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 엠티비 타요>
동네에서 요즘 마누라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잘난 체 하거나 뻐기는 짓따위는 전혀 못하는 우리 마누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쫄바지 입은 내 모습을 보고
충격받은 동네 아줌마들에게 변명으로 하는 소리다
<속옷 입고 다니는 거 아니예요>..라는 말이겠지
* * * *
<어머 그래요? 엠티비 비싸다던데>
<정말..백원도 넘는다면서요>
원래..옆에서 장구치면 소리가 잘나는 법
우리 마누라 오바한다
<백원이요? 에혀~ 그건 옛날 얘기죠>
<우리 애 아빠 거는 오백원도 넘어요>....--;
* * * *
<그럼 아저씨가 선수예요?>
<선수는 무슨..취미로 타시는 거겠지>
오바는 오바를 낳는 법
아줌마들의 대화에 약간 열 받은 마누라가 그만 또 오바
<우리 애 아빠 선수예요>...아미타파~
* * * *
어쨋거나 내가 시합에 나가면
마누라의 말이 거짓말은 아닌 것...
그래..마누라에게 효도할겸..
엠티비 모르는 친구넘들에게 잘난 체 할겸...
두 아들넘들에게 훌륭한 애비의 극기모습을...음~
달리다가 죽기밖에 더 하겠어?
* * * *
시합전날 돌아보는 팔공산 대회장은
4개 정도의 숨막히는 업힐과
뱀 꼬리같은 오솔길..나무뿌리 사이로 쏟아지는 다운힐
그 좁은 길에서 내가 버벅대기라도 하면 시합 엉망되는 것..
아무래도 포기해야지
아니야 맨 꼴찌로 따라가면 방해는 안될거야
완주나 하자..그래야 사진 찍어도..당당할....
* * * *
따앙!! 출발과 동시에 선두조는 까마득하고
내 앞의 후미조들도 아스라히 멀어진다
두 바퀴 도는 거니까..한바퀴만 돌고 슬쩍 빠져야지
그러나..한바퀴를 돌아서 출발점으로 오니
꼴찌로 달리는 나를 향해 박수가 쏟아진다..흑~
당신같으면..빠질수 있겠어?...
* * * *
코구멍으로 심장이 삐져 나올 정도로 숨가쁜 업힐
사실은 끌고 가는 중이지만...--
자전거를 끌며 드디어 한 사람을 추월한다..
그러는데 등뒤에서 들리는 그 분의 충격적인 멘트
<무..물..좀 주세요>
* * * *
약간 되 돌아 가서 물병을 따 준다
<천천히 드세요>
병을 뜯어 먹을 듯이 물을 마시는 그분...
안됐다..돈 생기는 짓도 아닌데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 분을 버려두고 먼저 가는 게 미안하다
이거..시합하는 자세 맞는 거야?...--
* * * *
거의 결승점 3키로를 앞 두고
갑자기 탈진할 듯 기운이 빠진다
이 나이 되도록 육체의 능력을
비교하는 시합에는 나가본 적이 없는 신세
몸안의 에너지원이 완전연소된 듯
찌꺼기하나 남은 것 같지 않다
주머니에서 비상용 쵸코렛 두 개 중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업힐..
침과 쵸코렛이 섞여 목으로 넘어가며
탈진했던 근육세포가 약간씩 기운을 차린다
* * * *
고개 중간쯤 보니,,한분이 반 죽어 가고 있다...^^;
보아하니 나같은 탈진상태
<쵸코렛 하나 드려요?>
<예>
그분도 염치 가릴 정신이 없었나보다
사양 전혀 안 한다
* * * *
<좀 밀어 드릴까여?>
<쉬었다 가세요>
이런 소리를 하면서 난 결국 완주를 했다
내가 출전한 등급이 그랜드 마스터급...
속도로 승부할 분들은 하실테지만
축제의 기분으로 참가하는 것 또한 즐거운일 아닌가
22명 출전 선수중 대략 10 몇위를 한 것 같은데
꼴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 * * *
시합후에 이태등님이 찍어 준 사진은 환상이었다
시합 하기 전보다 약간 거만해 보이기 조차 하다
가슴까지 튀어 오른 흙탕물자국
거친 레이스를 마친듯한 흙투성이 자전거
역전노장처럼 인상쓰고 있는 모습
기분 같아서는 <찌라시>로 만들어 뿌리고 싶다...- -v
사진에 뭐 등수 나오냐...?
* * * *
마누라는 이 사진을 액자에 넣어 거실에 놓고
어느날 반상회라도 할 것이다
나는 마누라 말대로 분명히 엠티비 선수임이 확인될테고
이제 가끔 쫄바지 입고 나가다 들켜도
변태 영감으로 보지는 않겠지
* * * *
아직 시합에 출전해 보지 못한 분들..
꼭 한번 나가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완전연소같은 타오름의 느낌..짜릿하다
육체의 환희라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으면
영생불사의 천사들 조차 생명을 포기하고
인간의 몸을 선택하여 네피림이 되었을까?
* * * *
혹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동네에서 마음 편히 쫄바지 입고 싶은 분들..
번호판 붙은 사진 한방이면 쥐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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