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치 코드" 계절적으로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올해가 가기전 남부군님들께서 읽어 볼만한 책 한 권! 소개해 올리것 습니다.
제목 : 참호에서 보낸 1460일
지은이 존 엘리스 지음 , 정병선 옮김
책 소개
1차대전은 2차대전의 참혹함과 시간상의 가까움에 가려져 그 진상을 세세히 알기는 조금 어려운 사건이다.
그러나 피부로 느껴지는 잔혹함이라면 2차대전을 능가했던 것이 1차대전이었다.
기관총의 첫 등장과 무모한 장성들에 의한 의미없는 돌격전, 끝없는 참호전 속에 사상자는 끝을 알 수 없었고,
지루한 참호의 대결 속에 번지던 각종 질병과 공포는 후방에는 '안락한 참호'로 전혀 실상이 알려지지 않았다.
풍부한 사진자료와 조사 끝에 완성된 사상 최악의 전쟁에 대한 보고서.
1차대전의 발발부터 종료까지 벌어졌던 상황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기록하였다.
트렌치 코트의 낭만과 참호의 잔혹 늦가을의 낭만은 역시 트렌치 코트에 있다.
담담한 듯 차갑고, 낭만적이면서도 이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데 제격이니 말이다.
그러나 다행일까 아쉬움일까, 많은 사람들은 이 코트의 정확한 유래를 모른다는 건….
‘트렌치 코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이 참호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 입던 야전 코트를 말한다.
‘트렌치’라는 단어가 ‘참호’라는 뜻이다.
가장 비참한 전쟁에서 낭만적 아이콘이 생겨난 것이다.
홀로코스트와 원자폭탄 같은 뚜렷한 이미지와 사건으로 기억되는 제2차 세계대전에 비해 제1차 세계대전은 우리의 뇌리에 그다지 뚜렷한 인상으로 남아 있지 않다.
똑같이 20세기 초의 대사건이지만 우리의 역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제1차 세계대전은 드레퓌스 사건과 베르사유 조약으로 간단하게 요약될 뿐이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은 현대사의 분수령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서양의 민족국가가 모두 자리 잡고 난 이후 일어난 최초의 전쟁이었으며,
최초의 총력전이었고,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사상자가 난 최악의 전쟁이었다.
전쟁에 대한 낭만적 관념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걸쳐 남아 있던 낭만주의의 흔적이 일소된 사건이기도 하다.
즉, 전 세계 ‘시민’들의 가치관, 일상사의 급변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전쟁을 유럽의 정치적 관계나 전술의 관점에서 다루지 않고 수천 킬로미터의 참호 속에서 1460일을 버텨내야 했던 병사들의 눈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들에게 참호에서 보낸 4년이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삶, 하지만 지속되어야 할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최초의 폭로, 적나라한 병사들의 일상사
수많은 통계와 보고서, 편지들과 문학작품까지 섭렵한 작가는 이 사상 최악의 전쟁을 ‘병사들의 일상사’라는 측면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책 속에는 거의 1세기 전 종군기자들의 노력으로 남겨진 보기 드문 실제 사진들과 참호의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낭만적으로 전쟁을 상상하고 미화했는지,
동시에 전쟁을 처음 경험하는 근대의 병사들과 시민들이 얼마나 안이한 상태에서 격전을 치렀는지를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낯선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귀한 자료이자 증언이 될 것이다.
하얀 드레스가 수놓은 환송, “걱정 마오,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돌아오겠소.”
전쟁이 시작할 1914년 7월말과 8월초만 하더라도 그들 대부분은―병사뿐만 아니라 수뇌부조차도―이 전쟁이 1주일 안에 끝날 거라고 예상했고,
때문에 병사들 대부분은 넘치는 명예심과 민족주의적 애국심으로 자원입대한 상태였다.
1주일, 2주일, 한 달, 한 계절…, 아무리 늦어도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집으로 돌아가 명절을 즐길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연사가 가능하고 사거리도 긴 ‘기관총’이라는 현실은 중세기마병의 돌격처럼 보병의 돌격전이야말로 전투의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연합군 장성들의 낭만적인 생각을 깡그리 날려버렸다.
하지만 독일군 역시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양측은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점점 더 깊은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그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1460일. 참호의 전쟁이 시작된다.
비행기와 탱크가 이 고착상태를 타개하기까지는 20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천대만상 땅 속 생활
국가별로 참호를 파는 형식도, 이용하는 재료도 달랐다. 영국군과 독일군은 흔히 모래주머니와 목재를 사용했고 프랑스군은 나무에서 꺾어온 잔가지 묶음을 더 좋아했다. 참호의 형태는 당연히 지그재그 모양을 띠었다. 직선으로 참호를 구축했다가는 단 한번의 공격에 모든 전선이 무너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저격수들에게 훌륭한 먹잇감을 제공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전쟁 초창기의 참호는 포탄 구멍을 좀더 깊게 파내려가는 수준이었지만, 전쟁이 지연되면서 참호는 갈수록 진화되었다. 후반기 참호의 모습은 정교한 건축물을 연상시킨다(21쪽~ 27쪽 참고). 최전방에서 후방까지 연결되어 있었고 참호를 통해 병사들과 물자들이 이동되었다. 그럼에도 참호는 ‘악몽’ 그 자체였다. 실제로 교전 중에 전사한 병사보다 참호의 수많은 재해로 전사한 병사의 비율이 훨씬 높다(2, 3장 참조). 원인도 다채롭다. 참호 속에 서식하는 쥐들과 이(86~87쪽 참조), 여름이면 주변에 널린 시체들의 악취와 파리 떼의 공격(92~94쪽 참조), 진흙과 비는 적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 이미 대량 살상 독가스가 쓰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기관총과 저격수, 다양한 독가스 살포가 교전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물론, 이런 식의 치열한 격전이 시종일관 내내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자 빛나던 애국심은 빛이 바랬고, 바로 100미터 앞에 자신과 똑같은 입장에서 고통 받는 적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이 샘솟기 시작했다(288~292쪽 참조). 크리스마스를 맞아 독일군과 연합군은 참호에서 빠져나와 포도주잔을 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우정은 오래 가지 못했다. 군 정부에 의해 이런 식의 파티는 엄격히 다스려졌고, 적발된 병사들은 총살형을 당했다.
날조된 이미지, “어머니, 이곳으로 꽃씨를 보내주세요.”
새로이 생겨난 대중매체는 전황을 알리는 데에도 유용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전쟁의 이미지를 날조하고 선전하는 데에도 유용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단연코 후자였다. 후방에서는 전쟁의 실상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후방의 시민들은 모형으로 파놓은 참호 속에서 일요일 소풍을 즐겼다. 선전용으로 만들어진 후방의 ‘참호 모델하우스’에는 카페, 전화기, 심지어 극장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전쟁이 지속되는 얼마간 전방 참호 속의 병사들이 한쪽에선 보초를 서고 다른 한쪽에선 당구를 치며 맥주를 마신다고 상상했을 것이다(323, 324쪽 참조). 후방의 낭만적 전쟁관과 전방의 현실이 이처럼 극명한 대조를 보인 전쟁도 찾아보기 힘들며, 이는 병사들이 참호 속에서 동료와 함께 있을 때 느꼈던 광기어린 동료의식을 설명해준다(327~339쪽 참조).
지은이 소개
존 엘리스
존 엘리스맨체스터 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전쟁의 역사와 군사 문화에 대한 많은 책을 펴냈다.저서로 등이 있다. 현재 영국 맨체스터에 살며 20세기 전쟁의 문화사 연구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 북랭크 제공 -
<<목차>>
서문_ 문명 한복판의 사막
- 사선에서
진흙으로 만든 무대
땅 속의 일상
자연 재해
포격, 독가스, 저격수
- 전투
정찰과 습격
전투, 전략과 전술
전투의 일상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 고향에서 온 편지
빵과 술
휴식과 휴가
- 금지된 우정
애국심과 명예
환멸과 항의
전쟁의 끝
올해가 가기전 남부군님들께서 읽어 볼만한 책 한 권! 소개해 올리것 습니다.
제목 : 참호에서 보낸 1460일
지은이 존 엘리스 지음 , 정병선 옮김
책 소개
1차대전은 2차대전의 참혹함과 시간상의 가까움에 가려져 그 진상을 세세히 알기는 조금 어려운 사건이다.
그러나 피부로 느껴지는 잔혹함이라면 2차대전을 능가했던 것이 1차대전이었다.
기관총의 첫 등장과 무모한 장성들에 의한 의미없는 돌격전, 끝없는 참호전 속에 사상자는 끝을 알 수 없었고,
지루한 참호의 대결 속에 번지던 각종 질병과 공포는 후방에는 '안락한 참호'로 전혀 실상이 알려지지 않았다.
풍부한 사진자료와 조사 끝에 완성된 사상 최악의 전쟁에 대한 보고서.
1차대전의 발발부터 종료까지 벌어졌던 상황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기록하였다.
트렌치 코트의 낭만과 참호의 잔혹 늦가을의 낭만은 역시 트렌치 코트에 있다.
담담한 듯 차갑고, 낭만적이면서도 이지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데 제격이니 말이다.
그러나 다행일까 아쉬움일까, 많은 사람들은 이 코트의 정확한 유래를 모른다는 건….
‘트렌치 코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이 참호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 입던 야전 코트를 말한다.
‘트렌치’라는 단어가 ‘참호’라는 뜻이다.
가장 비참한 전쟁에서 낭만적 아이콘이 생겨난 것이다.
홀로코스트와 원자폭탄 같은 뚜렷한 이미지와 사건으로 기억되는 제2차 세계대전에 비해 제1차 세계대전은 우리의 뇌리에 그다지 뚜렷한 인상으로 남아 있지 않다.
똑같이 20세기 초의 대사건이지만 우리의 역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제1차 세계대전은 드레퓌스 사건과 베르사유 조약으로 간단하게 요약될 뿐이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은 현대사의 분수령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서양의 민족국가가 모두 자리 잡고 난 이후 일어난 최초의 전쟁이었으며,
최초의 총력전이었고,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사상자가 난 최악의 전쟁이었다.
전쟁에 대한 낭만적 관념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걸쳐 남아 있던 낭만주의의 흔적이 일소된 사건이기도 하다.
즉, 전 세계 ‘시민’들의 가치관, 일상사의 급변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전쟁을 유럽의 정치적 관계나 전술의 관점에서 다루지 않고 수천 킬로미터의 참호 속에서 1460일을 버텨내야 했던 병사들의 눈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들에게 참호에서 보낸 4년이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삶, 하지만 지속되어야 할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최초의 폭로, 적나라한 병사들의 일상사
수많은 통계와 보고서, 편지들과 문학작품까지 섭렵한 작가는 이 사상 최악의 전쟁을 ‘병사들의 일상사’라는 측면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책 속에는 거의 1세기 전 종군기자들의 노력으로 남겨진 보기 드문 실제 사진들과 참호의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낭만적으로 전쟁을 상상하고 미화했는지,
동시에 전쟁을 처음 경험하는 근대의 병사들과 시민들이 얼마나 안이한 상태에서 격전을 치렀는지를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낯선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귀한 자료이자 증언이 될 것이다.
하얀 드레스가 수놓은 환송, “걱정 마오,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돌아오겠소.”
전쟁이 시작할 1914년 7월말과 8월초만 하더라도 그들 대부분은―병사뿐만 아니라 수뇌부조차도―이 전쟁이 1주일 안에 끝날 거라고 예상했고,
때문에 병사들 대부분은 넘치는 명예심과 민족주의적 애국심으로 자원입대한 상태였다.
1주일, 2주일, 한 달, 한 계절…, 아무리 늦어도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집으로 돌아가 명절을 즐길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연사가 가능하고 사거리도 긴 ‘기관총’이라는 현실은 중세기마병의 돌격처럼 보병의 돌격전이야말로 전투의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연합군 장성들의 낭만적인 생각을 깡그리 날려버렸다.
하지만 독일군 역시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양측은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점점 더 깊은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그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1460일. 참호의 전쟁이 시작된다.
비행기와 탱크가 이 고착상태를 타개하기까지는 20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천대만상 땅 속 생활
국가별로 참호를 파는 형식도, 이용하는 재료도 달랐다. 영국군과 독일군은 흔히 모래주머니와 목재를 사용했고 프랑스군은 나무에서 꺾어온 잔가지 묶음을 더 좋아했다. 참호의 형태는 당연히 지그재그 모양을 띠었다. 직선으로 참호를 구축했다가는 단 한번의 공격에 모든 전선이 무너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저격수들에게 훌륭한 먹잇감을 제공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전쟁 초창기의 참호는 포탄 구멍을 좀더 깊게 파내려가는 수준이었지만, 전쟁이 지연되면서 참호는 갈수록 진화되었다. 후반기 참호의 모습은 정교한 건축물을 연상시킨다(21쪽~ 27쪽 참고). 최전방에서 후방까지 연결되어 있었고 참호를 통해 병사들과 물자들이 이동되었다. 그럼에도 참호는 ‘악몽’ 그 자체였다. 실제로 교전 중에 전사한 병사보다 참호의 수많은 재해로 전사한 병사의 비율이 훨씬 높다(2, 3장 참조). 원인도 다채롭다. 참호 속에 서식하는 쥐들과 이(86~87쪽 참조), 여름이면 주변에 널린 시체들의 악취와 파리 떼의 공격(92~94쪽 참조), 진흙과 비는 적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 이미 대량 살상 독가스가 쓰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기관총과 저격수, 다양한 독가스 살포가 교전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물론, 이런 식의 치열한 격전이 시종일관 내내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자 빛나던 애국심은 빛이 바랬고, 바로 100미터 앞에 자신과 똑같은 입장에서 고통 받는 적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이 샘솟기 시작했다(288~292쪽 참조). 크리스마스를 맞아 독일군과 연합군은 참호에서 빠져나와 포도주잔을 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우정은 오래 가지 못했다. 군 정부에 의해 이런 식의 파티는 엄격히 다스려졌고, 적발된 병사들은 총살형을 당했다.
날조된 이미지, “어머니, 이곳으로 꽃씨를 보내주세요.”
새로이 생겨난 대중매체는 전황을 알리는 데에도 유용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전쟁의 이미지를 날조하고 선전하는 데에도 유용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단연코 후자였다. 후방에서는 전쟁의 실상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후방의 시민들은 모형으로 파놓은 참호 속에서 일요일 소풍을 즐겼다. 선전용으로 만들어진 후방의 ‘참호 모델하우스’에는 카페, 전화기, 심지어 극장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전쟁이 지속되는 얼마간 전방 참호 속의 병사들이 한쪽에선 보초를 서고 다른 한쪽에선 당구를 치며 맥주를 마신다고 상상했을 것이다(323, 324쪽 참조). 후방의 낭만적 전쟁관과 전방의 현실이 이처럼 극명한 대조를 보인 전쟁도 찾아보기 힘들며, 이는 병사들이 참호 속에서 동료와 함께 있을 때 느꼈던 광기어린 동료의식을 설명해준다(327~339쪽 참조).
지은이 소개
존 엘리스
존 엘리스맨체스터 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전쟁의 역사와 군사 문화에 대한 많은 책을 펴냈다.저서로 등이 있다. 현재 영국 맨체스터에 살며 20세기 전쟁의 문화사 연구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 북랭크 제공 -
<<목차>>
서문_ 문명 한복판의 사막
- 사선에서
진흙으로 만든 무대
땅 속의 일상
자연 재해
포격, 독가스, 저격수
- 전투
정찰과 습격
전투, 전략과 전술
전투의 일상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 고향에서 온 편지
빵과 술
휴식과 휴가
- 금지된 우정
애국심과 명예
환멸과 항의
전쟁의 끝
이 글은 아침이지만 맴을 가다듬고 읽어보았네요.
존글 잘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