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5개령 도전기
나는 이번 강원도 5개령 투어를 감히 도전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만큼 내가 이제껏 자전거를 타면서 맛보지 못했던 고통과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면서 이 것은 그냥 보통의 라이딩이 아니고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강원도로 출발하기 며칠전 군에 입대한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자전거를 타고 강원도에서 대표적으로 높은 고개 5개를 완주하고 오겠다고..
이른바 강원도 5개령 코스이다. 결코 만만한 도전은 아닐거라고 생각했지만,
폭염속에서 힘들게 훈련을 받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며 한 약속이었다.
◈ 강원도 5개령 코스 소개 ◈
강릉시청을 출발하여 대관령(▲ 832m) → 운두령 (▲ 1,089m) → 구룡령(▲ 1,013m) → 한계령(▲ 1,004m) → 미시령(▲ 790m) 까지 14시간 안에 완주해야 하는 코스이다.
강원도 5개령 도전을 마음먹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한달 전이다.
강원도 7개령에 성공한 삼류배우님과 로체님.. 몇 명과 점심식사를 하자고 썬레포츠 사장 배석상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삼류배우님이 5개령에 한번 도전해보라고 제안을 했다.
5개령을 넘으면서 정말로 힘들 때 원망도 했던 삼류배우님..
우리는 이 분을 이감독님이라고 부른다. 이 글에서는 이감독님이라고 칭하겠다. 자신이 운전을 해서 써포트 해줄테니 드림MTB도 강원도 5개령에 도전해보라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강원도 5개령이란 마음에만 있었지 감히 생각을 못해봤었다.
이감독님의 제안을 받고 한번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과 함께 묘한 호기심이 발동되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 모두 제안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날짜는 7월 31일로 잠정적으로 정해졌다. 카페에 공지가 올라오자 생각외로 많은 회원들이 용기를 내어 참석하겠다는 댓글이 달렸다.
써포터를 포함해서 대략 6-7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X-bike에서도 동참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고, 여러번의 협의를 거쳐 드디어 출발시간이 정해졌다. 출발일자는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졌다.
2011년 7월 30일 새벽 2시 30분 청주 썬레포츠 앞 출발....
써포터로는 이감독님과 로체님... 이 분들에게 정말로 고마운 생각이 든다. 라이딩 참가자는 무심천님, 후다닭님, 성광보스님(썬레포츠 사장), 민들레님, 저승사자님, 타이어님, 두바퀴님, 나를 포함해서 총 8명이다. 출발차량은 2대... 강원도 5개령 출발 일정이 정해지고 나서 그냥 갈 수는 없고, 훈련을 한다고 피반령을 3번 정도 넘어갔다 온 것이 고작이다. 이런 정도의 훈련을 하고 완주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어차피 뺀 칼.. 도전해 보는 것이다.
◈ 7월 29일(출발 전날) ◈
평상시 같으면 7-8시가 되어야 퇴근을 하는데 오늘은 내일 강원도 5개령 출발 준비를 위해 정각 6시에 퇴근을 했다. 집에 와보니 마누라는 퇴근 전이라 없고, 딸이 차려준 식탁위에 앉았다. 오늘 저녁은 잠을 못 이룰 것 같았다. 이런 때는 소주 한잔 먹는 것도 수면제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냉장고에서 소주 한병을 꺼냈다.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 한병을 홀짝 홀짝 다 비웠다.
약간 취기가 오르는 것을 느끼며 부지런히 배낭을 꺼내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자전거 정비를 대충 마친 후 저녁 8시 30분경 잠자리에 들었다. 소주를 한병 마신 탓인지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12시.. 그때 부터 잠이 오질 않는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 7월 30일(출발 당일) ◈
드디어 D-day이다. 잠을 못자고 뒤척이다 새벽 2시경 자리에서 일어났다. 곤하게 자고 있는 마누라가 깰까봐 살며시 자전거와 헬멧, 배낭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밖에는 반갑지 않은 비가 내리고 있다. 기대반 설레임 반으로 잠을 설친 탓인지 부시시한 얼굴로 출발장소인 썬레포츠로 향했다.
내 나이 금년들어 57살..
한 살이라도 더 먹기전에 도전을 해야 성공이 가능하다.
자전거 경력 5년이 넘었지만 완주를 장담할 수 없는 난코스이다.
여러 동호인들이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출발하면서 비까지 추적 추적 내려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비가 내리는 칠흑같은 어둠속을 달리면서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가슴을 짓눌러 왔다.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해 잠을 청해봐도 오질 않는다.
강릉에 도착하니 새벽 5시 30분 정도 되었다. 강릉시청에서 5시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다. 하는 수 없이 10km 정도를 더 이동하여 대관령박물관 앞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 짙은 안개가 내려앉은 대관령박물관 앞..
▲ 출발전에 독사진을 찍으면서 폼을 잡아 봤다..ㅎ
▲ 출발전 결의를 다지며 회원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친다.
▲ 드디어 아침 6시 18분 안개속을 뚫고 첫번째 관문인 대관령 정상을 향하여 출발했다. 웃음이 나온다. 지금은 웃을 수 있다. 오르막을 오르면서 뭔지는 모르지만 묘한 기분이 든다...ㅎ
▲ 첫번째 고개인 해발 832m 대관령 정상에 도착했다. 고개를 오르는 동안 자욱한 안개로 시야가 좋지 않아 오고가는 차량들로 위험하기도 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대관령 표지석 앞에서 첫번째 고개를 상징하는 양쪽 검지 손가락을 높이 치켜 들었다.
◈ 두번째 고개 운두령으로... ◈
▲ 내 앞에 나가고 있는 멋진 사나이는 청주 X-bike의 에이스 후다닭님이다..
▲ 뒤에 오는 친구는 초등학교 동창이자 청주에서 썬레포츠 자전거샵을 운영하는 배석상 사장이다. 함께 라이딩 해보니 실력이 무척 늘어 깜짝 놀랐다. 오르막 길은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친구와 함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운두령을 향해 페달을 밟아 나갔다.
▲ 두번째 고개인 해발 1,089m 운두령에 도착했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힘든 줄은 모르겠다. 더 가봐야 알겠지만...
▲ 무궁화의 고장 홍천군 표지석 앞에서...
▲ 참가자 8명이 한 자리에 모여 기념사진 촬영
◈ 다음은 세번째 고개 구룡령이다... ◈
▲ 5개령 중 가장 높아 더욱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구룡령을 향해 달린다. 옆에서 같이 달리는 친구도 초등학교 동창이다. 이번 5개령 도전에는 나를 포함해서 초등학교 동창 다섯명이 동참했다.
▲ 5개령 중 가장 높은 해발 1,089m 백두대간 구룡령 표지석 앞에 섰다. 숫자 3을 손가락으로 표시하며 사진을 찍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이 힘들었지만 아직은 견딜만 하다. 다음 한계령이 가장 난코스이고 힘들 것이다. 5개령을 다녀온 회원들의 말을 빌리면 한계령에서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나를 겁주기도 하였다.
◈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한계령을 넘다... ◈
▲ 한계령은 업힐만 14km에 이르는 난코스이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한계령을 오른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다리도 뻐근하고, 엉덩이도 감각이 없다. 밀려오는 고통을 참아가며 정상을 향애 나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목표는 오로지 한계령 정상에 오르는 것 뿐이다. 그 다음은 잘 모르겠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 5개령 중 가낭 난코스로 힘들었던 네번째 관문 한계령 정상을 밟았다.옛오색령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한계령휴게소로 향했다.
후다닭과 함께 허기짐과 목마름을 감자전과 막걸리 한 사발로 달래고 곧바로 마지막 목적지인 미시령을 향해 출발준비를 한다. 고개를 내려갈 때 저체온증에 대비해서 준비해 온 2,000원 짜리 우의를 입었다. 갈 길이 멀어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5개령은 고개를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고개와 고개 사이의 거리가 멀어 상당히 힘든 코스이다.
▲ 옛오색령 표지석 앞에서 단체사진
◈ 이제 남은 고개는 미시령 뿐이다... ◈
마지막 남은 미시령을 향해 달린다. 도로 우측으로 나있는 아름다운 계곡 사이로 흐르는 수정같이 맑은 물을 보고도 들어갈 수가 없다. 눈으로만 즐겨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너무 멀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에 꼭 한번 와봐야 할 곳이다.
지금까지 4개의 고개를 넘으면서 체력이 거의 바닥이 났다. 이미 회원 중 2명은 포기하고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내가 과연 포기하지 않고 미시령 정상을 밟을 수 있을까?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수없이 나 자신을 채찍질 해본다.
그러나 미시령은 결코 호락 호락하게 나에게 정상을 내어주지 않았다. 나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5개령 중 가장 낮아 만만히 본 내가 잘못이다.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정말 만만치 않은 코스였다. 코스는 짧지만 경사도가 빡쎄었다. 게다가 한계령에서부터 이상 증세를 보이던 우측 무릎이 말썽이다.
4개의 고개를 넘으면서 장거리에 너무 무리한 탓인지 우측 무릎 장경인대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페달을 제대로 밟을 수가 없다. 힘을 주어 밟으면 시큰거리고 통증이 왔다. 그렇다고 내려서 끌고 갈 수는 없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보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뒷 기어를 저단에 놓고 천천히 올라갔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느리지만 고통을 참아가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1m가 100m, 아니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써포트 해주고 있는 이감독님이 내려오면서 정상까지 3km 밖에 안남았다고 알려준다.
▲ 정상에 다다르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자욱한 안개비가 나를 맞이한다. 좌우 분간도 안되고 내가 어디로 향해 가는지도 모르겠다. 이러다가 탈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얼마를 올랐을까 저 멀리 희미한 안개속에서 써포트 해주고 있는 이감독님과 로체님이 양팔을 벌려 나를 반겨준다. 드디어 마지막 고개인 해발 790m(표지판에는 767m로 되어 있다.) 미시령에 도착한 것이다.
가슴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감격의 눈물도 나온다. 드디어 내가 해냈구나.. 아들과의 약속을 지켜냈구나 하는 뿌듯함에 지금까지의 모든 고통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희열이 밀려 왔다. 아 ~ 도전에 성공했을 때의 기쁨이 이런 것이구나...ㅎㅎ
▲ 미시령 정상 표지판 앞에서 시원한 캔맥주로 축배를 들었다. 기분이 최고다...
▲ 강원도 5개령에 도전했던 회원 8명이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함께 완주하지 못한 회원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로 보람있고 감동적인 기쁨을 맛본 라이딩이었다. 그러나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지난 5년 동안의 라이딩 중 가장 힘들었던 라이딩으로 기억된다.
마지막으로 중간에서 포기할 것 같았던 극한 상황을 이겨내고 끝까지 완주하신 무심천님께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또한 써포트 해주신 이감독님과 로체님이 없었다면 이번 도전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두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함께 도전에 참여해주신 회원님들께도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감사를 드린다.
7월 30일 아침 6시 30분 대관령박물관 출발
저녁 6시 30분 미시령 도착
총 주행거리 185.7km
라이딩 시간 9시간 10분(휴식, 식사시간 제외)
평균 속도 20.1km
최고 속도 68.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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