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갑장님과 만났다.
늘 변함없는 성격의 온화한 선비같은 갑장님.
이 냥반에게 짐이 많다.
뒤늦게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 대회마다 다니며 입상하더니
중급자로 올라가버리고 만 금고님. 아마도 체력은 타고난 듯하다.
"저, 혹시 청죽님 아니세요?"
"누구시더라?"
"아, 맞으시군요. 안녕하세요? 새벽안개입니다."
"아, 이런~ 제가 실수를 했네요. 몰라뵙다니요."
"저도 얼굴이 갸름하신 청죽님이 볼이 통통할 정도로 살이 찌시는 바람에
긴가민가 했습니다. 털신을 보고 알았습니다. 핫핫핫"
(에고고..요즘 체중이 8kg이나 늘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흑흑.)
언젠가 사람 못 알아보기로는 인간문화재급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새벽안개님과는 예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눈 분인데 샵에 들렀을 때 보고는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인데 누굴까?'
하는 생각만 줄창 했으니 한심한 일이다.
그저 확실히 기억하는 얼굴이라곤 부모형제와 마누라와 새깽이들 뿐이니.
그런데 아무리 살이 쪄서 얼굴이 동그래졌기로서니 한 시간 넘게
같이 있으면서 뒤늦게 알아보시는 새벽안개님도 그리 썩 좋은 눈은 아니신 듯하다.
(난 역시 물귀신 체질인가 봐)
"새벽안개님."
"네?"
저거 쥔장이 한눈 팔 때 업어가려고 합니다."
"허걱~ 청죽님. 저거 제가 사놓은 겁니다."
(이런, 낭패볼 뻔했네. 절도의 기술이란 책 없나?)
어쩌면 곧바로 녹지 않고 쌓이는 올겨울 마지막 눈이 아닐까 싶다.
눈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로선
올겨울 마지막 스노우라이딩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
잔차를 끌고 산에 올랐다.
아, 좋다.
푸른 상록과 새하얀 눈이 참 조화롭게 잘도 어울린다.
채 씹지 않고 급히 삼키다 목에 걸린 질긴 시래기 줄기같은
거추장스럽기 이를데 없는 일상의 잡다한 시름들은
산중에 들 때면 전혀 무가치함으로 소멸되고 만다.
그래서 산이 좋다.
겨울이 좋고 눈이 좋다.
자전거가 좋다.
눈이 워낙 습기가 많아 업힐은 어렵지만
다운힐은 지그재그지만 그럭저럭 내려갈 만하다.
나무에 걸린 눈들이 재빨리 녹으면서 물방울이 되어 떨어져
바닥에 쌓인 눈이 곰보처럼 얽어버렸다.
봄의 전령.
봄의 징후
나무뿌리에 앞바퀴가 미끄러져 한 차례 굴렀다.
(아, 이런 날 40년 넘게 묵은 쭈꾸미나 데쳐서 먹었으면...)
겨울이 가고 있다.
자전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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