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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5월 18일~~~~

doldary2003.06.19 23:55조회 수 877추천 수 1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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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19일, 목요일
바깥엔 태풍 소델로의 영향으로 잔 빗줄기가 흩날리고 있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여전히 많은 선생님들로 꽉 찬 시골 작은 학교 교무실.
한 학기가 마무리되어 가는 지금이 학교 현장에선 비교적 바쁜 시기이다. 연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전교 학생수 64명, 3개 학년 총 학급수 3학급, 직원수 13명의 초미니 학교이다. 하지만 학교를 단순히 학생과 학급, 교직원의 숫자로만 비교할 수 있으랴. 작지만 직원간의 단합과 유대가 끈끈하고 스승에 대한 존경과 학생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그래서 항상 즐거움과 행복과 웃음이 넘치는,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라 불리는 곳이지만 항상 마음 가득 부자가 되는 이 곳, 강원도 정선군 동면 화동중학교!
  
오늘은 동료들 중 몇 분이 특공대(?)를 조직하여 학교 아래 자그마한 개울에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이름하여 학교 앞 하천의 수중 생물 탐사(?)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얼마전 대장암 수술을 받으신 교감 선생님에겐 강물바닥을 기어다니는 미꾸라지, 종개, 메기, 팅수 등의 고기가 아주 좋다는 믿을만한지 아니면 근거 없는 이야기인지를 가슴에 담고 반도(족대)와 대꼬(지렛대)를 들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개울로 향한다. 물론 아직 이곳 정선은 물 반, 고기 반이다. 작년 루사의 영향으로 수해 복구한답시고 강바닥을 모두 파 헤쳐놓고 중장비가 들락거리지만 그래서 수중 생태계가 쑥밭이 되었지만 아직은 잡는 재미가 쏠쏠할 만큼, 맛있게 끓여 먹을 만큼의 고기는 있다.  

각설하고, 많이, 재미있게 잡고, 맛나게 끓여 배불리 먹고(물론 쐬주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교무실 자리에 앉아 즐겨 듣는 음악을 크게 틀고 상념에 빠진다. 바쁘게 일하시는 다른 선생님들껜 죄송스럽지만 사실 난 딴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서서히 한달 전의 악몽이 떠오른다. 잊으려 잊으려 해도 언제나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그 기억, 그 유쾌하지 않은, 그러나 커다란 울림으로 남는 그 이야기를 하고싶다.

한달 전! 5월 18일 일요일.
이날은 속초에서 엠티비를 즐기는 몇 분들과 라이딩이 계획되어 있는 날이었다.
참가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먼저, 엠티비계에선 이름이 널리 알려진 조현창님(40대 초반, 작년 강촌 챌린지 대회와 인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신 분), 황 성님(현직 치과의사로서 작년에 속초에서 열렸던 국제 트라이애슬론(수영 3.9km, 싸이클 180.1km, 마라톤 풀코스의 아이언맨 대회) 대회에서 11시간 06분 16분의 아주 우수한(우리 나라 참가자 중 12위) 성적으로 입상하신 분, 이제 막 40세, 주수진님(생년 1925년, 우리 나이로 79세, 평소에 싸이클과 마라톤을 즐기시며 철인경기에도 출전하시는 분, 왈바에도 소개되었던 분, 현재도 꾸준히 운동을 하시며 매년 각종마라톤 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하시는 대단하신 분, 일반 철티비를 가지고도 속초에서 미시령 정상을 쉼 없이 오르는 분, 작년 삼척비치 하프 마라톤에 출전하기 위해서 속초에서 삼척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셔서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시고 다시 속초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신 분), 문상선님(볼 때마다 무공이 갑절로 상승하는 무서운 실력의 신예(사실은 올 해 나이 서른 둘의 아저씨), 왈바 아이디 : 뽀다구맨), 그리고 아무리 봐도 뭐하나 보여줄 것 없는 나 조동호.
일주일 전 투어 계획을 듣고 참가자의 명단을 확인한 후 잠깐의 고민에 빠졌다. 조현창님, 황 성님, 문상선님은 영동 아니 강원지역에선 최고수의 대열에 들어 있는 분들. 내공이 허접한 나로서는 감히 그분들과 같이 라이딩을 한다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잠깐의 고민 뒤에 바로 승낙을 한다. 거기엔 여든 가까이 된 할부지와 함께 한다는, 그래서 적어도 내가 제일 마지막에서 헥헥거리는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오만이 숨겨져 있었다.

다시 5월 18일!
어제보다 하루쯤 더 늙은 태양이 막 얼굴을 내미는 이른 시간 제일 늦게, 여러 번 호출을 받은 뒤에야 모임 장소에 나간다. 내가 제일 마지막이다. 죄송스럽다. 인사를 나누고 장비도 점검하고 꾸물거리는 날씨에 대비해서 비옷도 준비하고....
찬찬히 팀원들의 장비를 눈여겨본다. 먼저 조현창님, 왈바 자전거 등록란에도 올라있다. 라이트스피드 타나시 모델, 한마디로 잘 생겼다. 설명이 필요 없다.  황 성님, 작년에 스폐샬 M5로 바꾸셨다. 문상선님, 스캇 팀레이싱(?)인가? 하여튼 내 것보다 좋은 것만은 확실하다. 주수진님, 황 성님이 작년까지 타셨던 트렉 카본 프레임의 모델이다. 모델명은 정확히 모르겠다. 일단 주고문님(속초마라톤클럽의 고문으로 계시기 때문에)에겐 사이즈가 맞지 않다. 황 성님은 신장 180cm정도의 훤칠한 분이고 주고문님은 160cm가 넘을까 말까 한 자그마한 체구이시다. 그것도 클립페달인데 주고문님의 신발은 일반 런닝화이다. 시마노 페달에 일반 런닝화, 당연히 궁합이 맞지 않고, 흡사 커다란 고목에 매미 붙어 있는 느낌이다.(주고문님 죄송합니다.) 내 자전거는 01년 산 자이안트 ATX 890모델이다.
오늘의 경로는 속초를 출발하여 양양, 구룡령 방면, 미천골 휴양림, 불바라기 약수를 지나 법수치 마을, 어성전, 양양을 다시 지나 속초로 돌아오는 약 130km 정도의 코스이다.
해수면과 같은 높이에 있는 속초를 출발하여 해발 일천미터가 넘는 산을 넘어 온다는 것은 상상만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출발한다. 절대로 오버하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가기로 몇 번씩이나 다짐하면서... 새벽공기를 가르면 나간다. 앞의 고수 세 명, 나, 주고문님의 순서로 아름다운 한 무리가 동해와 백두대간의 중간을 가르며 나간다. 비교적 차량 통행이 적은 샛길을 이용하여 양양까지 나간 후 한계령 길로 접어든다.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된다. 한계령과 구룡령의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접어든다. 긴 언덕이 시작된다. 앞의 세 명은 서서히 꼬리를 감춘다. 뒤엔 주고문님이 따라 오신다. 중간에 아침 식사를 할만한 곳을 찾아보았으나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인가 문을 연 곳이 보이질 않는다. 미천골 휴양림 입구 조금 못 미쳐 작은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한다. 물도 마시고, 준비해 온 행동식 등을 먹으며 휴식한다. 황 성님의 브레이크도 잠시 손보고... 역시 고수들이어서 그런가 장비 점검과 정비에도 대단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미천골 휴양림 매표소에서 잠깐의 실랑이 아닌 실랑이가 벌어진다. 매표소의 직원이 작년 수해로 임도가 많이 유실되었고 현재 복구 공사중이라며 통과를 꺼린다. 우격다짐으로 이 길을 많이 다녔으며 안전은 우리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뒤 겨우 통과한다. 사실 다른 분들은 이 곳을 가보셨지만 난 처음이다. 좌우로 수시로 바뀌는 아름다운 계곡을 옆에 끼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비포장 임도를 오른다. 아직은 견딜만하다. 신라 시대의 고찰인 선림원지를 지나고, 우리 나라 최대 규모라는 토종벌 단지를 지나며 경사는 점점 가팔라진다. 이 곳 미천골에 오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험준한 산의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그 기운이 실로 대단하다. 잠시만 있어도 이빨이 서로 소리내며 부딪치는, 한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청정 1급수는 그 흘러내리는 양이 설악의 어느 계곡 못지 않다. 휴양림이 끝나는 지점에서 잠시 휴식한다. 사진 촬영을 하려고 하는데 문상선님이 가지고 온 디카의 배터리가 생을 다 한다. 이런! 찍으려 폼잡고 서는 순간 죽어버렸단다. 다시 올라간다. 경사가 심해진다. 기어가 자꾸 떨어진다. 앞의 고수 세 분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서로의 심박수를 확인하며 희희락락 하더니만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진다. 어찌 저런 언덕을 웃으며 오를 수 있다는 말인가? 나야 뭐 실력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그분들과 비교 대상이 되지 않으니 내 힘닿는 데로 천천히 오른다. 내 뒤엔 항상 주고문님이 계시니까. 잠깐 잠깐의 시멘트 포장과 비포장을 번갈아 가며 하염없이 오른다. 예상했던 데로 길은 험로 그 자체이다. 수해복구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를 하던 굴삭기 기사가 길을 터주며 대단한 듯, 신기한 듯 쳐다본다. 쉬고 싶은데 앞사람들은 메아리 치는 웃음소리만 남긴 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가파른 언덕에서 순간 너무 힘들어 잠깐 내린다. 한 번 내리면 자꾸 내리게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리고 싶은 그 강렬한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목이 마르다는 핑계로 내린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잠시 끌면서 뒤를 돌아보니 주고문님이 바로 뒤에 오신다. 세상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는데. 클릿 페달에 런닝화를 신고, 몸에 맞지도 않는 자전거를 타고 어느새 내 턱밑까지 다가오셨다. 이런 제길.... 부랴부랴 다시 안장에 오르고 거친 숨을 토하며 올라간다. 조금 더 가니 눕혀진 자전거와 쉬고 있는 일행이 보인다. 미천골 휴양림 한참 위에 있는 불바라기 약수 입구이다. 약수 한 잔 마시고 가잔다. 금방 주고문님이 올라오시고 우린 계곡을 따라 약수터로 간다. 미끄러운 바위에 클릿용 신발은 참 불편하다. 200미터 쯤 가니 양쪽에서 쏟아지는 폭포의 중턱에서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불바라기 약수이다. 세상에 폭포의 중간에서 약수가 나오다니... 거의 암벽등반 수준의 절벽을 기어올라 한 잔 약수를 마셔보니 그 톡 쏘는 맛이며 주변의 풍광이 과히 신선의 그것에 부럽지 않다. 유명하다는 약수를 마셔보았지만 이 곳의 약수는 그 맛이 다른 곳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철분과 탄산 성분이 너무 많이 포함되어서 그런지 쉽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질 않는다. 물 대신 약수를 한 병 가득 담고 잠시 휴식한 뒤 되돌아 나온다. 정상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올라탄다. 앞의 세 고수, 그리고 나와 주고문님, 순서는 변함 없다. 해는 어느덧 중천에 떠올라 대지를 달구기 시작한다. 길이 비교적 완만하다. 정상이 가까웠다는 신호이다. 주변 나무의 키가 점차 작아지기 시작한다. 한순간 시원스레 하늘이 열리더니 풍경이 모두 내 눈 아래로 보이기 시작한다. 도로 상태도 아주 좋다. 주변엔 이제 막 철쭉이 피어 사뭇 자태가 화려하다. 정상 도착! 고도계가 없어 정확하지는 않으나 천미터는 넘으리라 생각된다. 주변엔 곰취, 나물취 등 나물 천지이다. 젊은이들은 행동식을 먹으며, 담배를 피며(담배는 나 혼자만 핀다.) 휴식을 취하는데 주고문님은 휴식도 없이 주변의 나물을 열심히 뜯어 배낭에 담으신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달콤한 휴식은 너무도 짧다. 휴양림 입구에서 정상까지의 임도가 무려 17km. 글쎄, 전국에 이런 오르막을 가진 임도가 얼마나 될까? 이젠 내리막이다. 내리막은 자신 있다. 중량이 많이 나가니 절로 가속이 붙어 잘도 내려간다. 내리막에선 선두권에 선다. 그러나 마냥 달릴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오르막과는 달리 내리막에는 위험요소가 너무도 많다. 작년 루사의 영향으로 임도 곳곳이 유실되어 있다. 복구공사는 시작도 하지 않았나 보다. 마구 달리다 보면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치기 십상이다. 조심조심 내려온다. 잘 내려가던 황 성님이 심하게 넘어진다. 몸의 여러 곳에 심한 찰과상을 입었다. 무지 아플텐데... 더 긴장한다. 개울을 지나고 끊어진 도로를 자전거를 둘러메고 건너고, 나무 등걸을 타고 넘으며 계속 다운, 다운... 도대체 얼마나 가야 끝이 나오는 거야? 끝이 없다. 무지 오래 내려왔는데 중간에 만난 이정표를 보니 아직도 9km를 가야 한다. 무릎, 발목, 손목, 허리, 목, 팔, 어깨 등이 아프기 시작한지 오래다. 잠시 휴식한다. 여전히 주고문님은 나물 채취에 여념이 없으시다. 내 머리론 이해할 수 없다. 아주 멋지게 생긴 소나무도 감상하고, 이런 곳에 있으니 저토록 아름다운 자태를 지금까지 보존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며... 또 내려간다. 내리막 9km는 잠깐이다. 고통과 배고픔을 참으며 조금만 더 가면 잠시 쉬며 요기할 수 있는 상점이 있으리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다 내려왔다는 생각이 들며 인가가 조금씩 보이는 순간 우리는 모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기억하던 한 마을의 모습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있었다. 하천의 형태가 완전히 뒤바뀌고, 있던 집이 사라졌으며 도로도 없어졌다. 복구 공사를 하는 중장비만 바쁘게 돌아다닐 뿐, 법수치라는 아름다운 마을이 루사의 힘에 의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우리에겐 휴식이 필요했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1시와 2시 사이에 있었다.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그러나 요기를 할 만한 식당이 이 곳엔 없다. 할 수 없다. 멀더라도 편한 길을 찾으려 했는데 동네 주민의 말로는 그 길은 아예 흔적이 없어졌단다. 그렇다면 또 험한 억덕을 넘어야 한다는 결론, 그러나 어쩌랴 길이 그 것 밖에 없다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없는 힘을 쥐어 짜며 언덕을 오른다. 이젠 기어가 떨어질 데로 떨어졌다. 페달링을 하는데도 속도가 나질 않는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 순서가 바뀐다. 세상에 주고문님이 나를 제치고 앞으로 나선다. 이럴 수가.... 그럴 순 없지 하고 따라 붙는다.(마음만) 한 번 벌어진 간격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다. 등에선 식은땀이 흐른다. 세상에 내 나이*2보다도 많은 어르신이 나를 제치고 점점 간격을 벌리며 언덕을 치고 오른다. 아! 이럴 순 없다. 이래선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일 뿐 나의 몸과 마음은 이미 따로 떨어진 지 오래이다. 할 수 없다. 내리막에서 따라붙는다. 워낙 새털같이 가벼운 분이라 내리막에선 금방 추월한다. 그러나 간격을 많이 벌려놓진 않는다. 앞서 간 고수들이 물으면 일부러 주고문님과 보조 맞춰 왔다고 변명하려고...
포장 도로가 보이는 곳의 작은 상점 앞에서 앞선 일행과 만난다. 잠시 휴식을 하고, 일반 철티비를 타고 우리가 내려왔던 그 길을 홀로 올랐다 내려와서 휴식 중인 다른 분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이곳은 어성전, 여기에서 양양까지는 25km정도이다. 배와 등은 이미 얼굴을 맞댄 지 오래, 기력이 남아 있지 않다. 내가 준비한 행동식은 산 정상에서 모두 베풀어 버렸다.(괜히 그랬다. 엄청 후회된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양양에서의 맛있는 점심을 기대하며 다시 출발한다.(이미 점심시간을 넘긴 지 오래다.) 조현창님과 문상선님이 먼저 치고 나가고 내가 바로 뒤따른다. 그 뒤에 황 성님과 주고문님이 함께 오신다. 선두 세 사람이 잠깐 동안 나란히 가다가 곧 내가 쳐지기 시작한다. 한참을 나 홀로 간다. 이 길은 작년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한 번 지났던 기억이 난다. 그 때도 힘들었었는데.... 뒤돌아보니 황 성님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한참 뒤에 있던 분이 어느새 내 옆을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경운기 옆으로 포르쉐가 지나가는 느낌이다. 금방 앞의 두 사람을 따라잡더니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헐...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철인이니까. 철인 28호가 저랬을까? 주고문님을 뒤에 두고 혼자 허우적허우적 힘들게 간다. 이젠 경사 4~5도의 언덕에서도 헤맨다.
완만한 언덕을 헥헥대며 오르는 어느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주고문님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더니만 나를 추월한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 기어를 너무 낮게 놓고 타는거 아냐?' 하시더니 슝슝~~ 나가신다. 숨소리 하나, 페달링 소리 하나 나지 않게 다가오시더니, 예전의 모 자동차 광고처럼 소리 없이, 그러나 강하게 앞으로 앞으로...
아! 그것은 내 생애 최초로 느껴본 지독한 공포였다. 난 만 37년을 살면서 그토록 무서웠던 경험을 한 적이 없다. 난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으로 도저히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공포(恐怖)! 그보다 더한 공포가 또 어디 있으랴!! 정신이 혼미해지고 심장이 벌렁거리며 두통이 일기 시작했다. 그냥 사고를 핑계 삼아 옆의 절벽으로 확 뛰어내리고만 싶었다. 모든 것이 산산히 부서지는 순간... 오늘 라이딩을 하면서 얕은 생각에 그나마 위안을 삼았던 것이, 그 알량한 자존심이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멍한 머리 속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주고문님을 다시 따라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엔.... 참 치사하다는 생각을 하며(내 자신이) 없는 힘을 끌어 모아 따라 간다. 다행히도 곧 내리막이 나타나 앞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참담해진 기분은 회복되지 않았다. 이것은 정당한 경쟁이 아니다.(경쟁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나는 라이딩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자전거를 타는가? 나는 왜 사는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짧은 시간 동안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그 답을 생각할 만한 힘도 나에겐 남아 있지 않다. 뒤에선 주고문님이 일정한 간격으로 따라 오신다. 한 번 공포에 짓눌린 나는 뒤를 돌아볼 때마다 점점 조여오는 그 극심한 공포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뒤돌아 볼 때 마다 항상 똑같은 표정으로, 자세로,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따라 오시는 주고문님.  어린 시절 보았던 전설의 고향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 후에 꾸었던 지독한 악몽! 가위 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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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에 입성했다. 먼저 간 일행이 식당 앞에 모여 있다. 내가 내리자 마자 주고문님이 바로 뒤에 자전거를 세우신다.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수돗물에 먼지에, 흙탕물에 지저분해진 곳곳을 씻어내고 식당으로 들어선다. 3시가 넘었다. 뚜거리탕과 소주를 주문한다. 소주를 마시는 사람은 조현창님과 나 둘 뿐이다. 황 성님과 문상선님은 가볍게 맥주를 한 잔씩, 주고문님은 아예 입에 대지 않으신다.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세상에 이보다 맛있는 식사가 어디 있으랴. 공기밥을 추가하고 소주도 한병 더... 커피도 한잔하고 실컷 쉰 다음에 이제 속초로 출발한다. 속초까진 불과 14~15km 정도. 이젠 자신있다. 남대천변과 바닷가로 새로 뚫린 도로를 힘차게 달려간다. 낙산에 도착하여 황 성님과 주고문님은 마중나온 황 성님 부인의 차에 올라 속초로 들어가신다. 인사를 드리고 나머지 세명이서 속초까지 돌아온다. 집에 돌아와 적당히 씻고 다시 조현창님, 문상선님과 만나 저녁도 같이 하고 술자리도 같이 한다.

하루가 저문다. 악몽은 앙금이 되어 내 기억 깊은 곳에 둥지를 튼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그 한 달간 하루도 그날의 기억을 잊은 적이 없다.

2003년 5월 18일, 그날은 나 돌다리 조동호가 세상에 다시 태어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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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라이딩 거리 : 약 125km, 라이딩 총시간 : 10시간 정도, 평속 : 기억하고 싶지 않음.
미천골 임도 : 오르막 17km, 내리막 22km(환상적인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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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끝마치는 이 순간, 난 그날의 기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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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돌다리님의 후기 오래간만에 읽습니다. 주고문님에 대한 소문은 가끔 들어서 알고 있지만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이번 280랠리의 마지막 코스가 돌다리님이 말씀 하신 서림-법수치코스인데 작년 수해로 과연 탈 수 있을까?가 의심 스러운 부분인데 후기상 충분히 가능할 것 같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런데 뚜거리탕이 뭔지요???
  •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후기로 읽어도 다들 대단한 분들이시군요^^ 미천골의 내리막길 한번 꼭 타보고 싶네요...22키로...
  • 2003.6.20 11:24 댓글추천 0비추천 0
    미천골 묘사를 아주 기가 막히게 잘 해 주셨습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
    종종 후기 올려주시길.......

    저도 5월 10일 같은 코스를 다녀 왔는데,
    그때도 매표소에서 길을 막더군요. *^^*
    저희는 한바쿠 돌아서 서림으로 내려오니
    정확히 70키로 찍혔습니다.
    제가 표현하지 못한 풍광을 대신 해주시니
    제게 미천골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던 분들께
    이곳에 와서 후기 보라고 해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doldary글쓴이
    2003.6.21 10:11 댓글추천 0비추천 0
    구바님, 안녕하시지요? 사실 한동안 자전거를 멀리 했었습니다. 일종의 외도(?)지요. 마라톤 한답시고... 280랠리 코스가 바뀌었나보네요. 큰 지장은 없습니다. 지금도 계속 복구 공사를 하고 있을테니.. 언제 열리는지 모르겠으나 이번 장마에 또 어떻게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뚜거리탕은 일종의 민물고기 매운탕입니다. 양양지방의 별미 먹거리이죠. 깨끗한 물에서 서식하는 아주 못생긴 고기인데 맛은 기막힙니다. 정확한 이름은 꾹저구라고 할겁니다. 영서에선 뚝지, 뚝저구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양양 남대천에 특히 많고 영서의 강 상류 부근에도 많이 서식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이 곳 정선에도 많답니다.

    가온님, 반갑습니다. 미천골 꼭 한번 다녀가십시오. 물론 저에게 연락 주시구요. 정말 좋은 코스입니다. 가족과 함께, 혹은 왈앵글이나 말바팀과 오셔서 휴양림에서 1박 하시면서 라이딩하시는게 더 좋을 것 같네요. 사진 찍을 꺼리도 아주 많습니다.

    주목님, 먼저 다녀가셨군요. 이 후기는 한달이 지난 후에 쓴거라, 더구나 술 한잔하고 횡설수설 넋두리 한 거라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미천골-법수치 코스 외에도 법수치에서 오대산 부연동쪽으로 가는 코스도 아주 좋다고 하더군요. 전 아직 가보질 못했습니다. 여름에 한번 도전할 계획입니다.
  • 2003.6.21 11:49 댓글추천 0비추천 0
    아참! 구바님. 제가 올해 학교를 옮겨 정선군 동면으로 왔습니다. 작년 제 후기에 댓글에 말씀하신 그 곳, 화암 약수와 화암동굴이 있는 곳 말입니다. 약수가 1.5킬로, 동굴이 2킬로 떨어져 있지요. 아주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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