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13일.
새벽에 천둥소리에 잠을 깬다. 오늘은 다음카페 번개가 있는 날인데 벌써 몇주째 주말에 비가 오고 있다. 오전에 비가 조금 오다가 갤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다시 잠을 청한다.
7시30분. 알람소리에 잠을 깨서 준비를 한다. 잠에서 잘 못 일어나는 편이지만 놀러갈 땐 잘 일어난다. ^^
오늘의 만남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모임의 주동자가 지난번 강촌 MTB대회의 입상자이기 때문이다.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고, 한편 많은 것을 배울수 있다는 기대로 마음은 계속 설레인다.
어제 60KM정도의 라이딩을 하고 난후 피로감이 좀 남아있어서 약속장소까지 자전거를 차에 싣고 가기로 한다. 출발후 국민대 앞을 지날 무렵 아직 촉촉히 젖어있는 아스팔트 위로 비치는 햇빛을 보니 문득 자전거를 타고 싶어진다. 국민대에 주차를 한 후 준비운동을 좀 하고 약속장소인 쌍문역까지 천천히 달린다. 어떤 사람들이 나올까? 기대를 가지며 신선한 아침공기를 가른다.
쌍문역에 도착하니 9시 40분. 너무 일찍 도착했다. 차로 왔으면 정말 한참 기다릴 뻔 했다. 잠시 후 론 샤프릭이라는 캐나다인이 와서 인사를 한다. 그리고 Elfamaman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번짱님이 도착. 간단히 서로 인사한다.
'출발하죠.'
한마디 한 번짱님. 도로를 달리는데, 금새 저만치 달려나간다. 열심히 쫓아가 본다. 속도계가 48,9 km/h를 오르내린다. 이건 평소에 내 보지 못한 속도다.. 그것도 평지에서.. 오늘 라이딩이 꽤나 험난할 것이라는 예감이 뇌리를 스친다.
우이동쪽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여 이온음료를 사고 번짱님이 사준 양갱을 하나씩 먹는다. 그리고 커피 한 잔으로 가쁜 숨을 진정시킬 무렵.
다시 번짱님의 한마디가 날 팽팽한 긴장으로 몰아간다.
'이제 올라가죠.'
출발하자마자 시작되는 가파른 업힐. 100미터도 못가 자전거에서 내리고 만다. 힘차게 달려올라간 우리 번짱님. 보이지도 않는다. 중간중간 계속 자전거를 끌고 메고 올라간다.
먼저 올라간 사람들은 주요 구간마다 후미를 기다려주고 위험지역에 대한 주의를 하며 산을 오른다.
한참을 힘겹게 올라 업힐을 끝내는 지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미 내 상하의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어제의 라이딩과 비교하면 강도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 어제도 열심히 탔다고는 했지만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지점에서 다운하는 것이 표준 코스인데, 간만에 번개를 진행하는 우리 짱님, 업힐을 좀더 하자고 제안한다. -.-
우리도 동의하고 올라간다. 이곳은 지금까지 올라온 것보다 더 험하다. 탈수 있는 구간이 거의 없다.
옆을 지나는 등산객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대단해!’ ^^
‘싸나이들이구만!!’ ^o^
‘자전거 얼마야?’ -.-;
‘자전거 끌고 갈려면 머하러 갖구와?’ -_-;;
반응도 여러 가지다. 이윽고 목표지점에 도달. 휴식후 다운을 시작한다. 가파른 산길을 조심스레 내려온다. 문득 산에 오르기 전 번짱님이 한 말이 떠오른다.
“오늘 비도 왔고, 신발도 적응이 안되서 좀 넘어질 것 같아요.”
‘엉..? 선수도 넘어지남..? 난 잔거 타면서 넘어져 본 적이 없는데..’ -.-
우리 번짱님 오늘 세 번 넘어졌다. 물론 상처도 안나게 잘 넘어진 거지만. 진지하게 다운힐을 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나두 물론 진지하지만.. 좀 소심하게 탄 탓인지 한 번도 안 넘어졌다. 안전이 제일이쥐~ ^^; 내려오는 길은 좀 탈 만하다. 중반이후가 되니까 용기도 좀 생기고 대열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고 따라 내려온다.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업힐 때의 힘겨움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그렇게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코스 라이딩은 끝났다. 점심식사후 헤어지면서 번짱님과 쌍문역까지 함께 왔다. 역시나 나는 한참 떨어진 그의 뒷모습 밖에 볼 수가 없다. 신호에 걸려야 겨우 나란히 설 수 있다. -.-
.
.
.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간다. 번짱님의 군살없는 날렵한 상체, 탄탄한 허벅지, 종아리, 그리고 업힐하는 뒷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부산 출신의 아주 쾌활한 엘파마맨(오늘 몇 번 넘어지더니 결국 피를 보셨다.), 그리고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 론. 그가 찍어준 나의 허접 계단타기 동영상도.. ^^ 마치 당구를 처음 배울 때 천장에 당구공이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해병대 코스의 장면들이 페이드인/아웃을 거듭한다.
수영을 시작하려다가 새벽에 일어날 자신이 없어, 그 비용을 자전거 사는 데에 투자하기로 하고 시작한 MTB 라이딩이다. 그러니까 원래의 주요 목적은 번짱님처럼 날렵한 몸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첫 번개, 라이딩을 하고 난 이후, MTB를 탄다는 것은 뱃살 빼기 이상의 의미를 준다(당연히).
그 첫째가 넘어진다는 것의 의미이다. 지금껏 가져온 나의 고정관념을 깬다.
나는 자전거와 비슷한 기간동안 스케이트도 타왔지만, 두가지 모두 타면서 넘어져 본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MTB는 다르다.
‘넘어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니고, ‘넘어져 봐야 잘 탈 수 있다’는 생각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릴때 걸음마를 배우며 넘어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물론 넘어지지 않고 잘 탈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둘째로, 산이라는 장소가 나에게 준 것. 등산을 싫어하진 않지만 즐겨하지도 않았다. 자전거라는 쇠덩어리를 끌고 땀을 비오듯 흘리며 올라간 북한산이 준 것은, 군대에서 무전기를 메고 올랐던 고지가 내게 준 그것과 비슷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르다. 모종의 보람이라고나 할까.. 뿌듯한 느낌. 숲 냄새, 다운힐의 쾌감, 상쾌함. 그리고 행복이 있다.
세상에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오래동안 타 온 자전거이지만, 오늘 내가 만난 자전거+산의 조합은 매우 다르고도 새로운 세계이다. 그 조합을 잘 엮어내려면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그 노력을 기쁘게 감당할 준비가 된 듯 하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 진지하게 즐기려는 마음의 자세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렇지만...
급할 필요는 없지만...
돌아오는 주말이 자꾸만 기다려 진다. ^^
즐라 하세용~ ^^
새벽에 천둥소리에 잠을 깬다. 오늘은 다음카페 번개가 있는 날인데 벌써 몇주째 주말에 비가 오고 있다. 오전에 비가 조금 오다가 갤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다시 잠을 청한다.
7시30분. 알람소리에 잠을 깨서 준비를 한다. 잠에서 잘 못 일어나는 편이지만 놀러갈 땐 잘 일어난다. ^^
오늘의 만남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모임의 주동자가 지난번 강촌 MTB대회의 입상자이기 때문이다.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고, 한편 많은 것을 배울수 있다는 기대로 마음은 계속 설레인다.
어제 60KM정도의 라이딩을 하고 난후 피로감이 좀 남아있어서 약속장소까지 자전거를 차에 싣고 가기로 한다. 출발후 국민대 앞을 지날 무렵 아직 촉촉히 젖어있는 아스팔트 위로 비치는 햇빛을 보니 문득 자전거를 타고 싶어진다. 국민대에 주차를 한 후 준비운동을 좀 하고 약속장소인 쌍문역까지 천천히 달린다. 어떤 사람들이 나올까? 기대를 가지며 신선한 아침공기를 가른다.
쌍문역에 도착하니 9시 40분. 너무 일찍 도착했다. 차로 왔으면 정말 한참 기다릴 뻔 했다. 잠시 후 론 샤프릭이라는 캐나다인이 와서 인사를 한다. 그리고 Elfamaman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번짱님이 도착. 간단히 서로 인사한다.
'출발하죠.'
한마디 한 번짱님. 도로를 달리는데, 금새 저만치 달려나간다. 열심히 쫓아가 본다. 속도계가 48,9 km/h를 오르내린다. 이건 평소에 내 보지 못한 속도다.. 그것도 평지에서.. 오늘 라이딩이 꽤나 험난할 것이라는 예감이 뇌리를 스친다.
우이동쪽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여 이온음료를 사고 번짱님이 사준 양갱을 하나씩 먹는다. 그리고 커피 한 잔으로 가쁜 숨을 진정시킬 무렵.
다시 번짱님의 한마디가 날 팽팽한 긴장으로 몰아간다.
'이제 올라가죠.'
출발하자마자 시작되는 가파른 업힐. 100미터도 못가 자전거에서 내리고 만다. 힘차게 달려올라간 우리 번짱님. 보이지도 않는다. 중간중간 계속 자전거를 끌고 메고 올라간다.
먼저 올라간 사람들은 주요 구간마다 후미를 기다려주고 위험지역에 대한 주의를 하며 산을 오른다.
한참을 힘겹게 올라 업힐을 끝내는 지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미 내 상하의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어제의 라이딩과 비교하면 강도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 어제도 열심히 탔다고는 했지만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지점에서 다운하는 것이 표준 코스인데, 간만에 번개를 진행하는 우리 짱님, 업힐을 좀더 하자고 제안한다. -.-
우리도 동의하고 올라간다. 이곳은 지금까지 올라온 것보다 더 험하다. 탈수 있는 구간이 거의 없다.
옆을 지나는 등산객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대단해!’ ^^
‘싸나이들이구만!!’ ^o^
‘자전거 얼마야?’ -.-;
‘자전거 끌고 갈려면 머하러 갖구와?’ -_-;;
반응도 여러 가지다. 이윽고 목표지점에 도달. 휴식후 다운을 시작한다. 가파른 산길을 조심스레 내려온다. 문득 산에 오르기 전 번짱님이 한 말이 떠오른다.
“오늘 비도 왔고, 신발도 적응이 안되서 좀 넘어질 것 같아요.”
‘엉..? 선수도 넘어지남..? 난 잔거 타면서 넘어져 본 적이 없는데..’ -.-
우리 번짱님 오늘 세 번 넘어졌다. 물론 상처도 안나게 잘 넘어진 거지만. 진지하게 다운힐을 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나두 물론 진지하지만.. 좀 소심하게 탄 탓인지 한 번도 안 넘어졌다. 안전이 제일이쥐~ ^^; 내려오는 길은 좀 탈 만하다. 중반이후가 되니까 용기도 좀 생기고 대열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고 따라 내려온다.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업힐 때의 힘겨움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그렇게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코스 라이딩은 끝났다. 점심식사후 헤어지면서 번짱님과 쌍문역까지 함께 왔다. 역시나 나는 한참 떨어진 그의 뒷모습 밖에 볼 수가 없다. 신호에 걸려야 겨우 나란히 설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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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스쳐 지나간다. 번짱님의 군살없는 날렵한 상체, 탄탄한 허벅지, 종아리, 그리고 업힐하는 뒷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부산 출신의 아주 쾌활한 엘파마맨(오늘 몇 번 넘어지더니 결국 피를 보셨다.), 그리고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 론. 그가 찍어준 나의 허접 계단타기 동영상도.. ^^ 마치 당구를 처음 배울 때 천장에 당구공이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해병대 코스의 장면들이 페이드인/아웃을 거듭한다.
수영을 시작하려다가 새벽에 일어날 자신이 없어, 그 비용을 자전거 사는 데에 투자하기로 하고 시작한 MTB 라이딩이다. 그러니까 원래의 주요 목적은 번짱님처럼 날렵한 몸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첫 번개, 라이딩을 하고 난 이후, MTB를 탄다는 것은 뱃살 빼기 이상의 의미를 준다(당연히).
그 첫째가 넘어진다는 것의 의미이다. 지금껏 가져온 나의 고정관념을 깬다.
나는 자전거와 비슷한 기간동안 스케이트도 타왔지만, 두가지 모두 타면서 넘어져 본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MTB는 다르다.
‘넘어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니고, ‘넘어져 봐야 잘 탈 수 있다’는 생각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릴때 걸음마를 배우며 넘어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물론 넘어지지 않고 잘 탈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둘째로, 산이라는 장소가 나에게 준 것. 등산을 싫어하진 않지만 즐겨하지도 않았다. 자전거라는 쇠덩어리를 끌고 땀을 비오듯 흘리며 올라간 북한산이 준 것은, 군대에서 무전기를 메고 올랐던 고지가 내게 준 그것과 비슷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르다. 모종의 보람이라고나 할까.. 뿌듯한 느낌. 숲 냄새, 다운힐의 쾌감, 상쾌함. 그리고 행복이 있다.
세상에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오래동안 타 온 자전거이지만, 오늘 내가 만난 자전거+산의 조합은 매우 다르고도 새로운 세계이다. 그 조합을 잘 엮어내려면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그 노력을 기쁘게 감당할 준비가 된 듯 하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 진지하게 즐기려는 마음의 자세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렇지만...
급할 필요는 없지만...
돌아오는 주말이 자꾸만 기다려 진다. ^^
즐라 하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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