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정을 축하드립니다....
다녀오신 분들에게 수고 하셨고요,,,,후기 다음 이야기도
올려주시면 감사.....
zzart wrote:
>의미있는 투어
>무사히 마침에 축하드립니다
>고생이 많으셨던 만큼
>성취감도 만만치 않겠지요.
>즐거운 라이딩 계속되시길....
>
>조민규 wrote:
>>바이크 홀릭님 전주하고 강촌투어때 뵈었던 조민규입니다. 왜, 전주대회때 카풀하려 했었던...벌써 2년이 지났나요?
>>
>>이 글은 "일간 스포츠"나 "산"지에 실릴 원고를 먼저 공개합니다.
>>(백두일지) 산악자전거를 타고 백두산을 초등 성공하다. 글 조민규
>>
>>일정 (2000년 6월 19일부터 25일까지 7일간)
>>등정구간 (21일 서파루트공격 / 22일 북파루트공격)
>>참가인원총 4명 (대장:조민규/33세, 이종열/42세,민원형/27세,박장기/27세 대원)
>>교통 수단 (속초에서 페리 이용, 러시아를 경유, 중국(훈춘) 연길, 이도백하에 베이스 캠프)
>>
>>출발 하루전 6월 18일)
>>오늘은 대원들과 공격 루트와 코스에서 나타날 수 있는 비상사태에 대하여 마지막 점검을 끝냈다. 비상식량으로 4개의 비상식Kit를 준비하고 GPS를 가방에 장치하는 것으로 정리하고, 우리들만의 조촐한 출정식을 했다. 모두 자비를 갹출하여 가는 것이니 만큼, 대원들의 각오 또한 유별났다. 우리들의 영산이자 성산인 백두산에 오르는 일에만 매달린지, 3개월간 많은 일이 있었다. 마침, 남북 정상회담으로 남북간의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즈음인지라, 출정하는 우리들에게도 꼭 성공해야만 한다는 의지는 누가 봐도 광인의 수준이였다. 또, 현지의 정보가 부족한 터라 일기상태며, 교통문제, 진입코스의 설정은 매시마다 달라져 곤혹을 겪곤 했다. 우리는 우리만의 이벤트로 천지에 도착하면 먼저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해서, 백두산 천지까지 한라산 소주를 공수키로 하고, 대원들의 주머니에서 조금 더 갹출을 하여 태극기까지 제작하였다. 그리고, 제작된 태극기를 바라보며, 대원들의 안전과 정상공격에 좋은 날씨를 기원했다.
>>
>>출발 당일 6월 19일)
>>오전 07:00까지 서울 덕수궁앞으로 대원들을 집결시켰다. 개인사물은 되도록 작게 준비하라고 일러둔 터, 다들 작은 가방하나에 자전거를 분해,조립하여 가방에 결속케 했다. 버스에(속초.동명항까지 직행) 오른 대원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들뜬 기분인지 각자의 여흥에 신이 났는지, 소곤거림에 이어, 하나, 둘, 눈을 감아 잠을 청했다. 어느새, 강원도인가 싶더니 벌써 차는 미시령을 넘고 있었다. 멀리 울산바위는 우리일행에 잘 다녀오란 듯이 손짓을 하는 것 같았고, 우거진 설악의 녹음은 출정하는 우리들에게 안심하라는 듯한 싱그러움을 주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동춘페리에 오른 우리일행은 배정받은 방에 짐을 던져두고, 모두 갑판으로 나갔다. 멀리 속초를 두고 떠나는 모습은 심지어 비장하기까지 했다. 아직 내리쪼이는 6월 태양은 우리일행의 이마의 땀에는 안중에도 없는지....
>>수속하면서부터 "이거 뭐예요?" 라고 묻던 출국관련 공무원들은 "산악자전거입니다. 이걸로 백두산을 오르려 갑니다." 라는 대답에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좌우로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내, 선박내에 소문이 났는지 선실사무장이 찾아와 좋은 일을 한다며, 아무래도 긴 시간 다른사람들과 같이 지내면, 피곤할꺼라며, 우리끼리 지낼 방을 따로 배정을 하여 주었다. 이러한 배려가 얼마나 아쉽던지 대장인 나로써도 덜컥 "감사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사무장의 제의를 수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일행은 넓은 선실에서 지낼 수 있어서, 아직 모자라는 부분들은 조율했고, 선내식으로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
>>2일차 6월20일)
>>드디어, 우리 일행을 실은 페리는 오전 10시에 자루비노항에 도착을 했다. 좌측으로 블라디보스톡항이 산너머로 있다는 여행객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발을 내 딛으면 러시아땅인 것이다. 자루비노항은 우리 강원도의 조그마한 어촌마을의 항처럼 움직임이 없는 항구였다. 출입국직원들이 보이며,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들도 보였다. 韓中間 무역상인들 먼저 내려 수속하라는 방송과 함께 하선을 하는데, 이 때도 선실사무장의 편의로 상인들과 같이 내릴 수 있었다. 다시, 지면을 빌어, 각 편의를 제공하여 준 페리 승무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러시아 입국수속을 끝내고 우리는 페리에서 제공되는 버스를 타고, 중국의 국경선을 넘어 훈춘세관으로 향했다. 러시아의 조그마한 마을을 지나 대 평야를 가로지르는 길에 좌측창으로 펼쳐진 평야는 어마어마했다. 옆자리에 연로하신 여행객은 바로 이 자리가 우리 조선족들이 농사를 짓다가 러시아의 대이주정책에 떠밀려 모든걸 버린 채, 실향을 했다며 멀리 평야끝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마에 파이고 양 볼에 주름진 골의 세월속에 아마도 이곳의 추억이 있는 듯 했다. 뭐라 이야기를 올리기조차, 민망한 시간이 지났다. 4번에 걸친 국경통과 절차에 드디어 중국 세관에 도착한 일행은 분해된 자전거를 둘러매고, 등에 가방하나씩을 매쳤다. 잘 나가던, 우리 일행의 차례에서 출입국 직원의 저지가 있었다. 자전거는 통관이 안된다는 것이다. 낭패다. 이렇게 무너질 순 없는데.... 한국말을 하는 조선족을 찾아 설명을 해 줄 것을 부탁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왔으며, 백두산을 자전거를 타고 오를 관광목적밖에는 아무것도 없노라고... 하지만 중국 세관 직원은 어떻게 자전거로 오를 것이며, 또, 자전거를 팔려고 한다는 의심을 하여, 좀처럼 의견수렴이 되지 않았다. 뒤따라 나오는 여행객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눈은 안스럽다는 듯하여 보였다. 1시간쯤 실랑이를 하고 나서, 나는 출입국 직원에게 다시 다가가, 분해된 자전거를 꺼내, 조립을 하였고, 그 자전거를 세관안에서 타기 시작했다. 중국세관원들은 이상하다는 듯한 눈으로 시선이 모아졌다. 윌리(앞바퀴를 들어 올리며 주행하는 테크닉)와 점프를 하며, 돌아다니자 우리 일행도 같이 자전거가방에서 자전거를 꺼내려 했다. 그 때, 한국말을 하는 조선족 세관원이 나와서 무슨일이냐고 물었고,(그 사람의 지위는 좀 높았던 것 같았다.) 나는 자초지경을 이야기했다. 역시, 곤란하다는 말과 함께, 보증서를 써 보란다. 보장은 할 수 없으나, 가지고 왔던 자전거를 가지고 나간다는 보증서이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타지에서 누구에게 보증인을 세운단 말인가... 나는 즉흥적으로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 하고, 한국에서 중국으로 무역을 하는 무역상에게 부탁을 했고, 그 보따리 무역상은 좋은일에 왜 마다하냐며 흔쾌히 보증을 서 주었다.
>>
>>이렇게 중국으로 첫발은 우여곡절로 입국을 하였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기다리는 버스기사를 만났으며, 자전거와 짐을 꾸려서 이도백하라는 곳으로 향했다. 이도백하에 가는 도중, 도문이란 곳을 들렸다. 이 곳은 언젠가 TV에서 봤던 곳으로 다리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이 경계를 서는 곳이다. 일행중 "민"과 "박"대원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진을 촬영한다고 몇 컷을 찍어 댔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40대 남자가 다가와 심각하게 생긴 얼굴로 돈을 요구하였다. 즉슨, 사진을 찍는다면 돈을 내라는 것이다. 결국 (중국돈 10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돈을 주고 말았다. "퉤퉤...잘먹고 잘살아라~~"
>>연길을 지나 약 3시간 30분정도 이도백하 숙소에 도착을 하였다. 이곳을 베이스 캠프를 삼고, 가지고 온 장비를 풀어, 점검을 하였다. 다행히 장비(자전거)의 손상은 없었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3시간 정도 더 가야 서파(서쪽 백운봉코스)에 진입이 가능하므로 대원들에게 일찍 자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컨디션 조절과 함께....
>>
>>3일차 6월21일) 서파를 공격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7시에 출발을 하여 이도백하에서 3시간여를 달려 서파(서쪽 백운봉코스)에 위치한 백운봉산장에 도착하였다. 대원들에게 물이며, 중식, 수리공구등을 준비시키고, 나는 다시 한번 코스분석에 들어갔다. 우선, GPS로 현 위치를 정치시키고, 천지부근에 좌표입력하여, 진입하기로 했다. 현지지형을 잘 표현한 지도가 없었기에 길을 잃지 않으려 GPS를 사용하는 것이다. 정비된 자전거를 타고 백두산 입구에 도착하니 이런, 장백산이라고, 버젓히 쓰여있는 관문을 보고 씁쓸한 미소밖에 나오지 않았다. 백두산은 원래 불함산(不咸山)이라 불리우다 개마대산,백산,태백산으로 불리우다 1100년즈음 중국 금나라에서 장백산/백두산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하지만 장백산은 중국이름이니 씁쓸할 수밖에...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고 바람은 없으며, 길은 비포장으로 잘 닦여져 있었다. 나는 지금 백두산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백두산의 봉우리는 보이지도 않았다. 백두봉을 제일 먼저 본다면 무어라 이야기할까. 무슨 생각이 들까...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백두봉의 기대는 나만 그럴 것이 아니라 대원들 모두다 그럴 것이다. 기대감이 커서 그런지, 몇 시간을 달려도 이어지는 지평선만이 나올 뿐, 길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몸이 지쳐감에 물의 공급량도 많아지고, 속도는 점점 쳐지기 시작하였다. 이어 1시 30분경 중식시간으로 정하고 가지고 온 중식을 챙겨 먹었다. 음식냄새를 맡은 쉬파리는 연신 살갗에 앉아 귀찮게 했으며, 음식에 앉아 대원들을 괴롭혔다. 또, 이 파리의 크기는 엄지손가락만 하여, 물기까지 했다. 여기저기서 찰싹거리며, 파리를 쫓는 대원들에게 식사를 빨리 마치라고 했다. 그리고 식사를 다 끝낸 사람들은 땅을 파서 남은 음식물을 묻고, 자전거 정비를 했다. 현재고도 1200m 온도는 27도, 아직도 백두봉우리는 보이지도 앉았다. 다시 좌표를 잡은 뒤, 투어를 시작했다. 그러부터 약 한시간정도 지났을까. 약한 언덕이 나오면서 평야 넘어로 드디어 백두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우리들 앞에 나타나준 백두봉들은 내 모습이 어떠냐는 듯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다시 솟는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속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비포장길에서 30Km가 나오고 있었다. 언덕이 나오면 그대로 페달을 밟아 오르기를 몇번, 갑자기 내 자전거의 뒷바퀴가 그만 펑크가 나고 만 것이다. 불안하기 시작했다. 백두에 오르기 전에 무슨 징조일까? 근접을 원하지 않은 걸까. "백두봉이여!! 설사, 러시아를 걸쳐 힘들게 돌아왔던들 정령, 허락치 않으실터이신가? 이 젊음의 도전을 받아주지도 않으실터이신가? " 내심, 펑크를 수리하면서 이렇게 마음 먹었다. " 내 이렇게 앞, 뒤바퀴가 다 펑크가 나더라고, 머리에 자전거를 이고라서도 갈터입니다." 라고...
>>수리를 끝내고, 점점 다가오는 백두는 더 크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진입로에서 비포장은 우리일행을 괴롭혔다. 뒷바퀴가 밀리고, 나무뿌리에 막히고,...그렇게 쉬었다 오르기 몇번, 우리가 가져간 물은 어느새 다 먹어버려 목에는 쉐액쉐액 숨쉬는 소리까지 귀가 거슬렸다. 한코너 넘으면 또, 한코너, 한구비 넘으면 또 한구비....약 8부능선에 커다란 구릉지가 나타났고, 우리는 마지막 휴식을 취했다. 주변으로는 들쭉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무심히 피어있었다. 대원들은 그냥 땅바닥에 누운채로 휴식을 취했고, 아래를 돌아다보니 우리가 올라왔던 구불구불한 길은 마치 뱀이 요동을 치듯 휘황했다. 저길을 올라왔다니 .... 순간 백두산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 거대함에 도전할려고 했던 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무모했던것인가. 두려움에 삼킨 침이 한번 넘어가면 오히려 통증을 주니, 숨쉬기가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였다. 목을 축일 물이라도 한모금 먹었으면....현재고도 2200m, 온도는 15도, 날씨는 화창하고, 자전거만 아니라면 주변의 환경은 더할 나위없이 즐기기엔 환상이였을텐데....라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휴식시간을 끝내고 마지막 한번의 공격을 감행했다. 자전거가 오르기 힘든 코스다. 주변으로는 만년설이 군데군데 남아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고, 들쭉화가 피어 있다는 사실조차 마취에 걸린 것 처럼 야릇했다. 이 때, 폭포수처럼 흐르고 있는 천지물이 작은 도랑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누구라고 할 것없이 달려가 그 물로 목을 축였다. 아니 벌컥벌컥 들이켰다. 심장을 얼려버린다는 그 느낌!! 냉장고물보다 더 차가운 냉기가 전신으로 휘돌았다. 지금 현재상태는 전방400m에 무언가가(천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며, 이미 GPS에서 가상으로 찍은 좌표는 지나가 버렸으며, 허기와 갈증에 녹초가 되어 있었다. 대충, 물로 갈등과 허기를 때운 후, 다시 정상공격에 나섰다. 메고 타기를 몇번 드디어!!
>>정상이다.!! 천지가 이토록 넓을 줄이야!! 제5호경계비가 있고, 백운봉과 옥주봉,백두봉이 우측으로 보이고, 좌측으로 멀리 용문봉,천문봉등 마치 거인들의 원탁회의에 이방인들이 끼어들어 정적을 유지하는 것 같은 순간이였다. 불어오는 바람의 세기는 초속 40- 50m정도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우리 일행들은 서파 공격에 성공했다. 공격시간 4시간 30분만에 서파주릉에 올라섰다. 서로 얼싸안고 감탄하며, 태극기를 꺼내들어 자전거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가지고 온 한라산 소주를 꺼내고, 평평한 바닥에 기원제를 지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의 의미에 조금 다가서기 위해 한라산 소주를 기원제에 사용하기로 대원들과 이야기했었다. 기원제를 지내기에, 천지를 감상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날씨였다.
>>
>>" 2000년 6월 21일 3시40분 조민규,이종열,민원영,박장기 이렇게 4명은 산악자전거를 타고 백두신령님의 보호아래 이렇듯 올랐습니다. 영험하신 힘으로 굽어보심에 모자라는 저희에게 힘을 주시고, 갈리어진 국토를 하나로 묶으심에 힘이 되 주소서. 그리고 이 북녘땅을 통해 다시 백두에서 한라까지의 계획을 이룩케 주소서 "
>>
>>잠시 정상에서 휴식과 천지촬영 및 감상을 한 일행에게 기원제를 마치고 하산할 준비를 시켰다. 한라산 소주를 약간씩 음복한 일행들에게 가파른 경사임을 주지시키고, 바로 다운-힐(자전거로 사면을 내려가는 것)로 하산을 했다. 신나는 다운-힐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지만 백두산이 반가이 맞이하여 주는 느낌을 등으로 느끼면서 약 30분만에 하산을 완료했다. 그리고 하산길에 걱정스러워 하며 기다리고 있는 조선족 기사와 조우, 탑승하여 다시 이도백하로 갔다. 내일은 북파(북쪽능선 천문봉) 공격을 감행하는 날, 백두신령님께서는 내일도 굽어 살피소서.
>
다녀오신 분들에게 수고 하셨고요,,,,후기 다음 이야기도
올려주시면 감사.....
zzart wrote:
>의미있는 투어
>무사히 마침에 축하드립니다
>고생이 많으셨던 만큼
>성취감도 만만치 않겠지요.
>즐거운 라이딩 계속되시길....
>
>조민규 wrote:
>>바이크 홀릭님 전주하고 강촌투어때 뵈었던 조민규입니다. 왜, 전주대회때 카풀하려 했었던...벌써 2년이 지났나요?
>>
>>이 글은 "일간 스포츠"나 "산"지에 실릴 원고를 먼저 공개합니다.
>>(백두일지) 산악자전거를 타고 백두산을 초등 성공하다. 글 조민규
>>
>>일정 (2000년 6월 19일부터 25일까지 7일간)
>>등정구간 (21일 서파루트공격 / 22일 북파루트공격)
>>참가인원총 4명 (대장:조민규/33세, 이종열/42세,민원형/27세,박장기/27세 대원)
>>교통 수단 (속초에서 페리 이용, 러시아를 경유, 중국(훈춘) 연길, 이도백하에 베이스 캠프)
>>
>>출발 하루전 6월 18일)
>>오늘은 대원들과 공격 루트와 코스에서 나타날 수 있는 비상사태에 대하여 마지막 점검을 끝냈다. 비상식량으로 4개의 비상식Kit를 준비하고 GPS를 가방에 장치하는 것으로 정리하고, 우리들만의 조촐한 출정식을 했다. 모두 자비를 갹출하여 가는 것이니 만큼, 대원들의 각오 또한 유별났다. 우리들의 영산이자 성산인 백두산에 오르는 일에만 매달린지, 3개월간 많은 일이 있었다. 마침, 남북 정상회담으로 남북간의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즈음인지라, 출정하는 우리들에게도 꼭 성공해야만 한다는 의지는 누가 봐도 광인의 수준이였다. 또, 현지의 정보가 부족한 터라 일기상태며, 교통문제, 진입코스의 설정은 매시마다 달라져 곤혹을 겪곤 했다. 우리는 우리만의 이벤트로 천지에 도착하면 먼저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해서, 백두산 천지까지 한라산 소주를 공수키로 하고, 대원들의 주머니에서 조금 더 갹출을 하여 태극기까지 제작하였다. 그리고, 제작된 태극기를 바라보며, 대원들의 안전과 정상공격에 좋은 날씨를 기원했다.
>>
>>출발 당일 6월 19일)
>>오전 07:00까지 서울 덕수궁앞으로 대원들을 집결시켰다. 개인사물은 되도록 작게 준비하라고 일러둔 터, 다들 작은 가방하나에 자전거를 분해,조립하여 가방에 결속케 했다. 버스에(속초.동명항까지 직행) 오른 대원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들뜬 기분인지 각자의 여흥에 신이 났는지, 소곤거림에 이어, 하나, 둘, 눈을 감아 잠을 청했다. 어느새, 강원도인가 싶더니 벌써 차는 미시령을 넘고 있었다. 멀리 울산바위는 우리일행에 잘 다녀오란 듯이 손짓을 하는 것 같았고, 우거진 설악의 녹음은 출정하는 우리들에게 안심하라는 듯한 싱그러움을 주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동춘페리에 오른 우리일행은 배정받은 방에 짐을 던져두고, 모두 갑판으로 나갔다. 멀리 속초를 두고 떠나는 모습은 심지어 비장하기까지 했다. 아직 내리쪼이는 6월 태양은 우리일행의 이마의 땀에는 안중에도 없는지....
>>수속하면서부터 "이거 뭐예요?" 라고 묻던 출국관련 공무원들은 "산악자전거입니다. 이걸로 백두산을 오르려 갑니다." 라는 대답에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좌우로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내, 선박내에 소문이 났는지 선실사무장이 찾아와 좋은 일을 한다며, 아무래도 긴 시간 다른사람들과 같이 지내면, 피곤할꺼라며, 우리끼리 지낼 방을 따로 배정을 하여 주었다. 이러한 배려가 얼마나 아쉽던지 대장인 나로써도 덜컥 "감사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사무장의 제의를 수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일행은 넓은 선실에서 지낼 수 있어서, 아직 모자라는 부분들은 조율했고, 선내식으로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
>>2일차 6월20일)
>>드디어, 우리 일행을 실은 페리는 오전 10시에 자루비노항에 도착을 했다. 좌측으로 블라디보스톡항이 산너머로 있다는 여행객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발을 내 딛으면 러시아땅인 것이다. 자루비노항은 우리 강원도의 조그마한 어촌마을의 항처럼 움직임이 없는 항구였다. 출입국직원들이 보이며,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들도 보였다. 韓中間 무역상인들 먼저 내려 수속하라는 방송과 함께 하선을 하는데, 이 때도 선실사무장의 편의로 상인들과 같이 내릴 수 있었다. 다시, 지면을 빌어, 각 편의를 제공하여 준 페리 승무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러시아 입국수속을 끝내고 우리는 페리에서 제공되는 버스를 타고, 중국의 국경선을 넘어 훈춘세관으로 향했다. 러시아의 조그마한 마을을 지나 대 평야를 가로지르는 길에 좌측창으로 펼쳐진 평야는 어마어마했다. 옆자리에 연로하신 여행객은 바로 이 자리가 우리 조선족들이 농사를 짓다가 러시아의 대이주정책에 떠밀려 모든걸 버린 채, 실향을 했다며 멀리 평야끝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마에 파이고 양 볼에 주름진 골의 세월속에 아마도 이곳의 추억이 있는 듯 했다. 뭐라 이야기를 올리기조차, 민망한 시간이 지났다. 4번에 걸친 국경통과 절차에 드디어 중국 세관에 도착한 일행은 분해된 자전거를 둘러매고, 등에 가방하나씩을 매쳤다. 잘 나가던, 우리 일행의 차례에서 출입국 직원의 저지가 있었다. 자전거는 통관이 안된다는 것이다. 낭패다. 이렇게 무너질 순 없는데.... 한국말을 하는 조선족을 찾아 설명을 해 줄 것을 부탁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왔으며, 백두산을 자전거를 타고 오를 관광목적밖에는 아무것도 없노라고... 하지만 중국 세관 직원은 어떻게 자전거로 오를 것이며, 또, 자전거를 팔려고 한다는 의심을 하여, 좀처럼 의견수렴이 되지 않았다. 뒤따라 나오는 여행객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눈은 안스럽다는 듯하여 보였다. 1시간쯤 실랑이를 하고 나서, 나는 출입국 직원에게 다시 다가가, 분해된 자전거를 꺼내, 조립을 하였고, 그 자전거를 세관안에서 타기 시작했다. 중국세관원들은 이상하다는 듯한 눈으로 시선이 모아졌다. 윌리(앞바퀴를 들어 올리며 주행하는 테크닉)와 점프를 하며, 돌아다니자 우리 일행도 같이 자전거가방에서 자전거를 꺼내려 했다. 그 때, 한국말을 하는 조선족 세관원이 나와서 무슨일이냐고 물었고,(그 사람의 지위는 좀 높았던 것 같았다.) 나는 자초지경을 이야기했다. 역시, 곤란하다는 말과 함께, 보증서를 써 보란다. 보장은 할 수 없으나, 가지고 왔던 자전거를 가지고 나간다는 보증서이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타지에서 누구에게 보증인을 세운단 말인가... 나는 즉흥적으로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 하고, 한국에서 중국으로 무역을 하는 무역상에게 부탁을 했고, 그 보따리 무역상은 좋은일에 왜 마다하냐며 흔쾌히 보증을 서 주었다.
>>
>>이렇게 중국으로 첫발은 우여곡절로 입국을 하였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기다리는 버스기사를 만났으며, 자전거와 짐을 꾸려서 이도백하라는 곳으로 향했다. 이도백하에 가는 도중, 도문이란 곳을 들렸다. 이 곳은 언젠가 TV에서 봤던 곳으로 다리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이 경계를 서는 곳이다. 일행중 "민"과 "박"대원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진을 촬영한다고 몇 컷을 찍어 댔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40대 남자가 다가와 심각하게 생긴 얼굴로 돈을 요구하였다. 즉슨, 사진을 찍는다면 돈을 내라는 것이다. 결국 (중국돈 10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돈을 주고 말았다. "퉤퉤...잘먹고 잘살아라~~"
>>연길을 지나 약 3시간 30분정도 이도백하 숙소에 도착을 하였다. 이곳을 베이스 캠프를 삼고, 가지고 온 장비를 풀어, 점검을 하였다. 다행히 장비(자전거)의 손상은 없었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3시간 정도 더 가야 서파(서쪽 백운봉코스)에 진입이 가능하므로 대원들에게 일찍 자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컨디션 조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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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6월21일) 서파를 공격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7시에 출발을 하여 이도백하에서 3시간여를 달려 서파(서쪽 백운봉코스)에 위치한 백운봉산장에 도착하였다. 대원들에게 물이며, 중식, 수리공구등을 준비시키고, 나는 다시 한번 코스분석에 들어갔다. 우선, GPS로 현 위치를 정치시키고, 천지부근에 좌표입력하여, 진입하기로 했다. 현지지형을 잘 표현한 지도가 없었기에 길을 잃지 않으려 GPS를 사용하는 것이다. 정비된 자전거를 타고 백두산 입구에 도착하니 이런, 장백산이라고, 버젓히 쓰여있는 관문을 보고 씁쓸한 미소밖에 나오지 않았다. 백두산은 원래 불함산(不咸山)이라 불리우다 개마대산,백산,태백산으로 불리우다 1100년즈음 중국 금나라에서 장백산/백두산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하지만 장백산은 중국이름이니 씁쓸할 수밖에...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고 바람은 없으며, 길은 비포장으로 잘 닦여져 있었다. 나는 지금 백두산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백두산의 봉우리는 보이지도 않았다. 백두봉을 제일 먼저 본다면 무어라 이야기할까. 무슨 생각이 들까...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백두봉의 기대는 나만 그럴 것이 아니라 대원들 모두다 그럴 것이다. 기대감이 커서 그런지, 몇 시간을 달려도 이어지는 지평선만이 나올 뿐, 길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몸이 지쳐감에 물의 공급량도 많아지고, 속도는 점점 쳐지기 시작하였다. 이어 1시 30분경 중식시간으로 정하고 가지고 온 중식을 챙겨 먹었다. 음식냄새를 맡은 쉬파리는 연신 살갗에 앉아 귀찮게 했으며, 음식에 앉아 대원들을 괴롭혔다. 또, 이 파리의 크기는 엄지손가락만 하여, 물기까지 했다. 여기저기서 찰싹거리며, 파리를 쫓는 대원들에게 식사를 빨리 마치라고 했다. 그리고 식사를 다 끝낸 사람들은 땅을 파서 남은 음식물을 묻고, 자전거 정비를 했다. 현재고도 1200m 온도는 27도, 아직도 백두봉우리는 보이지도 앉았다. 다시 좌표를 잡은 뒤, 투어를 시작했다. 그러부터 약 한시간정도 지났을까. 약한 언덕이 나오면서 평야 넘어로 드디어 백두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우리들 앞에 나타나준 백두봉들은 내 모습이 어떠냐는 듯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다시 솟는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속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비포장길에서 30Km가 나오고 있었다. 언덕이 나오면 그대로 페달을 밟아 오르기를 몇번, 갑자기 내 자전거의 뒷바퀴가 그만 펑크가 나고 만 것이다. 불안하기 시작했다. 백두에 오르기 전에 무슨 징조일까? 근접을 원하지 않은 걸까. "백두봉이여!! 설사, 러시아를 걸쳐 힘들게 돌아왔던들 정령, 허락치 않으실터이신가? 이 젊음의 도전을 받아주지도 않으실터이신가? " 내심, 펑크를 수리하면서 이렇게 마음 먹었다. " 내 이렇게 앞, 뒤바퀴가 다 펑크가 나더라고, 머리에 자전거를 이고라서도 갈터입니다." 라고...
>>수리를 끝내고, 점점 다가오는 백두는 더 크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진입로에서 비포장은 우리일행을 괴롭혔다. 뒷바퀴가 밀리고, 나무뿌리에 막히고,...그렇게 쉬었다 오르기 몇번, 우리가 가져간 물은 어느새 다 먹어버려 목에는 쉐액쉐액 숨쉬는 소리까지 귀가 거슬렸다. 한코너 넘으면 또, 한코너, 한구비 넘으면 또 한구비....약 8부능선에 커다란 구릉지가 나타났고, 우리는 마지막 휴식을 취했다. 주변으로는 들쭉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무심히 피어있었다. 대원들은 그냥 땅바닥에 누운채로 휴식을 취했고, 아래를 돌아다보니 우리가 올라왔던 구불구불한 길은 마치 뱀이 요동을 치듯 휘황했다. 저길을 올라왔다니 .... 순간 백두산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 거대함에 도전할려고 했던 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무모했던것인가. 두려움에 삼킨 침이 한번 넘어가면 오히려 통증을 주니, 숨쉬기가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였다. 목을 축일 물이라도 한모금 먹었으면....현재고도 2200m, 온도는 15도, 날씨는 화창하고, 자전거만 아니라면 주변의 환경은 더할 나위없이 즐기기엔 환상이였을텐데....라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휴식시간을 끝내고 마지막 한번의 공격을 감행했다. 자전거가 오르기 힘든 코스다. 주변으로는 만년설이 군데군데 남아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고, 들쭉화가 피어 있다는 사실조차 마취에 걸린 것 처럼 야릇했다. 이 때, 폭포수처럼 흐르고 있는 천지물이 작은 도랑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누구라고 할 것없이 달려가 그 물로 목을 축였다. 아니 벌컥벌컥 들이켰다. 심장을 얼려버린다는 그 느낌!! 냉장고물보다 더 차가운 냉기가 전신으로 휘돌았다. 지금 현재상태는 전방400m에 무언가가(천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며, 이미 GPS에서 가상으로 찍은 좌표는 지나가 버렸으며, 허기와 갈증에 녹초가 되어 있었다. 대충, 물로 갈등과 허기를 때운 후, 다시 정상공격에 나섰다. 메고 타기를 몇번 드디어!!
>>정상이다.!! 천지가 이토록 넓을 줄이야!! 제5호경계비가 있고, 백운봉과 옥주봉,백두봉이 우측으로 보이고, 좌측으로 멀리 용문봉,천문봉등 마치 거인들의 원탁회의에 이방인들이 끼어들어 정적을 유지하는 것 같은 순간이였다. 불어오는 바람의 세기는 초속 40- 50m정도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우리 일행들은 서파 공격에 성공했다. 공격시간 4시간 30분만에 서파주릉에 올라섰다. 서로 얼싸안고 감탄하며, 태극기를 꺼내들어 자전거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가지고 온 한라산 소주를 꺼내고, 평평한 바닥에 기원제를 지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의 의미에 조금 다가서기 위해 한라산 소주를 기원제에 사용하기로 대원들과 이야기했었다. 기원제를 지내기에, 천지를 감상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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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6월 21일 3시40분 조민규,이종열,민원영,박장기 이렇게 4명은 산악자전거를 타고 백두신령님의 보호아래 이렇듯 올랐습니다. 영험하신 힘으로 굽어보심에 모자라는 저희에게 힘을 주시고, 갈리어진 국토를 하나로 묶으심에 힘이 되 주소서. 그리고 이 북녘땅을 통해 다시 백두에서 한라까지의 계획을 이룩케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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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정상에서 휴식과 천지촬영 및 감상을 한 일행에게 기원제를 마치고 하산할 준비를 시켰다. 한라산 소주를 약간씩 음복한 일행들에게 가파른 경사임을 주지시키고, 바로 다운-힐(자전거로 사면을 내려가는 것)로 하산을 했다. 신나는 다운-힐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지만 백두산이 반가이 맞이하여 주는 느낌을 등으로 느끼면서 약 30분만에 하산을 완료했다. 그리고 하산길에 걱정스러워 하며 기다리고 있는 조선족 기사와 조우, 탑승하여 다시 이도백하로 갔다. 내일은 북파(북쪽능선 천문봉) 공격을 감행하는 날, 백두신령님께서는 내일도 굽어 살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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