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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굉장합니다

........2000.08.24 11:17조회 수 247추천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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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 wrote:
>성원에 힘입어... 아니, 구박에 못이겨 드뎌 여행 후기를 씁니다 ^^
>
>음.....
>
>=======================
>
><15일 - 사람잡는 고개..> 전주 - 진안
>
>아버지 동창분들과 그 아해들을 뒤로 하고 전주에서 오후 3시에 출발했다. 사람들의 기대와 격려를 받으면서 나는 기고만장했더랬다.
>진안으로 갈까 대둔산쪽으로 갈까 하다가... 어른들의 말씀을 쌩~ 하고
>걍 처음 계획대로 진안으로.
>
>그런데... 처음부터 장난이 아니었다. 진안은 올라가는 길만 있지 내려가는 길은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무슨 고개가 높으면서 차선도 많은지 쉴곳도 없었다. 햇볕을 그대로 받았다. 짐도 숨을 막았다. 등짐이 이렇게 힘들지 누가 알았나 ㅡㅡ;;; 시작한지 두시간도 안됐는데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는 상상을 하는 어이없는 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참다못해 휴게소에서 샴푸와 모기향과 피같은 테플론 오일을 버렸다. 조금이라도 줄여보자고. 실제로 효과가 있는듯?
>
>진안에 6시쯤 도착했다. 진안 교회에 민폐를 끼치고자 들어갔다. 아무도 없다. 염치 불구하고 청년회실을 불법 점거하고 잤다.
>혼자라는 사실이 두렵고 걱정스러운 밤이었다. 내일 날씨는 또 어떨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
>
><16일 - 하늘, 너 맘에 안들어> 진안 - 금산 - 옥천 - 보은 - 괴산
>
>잠탱이인데도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오호?
>전화로 날씨를 들어보니, "흐리고 한때 비..." 머 어쩌라구...
>해뜰 무렵의 흐린 하늘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출발했다.
>어제의 실수를 또 하지 않으려고 길을 수정했다. 금산으로.
>용담댐 수몰 예정지구를 지나가니 을씨년스럽다. 다 무너져가는 모습들.
>그렇지만 그 길을 택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새로만든 지방도가 깔끔했다.
>
>옥천까지는 평탄한 길. 햇빛도 들고 자신감을 조금 회복했다.
>대전으로 가는 중간에 자전거 여행객 둘을 만났다. 정말 반가웠는데 그들은 조금 어색해하는 것 같았다.
>한 고개 앞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손자 생각이 나시는지 반가워하셨다. 이 고개만 넘으면 괴산까지는 편하다고...
>
>괴산은 괴상한 동네였다. 표지판의 거리가 갈수록 늘었다. 우띠..
>설상가상으로 빗줄기가 느껴졌다. 이슬비가. 오옷...
>그렇게 지는 해에, 비에 쫓기면서 괴산을 향해 달리다가 모텔 하나를 발견하고 달려들었다. 원래는 돈은 최대한 쓰면 안되는데. ㅜㅜ
>어제는 심장이 뛰고 진정이 되지 않더니 여기서는 눈이 감겼다.
>일기예보에서는 충청도 최고 100mm. 어쩐다지?
>
><17일 - 강줄기와 함께> 괴산 - 단양 - 영월
>
>몸살기운이 좀 있는것같다. 6시에 일어나보니 비 한방울도 안왔다. 속았다. 파란 하늘도 보인다. 가려는 방향에 파란 하늘이 보인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
>박달재를 넘기 싫어서 단양 쪽으로 길을 수정했다. 실수했다. 단양가는 길에도 만만치 않은 고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느릅재도 힘들었다. 첫날과 같은 정도의 고개였지만 첫날의 고생이 훈련이 되었나보다.
>
>단양 넘어가는 고개. 죽음. 그러나 그 경치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구름속에 있는 모습은 신선 사는 동네같기도...
>어깨가 아파왔다. 그래서 쉬면서 물도 받고 했다. '오르막차로 끝' 표지를 보고 환호를 질러야 할 순간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졌다. 어라라. 일하시는 아저씨들 차로 숨었다. 거기서 A-10 비행훈련 하는걸 직접 봤다. 처음엔 악천후에 추락하는넘인줄 알았다.
>비가 잦아들고 자전거를 대충 닦고 내려가자, 밑에는 땅도 안젖었다. 뭐지? ㅜㅜ
>
>단양에 도착하기 전에 점심을 먹었다. 벌써 5시인데. 영월까지 못갈것같다. 옆에 있는 아저씨한테 영월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물었다.
>단양을 지나고, 그아름다운 경치들을 지나치면서 힘겨운 페달링을 하고 있을 즈음 하늘은 한점의 파란 조각도 남기지 않고 있었다. 포기하는 기분으로 휴게소를 찾았는데 주인이 아까 그 아저씨였다. 헤헤?
>
>아저씨와 한참 얘기를 했다. "역시 독불장군은 없지?" 하시는데 동감이었다. 친구 한넘이라도 꼬셔가지고 올걸... 너무 힘들구나...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 거짓말같이 하늘이 개어버렸다. 이건 하늘의 뜻이다! 가자!
>
>해서 또 죽어라 페달링. 저무는 해를 보면서 라이트와 테일라이트를 켰다. 도시에서는 다 가로등이 있어서 이런 등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얼만큼 효과가 있을까. 차들이 알아서 다 피해가네? ^^ 기분 좋았다.
>영월까지 다 가지 못했다. 아니, 태백 가는 반대방향인것같아서 안갔다.
>고씨동굴 앞에 민박촌에서 잠자리를 구했다. 주인은 노부부. 손자가 나랑 동갑이랬다. 저녁도 얻어먹고 ... 맛나게 잤다.
>
>
><18일 - 오옷 50km 내리막길이라니> 영월 - 상동 - 태백 - 도계 - 삼척
>
>으, 눈꺼풀 무거워. 시작하자마자 와석재를 넘었다. 태백이 그리 멀지는 않으리라. 구름이 끼고 있었다. 역시 또 어제보다 엔진출력(^^;)도 줄었다. 태백까지의 오르막을 어찌할거나...
>
>태백을 30km 앞두고 휴게소에서 쉬려는 찰나 어떤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아까 타고 오는걸 봤다고. 반갑기도 하고 신나게 얘기하다가 차까지 얻어타게 됐다. 아저씨는 휴가동안 혼자서 낚시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락샥까지 아는 걸 보면 MTB도 좋아하시는것 같고.
>
>태백까지는 그리 험한 길은 없었다. 그러나 아저씨 왈,
>"이런길이 자전거 타는 사람한테는 죽음이지." 동감 ㅡㅡa
>차라리 확 가파르면 내려서 걷든가 하지. 언젠가 인터넷 MTB잡지에서 삼척까지 자전거로 가신분 얘기를 읽었는데 그분은 타고 넘으신것같던데 도대체 어떻게 걷지도 않고 그냥 타고 넘으신거지?
>
>태백 근처는 비가 오고 있었다. 더욱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언덕배기 30km 빗길이라 -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태백사는 친구한테 전화했더니 한시간 기다리라고. 아저씨는 그사이 밥까지 사주셨다. 자신도 혼자인지라 반가우셨던걸까? 아무튼 너무 고마웠다.
>
>친구가 왔다. 아저씨는 먼저가서 날씨가 어떤지 알려주시겠다며 떠나셨다. 그런데 아저씨 가자마자 비가 온다. 윽...
>친구들이랑 3시까지 노닥거리다가 다시 출발했다. 아저씨는 고개 하나만 빗속에서 넘으면 그 이후는 흐리기만 하다고 알려주셨다. 그거 하나 믿고...
>
>빗길도 각오하고 가니까 재미있었다. 언덕 다 지났는데 빗길이라 속도를 못낸다. 이런. 허나, 빗속이지만 운무속 고갯길은 정말 장관이었다.
>오히려 빗길에서 기분이 좋을 줄이야.
>
>삼척까지 40km. 비는 그치고, 이젠 계속 내리막길이다. 우와~~
>"행복"했다. 거기다가 하늘은 맑아지지, 옆에 계속해 흐르는 오십천, 철길은 향수를 자극하지, 보이는 풍경은 죄 절경이지...
>
>마차리 기차역도 보고, 도계읍도 봤다. 엄청나게 번화하던데.
>오십천은 어디에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만큼 아름답다. 정동진 가다가 보고 감동했던 그 곳이 그대로였다.
>삼척에 후배 집을 찾았다. 정작 후배는 서울에 있는데도 그집에서 하루를 잘 수 있었다. 선선히 허락하시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
>
><19일 - 대놓고 비맞기> 삼척 - 동해 - 주문진 - 양양 - 속초
>
>아침에 엎어졌다. 후배 어머니께서 물 주냐고 물으실때 서다가 클리트를 못뺐다. ^^; 으그... "이아저씨 오늘 불안하네" 하는 얘기를 듣고 웃었다.
>동해안 북쪽은 이미 비가 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속초의 친구 집까지는 가야 한다.
>
>동해시에 해안 도로에서 바다를 봤다. 가슴이 트여온다. 거기 가로등에는 비둘기가 아니라 갈매기가 앉아있었다. 참... ^^
>달리다보니 정동진이 나왔다. 수능 끝나고 친구들과 찾아왔던 그모습, 그 장소들 그대로 있는 것이 참 반가웠다. 잠깐 거기서 옛날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
>맞은편에서 자전거 여행하는 객을 네 팀이나 만났다. 처음에는 진짜 MTB로 혼자 가는 사람, "안녕하세요!" 소리지르면서 인사했다.
>그리고는 두 사람. 인사했더니 "화이팅!" 손흔들고 지나갔다. 눈물나게 기뻤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이렇게 좋은 것인지 몰랐다.
>
>또한팀이 지나가고... 세명으로 된 마지막 팀을 만났을 때에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사람들 참 대단했다. 자전거가 상당히 낡은 거였는데 서울에서 3일만에 동해안까지 왔다고 했다. 역시 친구가 있으면 서로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일까. 정동진을 물어보길래 멀지 않았다고 얘기해주고 헤어졌다.
>
>그 비는 멈출 줄을 몰랐다. 오히려 빗줄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이거... 히치하이킹을 해야 하나... 그런데 비때문인지 태워주려는 차는 더더욱 없었다. 이제는 두렵지는 않았다. 이 비를 함께 맞으면서 함께 고생하고 있을,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힘이 났기 때문에.
>
>걍 타고 가지 뭐. 준비해간 비닐로 가방을 싸고. 남방 하나를 희생해 엉덩이에 두르고 거기에도 비닐을 넣었다. 이러면 흙탕은 막을 수 있겠지... 하지만 빗길이라 속도를 낼 수도 없고 길은 멀고 예정에 비해서 늦어지고 있었다.
>
>중간에 또한번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그게 그렇게 쪽팔릴 수가 없었다. 주문진에서 비가 잦아들길래 조금 안심하고 밥을 먹고 나오니 다시 오고 있었다. 이구... 다시 시도. 두어대를 그냥 보내고 나니 오기가 생겼다. 어차피 이보다 쪽팔릴 수는 없다, 걍 끝장을 보자 하고. 그리 맘을 먹고 시도했더니 한번에 차가 섰다. 28살 된 형이었다.
>
>속초까지 일사천리로 달려갔다. 그 형은 벌써 첫째가 3살이었다. 우와..
>많은 얘기를 했고, 역시 내 상황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럴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네 늙은 아저씨는 차를 몰고 가다 나를 봐도 "저자식이 할 일이 그리 없나." 하고 좋지 않게 볼수도 있지 않겠나...
>
>형은 친절하게도 나를 친구네집에서 걸어서 5분밖에 안되는 속초 해수욕장앞에 내려줬다. 친구네 집은 마치 내집 같았다. 마음이 편했다. 친구와 맥주 한잔씩 하고 신나게 놀고 잤다.
>
>
><20일 - 차 안에서> 집까지 차로...
>
>전국적인 비 때문에 더이상의 여행은 포기했다. 평지에도 비가 오는데
>한계령을 넘는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해 보였다.
>아버지보고 오시라고 했다. 불효자식, 놀러도 안오시는 속초를
>자식 데리러 오게 하다니... ^^;;;
>일요일이라 차가 너무나 막혔다. 빗길이기도 하고... 그래서 점심과
>저녁은 다 내가 사드렸다. 아들내미때문에 하시는 고생이니.
>집에 밤 12시에 도착. 여행은 이것으로 종료...
>
>==========================
>
>이런 이유때문에 22일까지 예정이었던 여행이 20일로 끝난거죠
>혼자간걸 많이 후회하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지만 얻은것도 많았습니다
>완주하지 못한것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으니까.... ^^
>사람의 소중함, 동병상련의 원칙, ... 많은 것들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 자신도 조금은 강해진것 같네요
>그래서 기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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