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95년 4월 18일.......
95년 4월 18일, 춘천 102 보충대에 입소하는 그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 때의 기분은 표현 못할 정도로 착찹하였다. 전날까지 군대 간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는데, 4월 18일 날 아침엔 이 기분은 실감 정도가 아니었다.
집을 떠나기 두어 시간 전, 넓은 집은 아니었지만, 집 이곳 저곳 둘러 보았다. 발길 닫는데로......
동생들 방에 들어가 보았다.
'이 곳에 다시 돌아 오려면, 얼마 걸릴까?'
주위 사람들에게 줒어 들은 바로, 대략 계산하여 보니, 일병 휴가 때나 올수 있었는데 7-8개월 후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울어 본 적이 오랫만인데다가 내 의지완 상관 없이 그냥 눈물이 나왔다. 나도 당황이 되었다.
점심은 아버지와 외참촌, 나 이렇게 춘천 102보충대 근처의 식당에서 먹었다.
아버지는 아들 군대 간다고 메기 매운탕(대)을 시켜 주셨는데, 전혀 먹질 못했다.
메기 할아버지라 해도, 전혀 먹을 수가 없었다.
밥을 한 두 숫깔 드는둥, 마는둥 했다. 물도 먹히질 않고......
그때, 나의 혀는 미각을 상실한지 오래 되었었다.
<고참들 몰래, 은밀한 곳에서 하루 하루 지워져 나간, 내 청춘......>
군대의 하루는 사회의 한달과 같았고, 군대의 한달은 사회의 일년과 같이 느리게 흘러 갔다.
하루라는 시간이 이렇게 길고, 한달이라는 시간이 어찌 보면 사회의 1년 보다 지루하고 느리게 느껴 졌다.
한달 위의 고참은 사회의 1년 위의 선배 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 하였다. 휴가든 훈련이던지 일 주일 차이로 희비가 교차 될 정도로 군대는 시간적 변화 또한 큰 조직이었다.
군대에 있는 동안, 이렇게 느리게 흘러 가는 시간을 참고 인내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친구들의 편지를 기다리고, 가족들의 면회를 기다리고, 다음 휴가를 기다리는 이러한 기다림의 연속이 시간을 더 더디게 만들었다.
이런 와중에 달력에 흘러 간 날짜를 지워 가는 취미를 얻게 되었다.
이런 행동은 쫓나 빠진 행동이어서, 화장실에서 몰래, 밤에 몰래 지워 나갔다. 만약 고참한테 들키기라도 한다면...... 뒷 일은 상상 할 수도 없었다.(사실, 좀 아이러니하지만, 이 취미는 고참 한명이 시간이 잘 가는 비법이라며 몰래 가르쳐 준 것이었다. )
바쁜 이등병 시절엔, 몇일씩 몰아서 지울 수 밖에 없었다.
<어렸지만, 건강한 우리 소대원들......물 좋고 ,공기 좋은 강원도 양구>
여기서 후임병(보통 '쫄따구'라고 하지만, 요즘 군대에선 이런 말을 쓰면 안된다고 한다.) 두명이 있지만, 나이로 보면 내가 가장 어리다.
95년 6월 2일은 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배치 받은 날이었다.
좋던, 싫던 2년이 넘게 같이 고생해 나갈 고참들을 만나는 운명적인 날이었다.
자대에 배치 받고 보니,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고참이면서 '형'뻘이었다.
한 두달이 지나고, 나 다음으로 들어 오는 후임병들도 보통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1995년 7월 20일....
군대에선, 사람 죽이는 연습만 하는 곳은 아니었다.
군대는 20살 초반의 젊은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7월 20일, 정신 교육 훈련 과정 중,
소대원들은 서로에게 롤링 페이퍼를 돌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 당시, 나의 계급은 이등병으로써 소대에서 밑으로 후임병 1명, 나머진 모두 고참인 생활을 해 나가고 있었다.
롤링 페이퍼를 돌리기 몇일 전인 95년 7월......,
나에게 오직 한명 뿐인 후임병(최성일 이병)과 인공 호흡 훈련 중에 나의 '턱'이 빠지는 사고를 겪었었다.
그 후로, 1년에 1번 꼴로 턱이 빠지는 후유증과 시원하게 하품을 하지 못하는 고통을 아직까지 격고 있다.
나에 대한 소대원들의 글이 담긴, yunki 의 롤링 페이퍼......
많은 글들을 써 주세요.
이렇게, 나의 군생활도 적응이 되어 갔다.
http://yunki.net
95년 4월 18일, 춘천 102 보충대에 입소하는 그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 때의 기분은 표현 못할 정도로 착찹하였다. 전날까지 군대 간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는데, 4월 18일 날 아침엔 이 기분은 실감 정도가 아니었다.
집을 떠나기 두어 시간 전, 넓은 집은 아니었지만, 집 이곳 저곳 둘러 보았다. 발길 닫는데로......
동생들 방에 들어가 보았다.
'이 곳에 다시 돌아 오려면, 얼마 걸릴까?'
주위 사람들에게 줒어 들은 바로, 대략 계산하여 보니, 일병 휴가 때나 올수 있었는데 7-8개월 후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울어 본 적이 오랫만인데다가 내 의지완 상관 없이 그냥 눈물이 나왔다. 나도 당황이 되었다.
점심은 아버지와 외참촌, 나 이렇게 춘천 102보충대 근처의 식당에서 먹었다.
아버지는 아들 군대 간다고 메기 매운탕(대)을 시켜 주셨는데, 전혀 먹질 못했다.
메기 할아버지라 해도, 전혀 먹을 수가 없었다.
밥을 한 두 숫깔 드는둥, 마는둥 했다. 물도 먹히질 않고......
그때, 나의 혀는 미각을 상실한지 오래 되었었다.
<고참들 몰래, 은밀한 곳에서 하루 하루 지워져 나간, 내 청춘......>
군대의 하루는 사회의 한달과 같았고, 군대의 한달은 사회의 일년과 같이 느리게 흘러 갔다.
하루라는 시간이 이렇게 길고, 한달이라는 시간이 어찌 보면 사회의 1년 보다 지루하고 느리게 느껴 졌다.
한달 위의 고참은 사회의 1년 위의 선배 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 하였다. 휴가든 훈련이던지 일 주일 차이로 희비가 교차 될 정도로 군대는 시간적 변화 또한 큰 조직이었다.
군대에 있는 동안, 이렇게 느리게 흘러 가는 시간을 참고 인내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친구들의 편지를 기다리고, 가족들의 면회를 기다리고, 다음 휴가를 기다리는 이러한 기다림의 연속이 시간을 더 더디게 만들었다.
이런 와중에 달력에 흘러 간 날짜를 지워 가는 취미를 얻게 되었다.
이런 행동은 쫓나 빠진 행동이어서, 화장실에서 몰래, 밤에 몰래 지워 나갔다. 만약 고참한테 들키기라도 한다면...... 뒷 일은 상상 할 수도 없었다.(사실, 좀 아이러니하지만, 이 취미는 고참 한명이 시간이 잘 가는 비법이라며 몰래 가르쳐 준 것이었다. )
바쁜 이등병 시절엔, 몇일씩 몰아서 지울 수 밖에 없었다.
<어렸지만, 건강한 우리 소대원들......물 좋고 ,공기 좋은 강원도 양구>
여기서 후임병(보통 '쫄따구'라고 하지만, 요즘 군대에선 이런 말을 쓰면 안된다고 한다.) 두명이 있지만, 나이로 보면 내가 가장 어리다.
95년 6월 2일은 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배치 받은 날이었다.
좋던, 싫던 2년이 넘게 같이 고생해 나갈 고참들을 만나는 운명적인 날이었다.
자대에 배치 받고 보니,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고참이면서 '형'뻘이었다.
한 두달이 지나고, 나 다음으로 들어 오는 후임병들도 보통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1995년 7월 20일....
군대에선, 사람 죽이는 연습만 하는 곳은 아니었다.
군대는 20살 초반의 젊은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7월 20일, 정신 교육 훈련 과정 중,
소대원들은 서로에게 롤링 페이퍼를 돌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 당시, 나의 계급은 이등병으로써 소대에서 밑으로 후임병 1명, 나머진 모두 고참인 생활을 해 나가고 있었다.
롤링 페이퍼를 돌리기 몇일 전인 95년 7월......,
나에게 오직 한명 뿐인 후임병(최성일 이병)과 인공 호흡 훈련 중에 나의 '턱'이 빠지는 사고를 겪었었다.
그 후로, 1년에 1번 꼴로 턱이 빠지는 후유증과 시원하게 하품을 하지 못하는 고통을 아직까지 격고 있다.
나에 대한 소대원들의 글이 담긴, yunki 의 롤링 페이퍼......
많은 글들을 써 주세요.
이렇게, 나의 군생활도 적응이 되어 갔다.
http://yunk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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