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드디어 대망(?)의 첫 해외 원정길에 나서 인천 공항서 아침 10시발 도쿄행 아시아나항공의 여객기에 오른 우리 부부는 바이커복 차림 이여서 공항에서는 물론 여객기안에서도 많은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심지어 어떤이는 `무슨 대회에 출전하러 가느냐?`며 묻기도 했다.
젊은이들의 시쳇말로 정말 너무 `쪽`을 많이 팔고 다닌 셈이니 우선 낯이 뚜꺼워도 보통 뚜꺼워서는 안될 일이다.
장거리 여행중에는 어쩔 수 없이, 때로는 10여킬로 무게의 잔차가방을 어깨에 메야하는 일도 있는 만치 짐을 최대한 줄여야하는 절대적인 제약조건 때문에 가능한한 부담 안되는 잔차 베낭만을 메고 가야하므로 핼멭에서 부터 알록달록한 튀는 색상의 기능성 의복, 신발에 이르기까지 평소의 라이딩 차림 그대로 였기 때문이다.
나리따공항에 도착, 두 잔차가방을 찾아 미리 대기중인 셔틀버스에 싣고 고속도로를 한시간 반가량 달려 심바시의 도쿄인호텔에 체크인.
아예 잔차가방을 그대로 방안까지 가져갔는데 이 곳은 비지니스용 호텔이어서 좁은 방안 좁은 통로에서 잔차를 꺼내 국내여행 때 처럼 뒷 드레일러까지의 조립을 끝내고 항공편 여행에서만 해당되는, 탑승전에 대폭 낮췄던 타이어의 공기압을 정상수준까지 회복시키는 펌핑까지 끝낸 하오 3시가 넘어 라이딩길에 나설 수 있었다.
이날 계흭코스는 황궁을 거쳐, 자유여행인 만큼 여유있는 귀로를 위해 미리 도쿄역을 답사하고 스포츠 용품거리인 오가와마치를 둘러 보는 것 등.
집사람의 경우 최근 늘그막에 만도린 연주 재미에 빠진데다 합주회도 잦아 연습에도 쫒겨 더욱 잔차 타기도 어려워 거의 못 탄데다 잔차 운전 경력이 너무 짧은 만치 아직 기어조작도 제대로 못하는 실력이라서 일부러 첫날 코스는 아주 짧게 잡은 것이다.
우선 인터넷서 프린트한 지도등을 점검하며 도꾜역을 향해 북상했는데 도쿄가 해안도시라선지 부산처럼 공기가 쾌적해 상쾌했고 왕복 6차선인 중앙통 남북 길은 양쪽 인도도 3차선정도로 넓어 구태여 차도로 달릴 필요도 없어 인도만 택해 달리니 분당의 탄천처럼 안전한 느낌.
하기사 출국전까지 애들도 `엄마실력으로 어떻게 해외 라이딩을 할 수 있느냐? 이 번에도 아빠가 너무 무리하게 유도하는 것 같다`라는 반응들이 였고 또
당사자도 `도쿄는 교통이 매우 붐비는 곳이다.`며 `아예 여행을 포기하고 싶다.`느니, `여차하면 잔차는 호텔에 두고 다른 관광객들을 따라 붙겠다.`며 걱정하느라고 출국 전날 밤잠까지 설쳤고 심지어 이 곳 호텔에 와서도 안절부절해 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계속 잔차길 사정을 물어 보다 내게 핀잔을 받기도 했으나 막상 시가지를 달리면서부터 한결 마음이 놓여선지 표정도 밝았고 또 패달질도 경쾌해 보였다.
황궁입구에 이르자 우회전 길 끝에 이곳서 좀처럼 보기 힘든, 옛 건축물 스타일의 붉은 벽돌 건물이 보여 한눈에 도쿄역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역사주변은 역시 예상대로 열차의 종류만큼이나 복잡했다.
그도 그럴것이 여러 노선이 지하와 지상으로 나뉘어 있는데다 입구마저 역사 밖과 안으로 분산되어 있어 초행객들로서는 좀 난감할 지경.
일단 집사람에게 잔차를 맡겨 놓고 행인들을 붙잡고는 서툰 영어로 `가이쇼크 에어포트 나리타행이 어디냐?`고 물어 댔다.
출국전에 인터넷으로 일본관광전문사의 정보로 나리따공항 행 전철이 3종류나 있고 그 가운데 화물(잔차가방)을 싣기에 좋고, 값도 비교적 저렴(1280엔-우리돈으로는 1만3천원정도, 익스프레스(60분소요)는 3140엔, 매시간 운행하는 케리세이는 980엔)하면서 운행시간이 비교적 짧은 편이면서도(1시간 25분) 또 배차간격이 짧은(30분)것은 `가이쇼크(쾌속)`인 것을 확인 해 뒀기 때문이다.
한 중년신사가 가리키는 대로 역사앞 지하도로 들어 가보니 역사밑이 온통 광장이고 한쪽에 열차표 자동판매기와 역원이 있는 창구가 있는데 열차시간과 요금표는 너무 복잡하고 또 일본 글이어서 짐작도 어렵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자동개찰구와 이를 지키는 역원도 보여 다가가 개찰구를 가리키며 `가이쇼크 에어포트 나리따 오케이?`라고 물어 보자 `그렇다.`는 대답.
이렇게 귀로를 확인하고는 역광장 위로 올라와 집사람과 다시 북상길에 올라 `오가와마치`로 향했다.
중간에 길을 묻기위해 흔히 사용한 용어는 `오케이?`, `노?`, `스트레이트`, `턴 라이트`, `턴 레프트`, `원 블록`, `투 블럭` 정도로, 작년말 사전 답사를 겸해 선박편으로 갔던 북경에서 보다 훨씬 의사소통이 쉬었다.
그리고 차도로나 인도로 여행길에 나선듯한 차림의 일본인 젊은 바이커들과 여러차례 조우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우리나라처럼 화려한 의상이 아닌, 수수한 색상의 상의에 무릅이 덮이는 짧은, 일반 바지차림에 전용 핼멭과 신발에 별로 바싸지 않게 보이는 잔차를 타고 있는 듯 해 국산 유니폼을 입은 필자로서도 결코 손색이 없었다.
또 이 곳서는 MTB나 싸이클을 타는 사람은 거의 모두가 20대 청년들로 여성이나 장년층은 3일동안 단 한명도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곧바로 스포츠거리에 당도, 우선 지나가는 MTB바이커를 붙잡고 물어서 MTB가게를 찾으니 딱 한 곳 뿐인데다 값을 알아 보니 우리나라에 비해 싸지도 않은 편인데다 마음에 드는 유니폼도 없어 그냥 나왔다.
아침 겸 점심을 10시반께나 돼 기내식으로 떼운 만치 시장끼를 느끼던 차에 길가의 임시 입간판에 `250엔 운운`이라고 써 놓은 만두집을 발견, 두 잔차를 차도경계 철책에 메두고 들어 가 봤더니 마치 열차처럼 안으로 길쭉한 미니 가게고 이상한 차림의 우리 부부를 반가이 맞는 40대후반 아줌마에게 입간판을 가리키며 둘을 주문하고는 길다란 주방에 붙은 길쭉한 식대앞에 나란히 앉아 있으니 아주 작은 모양의 만두 8개씩이 가지런히 놓여진 접시 둘과 국물 두 그릇이 나왔는데 만두 맛도 뛰어난데다 국물 맛은 일품.
아무래도 양이 모자랄것 같아 주방대 위의 메뉴표를 보니 메뉴 이름은 일본 글이어서 알 수 없고 값은 500엔에서 800엔정도 까지.
마침 안쪽에 두 청년이 볶은 밥과 라면이 함께 나오는 메뉴를 먹고 있어 다가가 손짓으로 `이 음식이 어느 것이냐?`고 물으니 식대위 유리칸막이에 붙여진, 650엔짜리를 가리켜 이 것도 1인분 시켰는데 이 또한 맛이 뛰어나 우리는 아주 만족해 했고 일본인 특유의 싹싹하기 이를데 없는 주인 아줌마의 문밖 전송까지 받았는데 뒤에 안 일이지만 이 여주인은 집사람에게서 `사요나라`를 한국말로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하는것도 물어서 배웠다는것.
인근 진보쵸의 고서적가게 구경까지 덤으로 하고는 귀로에 올라 계속 남진하다가 황궁 남쪽의 공원에 이르러 앞바퀴의 공기압이 좀 부족한것을 발견, 펌퍼로 보충하려 했으나 오히려 공기압이 더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 집사람에게 넓디 넓은 공원 라이딩을 즐기게 해 놓고는 펑크여부를 점검해 봤으나 이상이 없는데 공기압이 오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예비 튜브로 갈아 끼웠다.
이 통에 어느새 땅거미가 짙어져 라이트를 꺼내 달고는 계속 남진, 사거리 한가운데의 표지판 `新橋四丁目`을 찾아 내려와 호텔입구 길로 들어서자 길가의 5평 남짓한 조그만 담배가게가 술 손님이 떠드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소위 `다찌노미집`으로 마침 연휴를 앞둔 금요일 밤이어선지 그 좁은 가게안에 30여명이 한 가운데에 놓여 진, 좁고 길죽한 탁자를 2중으로 빙둘러싸고 모두 선채로 떠들면서 술을 마시느라고 북적되고 있어 발 디딜틈도 없다.
가게문 바로 안쪽의 초등교 책상보다 작은 카운터에도 잔술과 간단한 안주들을 놓고 30대후반의 한 신사가 벽을 등지고 서서 혼자 술잔을 기우리고 있는데 그 앞에 여유가 좀 있는 듯 해 기웃거렸다.
이 신사는 눈치를 채고는 말을 건네 왔는데 우리 말로 `한국에서 오셨느냐?`다.`
집사람과 겨우 다가서서 붙는, 합석아닌 합기(?)로 생맥주에 고급 소주, 정종을 그 교포 신사와 주거니 받거니까지 하며 마셨다.
술값은 생맥 250CC조끼 둘에, 간장 그릇 같은 종재기에 담아주는,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사양(?)의 사라다나 소시지 토막, 골뚜기새끼등까지 500엔, 언더럭스 소주는 한잔에 200엔, 정종은 찬술로 보통의 맥주컵에 3백엔, 그래서 생맥은 우리돈으로 5천원이 좀 넘으니 두배이상 비싼 셈이지만 이 가게가 샐러리맨들로 이렇게 붐비는 것은 일본도 불경기인데다 곁다리 안주등으로 결과적으로 일반 술집에 비해 매우 경제적이기 때문인듯.
그 뒤 다른 가게들 앞의 입간판에서 생맥 큰 잔(아마 500cc인듯)은 500엔, 작은 잔(250cc)은 350엔이란 글을 많이 봤다.
집사람도 기분이 좋았던지 연신 마셔 얼굴이 꾀 상기된데다 쌍용 현지법인 노총각 과장대리인 그 교포 신사가 기다리고 있던 일본인 동료 직원이 나타나는 걸 기회로 헤어져 가게밖으로 나와보니 문앞 인도에도 어느새 조그만 탁자들을 둘러싼 두 팀이 잔술 판을 벌이고 있었다.
저녁대신 이 술집 맞은편에 있는 패미리 마트에서 2년전 북해도 관광 여행때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간이 되어 있는 삶은 달걀과 큰 우유팩, 여기에 모찌를 함께 사와 저녁으로 떼웠다.
(계속-<2>는 오늘 밤과 내일 중으로, <3>과 <에필로그>는 주말께나 되어야 탈고 할 듯함. 본격적인 사진은 개인 홈피에 별도 페이지로 추가해 넣을때 첨부하겠음. 그 때를 대비, 맨위의 홈피주소 화면으로 바꿔 북마크를 해 두시면 잊지 않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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