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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자전거 여행기에여`~~

........2000.07.17 21:05조회 수 376추천 수 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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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한 후, 시간은 빨리 지나가 어느덧 여름방학이 다가왔다. 첫 번째 방학을 맞이하는 나로서는 무엇인가 특별한 체험을 하고 싶었다. 남들 다가는 흔한 여행 말고,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전부터 즐겨 타던 자전거를 이용한 혼자만의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혼자만의 여행을 결정하는 데는 고등학교때 이미 자전거여행을 다녀온 친구의 영향이 매우 컸다.
학기초부터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지만 막상 방학이 다가오니 바빠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장 중요한 금전적 문제는 전부터 모아둔 것이 있어 어느 정도 해결되어 갔다.
자전거 여행은 처음이라 사전지식이 없던 나로서는 "여행 준비는 철저히 해야한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꼼꼼하다'기 보다 '무리하다'라고 말을 할 정도로 준비를 해나갔다. 이것이 나중에 커다란 고통을 줄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채 말이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에서는 뜨거운 태양빛에 비쳐진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나름대로 마음의 정리를 하고 싶었다. "과연 나는 10년 후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에서부터 아주 작은 것까지...
여행가 한비야씨는 "수많은 어려움과 특이한 상황을 겪어 내면서 이제는 어떤 일이 닥쳐도 어렵긴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 졌다."라고 말한다. 나는 조금이라도 이것을 체험해보고 싶었다.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신의 믿음만큼 중요한 것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푼 기대감과 막중한 임무를 띤 채 시작된 여행
자, 이제 나와 함께 멋진 자전거 여행을 떠나 볼까?

첫째날-출발, 그 흥분되던 순간

새벽 공기를 마시며 드디어 출발. 출발할 때의 기분이란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이 마지막 탈출에 성공한 후 느꼈을 해방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정말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출발 전만 해도 약15-20Km의 자전거 속도를 예상했지만 첫 날의 기대 때문인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점심시간이 약간 넘어서야 합천에 도착했고 첫 날 목적지 합천댐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계곡에 트롯트 음악에 맞춰 어깨를 들썩거리며 춤을 추고 계신 할머니들을 만났다. "저 할머니, 무전 여행하는 사람인데요. 마실것 좀 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했더니 마음씨 좋은 할머니들은 음료수 뿐 아니라, 한 밥상을 차려 주셨다. 엄청난 이렇게 하여 점심까지 해결했다. 인정 많은 할머니들을 만나며 최소한의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일종의 빈대정신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한창 합천댐의 아름다움에 취해있을 무렵 하늘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잠자리 때문에 걱정이 되었는데, 특히 첫날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고민 끝에 오는 길에 봐 두었던 청소년 수련원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결국 수련원 건물 벽 사이에서 노숙을 하기로 결심했다. '모든 것이 경험이다. 지금 한창 사회에서는 노숙자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다. 오늘 이런 잠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노숙자의 아픔을 체험해보자.' 라는 뜻에서 큰 결심을 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 자신이 서글퍼졌다.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고자 밤하늘의 별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자신을 위로했다.
그런데 이 놈의 모기는 왜 이렇게 달려드는지, 피워둔 모기향이 무색해졌다.
그렇게 무척이나 외로웠던 첫날 밤은 무사히 지나갔다.

둘째날-평화로운 도시 진주에서

첫날은 별로 느끼지 못했었지만 오늘 아침 큰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최대한의 경비를 절약하고 조금이나마 외로움을 견뎌보고자 하는 의미에서 배낭이 터지도록 많은 물품을 챙겨온 것이 여행 시작부터 끝까지 나를 괴롭게 만든 것이다.
"배낭을 최소화하라." 이것은 여행자의 필수 상식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여행이란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삶의 지혜를 깨닫는 것이다." 라는 사고를 가진 나이기 때문에 그리 후회하진 않았다.
진주성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견고한 성벽에 성안의 견고한 건물 하나 하나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곳에서 4시간이나 보내게 되었다. 특히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바다 속으로 뛰어 들었던 그 장소의 바위는 그녀의 절개를 상징이나 하는 듯 높이 솟아 있었다.
진주시는 비록 크기는 작았지만 몹시 조용하고 평화로운 도시처럼 느껴졌다. 시내를 둘러 본 후 오늘의 숙박지로 정한 경상대학교로 떠났다. 그곳에서 들른 경상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사람들은 화려한 옷차림(자전거 복장)의 나를 약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긴 했지만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운 좋게 한 남자 선배의 집에 묵게 되었다.
그는 몹시 친절했다. 과연 나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토록 잘해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한편으로 '나도 이러한 태도를 본받아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행기간 중 가장 잘 먹고 편안히 쉬었던 곳이 아니 었나 싶다. 선배는 아름다운 진주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 싶었던지 나를 진양호에 데려갔다. 진주에서 연인들끼리 데이트의 명소인 이곳의 밤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화려한 네온사인 배경에 시원한 강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그때의 그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배경 아래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정히 걷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을 몹시 부러워하면서...

셋째날-어긋난 계획, 하지만...

선배와의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한 후 삼천포로 향했다. 어제의 꿈같은 휴식 덕분에 피로는 많이 풀렸지만 정신적으로 매우 나른해져 있었다.
얼마 후 나는 "야호!" 하고 함성을 질렀다. 바로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바다는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바위틈에 털썩 주저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었다. '지금까지 순조롭게 왔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나아가자. 지금은 비록 힘들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이것이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라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원래 예정은 삼천포에서 여수로 배를 타고 건너가 돌산도 전체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삼천포에서 여수로 가는 배는 바로 몇 달 전 없어졌다는 아저씨의 말을 듣게 되었다. 순간 나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지도책을 꺼내놓고 혼자 고민하다가 결국 남해도를 샅샅이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혼자하는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마음대로 일정, 계획을 조정하고 인상이 남는 곳에 마음껏 머물고, 피곤하다고 생각하면 마음껏 쉴 수 있는 것, 난 이번 여행에서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남해도는 매우 아름다운 섬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산산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힘찬 페달을 돌릴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이러한 기쁨 탓인지 힘들고 피곤한 기억은 거의 사라져갔다. 남해도는 유난히 높은 언덕이 많다. 가다가 힘들면 쉬고 재가 나오면 자전거를 끌고 오르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무조건 달렸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남해대교까지는 가야한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도중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와! 자전거 아저씨 힘내세요. 화이팅!" 그 말은 지쳐있던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때 나도 "고맙다. 얘들아 너희들도 큰 꿈을 가지고 살아라."고 큰소리로 말해 주었다. 그 말 때문이었던지 자전거는 엄청난 가속도가 붙어 목적지인 남해대교에 다다랐다.
저녁이 되자 눈앞의 여관 간판들이 내게 손짓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한참을 고민하던 순간, 눈앞에 다른 자전거 여행자 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자전거 여행객이십니까?"로 말을 꺼낸 나는 원래 목적인 "잠은 어디서 잘 거에요?"라는 질문을 꺼냈다. 애기가 잘 되어 결국 그들의 텐트 안에서 같이 자게 되었다. 같이 저녁을 먹고 모터보트를 타며 서로 닫혔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열게 되었다. "같이 술 한잔해요."라는 말에 나는 선뜻 "좋아요."라고 답했다.
남해대교의 야경은 매우 멋있었다. 밝은 빛을 내는 다리 사이로 넘실대는 물결과 향긋한 바다 냄새, 시원한 바닷바람까지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절경이었다. 그 풍경을 보며 가벼운 맥주 한잔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역감정은 사회 각 분야에 보이진 않지만 매우 심각해, 특히 차별이 심한 전라도 전주에 사는 난 실제로 많이 느끼게 되었어." 그들은 지역감정에 대해 소극적이고 보수적이었던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우쳐 주었다. 조금만 있어도 우리들은 서로 마음이 잘 맞았다. 이야기가 하나하나 진행될수록 그러한 생각이 더해져갔다. 그들은 머릿속에 자신의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마음껏 노력하고 있음을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직까지 '나의 꿈이 무엇인가?'라는 것도 모르는 나는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후 우리의 대화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계속 되었고 그들이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들을 통해 나는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넓히자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룰 수 있었다.

넷째날-아차! 사고가 남

이른 아침 우리는 각자의 여행계획과 목표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사히 끝마치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그리고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했다. 이렇게 해서 전주 친구들과의 '멋진 만남'은 끝이 났다. 하지만 이때의 기억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떠난 후 다시 혼자 남아 외로움을 달래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외로움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나 자신에 대해 알자." 라는 여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혼자 여행함으로써 그만큼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이런 만남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흔히 TV나 신문지상에서 인심이 사라져 가고 있다. 라고 말 하지만 내가 겪은 세상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세상은 정말 살기 좋고 따뜻함이 묻어 나는 곳이다." 라는 것을 여행 곳곳 만났던 사람들의 인심을 통해 알게 되었다.
휴~우 잠시 한 숨 돌린 후 내가 가야 할 길을 향해 힘차게 폐달을 굴렸다. 정신없이 달리고 있을 때였다. 보기만 해도 경사가 급한 상당한 높이의 재가 나타났다. 여태껏 수도 없이 재를 넘어왔건만 이런 재는 처음이었다.
재를 오를 때는 20Kg의 배낭, 뜨거운 태양빛, 자전거까지.... 왠만한 등산보다 힘이 든다. 배낭의 무게 때문에 완전히 허리가 굽혀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고통이 지나면 내리막길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 때는 정말 신난다. 자전거는 가속도가 붙어 왠만한 차들 보다 속도가 빨라진다. 그리고는 계속되는 급커브, 그것은 왠만한 젯트코스터 타는 것 보다 짜릿한 일이다.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혹 모래나 돌이 끼여 있을 때는 바로 사고와 이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말 하기가 무섭게 사건이 터져 버렸다. 바로 말한 그 재에서... 거기는 높이 만큼이나 경사가 급했고 커브 또한 심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스릴을 즐기는 사나이", 과감하게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채 급커브를 돌아나가며 스릴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으악!" 갑작스런 급커브로 자전거가 넘어졌다. 정말 사고는 한 순간이었다. 무릎을 다치고 온몸에 멍이 드는 등 심한 상처를 입게 되었고 자전거도 약간의 이상이 생겼다. 천만 다행으로 지나가던 차가 없어 큰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채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결국 차를 얻어 타기로 작정했고 나의 이 멋진 옷차림 덕분인지 쉽게 얻어 탈 수 있었다. 트럭 뒤에 자전거를 실은 채...
차에는 3명의 아저씨들이 타고 있었다. 자연히 말이 통하게 되었고, 특히 지역감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역감정은 구시대적인 산물이며 너희세대 에서 꼭 없애야 한다." 라며 나에게 누누이 강조 하셨다. 그들은 지역감정에 대해 몹시 불만을 가졌으며 어서 빨리 이것이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난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결코 책이나 매체를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많은 것을 실제 경험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순천에 도착했다. 큰 도시에서의 잠자리는 언제나 대학교이다. 나에게는 교지편집위원회라는 전국적으로 결속력 강한 단체가 있었기에 잠자리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도 역시 큰 환영을 받았고 쉽게 친해 졌다. 하지만 밤이 되자 홀로 남게 되었고 외로움을 달래며 잠자리에 들게 된다.

다섯째날-드디어 꿈에 그리던 소록도로...

순천에서 소록도까지는 약 120km정도로 하루만에 가는 것은 조금 벅차지만 빨리 가고싶은 마음에 무조건 달렸다. 가다가 힘들면 쉬고 재가 나오면 자전거를 끌고 오르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였다. 어느덧 옷은 땀에 절어 축축하게 되었고, 강력하게 내리 쬐는 햇빛은 온몸을 새카맣게 태우고 있었다. 반복되는 과정은 나를 무척이나 지루하게 만들었다. 장래의 계획, 가족, 친구 등등의 내가 고민하던 여러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깊이 생각할 수록 다시 멍하게 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나도 모르게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잠을 청했다. 시간은 계속 가는데 예상만큼 자전거는 잘 나가지 않았다. 아마 10시간은 족히 탔으리라.
어두운 밤이 다 되어서야 겨우 오늘의 목적지인 녹동에 도착했다. 근처에 잠자리를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은 여관으로 향하게 되었고 3만원이라는 말에 기가 질려 과감히 그곳을 나왔다. '최후의 수단으로 여관을 찾자' 라는 출발전의 다짐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녹동을 차근차근 둘러보았다. 그 때 해안가 바위에 나란히 걸터앉아 낚시를 하고 있는 아저씨 두 분이 보였다. "저기 아저씨 자전거로 무전여행 하는 사람인데요. 마땅히 있을 곳이 없어서 그런데 괜찮다면 이곳에서 좀 쉬었다 가면 안될까요?" 나의 애절한 부탁에 아저씨께서는 쾌히 승낙하셨고 낚시 생활 10년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얼른 사복으로 갈아입고 혼자 가로등불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학생 술 좀 마시나?" 라는 말에 "예, 물론이죠." 이렇게 해서 낚시꾼 아저씨들과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두분 모두 무척이나 친절했다. 잔주름이 가득한 얼굴의 아저씨들 모습은 무척이나 고생한 듯 보였다. 아저씨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특히 인생살이에 대한 충고를 많이 해주었다. "학생, 나의 인생은 한마디로 '실패작'이야. 난 너무 '나'만을 생각하며 오직 성공에만 뜻을 두었지. 하지만 인생은 이런게 아니더라구. 하지만 학생은..." 이 말들은 나에게 절실하게 다가왔다. 아마 여태까지 살아오면서의 실제 체험을 나에게 들려주는 것이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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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암에서 남한산성~ 돌탱이가 너무 좋아용~^^;; (by 노바(이전무)) 09년 09월 5일 고창 미당시문학관 (by 바보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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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lsd
    2002.10.28 07:19 댓글추천 0비추천 0
    2002년 10월에 읽음-조리있게 잘쓰신글 구구절절이 잘봤습니다.제가 마치 여행하는듯...
........
2003.08.14 조회 603
yskfry
2003.07.21 조회 456
jiwonjaewon
2003.03.29 조회 709
bluesee8321
2010.05.28 조회 4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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