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추워서, 정말 너무 추워서 나갈 수는 없고... 왈바 뒤져 봐도 아이라이딩할 후기도 안 올라 오고 ...당연들 하시리라.
저는 국민학교 다녔습니다. 초등학교가 아니고...
호랭이 담배 먹던 시절은 아니고, 좀 오래된 시간들... 그땐 망우산 밑에 ...그러니까 망우로 따라 망우리 고개 넘기 직전에 지금은 공원이 조성 되어 있던 것 같은데 바로 그 자리.
거기는 약간 공터고 아무런 인공적인 시설이 없었지요. 산에서 흐르던 물이 위에서 흘러 내려오다 끝나는 장소에 맨홀이 있었습니다. 들여다보면 시커먼 어둠만이 자리잡고 꼭 괴물 입속 같았는데 그곳이 우리들의 담력 시험장있습니다. 한놈이 들어가면 서로 밀면서 또 한놈 들어가고 못 들어가면 나중에 놀림감이 될게 분명해 어쩔수 없이 들어가면 끝도 없는 어둠, 뚱뚱한 어른은 들어갈 수도 없는, 겨우 국민학교 4학년의 몸집만 움직일 만 했던, 한번 들어가면 몸을 돌릴 수 없어 끝도 없는 것 처럼 느껴지던 그 맨홀을 계속 갈 수 밖에 없었지요. 발밑을 손밑을 지나는 물을 느끼며....그러면 망우로 길지나 건너편으로 나오곤 했습니다.
동그란 맨홀이 끝나면 4각형의, 어른도 그냥 설 만한 공간이 역시 맨홀처럼 이어졌는데 가끔 동네 큰 누나들이 목욕을 오곤 했습니다. 때때로 그걸 본다고 그 긴 맨홀을 기기도 했던 국민학교 4학년 시절....그리고 그때 친구들....뭘 알고나 그랬는지....
그때 망우로는 아스팔트는 2차선 뿐이었지요. 물론 인도, 차도 구분도 없었고 아스팔트 옆으로는 말이 끄는 달구지가 연탄을 싣고 다녔습니다. 가끔 망우산 놀러갔다 집으로 오는 길에 달구지에 몰래 매달려 한 20여 미터라도 가면 그게 왜 그리 신나고 좋았는지... 마부아저씨한테 욕을 얻어먹기도 하면서도 말입니다.
망우로에서 동일로로 빠지는 길, 거기에는 한독약품이 있었습니다. 그 앞에는 지금처럼 입체 교차로가 아니고 먼지 훨훨 날리는 철도 건널목이 있었구요. 그때 동일로는 비포장이었습니다. 양 옆으로는 논 밭이 즐비했구요, 한독약품 뒤로 지금 교차로에 있는 한샘교회가 빨간 벽돌을 자랑하며 서 있었고 주위는 온통 배밭이었지요, 배밭을 지나면 묘지가 많았던 야산이며 파헤쳐져 만들어진 공터도 참 많았습니다. 그렇게 봉화산까지 이어져있었지요. 봉화산주변은 온통 배과수원이었구요.
그런 곳에서 우리 친구 4명이 자전거를 배웠습니다.
한시간에 10원인가 주고 사정사정해서 2시간으로 늘려 자전거한대 빌려서...그때는 그렇게 박한 것 같으면서도 인심이 있었나봅니다... 친구4명이 서로 잡아주면서 배웠습니다. 다들 서너발도 못가서 넘어지면 서로 웃어가며 놀려가며 하다가 우연히 한놈이 한 열발이라도 홀로 타고가면 너도나도 도전해보고 그러다보면 2시간도 훨 넘어 자전거포 아저씨한테 꿀밤한대 맞고는 그걸로 계산끝입니다. 놓치마 놓치마 하며 앞만 보고가다가 이상해서 뒤를 보면 아무도 안잡고 있고 그러면 꽝, 생각해 보면 아! 내가 탔구나 ...그러면 잔차 배우기 끝이었지요. 다들 좀 타고 갈만할 즈음 열심히 네놈이 돈 모았습니다. 좀 용돈이라도 받는 놈은 더많이 내고, 없는 놈은 없는데로 100원 만들어 자전거 포에 받치고 네대의 잔차를 쫙 뽑아 한놈에 한 대씩 잡고 섰을때의 째지던 그 기분은 지금 잔차 산것만큼 이었지요. 네놈이 타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해가며 하루종일 봉화산에서 출발 해서 망우산까지 그렇게들 배를 쫄쫄 굶어가며 다녔습니다.
그렇게 자전거 타보고는 항상 갖고 싶은 것 일호가 자전거였습니다.
그랬지만 모든 학교 다 졸업하고...군대도 같다오고...결혼하고도 16년이 지나서야 겨우 산 잔차를 바라보면 그 때 그 시절 친구들과 빌렸던 자전거, 그리고 자전거 포가 생각납니다.
포앞에 기대어 서있던 펌프하며, 세수대야에 담겨 뽀글뽀글 거품을 내뿜던 빵꾸난 튜브, 빵꾸 때우던 아저씨의 손길, 본드...
빌린자전거로 달렸던 그길들, 공터며 메뚜기며, 논과 밭,....그립기도 합니다.
그 때 그 친구들은 지금은 연락도 되질 않습니다.
얼마전에 내 잔차타고서 한번 다녀보았더니 그 장소, 길 아무것도 남은게 없었습니다. 도저히 알아볼 수도 없구요.
개발...발전...하지만, 맨날 공부에 치여 5학년짜리가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다며 자살하는 세태를 생각하면 비록 배 쫄쫄 굶으며 허겁지겁 몰려 싸돌아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내 어린시절이 훨 행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자라나는 세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은 그대로 지니고서 말입니다.
허접한 자유잔차의 생애 첫라이딩(?) 얘깁니다.
저는 국민학교 다녔습니다. 초등학교가 아니고...
호랭이 담배 먹던 시절은 아니고, 좀 오래된 시간들... 그땐 망우산 밑에 ...그러니까 망우로 따라 망우리 고개 넘기 직전에 지금은 공원이 조성 되어 있던 것 같은데 바로 그 자리.
거기는 약간 공터고 아무런 인공적인 시설이 없었지요. 산에서 흐르던 물이 위에서 흘러 내려오다 끝나는 장소에 맨홀이 있었습니다. 들여다보면 시커먼 어둠만이 자리잡고 꼭 괴물 입속 같았는데 그곳이 우리들의 담력 시험장있습니다. 한놈이 들어가면 서로 밀면서 또 한놈 들어가고 못 들어가면 나중에 놀림감이 될게 분명해 어쩔수 없이 들어가면 끝도 없는 어둠, 뚱뚱한 어른은 들어갈 수도 없는, 겨우 국민학교 4학년의 몸집만 움직일 만 했던, 한번 들어가면 몸을 돌릴 수 없어 끝도 없는 것 처럼 느껴지던 그 맨홀을 계속 갈 수 밖에 없었지요. 발밑을 손밑을 지나는 물을 느끼며....그러면 망우로 길지나 건너편으로 나오곤 했습니다.
동그란 맨홀이 끝나면 4각형의, 어른도 그냥 설 만한 공간이 역시 맨홀처럼 이어졌는데 가끔 동네 큰 누나들이 목욕을 오곤 했습니다. 때때로 그걸 본다고 그 긴 맨홀을 기기도 했던 국민학교 4학년 시절....그리고 그때 친구들....뭘 알고나 그랬는지....
그때 망우로는 아스팔트는 2차선 뿐이었지요. 물론 인도, 차도 구분도 없었고 아스팔트 옆으로는 말이 끄는 달구지가 연탄을 싣고 다녔습니다. 가끔 망우산 놀러갔다 집으로 오는 길에 달구지에 몰래 매달려 한 20여 미터라도 가면 그게 왜 그리 신나고 좋았는지... 마부아저씨한테 욕을 얻어먹기도 하면서도 말입니다.
망우로에서 동일로로 빠지는 길, 거기에는 한독약품이 있었습니다. 그 앞에는 지금처럼 입체 교차로가 아니고 먼지 훨훨 날리는 철도 건널목이 있었구요. 그때 동일로는 비포장이었습니다. 양 옆으로는 논 밭이 즐비했구요, 한독약품 뒤로 지금 교차로에 있는 한샘교회가 빨간 벽돌을 자랑하며 서 있었고 주위는 온통 배밭이었지요, 배밭을 지나면 묘지가 많았던 야산이며 파헤쳐져 만들어진 공터도 참 많았습니다. 그렇게 봉화산까지 이어져있었지요. 봉화산주변은 온통 배과수원이었구요.
그런 곳에서 우리 친구 4명이 자전거를 배웠습니다.
한시간에 10원인가 주고 사정사정해서 2시간으로 늘려 자전거한대 빌려서...그때는 그렇게 박한 것 같으면서도 인심이 있었나봅니다... 친구4명이 서로 잡아주면서 배웠습니다. 다들 서너발도 못가서 넘어지면 서로 웃어가며 놀려가며 하다가 우연히 한놈이 한 열발이라도 홀로 타고가면 너도나도 도전해보고 그러다보면 2시간도 훨 넘어 자전거포 아저씨한테 꿀밤한대 맞고는 그걸로 계산끝입니다. 놓치마 놓치마 하며 앞만 보고가다가 이상해서 뒤를 보면 아무도 안잡고 있고 그러면 꽝, 생각해 보면 아! 내가 탔구나 ...그러면 잔차 배우기 끝이었지요. 다들 좀 타고 갈만할 즈음 열심히 네놈이 돈 모았습니다. 좀 용돈이라도 받는 놈은 더많이 내고, 없는 놈은 없는데로 100원 만들어 자전거 포에 받치고 네대의 잔차를 쫙 뽑아 한놈에 한 대씩 잡고 섰을때의 째지던 그 기분은 지금 잔차 산것만큼 이었지요. 네놈이 타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해가며 하루종일 봉화산에서 출발 해서 망우산까지 그렇게들 배를 쫄쫄 굶어가며 다녔습니다.
그렇게 자전거 타보고는 항상 갖고 싶은 것 일호가 자전거였습니다.
그랬지만 모든 학교 다 졸업하고...군대도 같다오고...결혼하고도 16년이 지나서야 겨우 산 잔차를 바라보면 그 때 그 시절 친구들과 빌렸던 자전거, 그리고 자전거 포가 생각납니다.
포앞에 기대어 서있던 펌프하며, 세수대야에 담겨 뽀글뽀글 거품을 내뿜던 빵꾸난 튜브, 빵꾸 때우던 아저씨의 손길, 본드...
빌린자전거로 달렸던 그길들, 공터며 메뚜기며, 논과 밭,....그립기도 합니다.
그 때 그 친구들은 지금은 연락도 되질 않습니다.
얼마전에 내 잔차타고서 한번 다녀보았더니 그 장소, 길 아무것도 남은게 없었습니다. 도저히 알아볼 수도 없구요.
개발...발전...하지만, 맨날 공부에 치여 5학년짜리가 물고기처럼 자유롭고 싶다며 자살하는 세태를 생각하면 비록 배 쫄쫄 굶으며 허겁지겁 몰려 싸돌아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내 어린시절이 훨 행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자라나는 세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은 그대로 지니고서 말입니다.
허접한 자유잔차의 생애 첫라이딩(?)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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