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10시쯤 말발굽님이 번짱인 210키로 투어 번개를 마치고 잠실벌을 벗어
나 지친 몸을 차에 실었다. 동부간선도로를 따라 집으로 향하며 참 많은 생각
이 떠 올랐다. 고마운 사람들, 우연히 만남 효정(?)이 아빠 토담님 그리고 무엇
보다도 가슴아픈 여러 가지 상처가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이 자리를 빌
어 먼저 황바이크님의 쾌유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부디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랍
니다. 아침에 기상하니 지금 오전 7시. 잠자리에서 나와 투어후기 쓰기 위해
피시로 향하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내일이면 210키로 내 한계에 도전하는 날이다. 저녁부터 이것저것 챙기
면서 무게를 생각하여 넣다 빼기를 반복한다. 과연 내가 이들과 합류할 수 있
을지 근심스런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5시, 잠실벌로 약속시
간 6시 30분 보다 30분 일찍 나갔다. 고수님들께 인사로 먼저 예의를 갖추기 위
함이었다. 웹상에서 익숙한 이름들이 불리며 서로가 인사를 나눈다. 먼저 다정
한 인상의 소유자 벙그리님께 내가 다가가 묻는다. “저는 사실 평지에서 평균
25-30키로 나옵니다. 이 정도로 참여할 수 있을 지요”, “솔직하시군요. 그 정도
면 무난하고 충분하지요. 걱정 마세요”, “그렇습니까. 정말 다행이군요. 제일
후미에서 갈 것이 뻔하니 잘 부탁드립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벙그리님의
이 말을 순 거짓이었다. 기념사진 한 장 박고 번짱님의 지시로 모든 라이더들
잠실벌을 지나 워커힐로 향한다. 선두와의 간격이 조금 벌어져있다. 구리에서
양평으로 가는 강변로 선두와 100미터 차이. 속도계를 보니 내 시속 30에 육
박. 이미 내 한계 수위에 도달했다. 앞으로 민폐기칠 일들이 파노라마
로 스쳐 지나갔다. 평소 좀 더 강도 높은 연습 필요성 절감. 그리고 장거리 투
어니 만큼 열등감에 무리하면 포기가 앞당겨진다는 사실을 초보지만 알고 있
었다. 벌써 그들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 혼자만의 라이딩을 즐길결심
을 하고 랄라룰루 노래부르며 진행. 30키로 지나 팔당대교 밑에서 일행들 대기
하고 있다 나 때문에 일정이 늦어지면 어떡하지. 민폐나 끼치지 말아야하는데
정말 시작부터 불길하다. “다음은 양평 ~~에서 아침 식사합니다. 모두 출발합
시다.”라는 번짱님의 지시와 함께 힘찬 페달링이 시작된다. 아무리 둘러봐도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내 사정 좀 봐달라고 할 수 없고 그런들 전체적 흐름이
지연되고 에라~ 가는데 까지 가보지 뭐. 나는 계속 시속 30을 유지한다. 덕소
를 지나 강변대로. 음악을 감상하며 차창밖을 내다보던 강변을 아름다웠다. 지
금, 아득히 멀어져가며 점으로 변해가는 일행들의 모습을 보며 웬지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오며 원망해 본다. 자비도 없지. 인정도 눈물도 없는 무심한 사람
들.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는 내 마음 속절없이 외로운 투쟁이 진행된다. 어느
덧 양수리 지나 국수역이다. 조금만 더가면 양평. 첫 번째 고개를 오르려니 배
가 고프다. 일행의 행방도 묘연하고 배도 고프고 벌써 포기다. 지금 이동거리
55키로. 앞으로 더욱 빡센 라이딩이 이어질 것이고 더구나 비슬고개라는 복병
을 내가 어떻게 이겨내리. 에라~ 포기다. 어디 가서 설렁탕이나 먹고 집으로
간다. 음식점을 찾아 뒤를 기웃거리는데 뒤에서 누군가 언짢은 표정으로 고개
를 향해 페달링을 하고 있다. 다가가 동료임을 확인하고는 말을 붙인다. “일행
이 가는 길 잘 아시죠. 저 좀 데려가 주세요. 완주가 저의 꿈입니다. 그리고 비
록 제가 늦지만 제 옆에 있어 주시길 바랍니다. 도와 주세요.” 체면 불구하고
빌어본다. “걱정 마세요. 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라는 대답과 함께 아침식
사 장소가 바로 저 고개 위 순대국집 이란다. 이렇게 해서 난세에서 지푸라기
라도 잡게 해 주신 RedMan님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일 분이라도 늦
게 레드멘님이 나타나셨다면 난 설렁탕 먹고 말발굽님께 문자 메시지 띄우고
집으로 갔을 운명이었다. 이렇게 투어후기 쓸 수 있게 해 주심으로 레드맨님
께 지면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순대국집에 들어선 우리는 모든 고수님들의 인사를 받는다. 이들 모두는 철인
이다. 빼빼 마른 체격의 중학생부터 선수 고등학생 그리고 육순은 넘으신 라이
더에 이르기까지 정말 어느 누구하나 후미에서 함께 자연 관광할 분이 없었
다. 난간 넘어 말발굽님과 GT님 앞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는데 두 분이 용기
를 준다. 선두조에서 고수님들의 페달링과 숨결을 느끼며 배울 수 있으면 좋으
련만 업힐은 고사하고 평지에서도 기회가 없다. 오로지 사라져 가는 작은 점들
만이. 식사를 마치고 잠시 끽연시간 나는 모든 고수님들의 장단지를 본다. 저
운동으로 다져진 종아리, 장단지 그리고 팔뚝 마지막으로 저 의연한 자세. 이
모두가 내 기를 죽인다. 하늘이 노랗다. 그러나 레드맨님에게 죽으나 사나 의
지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다음은 용문휴게소에서 집결합니다. 선두 출
발합니다.”라는 구호와 함께 또다시 무시무시한 장딴지에서 용솟음 치는 페달
링이 시작된다. 다~운~~~~~힐~~~~~~~~. 그러나 마음은 계속 불안하다.
길게 쭉 뻗은 도로위로 모두들 두 무리가 아닌 한 무리로 앞서간다. 난 외로운
꼬리표. 오르막길에서도 30키로 이상이 저들의 속도다. 비록 그들의 모습은 보
이지 않지만 어차피 이 일행과 함께 완주할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안전라이딩
을 기원하며 경의를 표시 해 본다. 본격적인 용문휴게소를 향한 직선도로 입구
에서 벙그리님 빵구를 때운다. 정말 다행이다. 한 사람을 젖힐 수 있어서. 널~
널~라이딩. 그런데 직진해야 하는데 아랫길로 내려가 우회전 근데 이 길은 용
문길이 아니다. 체력이 없으면 머리라도... 괜실히 의연하게 살아오신 부모님
을 탓해본다. 이러다 길 잃겠다 싶어 다시 벙그리님에게로. 용문휴게소에 들
르니 아무도 없다. 내가 늦어 먼저 출발했나보다. 그러나 내 뒤에는 벙그리님.
마음이 놓인다. 일단 앞으로 전진. 오백미터 전진하니 일행이 기다린다. 자신
있게 대답한다. “벙그리님 빵구가 있어 늦어집니다.” 이게 웬 떡. 꼴찌 탈
피. “다음은 산음휴양림 입구에서 봅니다.” 제 삼의 집결지가 공포된다. 또 달
린다. 여전히 꼴지. 집결지에서 일행이 나를 기다린다. 그런데 내 뒤에 누가
더 있단다. 알고보니 exlim님 빵구란다. 또 고마움. 난 또 쉰다. 노을님과 잠
시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찍는다. 30분 이상 지체. 서둘러 일행 출발한다. 남
은 것은 첫 번째 난관이 비슬고개. 에라~ 처음부터 선두조에 합류한다. 기분
좋다. 번짱님 고맙게도 시속 25정도 유지한다. 그러나 얼마 안가 한 두 사람씩
나를 추월한다. 스쳐 지나가는 기류속에 여지없이 작은 내 자존심마저 파묻혀
간다. 언덕이 보인다. 겟세마네 동산이 떠오른다. 예수님께서 가시면류관을 쓰
시고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는 고통이 피부로 와 닫는다. 경건한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페달링을 해 본다. 선두조의 힘찬 페달링과 거친 숨소리도 들을
수 없는 현실. 외로운 영웅투혼. 열심히 페달질 한다. 그런데 기어 변속하기 바
쁘다. 그래도 행복하다. 빡센 업힐에서 기어변속하다 체인 멈추고 뽕페달에서
다리 못빼 넘어지길 수 십 번. 그래서 난 다리, 팔 보호대는 어디에서든 나의
필수품. 아직까지 넘어지지 않았기에. 노을님 다가와 페달링 가르쳐 준다. “이
렇게 말고 요렇게. 맞아요. 그렇게요. 계속 페달링 하세요. 자세 좋아요.” 그러
나 심장이 멎는다. 이번엔 exlim님 다가온다. “안장이 좀 낮아요. 뒷금치 페달
에 닫게 안장 조절하시고 자신에 맞는 페달링 속도가 중요하죠.” 계속 자세를
교정하며 전진한다. exlim님의 돌봄에도 난 기력이 쇠약해 진다. 드디어 낙
마. exlim님 죄송합니다. 가르친 보람도 없이. 잠시 걷는다. 앞에 레드맨님 숨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고수님의 숨소리를 들어본다. exlim님 무슨 일인지 잠
시 내려 잔차를 살핀다. 난 끌고 라이더. 그래도 오기로 다시 승마. 위에서 사
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힘이 부친다. 다시 낙마. 끄는 모습으로 고수님 앞에 선
다. 뭐. 난 자존심 버린 지 오래다. 정복자님께 인사를 한다. 잠시 휴식시간. 알
고 보니 이 곳은 3주전 왔던 휴양림 후문 쪽. 기념으로 고수님들과의 기념 촬
영. 이젠 임도 약 30키로 산음을 달려본다. 난 먼저 출발한다. 그래야 민폐를
덜. 그러나 5분도 체 안 돼 기류를 만들며 하나 둘 모두 내 옆을 지나간다. 바이
크러브님 빵구. 또 쉰다. 그런데 토담님이 나에게 다가와 몇 마디 묻는다. 대화
를 나누다 보니 효정이 아빠. 토담님! 여전히 젊게 사시는군요. 저도 이 젊게
사는 분야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토담님이 부럽습니다. 항상 건강하시
고 행복하세요. 토담님께 인생 빚을 진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기념사진 한 방. 그리고 출발. 임도에서만 빵
구 두 번. “이게 뭡니까. 달려야 하는데 언제 갑니까.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쳐
본다. 정신이 업그레이드된 의지의 kwakids. 임도의 끄트머리 exlim님 슬립으
로 오른쪽 팔 찰과상. 피가 흘러 나온다. 한 쪽은 약간 파인 곳도 있다. 말발굽
님 벙그리님 응급조치 해 주신다. 번개 진행하시는 고수님들의 무릎을 바라본
다. 여러 사투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다. 그러나 오늘은 거품 번개라 필사
의 신념이란 뜻에서 산음부터 발 보호대만 착용. 매표소 앞
도착. 그런데 레드맨님 노을님 다른 길을 헤매다 우리 일행과 상봉. 자 출발.
그런데 이번엔 번짱님 빵구. 또 쉰다.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큰 일이다. 예측
불허. 이렇게는 장거리 라이딩 어려움. 점심은 모곡 고개 전 설렁탕집이란다. 3
시가 다 되어 일행은 점심을 먹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각자 우비입고 미등
을 착용해 다시 달린다. 남은 것은 한계령보다도 빡세다는 모곡고개. 지난 번
난 고개 입구부터 끌고 갔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그래 나는 끌고 라이더라는
편한 마음 먹고 출발. 노을님 후미에서 외로운 나만의 라이딩을 계속 바쳐준
다. 고마움의 표시로 삼겹살이라도 사주고 싶었지만 앞길이 구만리라... 몇 번
의 낮은 구릉지대를 넘나들고 본격적인 업힐이다.
업힐 직전 난 지난 번 왔을 때 바로 저 두 번째 커브에서 힘들어 1시간 30분 놀
다 끌고 정상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을님 말한다. “고개를 한 번 보
고 처음부터 낙심하면 그 정상을 절대 정복을 못하죠. 일단 업힐 시작부터 가
장 높은 기어로 놓으시고 발에 힘을 빼세요. 그리고 편하게 페달링 하시면 됩
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을 보시면 절대 안 되고 흰 선만 바라보세요.” 그리
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 이야기에서 결국 주인
공은 뒤를 바라보는 바람에 사랑하는 죽은 아내를 소생시키지 못하고 평생을
자책하며 산다는 이야기. 하물며 의심 많은 나에게 가능할는지... 일단 내 마음
을 노을님에게 맡겨본다. 그리고 흰 선을 따라갔다. 삼분의 일 지점. 결국 고개
를 들어 앞을 보았다. 급커브 업힐. 절망적인 상황. 허리가 조여온다. “땅만 보
세요. 잘 올라오셨습니다.” 노을님의 목소리. 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마음속으
로 왈바 어디에선가 <업힐 오르는 법>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나 주문을 외워본
다. “넌 평지다. 그리고 조금가면 다운 힐”. “좋습니다. 힘내세요. 조금 남았습
니다. 땅만 보시고요.” 마음먹기에 따라 페달링이 정말 다르게 느껴진다. 노을
님의 한 마디가 계속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리고 계속 언덕을 오르고 있
다. 눈물, 콧물, 땀, 빗물이 머리에서 이마로 콧등을 타고 입술 아래로 끈적한
액체가 되어 땅바닥에 떨어진다. 한구비, 두 구비를 돌아보지만 고개를 들 자
신이 없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숨은 막히지만 마음이 때때로 편
안해져 페달링이 이어진다. 노을님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다 왔습니다.
고개를 드세요. 정상입니다.” 얼마나 듣고 싶던 이야기인가. 눈을 들어 앞을 내
다본다. 10미터 앞에서 일행이 우리는 맞이한다. 지친 눈이 감긴다. 그러나 페
달링은 가볍다. 노을님의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여러분 한 번도 안 쉬고 올라
왔습니다. 박수 좀 부탁합니다.” 고수님들의 박수와 환호가 이어진다. 뜻밖의
감동이다. 잠시 눈을 감고 하늘을 본다. 마음속으로 외친다. “무사히 정상을 정
복하게 해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끝나는 날까지 낙오됨 없이 완주하게 해 주
세요.”라고 기도해 본다. 그리고 노을님께 다가가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경
례로 보답했다. 어떻게 앞으로 노을님께 보답해야 할지... 말문이 막히는 순간
이다. 기
념 촬영도 잠깐. 엄청난 다운힐이 이어진다. 번짱님의 훈계가 잇따른다. “우중
이라 매우 위험합니다. 속도 내지 말고 추월하지 말고 안전 라이딩 하십시오
매우 위험한 코스입니다.” 모두 내려간다. 다운힐 중간에서 번짱님 서서 손바
닥을 아래로 내린다. 경계심을 갖고 속도 낮춘다. 다음코스 아마도 소리산 인
듯. 포장길로 약한 업힐 시작된다. 후미에서 계속 나를 돕는 노을님. 결국 엄청
난 파워도 나 때문에 발휘 못하고 체인이 중간에 절단 난다. 먼저 가서 선두보
고 기다리는 말을 전해달라며 전진하란다. 미안한 마음이지만 도움도 못되기
에 일단 앞에 가서 전하고 계속 전진한다. 다시 긴 다운힐. 아름드리 자작나무
숲이 진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 준다. 참 좋은 곳이다 차도 없고 이렇게 좋은 수
목림에 둘러싸인 아스팔트 위를 한가롭게 라이딩하다니. 30분 지체. 잠시 휴식
해 취해 보지만 왼쪽 다리와 엉덩이가 이상하다. 그래도 계속 페달링하면 훨
씬 낫다. 오히려 쉬면 고통이 심해진다. 다시 출발. 그러나 빗 길에 번짱님 넘
어지신다. 오른쪽 무릎에 찰과상. exlim님의 상처보다 좀 더 깊었다. 응급 조
치후 다시 출발. 북한강을 따라 양수리로.... 양수리로가는 북한강입구부터 극
심 정체. 조심해서 갓길로 진행한다. 한 참을 달리는데 일행이 서 있다. 황바이
크님의 사고. 잔차 앞 브레이크 파손에 라이딩이 불가능한 상황. 다행히 상처
는 가벼운 듯. 번짱님과 몇 분 남고 양수리로 일행은 전진한다. 양수리 터미널
에 집결해 기다리며 황바이크님 소식을 접하니 생각보다 부상이 심각한 상태
란다. 모두들 한숨. 지친 몸도 그렇지만 마음이 정말 찜찜하다. 황바이크님 실
은 차 도착한다. 일단 터미널 옆 의원에 응급수속을 바라보며 말발굽님과 몇
분 남고 모두 잠실벌로 향했다. 우리는 터널을 통과해 계속 달렸다. 한 참을 미
등을 바라보며 달렸다. 고개를 드니 아산병원이 보인다. 서울에 도착한 것이
다. 힘이 절로 났다. 잠실이 가까워온다. 이내 한강시민 공원으로 이어진다. 기
쁨과 슬픔이 서로 뒤얽힌다. 선착장에 뭉치님과 어떤 분이 마중 나오셨다. 이
자리에 함께 못한 분들의 아쉬움을 뒤로하며 서로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작은 영웅이 집으로 돌아왔을 땐 냉험한 현실
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와 딸 한비는 휴일의 공허함을 달래기라도 하듯
저 녁 늦은 시간 가족예배를 드리고있었다. 난 집안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며 빨
래도 정리하고 설거지도 하지만 하체가 말을 듣지 않는다. GT님의 말대로 뜨
거운 물 욕조에 담아 몸을 담그니 피로가 풀리는 듯. 그러나 기어서 침대로 올
라야 했다.
(사진은 왈파 포토 참조하세요.)
나 지친 몸을 차에 실었다. 동부간선도로를 따라 집으로 향하며 참 많은 생각
이 떠 올랐다. 고마운 사람들, 우연히 만남 효정(?)이 아빠 토담님 그리고 무엇
보다도 가슴아픈 여러 가지 상처가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이 자리를 빌
어 먼저 황바이크님의 쾌유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부디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랍
니다. 아침에 기상하니 지금 오전 7시. 잠자리에서 나와 투어후기 쓰기 위해
피시로 향하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내일이면 210키로 내 한계에 도전하는 날이다. 저녁부터 이것저것 챙기
면서 무게를 생각하여 넣다 빼기를 반복한다. 과연 내가 이들과 합류할 수 있
을지 근심스런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5시, 잠실벌로 약속시
간 6시 30분 보다 30분 일찍 나갔다. 고수님들께 인사로 먼저 예의를 갖추기 위
함이었다. 웹상에서 익숙한 이름들이 불리며 서로가 인사를 나눈다. 먼저 다정
한 인상의 소유자 벙그리님께 내가 다가가 묻는다. “저는 사실 평지에서 평균
25-30키로 나옵니다. 이 정도로 참여할 수 있을 지요”, “솔직하시군요. 그 정도
면 무난하고 충분하지요. 걱정 마세요”, “그렇습니까. 정말 다행이군요. 제일
후미에서 갈 것이 뻔하니 잘 부탁드립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벙그리님의
이 말을 순 거짓이었다. 기념사진 한 장 박고 번짱님의 지시로 모든 라이더들
잠실벌을 지나 워커힐로 향한다. 선두와의 간격이 조금 벌어져있다. 구리에서
양평으로 가는 강변로 선두와 100미터 차이. 속도계를 보니 내 시속 30에 육
박. 이미 내 한계 수위에 도달했다. 앞으로 민폐기칠 일들이 파노라마
로 스쳐 지나갔다. 평소 좀 더 강도 높은 연습 필요성 절감. 그리고 장거리 투
어니 만큼 열등감에 무리하면 포기가 앞당겨진다는 사실을 초보지만 알고 있
었다. 벌써 그들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 혼자만의 라이딩을 즐길결심
을 하고 랄라룰루 노래부르며 진행. 30키로 지나 팔당대교 밑에서 일행들 대기
하고 있다 나 때문에 일정이 늦어지면 어떡하지. 민폐나 끼치지 말아야하는데
정말 시작부터 불길하다. “다음은 양평 ~~에서 아침 식사합니다. 모두 출발합
시다.”라는 번짱님의 지시와 함께 힘찬 페달링이 시작된다. 아무리 둘러봐도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내 사정 좀 봐달라고 할 수 없고 그런들 전체적 흐름이
지연되고 에라~ 가는데 까지 가보지 뭐. 나는 계속 시속 30을 유지한다. 덕소
를 지나 강변대로. 음악을 감상하며 차창밖을 내다보던 강변을 아름다웠다. 지
금, 아득히 멀어져가며 점으로 변해가는 일행들의 모습을 보며 웬지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오며 원망해 본다. 자비도 없지. 인정도 눈물도 없는 무심한 사람
들.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는 내 마음 속절없이 외로운 투쟁이 진행된다. 어느
덧 양수리 지나 국수역이다. 조금만 더가면 양평. 첫 번째 고개를 오르려니 배
가 고프다. 일행의 행방도 묘연하고 배도 고프고 벌써 포기다. 지금 이동거리
55키로. 앞으로 더욱 빡센 라이딩이 이어질 것이고 더구나 비슬고개라는 복병
을 내가 어떻게 이겨내리. 에라~ 포기다. 어디 가서 설렁탕이나 먹고 집으로
간다. 음식점을 찾아 뒤를 기웃거리는데 뒤에서 누군가 언짢은 표정으로 고개
를 향해 페달링을 하고 있다. 다가가 동료임을 확인하고는 말을 붙인다. “일행
이 가는 길 잘 아시죠. 저 좀 데려가 주세요. 완주가 저의 꿈입니다. 그리고 비
록 제가 늦지만 제 옆에 있어 주시길 바랍니다. 도와 주세요.” 체면 불구하고
빌어본다. “걱정 마세요. 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라는 대답과 함께 아침식
사 장소가 바로 저 고개 위 순대국집 이란다. 이렇게 해서 난세에서 지푸라기
라도 잡게 해 주신 RedMan님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일 분이라도 늦
게 레드멘님이 나타나셨다면 난 설렁탕 먹고 말발굽님께 문자 메시지 띄우고
집으로 갔을 운명이었다. 이렇게 투어후기 쓸 수 있게 해 주심으로 레드맨님
께 지면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순대국집에 들어선 우리는 모든 고수님들의 인사를 받는다. 이들 모두는 철인
이다. 빼빼 마른 체격의 중학생부터 선수 고등학생 그리고 육순은 넘으신 라이
더에 이르기까지 정말 어느 누구하나 후미에서 함께 자연 관광할 분이 없었
다. 난간 넘어 말발굽님과 GT님 앞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는데 두 분이 용기
를 준다. 선두조에서 고수님들의 페달링과 숨결을 느끼며 배울 수 있으면 좋으
련만 업힐은 고사하고 평지에서도 기회가 없다. 오로지 사라져 가는 작은 점들
만이. 식사를 마치고 잠시 끽연시간 나는 모든 고수님들의 장단지를 본다. 저
운동으로 다져진 종아리, 장단지 그리고 팔뚝 마지막으로 저 의연한 자세. 이
모두가 내 기를 죽인다. 하늘이 노랗다. 그러나 레드맨님에게 죽으나 사나 의
지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다음은 용문휴게소에서 집결합니다. 선두 출
발합니다.”라는 구호와 함께 또다시 무시무시한 장딴지에서 용솟음 치는 페달
링이 시작된다. 다~운~~~~~힐~~~~~~~~. 그러나 마음은 계속 불안하다.
길게 쭉 뻗은 도로위로 모두들 두 무리가 아닌 한 무리로 앞서간다. 난 외로운
꼬리표. 오르막길에서도 30키로 이상이 저들의 속도다. 비록 그들의 모습은 보
이지 않지만 어차피 이 일행과 함께 완주할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안전라이딩
을 기원하며 경의를 표시 해 본다. 본격적인 용문휴게소를 향한 직선도로 입구
에서 벙그리님 빵구를 때운다. 정말 다행이다. 한 사람을 젖힐 수 있어서. 널~
널~라이딩. 그런데 직진해야 하는데 아랫길로 내려가 우회전 근데 이 길은 용
문길이 아니다. 체력이 없으면 머리라도... 괜실히 의연하게 살아오신 부모님
을 탓해본다. 이러다 길 잃겠다 싶어 다시 벙그리님에게로. 용문휴게소에 들
르니 아무도 없다. 내가 늦어 먼저 출발했나보다. 그러나 내 뒤에는 벙그리님.
마음이 놓인다. 일단 앞으로 전진. 오백미터 전진하니 일행이 기다린다. 자신
있게 대답한다. “벙그리님 빵구가 있어 늦어집니다.” 이게 웬 떡. 꼴찌 탈
피. “다음은 산음휴양림 입구에서 봅니다.” 제 삼의 집결지가 공포된다. 또 달
린다. 여전히 꼴지. 집결지에서 일행이 나를 기다린다. 그런데 내 뒤에 누가
더 있단다. 알고보니 exlim님 빵구란다. 또 고마움. 난 또 쉰다. 노을님과 잠
시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찍는다. 30분 이상 지체. 서둘러 일행 출발한다. 남
은 것은 첫 번째 난관이 비슬고개. 에라~ 처음부터 선두조에 합류한다. 기분
좋다. 번짱님 고맙게도 시속 25정도 유지한다. 그러나 얼마 안가 한 두 사람씩
나를 추월한다. 스쳐 지나가는 기류속에 여지없이 작은 내 자존심마저 파묻혀
간다. 언덕이 보인다. 겟세마네 동산이 떠오른다. 예수님께서 가시면류관을 쓰
시고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는 고통이 피부로 와 닫는다. 경건한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페달링을 해 본다. 선두조의 힘찬 페달링과 거친 숨소리도 들을
수 없는 현실. 외로운 영웅투혼. 열심히 페달질 한다. 그런데 기어 변속하기 바
쁘다. 그래도 행복하다. 빡센 업힐에서 기어변속하다 체인 멈추고 뽕페달에서
다리 못빼 넘어지길 수 십 번. 그래서 난 다리, 팔 보호대는 어디에서든 나의
필수품. 아직까지 넘어지지 않았기에. 노을님 다가와 페달링 가르쳐 준다. “이
렇게 말고 요렇게. 맞아요. 그렇게요. 계속 페달링 하세요. 자세 좋아요.” 그러
나 심장이 멎는다. 이번엔 exlim님 다가온다. “안장이 좀 낮아요. 뒷금치 페달
에 닫게 안장 조절하시고 자신에 맞는 페달링 속도가 중요하죠.” 계속 자세를
교정하며 전진한다. exlim님의 돌봄에도 난 기력이 쇠약해 진다. 드디어 낙
마. exlim님 죄송합니다. 가르친 보람도 없이. 잠시 걷는다. 앞에 레드맨님 숨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고수님의 숨소리를 들어본다. exlim님 무슨 일인지 잠
시 내려 잔차를 살핀다. 난 끌고 라이더. 그래도 오기로 다시 승마. 위에서 사
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힘이 부친다. 다시 낙마. 끄는 모습으로 고수님 앞에 선
다. 뭐. 난 자존심 버린 지 오래다. 정복자님께 인사를 한다. 잠시 휴식시간. 알
고 보니 이 곳은 3주전 왔던 휴양림 후문 쪽. 기념으로 고수님들과의 기념 촬
영. 이젠 임도 약 30키로 산음을 달려본다. 난 먼저 출발한다. 그래야 민폐를
덜. 그러나 5분도 체 안 돼 기류를 만들며 하나 둘 모두 내 옆을 지나간다. 바이
크러브님 빵구. 또 쉰다. 그런데 토담님이 나에게 다가와 몇 마디 묻는다. 대화
를 나누다 보니 효정이 아빠. 토담님! 여전히 젊게 사시는군요. 저도 이 젊게
사는 분야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토담님이 부럽습니다. 항상 건강하시
고 행복하세요. 토담님께 인생 빚을 진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기념사진 한 방. 그리고 출발. 임도에서만 빵
구 두 번. “이게 뭡니까. 달려야 하는데 언제 갑니까.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쳐
본다. 정신이 업그레이드된 의지의 kwakids. 임도의 끄트머리 exlim님 슬립으
로 오른쪽 팔 찰과상. 피가 흘러 나온다. 한 쪽은 약간 파인 곳도 있다. 말발굽
님 벙그리님 응급조치 해 주신다. 번개 진행하시는 고수님들의 무릎을 바라본
다. 여러 사투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다. 그러나 오늘은 거품 번개라 필사
의 신념이란 뜻에서 산음부터 발 보호대만 착용. 매표소 앞
도착. 그런데 레드맨님 노을님 다른 길을 헤매다 우리 일행과 상봉. 자 출발.
그런데 이번엔 번짱님 빵구. 또 쉰다.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큰 일이다. 예측
불허. 이렇게는 장거리 라이딩 어려움. 점심은 모곡 고개 전 설렁탕집이란다. 3
시가 다 되어 일행은 점심을 먹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각자 우비입고 미등
을 착용해 다시 달린다. 남은 것은 한계령보다도 빡세다는 모곡고개. 지난 번
난 고개 입구부터 끌고 갔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그래 나는 끌고 라이더라는
편한 마음 먹고 출발. 노을님 후미에서 외로운 나만의 라이딩을 계속 바쳐준
다. 고마움의 표시로 삼겹살이라도 사주고 싶었지만 앞길이 구만리라... 몇 번
의 낮은 구릉지대를 넘나들고 본격적인 업힐이다.
업힐 직전 난 지난 번 왔을 때 바로 저 두 번째 커브에서 힘들어 1시간 30분 놀
다 끌고 정상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을님 말한다. “고개를 한 번 보
고 처음부터 낙심하면 그 정상을 절대 정복을 못하죠. 일단 업힐 시작부터 가
장 높은 기어로 놓으시고 발에 힘을 빼세요. 그리고 편하게 페달링 하시면 됩
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을 보시면 절대 안 되고 흰 선만 바라보세요.” 그리
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 이야기에서 결국 주인
공은 뒤를 바라보는 바람에 사랑하는 죽은 아내를 소생시키지 못하고 평생을
자책하며 산다는 이야기. 하물며 의심 많은 나에게 가능할는지... 일단 내 마음
을 노을님에게 맡겨본다. 그리고 흰 선을 따라갔다. 삼분의 일 지점. 결국 고개
를 들어 앞을 보았다. 급커브 업힐. 절망적인 상황. 허리가 조여온다. “땅만 보
세요. 잘 올라오셨습니다.” 노을님의 목소리. 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마음속으
로 왈바 어디에선가 <업힐 오르는 법>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나 주문을 외워본
다. “넌 평지다. 그리고 조금가면 다운 힐”. “좋습니다. 힘내세요. 조금 남았습
니다. 땅만 보시고요.” 마음먹기에 따라 페달링이 정말 다르게 느껴진다. 노을
님의 한 마디가 계속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리고 계속 언덕을 오르고 있
다. 눈물, 콧물, 땀, 빗물이 머리에서 이마로 콧등을 타고 입술 아래로 끈적한
액체가 되어 땅바닥에 떨어진다. 한구비, 두 구비를 돌아보지만 고개를 들 자
신이 없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숨은 막히지만 마음이 때때로 편
안해져 페달링이 이어진다. 노을님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다 왔습니다.
고개를 드세요. 정상입니다.” 얼마나 듣고 싶던 이야기인가. 눈을 들어 앞을 내
다본다. 10미터 앞에서 일행이 우리는 맞이한다. 지친 눈이 감긴다. 그러나 페
달링은 가볍다. 노을님의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여러분 한 번도 안 쉬고 올라
왔습니다. 박수 좀 부탁합니다.” 고수님들의 박수와 환호가 이어진다. 뜻밖의
감동이다. 잠시 눈을 감고 하늘을 본다. 마음속으로 외친다. “무사히 정상을 정
복하게 해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끝나는 날까지 낙오됨 없이 완주하게 해 주
세요.”라고 기도해 본다. 그리고 노을님께 다가가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경
례로 보답했다. 어떻게 앞으로 노을님께 보답해야 할지... 말문이 막히는 순간
이다. 기
념 촬영도 잠깐. 엄청난 다운힐이 이어진다. 번짱님의 훈계가 잇따른다. “우중
이라 매우 위험합니다. 속도 내지 말고 추월하지 말고 안전 라이딩 하십시오
매우 위험한 코스입니다.” 모두 내려간다. 다운힐 중간에서 번짱님 서서 손바
닥을 아래로 내린다. 경계심을 갖고 속도 낮춘다. 다음코스 아마도 소리산 인
듯. 포장길로 약한 업힐 시작된다. 후미에서 계속 나를 돕는 노을님. 결국 엄청
난 파워도 나 때문에 발휘 못하고 체인이 중간에 절단 난다. 먼저 가서 선두보
고 기다리는 말을 전해달라며 전진하란다. 미안한 마음이지만 도움도 못되기
에 일단 앞에 가서 전하고 계속 전진한다. 다시 긴 다운힐. 아름드리 자작나무
숲이 진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 준다. 참 좋은 곳이다 차도 없고 이렇게 좋은 수
목림에 둘러싸인 아스팔트 위를 한가롭게 라이딩하다니. 30분 지체. 잠시 휴식
해 취해 보지만 왼쪽 다리와 엉덩이가 이상하다. 그래도 계속 페달링하면 훨
씬 낫다. 오히려 쉬면 고통이 심해진다. 다시 출발. 그러나 빗 길에 번짱님 넘
어지신다. 오른쪽 무릎에 찰과상. exlim님의 상처보다 좀 더 깊었다. 응급 조
치후 다시 출발. 북한강을 따라 양수리로.... 양수리로가는 북한강입구부터 극
심 정체. 조심해서 갓길로 진행한다. 한 참을 달리는데 일행이 서 있다. 황바이
크님의 사고. 잔차 앞 브레이크 파손에 라이딩이 불가능한 상황. 다행히 상처
는 가벼운 듯. 번짱님과 몇 분 남고 양수리로 일행은 전진한다. 양수리 터미널
에 집결해 기다리며 황바이크님 소식을 접하니 생각보다 부상이 심각한 상태
란다. 모두들 한숨. 지친 몸도 그렇지만 마음이 정말 찜찜하다. 황바이크님 실
은 차 도착한다. 일단 터미널 옆 의원에 응급수속을 바라보며 말발굽님과 몇
분 남고 모두 잠실벌로 향했다. 우리는 터널을 통과해 계속 달렸다. 한 참을 미
등을 바라보며 달렸다. 고개를 드니 아산병원이 보인다. 서울에 도착한 것이
다. 힘이 절로 났다. 잠실이 가까워온다. 이내 한강시민 공원으로 이어진다. 기
쁨과 슬픔이 서로 뒤얽힌다. 선착장에 뭉치님과 어떤 분이 마중 나오셨다. 이
자리에 함께 못한 분들의 아쉬움을 뒤로하며 서로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작은 영웅이 집으로 돌아왔을 땐 냉험한 현실
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와 딸 한비는 휴일의 공허함을 달래기라도 하듯
저 녁 늦은 시간 가족예배를 드리고있었다. 난 집안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며 빨
래도 정리하고 설거지도 하지만 하체가 말을 듣지 않는다. GT님의 말대로 뜨
거운 물 욕조에 담아 몸을 담그니 피로가 풀리는 듯. 그러나 기어서 침대로 올
라야 했다.
(사진은 왈파 포토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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