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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없이 긴 글 - 랠리 후기

이상발2003.06.26 10:52조회 수 724추천 수 2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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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사는 이상발입니다.

6월 22일에 있었던, 이름만 대면 다 아시는 잔차포에서 진행하는 랠리에 참여를 해 봤습니다. 딴에는 큰 결심하고 참여를 했는데, 사전에 준비가 너무 소홀했습니다.

쩝,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랠리는 일요일 새벽부터인데, 계획은 거창하게 세웠지요, 6월 초부터, 랠리 구간을 주말마다 조금씩 미리 답사를 가볼려고도 했었고,

나름대로 다리의 힘을 기르는 훈련도 좀 해 보려고 했지요. 그런데, 사전 답사 한번도 안 했고, 사전에 기초체력 훈련 제대로 못했고, 결정적인 것은.

랠리 이틀 전인 금요일을 일 하느라 홀딱 밤을 새 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글을 써 내기로 한 게 있는데, 이것 때문에 밤을 홀딱 새고, 토요일은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는 집안 결혼식 갔다가 저녁먹고 한 8시쯤 집에 와서 그제서부터야 잔차 정비며 짐꾸리기 들어갑니다. 이런, 눈은 저절로 감기고, 몸은 천근만근입니다. 이러다가 다만 5시간이라도 자고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래의 후기는 그냥 편하게 쓰기 위해 존대법을 생략했습니다.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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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눈을 붙인다고 드러눕자 마자 꿈나라를 헤매다가 벨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여전히 몸이 무겁다. 컨디션이 꽝이다. 예전에는 하룻밤 샌다고 해도 별 지장이 없었는데, 점점 나이 탓을 해야 할 나이가 되어가나 보다.

새벽 2시 30분, 차에 잔차 싣고, 가방 싣고, 물백 싣고, 김밥 세줄 들고 집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나선다. 새벽에는 차량이 없어서 그런지 쏜살 같이 분당 율동공원으로 달려간다. 분당 즈음에서 테일라이트를 깜빡이며 달려가는 한 무리의 잔차 맨들이 보인다. 이 새벽에 줄을 지어 달려가는 것을 보니 저들도 나처럼 랠리에 참여하나 보다. 부디 재미나게 안전하게 잘 타시길. . .  

많은 이들이 벌써 부터 나와 있다. 이런저런 등록절차, 인사 등을 마치고, 드디어 출발. 원래는 4시에 출발하려고 했는데, 준비과정이 길어져서, 근 5시에 출발한 것 같다. 잔차에 몸을 얹으니, 새벽녁이 훤히 밝아 온다. 역시 새벽 첫 공기는 상쾌하기 그지없다 말이야.  어렴풋한 새벽녁에 테일라이트 반짝이는 잔차들이 수십대가 달려가는 모습이 한 폭의 아름다운 장관이랄 수 밖에. . .

약간의 긴장감이 감도는지, 몸이 경직되어 있다. 과연 80여 km를 잘 헤쳐갈 수 있을런지. . .  다른 사람들은 다들 동호회다 친구다 해서 같이들 많이 오셨건만, 나만 혼자인 듯 하다.  사람 사귀는 주변 머리가 없어서 옆에 사람에게 말도 못 붙이고, 그냥 안장에 앉아 페달질만 열심히 하고 있다.  잔차를 타면서 알게 된 한 분이 유일하게 신청은 해 놓으셨는데, 어디 보이지를 않는다. 못 오시는 것인가?  

그냥 앞자전거의 뒷 바퀴만 보고 계속 밟아 간다.  인근 동네에 살기는 하지만, 이 곳 분당 쪽에 있는 산은 가 본 적이 없다. 아니, 내가 알고 있는 산이 있더란 말이야, 당연히 초보이니 아는 곳이 없지 않는가?

이 동네 지리를 알거나 혹은 랠리 코스에 대한 사전 정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지리적인 정보는 전혀 가지지 못한 채 그냥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달려갈 뿐이다. 아직 전신의 피로감이 채 가시지 않는 채인데 말이다. 이렇게 가다가 중간에 퍼지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 .  가야할 길을 전혀 모르니 그냥 길을 아는 듯한 사람 누구에게라도 붙어서 가야 한다. 중간에 혼자 고립되기라도 하면 길 찾는데 더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율동공원에서 태재고개를 거쳐 첫번째 산인 문형산으로 오른다.  문형산을 오를 때의 기억이 별로 없다.  잠이 덜 깨었든지 혹은 몸의 긴장감이 너무 심해서 기억에 남는 게 없는 듯 하다. 그저 다른 사람들의 박자에 맞춰 열심히 올라갈 뿐이다. 초반부에 계속된 싱글 업힐은 경사도도 완만하고, 잔차 타기에 아주 그만인 길이다. 얼마 전에 구입한 물백에 조각얼음을 가득 채웠더니,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어 좋다. 잔차에서 내리지 않고 계속 올라가며 시원한 물 맛을 보니, 이것 또한 상쾌한 일이다.

완만한 싱글 길을 접고,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힘겹게 오르기를 몇차례 하니, 여기가 아마도 문형산 정상인가 보다. 음, 랠리도 별것 아니구만, 벌써 산 하나를 다 올라 타다니. . . 이제 신나는 다운힐이 있겠구만, 기대된다.

그런데, 이런, 이 다운힐이 경사가 만만치 않다. 경사만 만만치 않은게 아니라. 코스도 쉽지 않다. 길 폭이 넓은 것도 아니고, 좌로 우로 나무가 듬성듬성 있어 나무 사이로 잔차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급한 경사의 다운이 쉽지 않을 듯 하다. 어떤 이는 안전을 위해 끌고 내려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있게 타고 내려가기도 하고. . .

순간 고민하다가 그래도 타고 내려가야지, 정히 안되면 끌고 가더라도 탈 수 있는 데 까지는 타고 가야 실력도 늘지 않겠어, 하며 안장에 올라타고, 브레이크 최대한 잡아가며, 다운힐 시작.

잘 내려간다. 중간에 앞에서 누가 낙차라도 하면, 뒤에서 줄줄이 내려서야 했다. 그래도 업힐과는 달리 다운힐은 잔차에서 내린 후에도 다시 갈 수 있어 다행이지 않는가.  과감하게 조금 속도를 내어 본다. 브레이크에 악력을 조금 늦추어 본다.

앗, 그런데, 바로 앞에 코스가 어려워진다.  경사는 변화가 없는데, 내려갈 트랙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듯 하면서, 어느쪽으로든 핸들링이 쉽지 않을 듯 하고, 또한 양쪽에 나무들이 서 있어, 나무 사이로 잔차를 몰아야 할 모양인데, 나무 사이의 간격이 핸들바 간격 보다 더 좁아 보인다. 저 사이로 어떻게 비집고 가지?  짧은 순간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 속에 지나간다. 그래, 오른쪽으로 꺽어서 왼쪽 핸들을 먼저 들여 보내고, 잽싸게 왼쪽으로 다시 틀어서 나무 사이로 치고 나가자.  

자신있게 돌진하였으나, 이런, 핸들링의 미숙으로 바엔드가 나무에 걸렸나 보다.  갑자기 시야에 나무줄기가 보이고, 황토색 흙이 보이더니만, 놀이공원 청룡열차를 탄 모양으로 나무 가지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영화 필름 넘어가듯이 눈 앞에 펼쳐 지더니,

무릎에는 심각한 통증이 척수신경을 따라 뇌로 올라오고,  얼굴 우측 볼에는 흙이 묻었는지, 입가로 땀과 함께 흙이 앂이는 듯 하고. 아이고, 무릎, 어깨, 손목아. 한바퀴 나 뒹군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이 볼까 봐 번쩍 일어나서, 흙도 대충 털어내고, 저 멀리 위에서 잔차 여러 대가 다운힐 하길래 옆으로 비켜 주며 물 마시는 척 한다. 다 지나간 후에, 아이고 아파라. 무릎은 외피가 벗겨지고,  선혈이 나오기 시작하며, 외상이 없는 신체 다른 부위도 충격을 받았는지 여기저기 편하지는 않다.

이제는 좀 전의 그 교만한 마음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데, 완전히 겁을 먹은 사슴처럼, 두 다리에 힘 잔뜩 주며 안 미끄러질 요량으로 브레이크도 꽉 쥐며, 급한 경사길을 끌고 내려 가기 바쁘다.

적당히 다 내려 와서 보니, 꼴이 말도 아니다. 팔 다리 노출된 부위는 온통과 땀과 흙이 뒤범벅이 되었고, 검정색 하의는 흙이 묻어 누렇게 변했고, 흰색이 기본 색이 상의 져지도 흙색으로 도색을 한 듯 하다. 에구, 이게 뭔 고생이람.

한번 구르고, 적당히 늦게 와서 그런지 앞서 같이 가던 사람들이 잘 안 보인다. 다 내려 왔는데, 갑자기 길이 끊기고, 눈 앞에 밭과 작은 도랑이 보일 뿐이다. 어디가 길이지? 저 앞 도랑을 건너기 위한 작은 다리가 보인다. 저 다리위는 안전하게 끌고 가는 게 낫겠다 싶어 내리려고 하는 순간, 오른쪽 페달과 신발이 분리가 안되는 것이다.

시마노 페달인데, 흙에는 약하다 하더니만, 흙이 끼어서인지 순간 분리가 평소같이 않게 안된다.

이미 몸의 체중은 오른쪽으로 기울었고, 당연히 분리되어서 착지를 해야 할 오른발은 여전히 페달과 밀애를 즐기고 있고, 근데, 더 위험한 것은 오른쪽은 도랑으로 골이 깊다는 것이다.

어어, 하는 순간 몸은 오른쪽으로 넘어가고 안 넘어가려고 온갖 몸부림을 쳐 봤지만, 그냥 꽈당. 아이고, 아파라. 이번에는 넘어지면서, 왼쪽 종아리 뒷 부분이 크랭크에 여지없이 찍혀 버렸다. 크랭크의 기름 때가 피부를 스치고 지나 간 적은 있었지만, 크랭크에 찍혀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크랭크가 날카로운 이빨이 되어, 나의 종아리를 아작아작 씹어 먹고 있지 않은가.  크랭크 자국 4개 중에 두번째가 아주 깊다. 움푹 파여있다. 그 틈에 기름때는 찌들어 있고, 이거 소독약을 가지고 오지 않은 날이면 항상 이런 일이 있더구만.

어디 가다가 약국이라도 있겠지 뭐. 그런데 이 생각은 아주 잘 못 된 생각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첫번째 산을 내려 온 시간이 이제 겨우 아침 6시이고, 이 시간에 문을 여는 약국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나중에 가계들이 문을 열 시간 즈음이 되어서는 약국이 있을만한 동네를 지나가지를 않는 것이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이제부터는 조심해서 살살 가자고 마음 먹고, 다음 산을 향해 온로드로 이동한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앞 뒤로 다른 멤버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광주군 오포 초등학교 옆을 지나 43번 국도로 이동한다. 차도 뜸한 새벽 이른 시간에 도로를 호젓히 혼자 잔차 타는 기분도 상쾌하기는 하다. 두번째 산으로 가는 길목으로 접어 든다. 앞 뒤로 아무도 없으니 이게 잘 가는 것인지 어쩐지도 모른 채 계속 가다 보니, 산길로 오르는 초입에 한무리의 사람들이 쉬고 있다. 그래 이 틈에 묻혀 가자. 그래야 길도 안 잃어 버리고, 또 혹여 사고가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또 혼자 가는 외로움 보다는 함께 한다는 든든한 마음이 좋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에버랜드 내 임도를 오른다. 완만한 경사의 포장도로를 타고 계속 오른다. 광교산 온로드 헬기장 만큼의 경사도는 아니나, 은근하게 오르는 게 꽤 구간이 길어 보인다. 좌 우로는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이렇게 가면 향수산이라고 한다.

에버랜드 임도 중간에서 향수산으로 오르는 싱글 길을 꾸역꾸역 올라봅니다. 아까 문형산은 끌기는 아주 조금 타기는 많이 타기 였는데, 이 곳 향수산은 아까보다는 끌기가 많다. 조금 타다 또 끌고, 아마도 체력이 서서히 소진됨에 따라 타기가 쉽지도 않겠거니와, 식사를 아직 못하고, 행동식으로 떼우다 보니, 연료부족인듯 하기도 하다.

헬멧을 쓴 채로 머리를 좌우로 세게 흔들면, 턱끈과 헬멧 내피에서 땀이 마구마구 날린다. 그래도 다른 라이더와 함께 오르니, 긴 거리도 심적 부담없이 쉽게 오른듯 하다. 향수산 꼭대기에서 또 쉬면서 행동식을 먹어 치운다. 아무래도 쉴 때마다 영양보충을 해야 할 모양이다. 어디 내려가면 밥을 사 먹을 식당이라도 있겠지.

정상을 올랐다는 것은 시원한 다운힐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아까와는 달리 조심조심 내려가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빠른 속력으로 내려가는 데, 나는 기다시피 다운힐이다. 그래도 안 끌고 내려가는 게 어디냐. 다른 이들은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멀리 가 보자며 신나게 내려간다. 또 혼자 남는다. 그저 앞만 보고 내려가는데, 어라. 이 길이 아닌가 보다. 다운인데도, 앞서 간 바퀴 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뒤로 돌아, 어느 정도 되돌아 가니, 우측으로 빠지는 길을 놓쳐 버린 것이다.

여기서부터 내려가는 길은 골프장 가는 포장도로를 이용한 듯 하다. 시원하게 뻗은 포장도로를 타고 신나게 내려오니, 식당은 없고, 조그마한 가계가 우리를 반긴다. 물도 큰 것으로 하나 사고, 양갱이며 사탕이며 열량 높은 것으로 또 배낭을 채우고, 새벽에 먹다 남긴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출발.

산을 두개 넘었으니, 이번 산은 법화산이렷다. 마을을 지나, 은근한 임도 오르막을 오르니, 법화산 올라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것은 길이 아니라, 마치 산사태가 나서 나무가 씻겨 내려간 길인 듯 하다. 경사도 만만치 않은 곳인데, 이번 법화산은 계속 힘들게 끌고만 올라간다. 제법 해가 솟아 덥기도 하겠거니와, 아침 밥을 채워 넣을 때를 놓친지라, 행동식만으로는 허기를 면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좌우지간 법화산은 힘만 많이들고, 타는 재미는 별로 없는 곳인듯 하다. 이번에 탄 구간 중에서 제일 힘든 곳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법화산 꼭대기에서 우측으로 짜릿한 다운을 좀 하니,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로 길이 연결된다. 사실 법화산에서는 거리는 얼마 안되는데도, 하도 땀을 많이 흘리고, 고생을 해서 그런지 정신이 멍해지는 듯 하고, 온 몸에 골수가 다 빠져 나가는 듯 한 느낌뿐이다.  일요일 이른 아침인데도, 묘지를 찾는 방문객들이 좀 있기는 하다. 묘지 한 가운데를 가로 지르며 포장도로를 잔차로 이동하기는 하지만, 좀 멋적은 마음이 든다. 묘지라 함은 조금은 경건하고 조금은 엄숙해야 하는 곳일진대, 이 아침부터 떼거지로 잔차를 타고 묘지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니, 기분이 묘하기는 하다.

이제 해가 제법 솟아 뜨거운 열기를 덥히기 시작한다. 용인 천주교 묘지를 신나게 내려 와서는 어디 식당이라도 있겠거니 하며, 로드를 따라 이동해 보지만, 어디 식당이 마땅찮다. 43번 국도로 다시 나가는데, 좌회전을 하면, 수원방향이고 우회전을 하면 광주 방향이라고 이정표를 보고서야 이 곳이 어디쯤인지 알겠다. 43번 국도를 타고, 다음 산인 불곡산 진입로로 향해 간다.

내가 어디쯤 있는지를 알게 되어 그런지 힘이 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덧 이만큼이나 탔나 하며 내 자신이 대견스러워서 인지, 페달질에 가속도를 붙여 본다. 그런데 밥을 좀 사 먹을 식당은 어디쯤 있을까?  국도 좌로나 우로나 큰 공장은 몇 개 보이는데, 도통 식당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또 식당이 있다 하여도 아침 시간부터 식당문을 열지도 않을 것이다.  할 수 없이 사탕 몇 알과 쏘세지 두 쪽으로 허기를 달래며 불곡산을 오른다.

불곡산의 초입길은 계속되는 오르막이기는 하나, 그래도 자전거에 올라 탈만은 하다. 최저단 기어를 놓고, 호흡조절해 가며 하나 둘 하나 둘 하고 오르니, 뒤 돌아 보면, 제법 높은 곳에 내가 와 있음을 본다. 저 멀리 우측으로 용인, 수지, 죽전, 분당이 아스라히 보인다. 불곡산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등산객들이 제법 많이들 다니는 길목이다.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등산로이지만, 등산객들이 다니는 관계로 가능하면 끌고 바이크이다. 물론 힘이 많이 빠져 끌고 바이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등산객을 배려하는 마음도 있기는 하다.

여기서 재미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불곡산의 정상을 향해 계속 오르막을 타기도 하고 끌기도 하며 한무리의 잔차팀이 오르고 있는데, 오르막이다 보니, 어느 아주머니 등산객 한 분의 걷는 속도와 거의 비슷하다. 서로 조금씩 앞서거니 뒷서거니 할 뿐이다. 조금 탈 만한 곳에서는 내가 "실례합니다" 그러면서 옆으로 지나가고, 또 경사가 있거나 계단이거나 혹은 내려오는 등산객이 있어 옆으로 잠시 비껴 있을라 치면, 그 아주머니가 또 먼저 가게 된다.  이러기를 여러차례 하다 보니, 자꾸만 실례합니다 하고 옆으로 잔차를 타고 가기도 좀 어색하기도 한 듯 한데, 오르막에서 힘겹게 끌고 올라가는데, 이 아주머니가 옆에 와서는, "많이 늦으셨네요." 이러는 게 아닌가?  오잉?  그 사이에 친밀감을 느끼셨나, 아니면 다른 잔차맨들 먼저 지나간 것을 본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보행 속도와 비슷해서 하는 소리일까?   자전거가 이렇게 늦게 가도 되냐고 놀리시는 것인가?  

핑계삼아  "오늘 새벽부터 지금까지 산을 4개나 넘었어요!" 라며 대꾸를 해 놓고 보니까, 글쎄, 우리 잔차맨들에게 인사삼아 건넨 말이 아니고, 저 위에서 내려오는 아시는 분일 듯한 등산객에게 건네는 인사말이었던 것이다. 아이고 이런 부끄럼을 봤나.  

불곡산의 다운힐은 아주 신난 다운힐 한판이다. 중간에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조심조심 내려오기는 했지만, 완만한 경사도에 긴 다운힐은 참 재미난 길이었다. 산악자전거를 타는 많은 사람들이 불곡산을 찾는 이유를 알 듯하다.

불곡산의 다운을 끝내니, 처음 출발 하였던 태재고개 어귀가 나왔다. 벌써 한 무리의 팀들이 수퍼마켓 앞에서 아이스크림이며, 수박이며 이것 저것 먹을 거리들을 동내고 있다.  시간은 이제 겨우 11시를 좀 넘었군. 아, 아침겸 점심으로 뭐라도 좀 먹어야 하는데, 이 곳도 식당이 마땅치는 않다. 해장국집, 백반집, 갈치조림집, 갈비 집. 어느 것 하나 입에 끌리는 게 없다.

속도계는 벌써 50km 를 찍었다.  아, 새벽부터 정말 긴 거기를 정신없이 타고, 끌고 왔구나 하며,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 베어 무니, 노곤하니 온 몸이 물에 젖은 솜과 같이 된다. 영양부족, 수면부족이 여실히 느껴지는 순간이다. 정신도 좀 멍하다.

이제는 맹산으로 달려갈 시간이 되었는데, 다른 팀들은 아직도 휴식중이다. 식당들은 안 찾아 가나? 뭐라도 먹어야 힘을 쓸 텐데 말이다.

띠리링, 띠리링. 집에서 전화가 온다. 동서들이 생일잔치 하자며 12시에 집으로 온다고 한단다. 원래는 이번 주중이 생일이어서 생일날 저녁에 밥이나 먹고 술이나 한잔 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조카들이 무슨 시험이 내 생일 다음 날에 있어 그 날은 집에서 애들 공부하는 것 봐 줘야 한다고 하며, 오늘 갑자기 다들 모이자고 출발했다고 한다.

이런 낭패를 봤나! 오늘은 잔차 타러 가는 날이라고 집사람이 이야기했다지만, 나이 어린 막내동서 생일 챙겨주러 온다는데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 잘됐다. 수면부족이고, 초반에 넘어진 이후로 컨디션도 난조를 보이고, 정신도 멍하니 쉽지 않겠다. 그래, 안전함을 위해 오늘의 라이딩은 여기서 접자,  마음 약한 소리같기는 하지만.

다시 율동공원에 도착해서 차에 잔차를 접어 넣고, 집으로 돌아간다.
대충 씻고 소독약을 바른다.

그리곤 몸을 다쳐 왔다고 집사람에 혼이 난다.  크크크.

낮부터 동서들의 생일 축하주에 취해 잠에 곯아 떨어진다. 이시간 쯤이면 랠리 참여자들이 거의 다 끝냈을 텐데.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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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많은 것을 배웠다.

우선 한번도 가 본 적 없던 불곡산, 문형산, 법화산, 향수산의 코스를 다녀 보았고, 길을 익힐 수 있었고,

둘째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비상약은 챙겨 다니자를 배웠고,

마지막으로 아침 일찍 라이딩을 시작하면, 오후에는 자전거 타는 것 외에 다른 일도 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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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아주 재미잇게 읽었습니다. 그래도 크게 안다치셔서 다행이군요. 아침부터 산 4개라...정말 대단하시고 부러울 따름;;
  • 이상발님, 요즘 너무 빡세게 타시는 것 같습니다 ㅎㅎ
    다친 곳 빨리 나으시기를 바라며,
    조만간 광교산에서 뵙겠습니다!
    (다음 주면 애들 시험이 끝나서 여유가 생깁니다 ^^)
  •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지난달에 서울랠리를 다녀와서 그 느낌을 잘 알지요. ^^ 앞으로는 보호대 꼭 하고 타세요~ ^^
  • 2003.6.27 13:52 댓글추천 0비추천 0
    향수산정상에서 엠티비매니아분들과 단체사진중 우측끝의 사람입니다. 잼나게 읽었습니다. 시간이되시면 단체로 다니세요. 많이 늡니다.
용용아빠
2024.06.17 조회 75
treky
2016.05.08 조회 683
Bikeholic
2011.09.23 조회 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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