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군의 굉음만이 대원들의 침묵위로 흐르고 있었다.
망연자실해진 대원들은 아무 말도 하질 못한채 닥터장이 사라져간
공간을 응시하며 각자가 그렇게 그를 추모하고 있었다. 그 암울한
침묵을 깬 것은 트레키대원의 외마디 외침이었다.
"저기 닥터장의 우주복 잔해가 보입니다!"
퍼뜩 놀라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던 대원들은 이미 닥터장은 갔는데
그게 어쨌다는 거냐라는 곱지않은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모두는 일제히 뒷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앞다투어 그 우주복의 잔해를 확인하기 위해 날아갔다. 제일먼저 잔해를
수거해 확인하던 TP1대원의 눈에 희망의 빛이 어렸다. 숨죽인채 그를
바라보던 대원들의 눈에도 일제히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그들은 즉시
모함에 연락을 취하고 우주복 잔해에 남아있는 닥터장의 신체일부를
추출하기 시작했다. 하의에 묻어있는 허리부분의 피부조각이 긴급 공수된
분자재생기(뤽베송 - 제5원소 참조)에 삽입되었고, 즉시 분자재생기가
가동되며 이내 닥터장의 신체가 복원되기 시작하였다.
아 그렇게 그는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일행은 다시 탐사의 최종목적지를 향한
비행을 시작했다.
마침내 최종목적지에 도달한 전 대원은 감격의 눈문을 흘렸다.
그렇게 감격에 찬 시간이 지나고, 탐사의 전일정을 무사히 마친
일행의 앞에는 지구까지의 무사 귀환이라는 과제만이 남아있었다.
일단 게이지가 바닥나있는 체력을 보충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정찰조 Mirror대원을 급파하여 수색정찰을 실시하였다. 유능한
Mirror대원은 매우 낙후된 현지 상황에서 기적같이 행성원주민의
은신처를 급습하여 식량을 확보하였다.
Mirror대원의 보고를 접한 탐사대는 그 은신처로 이동을 하였고
실종된 TP2(ww)를 걱정하던 TP1대원은 총통의 허가를 득하고
단신으로 수색을 시작하였다.
행성원주민의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음식으로 대충 끼니를 때운
대원들은 하나둘 귀환길에 올랐다. 얼마가지 않아 기적적으로
상봉한 TP조 2인과 합류하였다. 그들과의 합류보다 더 반가운
것은 운좋게도 발견한 선발대가 남기고 간 비상식량 orion CP였다.
배는 불렀지만 적응되지 않는 식사로 허전함을 느끼던 대원들은
허겁지겁 비상식량을 쑤셔넣었다.
언제나 느꼈던 거지만 아이템 보충이나 식사시의 대원들은 인간의
형상이라 할 수 없었다...
본진과의 합류를 위해 장시간 기다려야만 했던 TP조원들은
그들 본연의 임무인 행성 수질조사 및 생체실험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울분과 더해져 광폭한 본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선단 복귀 까지 한차례의 휴식도 없이 감행된 비행...
선두로 선단에 복귀하여 후미와 40여분의 차이가 난 이날 TP조의
비행은 훗날 질풍노도(疾風怒濤)라 명명되어 제국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개인 비행정이 선단으로 모두 합류한 후 탐사대는 지구귀환의 대장정에
나서게 된다.
#8; 귀환
비행정들의 탑재가 순조로이 진행되고 전대원은 각기 배정받은 함대로
탑승을 시작하였다.
총통은 이례적으로 수송선에 탑승하여 대원들과 자리를 같이 하였다.
선단이 굉음을 내며 일제히 움직였고 대원들은 저마다 감회어린 눈빛으로
창밖의 풍경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무사히 ER의 대기권을 벗어난
선단은 자동 비행으로 전환하였고, 그간의 고된 일정으로 피로에 지친
대원들은 하나 둘 수면캡슐에 들기 시작했다.
그때 함내 모니터가 켜지며 TP2대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흥에 겨운듯
함내 방송의 볼륨을 한껏 올려 줄 것을 요구했다. 휴식에 들어간 대원들에
방해될세라 정중히 거절하였다. TP2대원을 의외로 순순히 수긍하는 듯
모니터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잠시 후 선내 모니터가 일제히 켜지며
전대원이 함내 볼륨을 올릴것을 요청해 왔다. 거의 대부분이 눈을 반쯤
뜬채로 TP2대원의 무지막지한 협박에 자다가 끌려나왔음이 확실했다.
쯔쯔거리며 혀를 차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정색을 한 총통이
갑자기 눈앞에 들이닥치더니 감격어린 목소리로
"전함대의 뜻이 모아졌는가! 행하라!"
정말 되도않는 일에 광분하는 총통이 아닐 수 없다...
이내 함내 방송실을 장악한 총통은 터져나갈 듯 볼륨을 올리고 광란의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말았다. 함대 운항을 맡고 있던 나마저 휩쓸려
버렸을 정도이니... 아 과연 총통의 대뇌구조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인간이기는 한것일까...
다시한번 총통에 대해 마음깊숙히 두려움을 느낀 나는 정신을 바로잡고
비행에 몰두 하였다.
#9; BioHazard
순조로운 비행이 계속되었고 대원들은 누가 뭐라해도 깨어나지 않을
태세로 하나둘 수면에 들어갔다. 광란이 잦아든 함내에는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너무나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몇번씩이나 기내외 점검을 하고 이상여부를 살피고 나서도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아 총통이 아직 운항실에 있어서 그렇겠거니 하고
마음을 달랬다.
내 그런 기분과는 상관없이 각 함대는 여전히 순조로운 비행을 하고
있었고 나도 어느정도 마음을 놓으려는 순간 계기상황판에 붉은빛이
점멸하며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빽빽이 들어차있는
계기판에서 붉은 빛이 들어오는 경우는 단 한종류 뿐이었다.
외부의 침입을 받았거나, 더이상 비행이 불가할 정도의 비상사태가
선내에 발생했을 때에만 붉은빛이 점멸하게 되어있다. 내 눈이 수많은
계기판 위를 날아다니며 이상유무를 체크해나갔다. 레이다는 아무
이상 없었고, 기내모니터로 보이는 함내 모습도 평화로울 뿐이었다.
잠시 고장이었기를 간절히 바라며 메인컴퓨터에 접속한 나는
하마터면 악하고 소리를 지를뻔 하였다.
접속자 확인을 위한 로그인 화면에 앞서 메인컴퓨터가 화면에 뿌리고
있는 메시지는 'BioHazard'였다. 이게 무슨뜻인가... 단지 수송선일뿐인
이 함내에, 운항담당인 나조차도 모르는 생화학 무기라로 탑재되어
있었다는 건가, 레이다에 조차 잡히질 않는 초과학생명체가 어느새
침입하여 생화학무기를 살포하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몇초 지나지 않는 새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어느것 하나
명쾌한 것이 없었다.
더이상 지체할 수 없어 선내 최고 경계태세를 발령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아찔 하더니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몇번을 휘청거리다
벽면을 부여잡고 간신히 정신을 추스리고는 깊은 공포감과 절망감에
몸을 떨었다. 이곳마저 오염이 되었다면 대원들의 숙소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었기에...
긴급경계령을 발동하고, 잔여분과 상비분의 산소를 총동원하여
함내 정화에 들어갔다.
역시 피해를 입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총통에게 보고를 하는
동시에 기동이 가능한 전대원에게 비상소집령을 내렸다.
불행중 다행으로 함대 후미의 몇몇 대원을 제외하고는 간신히 기동이
가능한 상태였고 심하게 오염된 대원들도 의식은 없지만 생명은 남아있는
상태였다. 혼란의 상황에서 다른 선단과의 통신마저 두절된 상태였다.
가장 오염이 적고 제일 먼저 정화가 이루어진 상황실을 비상지휘본부로
삼고, 대책회의를 시작하였다.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대체적으로 내부에
원인이 있을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조가 편성되고 함내 구석구석에 대해 수색정찰이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이상 없다는 수색결과가 속속 보고되었고,
함대 후미에 편성된 TP2, 트레키대원으로 편성된 4조만을 제외하고
전구역의 이상유무가 체크되었다. 한참이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전대원이
4조를 찾아 나섰다. 얼마후 함대 제일 후미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트레키를 발견 하였고, TP2는 찾지 못한채 상황실로 돌아왔다.
상황실로 돌아와보니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 TP2대원이 돌아와 있었고,
트레키에 관해 묻자 상대적으로 넓은 구역을 수색하기 위해 헤어져 각자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함내 수색으로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한 대원들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고 각자의 마음속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염체가 이동이 자유로운 생명체일것으로 추정하고 생체탐지기를
이용한 재수색이 시작되었다. 역시 아무런 결과 없이 수색은 종료되었고,
대원들은 하나둘 이성을 잃기 시작하였다. 서로를 의심하고, 특히 탐사기간
장시간 실종되었던 점과, 트레키 사건의 미심쩍은 부분으로 인해 TP2대원에
대한 의혹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가뜩이나 시한폭탄같은 총통이 오염과 공포에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듯 '히히히~ 히히히~' 하면서 TP2를 오염의 원흉으로 지목하였고
평소같으면 의심을 해보았음직 함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공포에 노예가
되어버린 전대원은 서서히 TP2를 에워쌌다.
경악을 금치 못하던 TP2대원의 눈에는 조롱과 경멸이 눈빛이 떠올랐고 이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를 둘러싼 대원들은 마치 그게 신호인양
개인화기의 방아쇠로 손을 가져갔다.
일촉측발의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카고쉽과의 통신이 재개된것은 그때였다.
우선 카고쉽에 탑승하고 있던 팀닥터에게 현상황을 상세히 알리고 전대원의
신체정보 샘플을 채취하여 전송하였다. 팀닥터로 부터 온 회신은 놀라운 것이었다.
함내 비상사태의 원인은 이제껏 발견되지 않은 바이러스에서 기인된것이었다.
놈은 피부접촉을 통해 침투한 포유류를 숙주로 기생하며 엄청난 속도의
자기복제와 복제과정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오염물질을 발생시킨다고 하였다.
특이한 점은 숙주의 배설기관을 통하여 배출함으로써 숙주에게는 어떠한
자각증상이나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원주민 급습시 감염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숙주는 그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Mirror대원이었다. (닥터장은 엄청난 자기복제를 특징으로 하는 이
신종바이러스를 Mirror라 명명하였고, 훗날 무사히 위기를 넘긴 대원들은
미루대원에게 Mirror라는 별명을 붙이게 된다.) 아직까지도 TP2를 포위하는
대형을 하고 있던 대원들은 매우 머쓱해져 딴청을 하며 서서히 위치를
벗어났다. TP2대원역시 조용히 눈을 뜨고는 아무말도 없이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어색한 분위기가 상황실 메우던 것도 잠시, 미러대원의 처리에 관한
문제로 모두는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단순히 격리만으로 해결될 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극단적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조심스레 의견이 오갔고, 그부분에
관해선 닥터 역시 정확한 결론을 주지 않았다. 그때 조용히 있던 TP2대원이
격앙된 목소리로 외치며 미러대원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눴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불가피 한것이다! 어찌하여 나에게 했던것 처럼
그에게 하지 않는가!"
미러대원을 포함한 모두는 고개를 숙인채 아무말도 하질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팽팽한 긴장감과 암울한 침묵사이로 일단 철저히 격리하고 정화기를 배치하여
최대한 피해를 줄이자는 CB-man의 목소리가 흘렀고, 대원들은 TP2의 눈치를
살폈다. TP2대원은 총을 거두고는 뒤돌아서 상황실을 빠져나갔다. 잠시의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대원들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고 비행이 재개될 무렵 머지않은 위치에 대규모 우주기지가
있다는 사실이 쾌속정으로부터 전해지고 그곳에서 합류하기로 하고 비행이
계속되었다.
우주기지 까지의 비행동안 미러대원은 초인적인 의지로 오염을 참아내었고
(어떻게 참았는지는 굳이 거론할 필요 없으리라..) 우주기지에 도착하자마자
WC병참기지의 격리병동에서 대수술이 시작되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음에도 대원들 간에 서먹한 분위기는 풀리지 않았다.
특히 미러와 TP2대원의 갈등은 도저히 풀어지지 않을 듯 보였다.
서먹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총통은 전함대원에 우주기지의 상륙을 허가했고,
대원들은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마음껏 먹고 마셨다.
#10; 대단원
차분한 분위기에서 마지막 비행은 시작되었고, 오가는 함대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더니 마침내 보석같은 지구의 모습이 나타났고 곧이어 대기권진입을 알리는
알람이 들어왔다. 약간의 진동이 있은 후 오랜만에 보는 지구의 파란 하늘과
최종 목적지인 누에나루 스테이션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사히 착륙이 이루어지고 대원들은 쏟아져 내리듯 함대를 빠져나왔다.
비록 탁하고 매캐한 지구의 공기였지만 무사생환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심호흡을 하는 대원들은 모두 들떠있었고 저마다의 무용담을 준비하며 상기되어
있었다.
총통의 배려로 스테이션에서 멀리 떨어진 대원들에게 수송선 1기가 배정되었다.
수송선의 정비 및 격납고 반납의 의무는 아직까지 서먹한 사이가 풀리지 않은
미러와 TP2에게 맡기어 졌다.
이럴 때 보면 총통도 제정신인데...
이렇게 탐사 전일정은 제국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훗날의 사가들이 이 위대한 탐사의 감격을 길이 전해주리라.
epilogue;
새벽 4시 20분, 어둠속에서 자릴 박차고 일어나 주위를 살피다 집임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잠을 청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어색하다며 격납에
동행해줄 것을 요구하는 미러대원의 전화였다. 잠도 오질 않는 터에 흔쾌히 허락했다.
만나기로한 장소에 가니 아직 아무도 나오질 않았다. 이내 수송함이 모습을 드러내고,
거의 동시에 낯익은 개인비행정이 도착하였고 Tp2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아니한채 수송함에 탑승하였고 나역시 어색한 분위기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송선이 움직였고 격납고를 향해 저속으로 비행을 시작하였다. 분위기를 좀 바꿔볼까
해서 조종실의 두사람을 호출하였다. 여러번 호출하여도 응답이 없어 운항담당인
나만이 알고 있는 함내 폐쇄회로 모니터를 작동시켰다.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서로를 바라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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