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의 유명산
며칠 전 와일드바이크에서 유명산 번개가 있길래, 잽싸게 따라 붙었다.
사실 아침 이른 시간에 서울 잠실에서 모여서 출발하는 것이 늘 부담이었기는 했지만, 그 전날 서울에서 집안행사가 있었던지라, 처가댁에서 하룻밤 자고, 집사람과 애들은 처가에서 하루 보내기로 하고, 유명산 번개에 참여하였다.
잔차가 무겁고도 산악용으로서 검증이 되지 않은 보통의 잔차이지만, 임도 정도는 거뜬히 다닐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갔다.
잔차를 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잔차를 이해하고 즐기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무려 24분이 함께 하였다. 나로서는 모두 처음 뵙는 분들이었고, 온라인상으로 아이디가 낯익는 분들이 몇 분 계셨다.
아마도 널널하게 산을 탄다고 해서 그런지, 스스로를 초보라고 겸손히 표현하시는 분들이 많이 나오신 것 같다.
유명산은 경기도 가평군과 양평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지도상으로 보았을때는, 가평군 설악면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생각을 했었는데, 차를 타고 이동한 경로는, 다른 방향이었다.
잠실에서 차를 타고, 미사리, 팔당대교 건너서, 양평에서 가평가는 지방도로로 접어들어, 유명산 휴양림 입구에서 주차했다.
차에서 잔차들을 내리고 출발준비를 하고, 김밥 도시락을 하나씩 지급받고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 모양 굳은 결의를 다지고 출발!
전투도 이런 전투가 없다. 즐거운 전투, 나와의 싸움. 남의 나라 시비걸어 전쟁 거는 부쉬보다 나와의 싸움에 땀방울 흘리는 우리가 더욱 강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은 유명산의 임도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라, 처음부터 길은 넓고 경사도도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마도 우리가 올라간 임도가 북사면에 위치한 게로다. 임도 초입부터, 오르막 이 경사진 면에는 눈이 쌓여 있고, 바닥에는 반은 녹은 물과 흙탕이요, 반은 살포시 맺혀 있는 얼음판이라.
봄기운 몰려온다고 해도 역시 산은 산이요, 겨울의 잔 기운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초입부터, 조심스레 오른다. 벌써 자동차들이 지나간 바퀴 자국 움푹 들어간 고랑은 흙탕물이요, 흙탕물을 피할 요량으로 고랑 옆으로 바퀴를 몰고 가면, 이것은 또 살얼음인지라 미끄러지기 일쑤요. 초반부터 그리 쉽게 볼 놈은 아닌가 보다.
여러 분들이 앞 뒤 간격을 유지하며, 천천히 오른다. 나는 처음에는 이정도 업힐 쯤이야, 이 정도 얼음길 쯤이야, 안되면 넘어지기 밖에 더하겠어? 하며, 부지런히 페달을 차고 오른다. 하지만, 임도 업힐이라고 하는 게 한 고비 꺽어 오르면 또 한고비 고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 모퉁이만 돌면 좀 평지이거나 내리막이겠지 라는 기대감으로 페달질 한번만 더, 한번만 더, 페달질을 천천히 하더라고 꾸준히 계속적으로, 그리고 짧은 호흡 들이 마시기, 긴 호흡 내 뱉기. 헉헉.
그러나 힘들다. 폐부가 찢어질 것 같이 힘들다. 벌써 안경위로는 이마의 땀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시야를 흐리게 만들고, 담배연기 찌든 허파는 산소 공급 능력의 한계치에 다다른 듯 싶다. 차라리 내 앞에 누군가가 올라가지 못하고 길을 막고 있기를 바란다. 그 핑계에 나도 좀 내려서 쉬게. . . 내려서 쉬더라도 페달을 빼는 것에 잔신경이 간다.
벌써 2주 동안 클립레스 페달을 연습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산에 오기는 처음이다. 아주대 뒷산에도 클립레스 페달로는 가 본 적이 없다. 다만 출퇴근 길에서 혹은 동네 옆 공원에서만 클립레스 페달 적응 연습을 하였을 뿐이다.
역시 클립레스 페달도 편하기는 하다. 발과 페달을 하나로 묶어 주었으니, 힘 전달이 원활하고, 지속적인 원형 페달링이 잘 된다. 그런데 오르막에서 힘이 빠지면서 잽싸게 신발과 페달을 분리하지 못하면, 정말 한 순간에 옆으로 꽈당하고 넘어지게 되니, 아무래도 긴장이 되기는 한다.
많은 분들이 자전거를 끌기 시작한다. 나도 자전거를 끌고 있다. 호흡이 좀 안정되면 다시 페달질을 해서 가야지 마음은 그렇지만, 계속 끌고 간다. 경사가 좀 완만해도 계속 끌고 간다. 경사가 조금 완만해 졌다고 해서 내가 속을쏘냐, 또 바로 급경사가 나오는 게 산길 아니더냐, 클릿트 빼기도 어려운데, 계속 끌고 가 보자.
드디어 처음 만나는 다운힐이 나온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 보면, 그렇게 힘든 길은 아니었음에도, 출발 전에 스트레칭도 안 하고 워밍업도 안한 채로 바로 업힐을 출발한 무리가 있었나 보다 하며 위안을 삼는다.
아주 신나는 임도 다운 힐이다. 싱글트랙 다운힐을 할 때는, 바로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몰라 조금더 긴장을 하고 내려 오는데, 그리고 순간적인 판단력과 신속하고 정확한 브레이크 능력과 조향력을 요구하는데 비해, 임도 다운 힐은 시야가 넓고 목적한 길의 행로가 보이고, 앞 사람이 내려간 트랙을 바로 뒤 따를 수 있어, 큰 어려움 없이 내리 쏠 수 있었다.
조금전 까지 숨이 턱에 까지 차면서 끌고 바이크를 하였던 많은 동지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짜릿한 첫번째 다운을 즐겼다.
첫 다운힐 후에 다같이 모여 잠시 휴식시간. 물도 한잔 하고, 캬, 바로 이 맛이야, 일기예보에서는 오늘 비가 온다고 했는데, 하늘을 보니 청명 그 자체로다. 솔솔 부는 산바람 까지, 더할 나위 없는 신선세계다. 바둑에 빠져야만 신선이 아닌 게야. 땀방울 가득 찬 헬멧을 벗고 가슴 가득 들이 마시는 산공기를 경험하는 것이 신선인 게야.
어떤 분이 물으신다. 일반자전거에 업그레이드를 많이 했네요 하며. 직접 내 손으로 했냐고 물으신다. 예, 중고 하나 둘씩 얻어다가 또각또각 짬나는 대로 부품만 교체했습니다 했더니, 옆에 계신 분께서 앞으로 업그레이는 하지 말라고 충고해 주신다. 자잘한 부품 업그레이드 한다고 비용 들어가면, 가랑비에 옷 젖는 꼴이 되고, 어차피 나중에 적정한 수준의 완성차를 하나 살텐데, 뭐 하러 2중으로 돈을 쓰냐는 의견을 주셨다.
일견 맞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나야 이 자전거로 3대를 물려가면 타 보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부품이 시원찮으면, 그래도 자꾸 고치고 닦고 조이고 해야지 별 수 있나요. 자전거에 대한 충고 감사합니다.
유명산 산 속으로 더 깊게 들어 와서 이제는 제법 완만한 임도를 따라 계속 전진이다. 초반에 한번 힘을 쓴 다음이라 그런지 이제는 몸이 풀렸다. 웬만한 경사가 나와도 이제는 초입부터 호흡조절 해 가며, 꿋꿋이 올라간다.
산 중턱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로 접어든다. 길 입구에는 유명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안내하는 입간판이 서 있다.
이 길은 패러글라이딩 동호회원들이 4륜구동차로 들락날락 하는 길인가 보다. 차량 바퀴 자국이 선명하고,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 눈 녹은 물이 완전 진흙밭을 만들어 놓았다. 차량 한대 다닐 폭의 임도에서 좌로나 우로나 어디를 봐도 잔차 바퀴에 흙탕물을 안 묻히고 갈 수가 없다.
그래, 이래서 그 유명한 CF도 있지 않더냐, 길이라도 좋다, 아니라도 좋다, 랜*로바. (랜*로바는 신발이름이기도 하지만, 영국산인가요? 유명한 4륜구동차의 브랜드명이기도 하지요 아마?)
흙탕물인지 뻘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의 길로 과감하게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로 헤쳐 나갈만 하기는 한데, 무엇이 뒤에서 잡아 당기는 듯한 그 느낌, 마치 산신이 있어 이 길은 내 허락 없이는 갈 수 없다는 식으로 뒷 바퀴에 그 무엇이 올라 탄 듯 하기도 하고, 땅에서 바퀴를 잡고 안 놓아 주는 듯 하기도 하고, 기어도 바꾸고, 깊은 심호흡에 페달을 강하게도 밟아 보고, 부드럽게도 밀어 보곤 하지만, 영 쉽지가 않다.
어려운 진흙길을 헤쳐 올라가니,
산능성이를 따라 편안하게 조성된 임도가 계속 연결되어, 제법 편하게 잔차질을 즐길 수 있다. 너무 신나는 잔차질이다.
저 아래로 계곡과 마을들이 보이고, 탁 트인 전망은 일주일 동안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비친 인공적인 산물만을 보거나, TV를 통해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의 모습만을 보게 된 아프고 피곤한 눈을 쉬게 하기에는 그만이었다. 초록의 대지와 푸른 하늘이 자연인으로 돌아가게끔 하는 광경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제 정상에 거의 다 왔다.
정상을 목전에 두고서는, 완만한 구릉지와 급경사면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또 이마를 찌푸리게 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유명산 이 정상 까지, 4륜구동 동호회 사람들이 와서, 급경사면을 탈출하는 연습도 하고, 디젤 매연도 방구 뿡뿡 뿜어 내고 있는 게 아닌가.
분명, 이 임도 입구 출입문에는 4륜 구동 동호회는 들어 가지 마시오 라고 적혀는 있는데, , ,
급한 경사면의 자전거 업힐 중에 위에서 4륜구동차 하나가 다운으로 내려온다. 업힐 중인 잔차가 계속 치고 올라갈 길이 없다, 차량 하나 다닐 임도니까. 잔차 업힐은 중간에 한번 서면 다시 출발이 어렵다. 이런 몹쓸 자동차들, 그것도 이 산중에 와서, 길도 아닌 경사면에서 뿡뿡거리며, 오르락 내리락 연습을 하다니. . .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할 동반자이며, 나 또한 대자연의 한 부분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인지. . .
어떤 이는 자연과 호흡하기 위해, 맨 손으로 산을 오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힘만으로 산을 오르자며 잔차를 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힘이 부족한지, 기어이 화석연료에 불 붙여가며, 인공물의 결집체 자동차를 끌고 이 산에 까지 와서 산등성이 깎아먹고, 매연방구나 붕붕끼고, 뭐 재미있다고 히히덕 거리는지.
그 사람들은 산에서 입술 옆으로 흘러 들어가는 땀방울이 짠 맛인지 알기나 하는지. 정말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땀방울에 눈이 매워, 잔차질을 멈출 수 밖에 없는 순간의 희열을 알런지, , , ,
유명산 정상을 앞두고서 잠시 기분이 불쾌해진다.
다신 유명산 정상을 향해, 업힐이다. 제법 경사가 깊은 언덕을 잔차로 올라본다. 평상시 같으면 생각도 못해 볼 업힐이겠지만, 임도라 길이 넓고, 주변이 탁 트여 상쾌하게 도전해 볼 만 하다. 타고 갈 수 있는 곳 까지라도 업힐이다. 어떤 이는 지속적이고 일정한 페달링으로 기어이 그 업힐을 성공해 낸다. 어떤 이는 몇차례의 도전 끝에 업힐을 다 한다.
옆에서 구경하는 우리는 박수도 쳐 주고, 힘내라고 격려도 해 준다. 나를 포함한 어떤 이는 끌고 오르기도 한다.
끌고 올라도 좋고, 힘껏 요령껏 타고 올라도 좋은 유명산이구나.
마지막으로 짧고 진한 다운힐 하나 하고, 짧고 진한 업힐 하나 하니, 이곳이 바로 해발 800여 미터 되는 유명산 정상 ! ! !
산은 높아 보이지 않는데, 그 자리잡음이 딱 풍채 좋은 장군의 모습인 듯 하다.
산 위에서 사진도 찍고, 여기 까지 무사히 올라온 것을 서로 인사나눈다. 그리고는 맛난 점심으로 김밥을!
평소에 담배를 끊지 못해, 계속 담배를 피고 있는데, 올라오는 길에 보니까, 역시 피스톤 운동을 하는 허벅지나 종아리는 아직도 건재한데,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 주는 흡기장치가 시원치 않아, 금연, 금연 속으로 이렇게 되새기며 올라 왔건만,
간사한 게 인간이라고, 이제 한 숨 돌릴만 하고,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까, 손이 다시금 슬슬 담배쪽으로 향하고 있구만.
요사이 봄철에는 특히 산불을 조심해야 하겠기에, 담뱃재에도 신경을 쓰며,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유명산 정상에서 연기를 피워 올렸다. 언제나 끊을텐가, 이 담배를?
식사 후에는 이제 올라 왔던 길로의 신나는 다운만이 남았다.
웨이백 자세를 확실히 잡고, 아까 끌고 올라왔던 그 험한 경사로를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에도 끌고 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넘어질 때 넘어지더라도 마음 굳게 먹고, 내려가자.
그런데, 어, 이게 아닌데, 나도 다운힐은 연습을 좀 했다고 했는데도, 어, 어, 위험하다.
다른 이들은 미리 안장도 좀 낮추고 하던데, 나는 뭐 안장을 굳이 낮춰, 밸런스 잘 잡고, 웨이 백 잘하고, 멀리 표적지를 바라보고, 앞 뒤 브레이크의 힘을 적정히 배분하고, 슬립 나는 것에 조심하고, 이러고 내려가면 되지.
그래도 쉽지는 않다. 뒷 바퀴의 타이어를 갈던지 해야겠다. 슬립이 쫙쫙 일어나는 게 어떤 때는 재미있지만, 어떤 때는 섬찟 위험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계속 내려가야 한다. 내가 여기서 서거나 넘어지면, 내 뒤에 간격을 두고 따라 오는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아주 짧은 순간이겠지만, 길게 느껴진 급경사 다운힐이다. 무사히 내려왔다. 앞으로는 완만한 경사의 다운이니까, 잘 갈 수 있겠군.
그런데 그게 아니다. 내리막인 것 까지는 좋은데, 이게 다 흙탕물이고 진흙길이다. 쏜살같이 다운하면, 얼굴이며, 등이며, 엉덩이며, 가슴이며, 잔차 전체며, 온통 머드 택을 하게 된다.
에라 모르겠다. 이러나 저러나 잔차도 닦고 몸도 닦아야 되니. 쏘자. 이럴 때 안 쏘면 언제 쏘냐?
젖은 림에 브레이크 능력 감소되는 몫을 감안하고 내리 쏘는데, 역시 젖은 상태에서는 디스크 브레이크가 훨씬 나은가 보다. 내가 내리 쏘는 것 보다 더 쏘는 분이 있다. 저 앞 코너에서 감속을 어떻게 하려고 하나 하고 보니, 디스크 브레이크다. 역시나.
나 내려온 몰골이 말이 아니다. 완전히 흙으로 뒤집어 썼으니, 마치 모내기철에 논에서 미끄러져 빠진 모양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운하신 분들은 신발 주변에만 흙탕물이 튀었고, 멀쩡하다. 정말 같이 유명산을 갔다 온 사람이 아닌 듯이 말이다.
이제 흙이 마르면 차 속에 흙먼지를 일으키겠구만, 잔차는 또 언제 다 닦지? 집에 가면 내 손으로 또 빨래를 해야 하는구나.
다 내려오고 나니까, 별 생각이 다 드는구만.
하루를 정말 즐겁게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막국수 한 그릇과 동동주 한 사발까지, 깔끔한 뒷 마무리!
여러 사람들이 안전하게 편하게 즐겁게 잔차를 탈 수 있도록 준비하고 배려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던 번장이신 레드맨님과, 눈이 보이게 안보이게 서로 돕고 챙기고 하신 모든 분들에게 글로나마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이번 주에는 어느 산으로 또 한번 행장을 차려볼까나? 벌써부터 주말에 산악잔차질 하러 갈 궁리에 집사람 재가를 어떻게 받나 목하 고민중이다. 끝.
며칠 전 와일드바이크에서 유명산 번개가 있길래, 잽싸게 따라 붙었다.
사실 아침 이른 시간에 서울 잠실에서 모여서 출발하는 것이 늘 부담이었기는 했지만, 그 전날 서울에서 집안행사가 있었던지라, 처가댁에서 하룻밤 자고, 집사람과 애들은 처가에서 하루 보내기로 하고, 유명산 번개에 참여하였다.
잔차가 무겁고도 산악용으로서 검증이 되지 않은 보통의 잔차이지만, 임도 정도는 거뜬히 다닐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갔다.
잔차를 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잔차를 이해하고 즐기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무려 24분이 함께 하였다. 나로서는 모두 처음 뵙는 분들이었고, 온라인상으로 아이디가 낯익는 분들이 몇 분 계셨다.
아마도 널널하게 산을 탄다고 해서 그런지, 스스로를 초보라고 겸손히 표현하시는 분들이 많이 나오신 것 같다.
유명산은 경기도 가평군과 양평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지도상으로 보았을때는, 가평군 설악면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생각을 했었는데, 차를 타고 이동한 경로는, 다른 방향이었다.
잠실에서 차를 타고, 미사리, 팔당대교 건너서, 양평에서 가평가는 지방도로로 접어들어, 유명산 휴양림 입구에서 주차했다.
차에서 잔차들을 내리고 출발준비를 하고, 김밥 도시락을 하나씩 지급받고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 모양 굳은 결의를 다지고 출발!
전투도 이런 전투가 없다. 즐거운 전투, 나와의 싸움. 남의 나라 시비걸어 전쟁 거는 부쉬보다 나와의 싸움에 땀방울 흘리는 우리가 더욱 강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은 유명산의 임도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라, 처음부터 길은 넓고 경사도도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마도 우리가 올라간 임도가 북사면에 위치한 게로다. 임도 초입부터, 오르막 이 경사진 면에는 눈이 쌓여 있고, 바닥에는 반은 녹은 물과 흙탕이요, 반은 살포시 맺혀 있는 얼음판이라.
봄기운 몰려온다고 해도 역시 산은 산이요, 겨울의 잔 기운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초입부터, 조심스레 오른다. 벌써 자동차들이 지나간 바퀴 자국 움푹 들어간 고랑은 흙탕물이요, 흙탕물을 피할 요량으로 고랑 옆으로 바퀴를 몰고 가면, 이것은 또 살얼음인지라 미끄러지기 일쑤요. 초반부터 그리 쉽게 볼 놈은 아닌가 보다.
여러 분들이 앞 뒤 간격을 유지하며, 천천히 오른다. 나는 처음에는 이정도 업힐 쯤이야, 이 정도 얼음길 쯤이야, 안되면 넘어지기 밖에 더하겠어? 하며, 부지런히 페달을 차고 오른다. 하지만, 임도 업힐이라고 하는 게 한 고비 꺽어 오르면 또 한고비 고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 모퉁이만 돌면 좀 평지이거나 내리막이겠지 라는 기대감으로 페달질 한번만 더, 한번만 더, 페달질을 천천히 하더라고 꾸준히 계속적으로, 그리고 짧은 호흡 들이 마시기, 긴 호흡 내 뱉기. 헉헉.
그러나 힘들다. 폐부가 찢어질 것 같이 힘들다. 벌써 안경위로는 이마의 땀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시야를 흐리게 만들고, 담배연기 찌든 허파는 산소 공급 능력의 한계치에 다다른 듯 싶다. 차라리 내 앞에 누군가가 올라가지 못하고 길을 막고 있기를 바란다. 그 핑계에 나도 좀 내려서 쉬게. . . 내려서 쉬더라도 페달을 빼는 것에 잔신경이 간다.
벌써 2주 동안 클립레스 페달을 연습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산에 오기는 처음이다. 아주대 뒷산에도 클립레스 페달로는 가 본 적이 없다. 다만 출퇴근 길에서 혹은 동네 옆 공원에서만 클립레스 페달 적응 연습을 하였을 뿐이다.
역시 클립레스 페달도 편하기는 하다. 발과 페달을 하나로 묶어 주었으니, 힘 전달이 원활하고, 지속적인 원형 페달링이 잘 된다. 그런데 오르막에서 힘이 빠지면서 잽싸게 신발과 페달을 분리하지 못하면, 정말 한 순간에 옆으로 꽈당하고 넘어지게 되니, 아무래도 긴장이 되기는 한다.
많은 분들이 자전거를 끌기 시작한다. 나도 자전거를 끌고 있다. 호흡이 좀 안정되면 다시 페달질을 해서 가야지 마음은 그렇지만, 계속 끌고 간다. 경사가 좀 완만해도 계속 끌고 간다. 경사가 조금 완만해 졌다고 해서 내가 속을쏘냐, 또 바로 급경사가 나오는 게 산길 아니더냐, 클릿트 빼기도 어려운데, 계속 끌고 가 보자.
드디어 처음 만나는 다운힐이 나온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 보면, 그렇게 힘든 길은 아니었음에도, 출발 전에 스트레칭도 안 하고 워밍업도 안한 채로 바로 업힐을 출발한 무리가 있었나 보다 하며 위안을 삼는다.
아주 신나는 임도 다운 힐이다. 싱글트랙 다운힐을 할 때는, 바로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몰라 조금더 긴장을 하고 내려 오는데, 그리고 순간적인 판단력과 신속하고 정확한 브레이크 능력과 조향력을 요구하는데 비해, 임도 다운 힐은 시야가 넓고 목적한 길의 행로가 보이고, 앞 사람이 내려간 트랙을 바로 뒤 따를 수 있어, 큰 어려움 없이 내리 쏠 수 있었다.
조금전 까지 숨이 턱에 까지 차면서 끌고 바이크를 하였던 많은 동지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짜릿한 첫번째 다운을 즐겼다.
첫 다운힐 후에 다같이 모여 잠시 휴식시간. 물도 한잔 하고, 캬, 바로 이 맛이야, 일기예보에서는 오늘 비가 온다고 했는데, 하늘을 보니 청명 그 자체로다. 솔솔 부는 산바람 까지, 더할 나위 없는 신선세계다. 바둑에 빠져야만 신선이 아닌 게야. 땀방울 가득 찬 헬멧을 벗고 가슴 가득 들이 마시는 산공기를 경험하는 것이 신선인 게야.
어떤 분이 물으신다. 일반자전거에 업그레이드를 많이 했네요 하며. 직접 내 손으로 했냐고 물으신다. 예, 중고 하나 둘씩 얻어다가 또각또각 짬나는 대로 부품만 교체했습니다 했더니, 옆에 계신 분께서 앞으로 업그레이는 하지 말라고 충고해 주신다. 자잘한 부품 업그레이드 한다고 비용 들어가면, 가랑비에 옷 젖는 꼴이 되고, 어차피 나중에 적정한 수준의 완성차를 하나 살텐데, 뭐 하러 2중으로 돈을 쓰냐는 의견을 주셨다.
일견 맞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나야 이 자전거로 3대를 물려가면 타 보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부품이 시원찮으면, 그래도 자꾸 고치고 닦고 조이고 해야지 별 수 있나요. 자전거에 대한 충고 감사합니다.
유명산 산 속으로 더 깊게 들어 와서 이제는 제법 완만한 임도를 따라 계속 전진이다. 초반에 한번 힘을 쓴 다음이라 그런지 이제는 몸이 풀렸다. 웬만한 경사가 나와도 이제는 초입부터 호흡조절 해 가며, 꿋꿋이 올라간다.
산 중턱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로 접어든다. 길 입구에는 유명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을 안내하는 입간판이 서 있다.
이 길은 패러글라이딩 동호회원들이 4륜구동차로 들락날락 하는 길인가 보다. 차량 바퀴 자국이 선명하고,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 눈 녹은 물이 완전 진흙밭을 만들어 놓았다. 차량 한대 다닐 폭의 임도에서 좌로나 우로나 어디를 봐도 잔차 바퀴에 흙탕물을 안 묻히고 갈 수가 없다.
그래, 이래서 그 유명한 CF도 있지 않더냐, 길이라도 좋다, 아니라도 좋다, 랜*로바. (랜*로바는 신발이름이기도 하지만, 영국산인가요? 유명한 4륜구동차의 브랜드명이기도 하지요 아마?)
흙탕물인지 뻘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의 길로 과감하게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로 헤쳐 나갈만 하기는 한데, 무엇이 뒤에서 잡아 당기는 듯한 그 느낌, 마치 산신이 있어 이 길은 내 허락 없이는 갈 수 없다는 식으로 뒷 바퀴에 그 무엇이 올라 탄 듯 하기도 하고, 땅에서 바퀴를 잡고 안 놓아 주는 듯 하기도 하고, 기어도 바꾸고, 깊은 심호흡에 페달을 강하게도 밟아 보고, 부드럽게도 밀어 보곤 하지만, 영 쉽지가 않다.
어려운 진흙길을 헤쳐 올라가니,
산능성이를 따라 편안하게 조성된 임도가 계속 연결되어, 제법 편하게 잔차질을 즐길 수 있다. 너무 신나는 잔차질이다.
저 아래로 계곡과 마을들이 보이고, 탁 트인 전망은 일주일 동안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비친 인공적인 산물만을 보거나, TV를 통해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의 모습만을 보게 된 아프고 피곤한 눈을 쉬게 하기에는 그만이었다. 초록의 대지와 푸른 하늘이 자연인으로 돌아가게끔 하는 광경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제 정상에 거의 다 왔다.
정상을 목전에 두고서는, 완만한 구릉지와 급경사면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또 이마를 찌푸리게 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유명산 이 정상 까지, 4륜구동 동호회 사람들이 와서, 급경사면을 탈출하는 연습도 하고, 디젤 매연도 방구 뿡뿡 뿜어 내고 있는 게 아닌가.
분명, 이 임도 입구 출입문에는 4륜 구동 동호회는 들어 가지 마시오 라고 적혀는 있는데, , ,
급한 경사면의 자전거 업힐 중에 위에서 4륜구동차 하나가 다운으로 내려온다. 업힐 중인 잔차가 계속 치고 올라갈 길이 없다, 차량 하나 다닐 임도니까. 잔차 업힐은 중간에 한번 서면 다시 출발이 어렵다. 이런 몹쓸 자동차들, 그것도 이 산중에 와서, 길도 아닌 경사면에서 뿡뿡거리며, 오르락 내리락 연습을 하다니. . .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할 동반자이며, 나 또한 대자연의 한 부분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인지. . .
어떤 이는 자연과 호흡하기 위해, 맨 손으로 산을 오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힘만으로 산을 오르자며 잔차를 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힘이 부족한지, 기어이 화석연료에 불 붙여가며, 인공물의 결집체 자동차를 끌고 이 산에 까지 와서 산등성이 깎아먹고, 매연방구나 붕붕끼고, 뭐 재미있다고 히히덕 거리는지.
그 사람들은 산에서 입술 옆으로 흘러 들어가는 땀방울이 짠 맛인지 알기나 하는지. 정말 비 오듯 쏟아져 내리는 땀방울에 눈이 매워, 잔차질을 멈출 수 밖에 없는 순간의 희열을 알런지, , , ,
유명산 정상을 앞두고서 잠시 기분이 불쾌해진다.
다신 유명산 정상을 향해, 업힐이다. 제법 경사가 깊은 언덕을 잔차로 올라본다. 평상시 같으면 생각도 못해 볼 업힐이겠지만, 임도라 길이 넓고, 주변이 탁 트여 상쾌하게 도전해 볼 만 하다. 타고 갈 수 있는 곳 까지라도 업힐이다. 어떤 이는 지속적이고 일정한 페달링으로 기어이 그 업힐을 성공해 낸다. 어떤 이는 몇차례의 도전 끝에 업힐을 다 한다.
옆에서 구경하는 우리는 박수도 쳐 주고, 힘내라고 격려도 해 준다. 나를 포함한 어떤 이는 끌고 오르기도 한다.
끌고 올라도 좋고, 힘껏 요령껏 타고 올라도 좋은 유명산이구나.
마지막으로 짧고 진한 다운힐 하나 하고, 짧고 진한 업힐 하나 하니, 이곳이 바로 해발 800여 미터 되는 유명산 정상 ! ! !
산은 높아 보이지 않는데, 그 자리잡음이 딱 풍채 좋은 장군의 모습인 듯 하다.
산 위에서 사진도 찍고, 여기 까지 무사히 올라온 것을 서로 인사나눈다. 그리고는 맛난 점심으로 김밥을!
평소에 담배를 끊지 못해, 계속 담배를 피고 있는데, 올라오는 길에 보니까, 역시 피스톤 운동을 하는 허벅지나 종아리는 아직도 건재한데,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 주는 흡기장치가 시원치 않아, 금연, 금연 속으로 이렇게 되새기며 올라 왔건만,
간사한 게 인간이라고, 이제 한 숨 돌릴만 하고,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까, 손이 다시금 슬슬 담배쪽으로 향하고 있구만.
요사이 봄철에는 특히 산불을 조심해야 하겠기에, 담뱃재에도 신경을 쓰며,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유명산 정상에서 연기를 피워 올렸다. 언제나 끊을텐가, 이 담배를?
식사 후에는 이제 올라 왔던 길로의 신나는 다운만이 남았다.
웨이백 자세를 확실히 잡고, 아까 끌고 올라왔던 그 험한 경사로를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에도 끌고 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넘어질 때 넘어지더라도 마음 굳게 먹고, 내려가자.
그런데, 어, 이게 아닌데, 나도 다운힐은 연습을 좀 했다고 했는데도, 어, 어, 위험하다.
다른 이들은 미리 안장도 좀 낮추고 하던데, 나는 뭐 안장을 굳이 낮춰, 밸런스 잘 잡고, 웨이 백 잘하고, 멀리 표적지를 바라보고, 앞 뒤 브레이크의 힘을 적정히 배분하고, 슬립 나는 것에 조심하고, 이러고 내려가면 되지.
그래도 쉽지는 않다. 뒷 바퀴의 타이어를 갈던지 해야겠다. 슬립이 쫙쫙 일어나는 게 어떤 때는 재미있지만, 어떤 때는 섬찟 위험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계속 내려가야 한다. 내가 여기서 서거나 넘어지면, 내 뒤에 간격을 두고 따라 오는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아주 짧은 순간이겠지만, 길게 느껴진 급경사 다운힐이다. 무사히 내려왔다. 앞으로는 완만한 경사의 다운이니까, 잘 갈 수 있겠군.
그런데 그게 아니다. 내리막인 것 까지는 좋은데, 이게 다 흙탕물이고 진흙길이다. 쏜살같이 다운하면, 얼굴이며, 등이며, 엉덩이며, 가슴이며, 잔차 전체며, 온통 머드 택을 하게 된다.
에라 모르겠다. 이러나 저러나 잔차도 닦고 몸도 닦아야 되니. 쏘자. 이럴 때 안 쏘면 언제 쏘냐?
젖은 림에 브레이크 능력 감소되는 몫을 감안하고 내리 쏘는데, 역시 젖은 상태에서는 디스크 브레이크가 훨씬 나은가 보다. 내가 내리 쏘는 것 보다 더 쏘는 분이 있다. 저 앞 코너에서 감속을 어떻게 하려고 하나 하고 보니, 디스크 브레이크다. 역시나.
나 내려온 몰골이 말이 아니다. 완전히 흙으로 뒤집어 썼으니, 마치 모내기철에 논에서 미끄러져 빠진 모양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운하신 분들은 신발 주변에만 흙탕물이 튀었고, 멀쩡하다. 정말 같이 유명산을 갔다 온 사람이 아닌 듯이 말이다.
이제 흙이 마르면 차 속에 흙먼지를 일으키겠구만, 잔차는 또 언제 다 닦지? 집에 가면 내 손으로 또 빨래를 해야 하는구나.
다 내려오고 나니까, 별 생각이 다 드는구만.
하루를 정말 즐겁게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막국수 한 그릇과 동동주 한 사발까지, 깔끔한 뒷 마무리!
여러 사람들이 안전하게 편하게 즐겁게 잔차를 탈 수 있도록 준비하고 배려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던 번장이신 레드맨님과, 눈이 보이게 안보이게 서로 돕고 챙기고 하신 모든 분들에게 글로나마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이번 주에는 어느 산으로 또 한번 행장을 차려볼까나? 벌써부터 주말에 산악잔차질 하러 갈 궁리에 집사람 재가를 어떻게 받나 목하 고민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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