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게 '일주'라고 할 수는 없고, 그저 '머무르며 둘러보았다' 정도의 표현이 적당한 것 같습니다. 대단하게 자랑할 것도 없지만, 전무했고 또 후무할 것이 분명한 경험인 것 같아 이렇게 흔적을 남겨 봅니다.
저는 여러 모로 초보자입니다. MTB는 작년 여름에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적/공간적 여건이 안 좋았고 또 게으르기까지 해서 전라남도로 떠나기 전까지 총 주행 거리가 200km도 안 되었습니다. 산에 가본 적은 한 번도 없고 오프로드다운 오프로드도 못 달려봤습니다. 이 사이트에는 거의 매일 들렀지만 글을 쓴 적은 Q&A 게시판에 프레임 종류, 브레이크 손상 관련 질문 두 번 올린 것이 전부입니다.
지금 이 글에 사진은 없습니다. 사실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슬라이드 필름으로 세 롤 정도를 찍어 왔는데 떠나기 전에 '필름에 담지 말고 뇌와 심장에 담자'는 다짐 아닌 다짐을 했던 관계로, 죄송스럽게도 '사진다운 사진'은 뇌와 심장에 있습니다. 나중에 현상한 필름을 보고 재미있는 컷이 있다고 생각되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한 달 병가를 내고 집에서 열흘 정도를 쉬었습니다. 질환인지 누구나 느끼는 피로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너무나 안 좋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코피가 너무 자주 났고 심지어 잠자리에서 소변을 가리지 못하기까지 했습니다. 거의 매일 마시는 술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2년 내내 액체에 가까운 설사를 했고 스트레스를 잘 참지 못하는 탓에 성격은 파탄 직전이었습니다. 이제 서른 한 살인데 삶이 참 곤고하다는 생각에 서글퍼지기까지 했습니다.
고민 끝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그 사직서는 몇 차례의 술자리를 거쳐 한 달 병가가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간단하게 진단을 받았는데, 병원에 가면 누구나 듣게 되는 '안정을 취하라'가 전부였습니다. 병가의 근거가 된 질환은 과민성 대장증상과 황달이라고 불리는 간 질환. 집에서 일주일 정도를 쉬었고 강원도로 3박 4일 여행을 떠났습니다. 집에 돌아와보니 참 허망하더군요. 육체가 건강해진 것도 아니고 정신이 맑아진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는 전라남도 함평으로 떠났습니다. 4월 4일, MTB 한 대 싣고서 말이지요.
오후 9~10시 취침, 오전 6~7시 기상. '시골 밥그릇'에 가득 담긴 밥과 온갖 나물 반찬. 햄버거 따위의 주전부리는 일체 없었고, 스스로 믿어지지 않게도 일주일 동안 소주 한 잔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두 갑 정도, 마감 때(참고로 저는 여행/레저/스타일을 주 컨텐츠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잡지의 기자입니다)는 세 갑 정도 피우는 담배도 거의 3분의 1로 줄었으며 담배 한 개비당 니코틴/타르 양도 거의 그(말보로 미디엄 -> 레종)만큼 줄었습니다. 정말 건강해지는 것이 몸으로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매일 두 차례씩 시골집 근처를 돌았습니다. 아스팔트, 콘크리트 등의 온로드도 있었고 산길은 아니었지만 울퉁불퉁한 시골집 오프로드도 있었습니다. 신나게 달렸습니다. 달리다가 힘들면 천천히 달리고, 그것도 힘들면 내려서 쉬면서 담배 한 개비 피워 물고. 힘이 생기면 또 무작정 달리고. 혼잣말로 소리를 내어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했을 정도로 정말 행복했습니다. 특별하게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온로드의 경우는 평균 시속 20km, 오프로드의 경우는 평균시속 8~10km 정도였고 하루 총 주행 거리는 60~80km 정도였습니다.
시골집에서 함평 읍내까지는 8km였는데 가는 길이 참 여러 갈래더군요. 김정환 시인의 '기차에 대하여'라는 시를 거의 외울 정도로 참 좋아했습니다. 시 구절 중에 하나가 '길은 단 하나이며 일관된 길이다'인데요, 길은 단 하나가 아니며 일관된 길 역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백무산 시인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달리는 말에게 필요한 땅은 말 발굽이 딛는 면적뿐이 아니'라는 것을 오장육부로 느꼈습니다. 오버센스이기도 했지만, 평소 기회주의적인 언행에 대해 변명/해명을 하는 후일담, 회고록 따위를 병적으로 싫어했던 관계로 제 나름대로는 대단한 생각/느낌이었습니다. 모두가 맑은 공기와 시원한 길, 아름다운 산과 들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가 많이 다니는 온로드는 피해다녔습니다. 시골이 좋은 것은,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온로드가 참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도나 지방도인 경우도 있었지만 지도에 표시조차 되지 않은 '마을 도로'도 참 많았습니다. 벚꽃이 지는 철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꽃 중의 꽃은 벚꽃이더군요. 거의 똑같은 산, 마을, 도로, 논과 밭이었지만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그리고 한 번 날 때마나 1~20분씩 3~4차례나 흘렸던 코피가 거짓말처럼 멎었습니다. 물론 잠자리 소변도 멎었고, 설사 역시 일주일 만에 멎었습니다. 검게 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안색 역시 좋아진 것 같았고 근력까지도 좋아졌습니다. 정말이지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깨끗한 음식과 규칙적인 식사, 충분한 휴식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지내고 있는데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녀석도 공식적으로는 '병가' 상태였습니다. 참 공교로운 것이, 녀석은 저와 동갑이며 저와 마찬가지로 잡지(시사 종합지)에서 기자 노릇을 하던 중에 병가를 냈다는 사실입니다. 녀석도 총체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많았지만 공식적으로(?)는 부신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녀석에게 내려와서 같이 요양을 하자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4월 9일, 그렇게 녀석은 내려왔습니다. MTB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무리를 해서 장만했다는 자전거를 한 대 끌고서 말이지요. 그리고 여기서부터 영화 <knocking on heaven's door> 같은 두 병자 청년의 전라남도 순례기가 시작됩니다. 함평, 광주, 나주, 무안, 목포, 영암, 해남, 완도, 강진, 장흥, 순천, 여수 등. 거의 모든 전라남도 땅을 두 다리와 두 바퀴로 밟고 다녔습니다.
쓰다 보니 글이 무척 장황해졌네요. 쓰는 저도 지칠 정도니까요. 나중에 시간이 나면 그 때마다 기억을 조금씩 더듬어 보겠습니다.
서울에 와서 출근을 하루 앞두고 있는 지금, 육체도 정신도 한 달 전으로 똑같이 돌아온 것 같아 무척 속이 상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그 때를 떠올려 보니 힘이 납니다. '후기'의 좋은 점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러 모로 초보자입니다. MTB는 작년 여름에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적/공간적 여건이 안 좋았고 또 게으르기까지 해서 전라남도로 떠나기 전까지 총 주행 거리가 200km도 안 되었습니다. 산에 가본 적은 한 번도 없고 오프로드다운 오프로드도 못 달려봤습니다. 이 사이트에는 거의 매일 들렀지만 글을 쓴 적은 Q&A 게시판에 프레임 종류, 브레이크 손상 관련 질문 두 번 올린 것이 전부입니다.
지금 이 글에 사진은 없습니다. 사실 카메라를 가지고 가서 슬라이드 필름으로 세 롤 정도를 찍어 왔는데 떠나기 전에 '필름에 담지 말고 뇌와 심장에 담자'는 다짐 아닌 다짐을 했던 관계로, 죄송스럽게도 '사진다운 사진'은 뇌와 심장에 있습니다. 나중에 현상한 필름을 보고 재미있는 컷이 있다고 생각되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한 달 병가를 내고 집에서 열흘 정도를 쉬었습니다. 질환인지 누구나 느끼는 피로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너무나 안 좋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코피가 너무 자주 났고 심지어 잠자리에서 소변을 가리지 못하기까지 했습니다. 거의 매일 마시는 술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2년 내내 액체에 가까운 설사를 했고 스트레스를 잘 참지 못하는 탓에 성격은 파탄 직전이었습니다. 이제 서른 한 살인데 삶이 참 곤고하다는 생각에 서글퍼지기까지 했습니다.
고민 끝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그 사직서는 몇 차례의 술자리를 거쳐 한 달 병가가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간단하게 진단을 받았는데, 병원에 가면 누구나 듣게 되는 '안정을 취하라'가 전부였습니다. 병가의 근거가 된 질환은 과민성 대장증상과 황달이라고 불리는 간 질환. 집에서 일주일 정도를 쉬었고 강원도로 3박 4일 여행을 떠났습니다. 집에 돌아와보니 참 허망하더군요. 육체가 건강해진 것도 아니고 정신이 맑아진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는 전라남도 함평으로 떠났습니다. 4월 4일, MTB 한 대 싣고서 말이지요.
오후 9~10시 취침, 오전 6~7시 기상. '시골 밥그릇'에 가득 담긴 밥과 온갖 나물 반찬. 햄버거 따위의 주전부리는 일체 없었고, 스스로 믿어지지 않게도 일주일 동안 소주 한 잔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두 갑 정도, 마감 때(참고로 저는 여행/레저/스타일을 주 컨텐츠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잡지의 기자입니다)는 세 갑 정도 피우는 담배도 거의 3분의 1로 줄었으며 담배 한 개비당 니코틴/타르 양도 거의 그(말보로 미디엄 -> 레종)만큼 줄었습니다. 정말 건강해지는 것이 몸으로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매일 두 차례씩 시골집 근처를 돌았습니다. 아스팔트, 콘크리트 등의 온로드도 있었고 산길은 아니었지만 울퉁불퉁한 시골집 오프로드도 있었습니다. 신나게 달렸습니다. 달리다가 힘들면 천천히 달리고, 그것도 힘들면 내려서 쉬면서 담배 한 개비 피워 물고. 힘이 생기면 또 무작정 달리고. 혼잣말로 소리를 내어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했을 정도로 정말 행복했습니다. 특별하게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온로드의 경우는 평균 시속 20km, 오프로드의 경우는 평균시속 8~10km 정도였고 하루 총 주행 거리는 60~80km 정도였습니다.
시골집에서 함평 읍내까지는 8km였는데 가는 길이 참 여러 갈래더군요. 김정환 시인의 '기차에 대하여'라는 시를 거의 외울 정도로 참 좋아했습니다. 시 구절 중에 하나가 '길은 단 하나이며 일관된 길이다'인데요, 길은 단 하나가 아니며 일관된 길 역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백무산 시인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달리는 말에게 필요한 땅은 말 발굽이 딛는 면적뿐이 아니'라는 것을 오장육부로 느꼈습니다. 오버센스이기도 했지만, 평소 기회주의적인 언행에 대해 변명/해명을 하는 후일담, 회고록 따위를 병적으로 싫어했던 관계로 제 나름대로는 대단한 생각/느낌이었습니다. 모두가 맑은 공기와 시원한 길, 아름다운 산과 들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가 많이 다니는 온로드는 피해다녔습니다. 시골이 좋은 것은,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온로드가 참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도나 지방도인 경우도 있었지만 지도에 표시조차 되지 않은 '마을 도로'도 참 많았습니다. 벚꽃이 지는 철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꽃 중의 꽃은 벚꽃이더군요. 거의 똑같은 산, 마을, 도로, 논과 밭이었지만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그리고 한 번 날 때마나 1~20분씩 3~4차례나 흘렸던 코피가 거짓말처럼 멎었습니다. 물론 잠자리 소변도 멎었고, 설사 역시 일주일 만에 멎었습니다. 검게 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안색 역시 좋아진 것 같았고 근력까지도 좋아졌습니다. 정말이지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깨끗한 음식과 규칙적인 식사, 충분한 휴식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지내고 있는데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녀석도 공식적으로는 '병가' 상태였습니다. 참 공교로운 것이, 녀석은 저와 동갑이며 저와 마찬가지로 잡지(시사 종합지)에서 기자 노릇을 하던 중에 병가를 냈다는 사실입니다. 녀석도 총체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많았지만 공식적으로(?)는 부신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녀석에게 내려와서 같이 요양을 하자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4월 9일, 그렇게 녀석은 내려왔습니다. MTB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무리를 해서 장만했다는 자전거를 한 대 끌고서 말이지요. 그리고 여기서부터 영화 <knocking on heaven's door> 같은 두 병자 청년의 전라남도 순례기가 시작됩니다. 함평, 광주, 나주, 무안, 목포, 영암, 해남, 완도, 강진, 장흥, 순천, 여수 등. 거의 모든 전라남도 땅을 두 다리와 두 바퀴로 밟고 다녔습니다.
쓰다 보니 글이 무척 장황해졌네요. 쓰는 저도 지칠 정도니까요. 나중에 시간이 나면 그 때마다 기억을 조금씩 더듬어 보겠습니다.
서울에 와서 출근을 하루 앞두고 있는 지금, 육체도 정신도 한 달 전으로 똑같이 돌아온 것 같아 무척 속이 상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그 때를 떠올려 보니 힘이 납니다. '후기'의 좋은 점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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