깨졌었다.
나의 펑크난 타이어를 때우고 고산님의 스프라켓을 교체한 것까진 좋았는데
아직 적응하지 못한 맹렬한 폭염에 우물쭈물,
천보산에 오르자고 서로 공갈포만 늘어놓으며
나무그늘 벤치에 앉아 이야기만 나누다 집으로 돌아선 꼬라지는
영락없는 노인정 어르신들 모습이었다.


"이게 청죽님이나 저의 미래의 모습일 겁니다."


봄은 봄다워야 하는데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언제부턴가 봄가을이 실종이라도 된 듯한 지 오랜데
올봄도 예외는 아니었다.

춥다가, 덥다가 종잡기 어려웠던 봄은
한적한 시골 간이역 대합실에 잠시 머물던 손님처럼 어느 순간 떠나버리고
느닷없는 한여름의 폭염이 때아닌 5월 초순에 한반도를 달궜다.




▲산나물을 캐는 할머니들에게 자전거를 타고 다가가 생소한 나물 이름들을 꼬치꼬치 캐묻자 전혀 귀찮은 내색 없이 나물 이름들을 다 알려 주신 것까진 괜찮았는데 "요즘 젊은애들이 이런 나물 이름을 알 텍이 읍지" (앗싸라비야~)



"천렵이나 하러 갑시다."

하시는 고산님의 제의에 거절의 의사를 표시해 봤자
농담으로 받아들이실 게 뻔할 정도로 나 역시 천렵을 좋아하니
이런 땐 곧바로 "오케이" 하는 것이 대화의 능률을 높이는 방편이다.

농약이 없던 시절엔 동네 앞을 흐르던 금강 지류는 너무도 맑았다.
농군들은 모내기를 하다 말고 냇물의 물을 항아리에 떠다가 그냥 마셨다.
그땐 정말 물고기가 지천이었다.

냇물 뿐만 아니라 둑 너머 논과 둑의 사이를 흐르는 수로와
절반 정도 자란 아직 마르지 않은 벼포기 사이의
손바닥 만하게 패인 웅덩이마다 붕어나 미꾸라지가 득시글했었다.

그러나 환경이 너무 나빠졌다.
물이 맑아 황금빛 모래며 조약돌들이 훤히 비치던 고향의 냇물은
꽤 오래전부터 바닥이 시커매지고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모처럼 고향을 찾을 때마다 정나미가 떨어지면서
가슴이 아프다 못해 원통한 생각까지 드는 요즈음이다.

어쩌면 고산님이나 나나 이따금 가는 천렵에 진지하게 몰두하는 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시절에 대한
진하디 진한 그리움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고산님께서 딱 한 군데서 건지신 통통한 민물 다슬기. 맛있다며 딸아이가 다 해치웠다.



"고산님."

"왜 그러십니까?"

"거 혹시 제 집에 오실 때마다 대접이 시원칠 않으니
도시락을 싸가지고 오듯 진미거리를 장만해서 오시는 건 아닙니까?"

"푸하하하.
그렇다고 이 대목에서 제가 정직할 수는 없잖습니까?"


곤궁하게 산다고 해서 하등의 억울함이나 아쉬움이 조금도 없는 나지만
손님을 맞을 때는 그런 뻔뻔한 기조가 한구석부터 흔들리는 걸 느낀다.
먼지 나는 살림에 손님 접대라야 된장찌개에 김치 등속뿐이지만

"된장찌개가 기막히네요. 죄송하지만 밥 한 공기만 더 주십시오."

하시며 박한 손님 접대에 대한 나의 부담을 늘 덜어 주셨는데
아 글쎄 이냥반이 언젠가부터 라이딩만 나가셨다 하면 두릅에,엄나무순에,
취나물이며 자연이 주는 온갖 먹거리(아시는 것도 많다.)들을 캐거나 따오셔선

"이것 좀 얼른 데쳐다 주십시오."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둘이 항상 하는 농담이 있다.

"사람들은 대개 이름 앞에 '참'자가 붙여진 참xx가
'개'자가 붙여진 개xx보다 맛있다고 하는데
왜 저는 개xx가  더 맛있죠?"

"잉? 그건 저도 마찬가진데요?"

"아마 우리가 촌에서 막커서 그럴 겁니다.큭큭큭"

대단히 소탈하신 고산님의 성품으로 미루건대
그냥반의 요즘의 일련의 채미는
박대에 대한 저항(?)은 물론 아니실 테고
아마도 계절의 별미와 더불어 그 속에 섞인 아련한 향수를
맛보기 위함이시리라.

(저항이었다고 우기시면 어쩔 건데?)




▲꺽지를 꽤 많이 잡았다. 온갖 중장비(^^)를 동원한 사람들보다 돌이 많은 개천이 있는 고장에서 나고 자라신 고산님의 맨손 천렵이 훨씬 더 능률적이고 수확도 많았다.



"오늘은 체중계에 올라가지 말아야지."

고산님의 매운탕 솜씨는 정말 뛰어나시다.
매운탕에 관해서라면 나도 어느 정도 맛을 감별할 줄 아는데
어떤 식당에 가도 이처럼 구수한 매운탕을 맛보기 어려울 정도다.

"저는 민물고기가 싫어요"

요즘 아이들은 민물고기의 맛이 생소한가보다.
그러나 딸아이는 다슬기는 정말 맛있다며
매운탕에서 다슬기만 건져서 쪽쪽 빨아서 먹는 바람에
적어도 5인분은 됨직한 매운탕을 고산님과 둘이서
연신 국자를 놀려 접시에 담아 먹다 보니 아뿔싸,
그 큰 냄비가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뭐 날마다 이렇게 먹을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며 고산님이 가신 뒤에 저울에 살짝 올라가 봤더니
65.5kg까지 줄었던 체중이 66.5kg.

으악!!!!!!


때이르게 닥친 여름을 배가 먼저 튀어나와 맞는가 보다.


=3=33



나는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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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전거의 계절입니다. (by 서늘한) 지로 디 이탈리아 100주년 기념 세벨로 기념모델 (by eloy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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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 청죽님.................좋읍니다
    사진도... 몸무게도.... ㅎㅎㅎㅎㅎ
    제가 활동하기전에 많이 활동하세요 ㅋㅎㅎ
  • 꺽지 오래간만에 보네요.
    옛날에는 흔해서 잘 먹지 않던 것들이
    지금은 비싼게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빠가사리가 그런데
    옛날에도 먹기는 했지만
    메기나 쏘가리에 비해 '잡고기'로 분류되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귀한 대접을 받더군요.

    그 매운탕 먹고잡다. ㅎㅎ
  • 靑竹글쓴이
    2009.5.10 17:37 댓글추천 0비추천 0
    어제의 과식으로 감량전선에 혼선이 왔습니다만,
    오늘 힘들게 탔으니 좀 빠졌을 것 같습니다. 스탐님^^

    민물고기 뿐만 아니라 바다 어종도 그런 게 많죠.
    우럭도 예전엔 흔해빠져서 고급 횟감은 못 됐다는 이야길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한 번 대접해 드릴 날이 오겠죠.선비님^^
  • 선비님 부르실때 저도 살짝 불러주시면 안될까요?
  • 꺽지..물이 무릅 깊이 정도되고 커다란 바위 밑 빈공간에 숨어 있지요.
    살금살금 다가가서 두 손으로 더듬듯 포위하면 얌전하게 잡혀 주곤 하던 순한 녀석이지요.

    그리고 저기 자전거 잡고 있는 청년은 혹 휴가나온 자제분인지
    머리가 긴 걸 보니 특수 부대인가 봅니다. ==3=3=33333
  • 된장 살짝 풀고 무청 시래기 넣어서 뼈까지 으스러지게 끓이면
    둘이 먹다 둘다 어찌되도 모르는 매운탕계의 럭셔리 물고기 꺽지군요.
    작년에 동강 라이딩 갔다가 가수분교쪽에서 몇일 지내고 온적이 있는데 밤에 다리 밑에서 낚시로 많이 잡았던 생각이 나네요.
    탑돌이님 말씀처럼 아드님이 특수부대 소속인것은 같은데 좀 고생스러운가 봅니다.^^
  • 사진에 저분이 아드님 이군요. 몰랐습니다. 아드님이 자전거 타는줄은.....3=3=3=3===333
  • 靑竹글쓴이
    2009.5.11 21:26 댓글추천 0비추천 0
    음....

    춘천에 최대한 접근하면 인자요산님께 연락 드리죠.켈켈.

    탑돌이님께서도 꺽지를 잘 아시는군요.
    제 고향에 흐르던 금강 지류엔 돌은 없었고 고운 모래만 있어서 그런지
    꺽지를 모르고 자랐습니다.

    ralfu71님도 잘 아시는군요.
    재료는 고추장, 무 한 개, 대파 2뿌리, 들깻잎 33장, 청양고추 5개,천일염이 다였답니다.
    그런데 같은 재료라도 요리사에 따라 맛이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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