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상주 경천대로 낙동강과 상도 셋트장이 보이네요.
사진은 많지만, html 작성이 서툴러 어케해야 깨끗하게 정리된 모습으로
올릴 수 있을런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냥 한장씩만...
둘째 날(8월 3일)
날이 채 밝기도 전인 5시쯤 일어나서, 짐 싸고, 미숫가루 타먹고 6시쯤 출발했다.
충남 연기군이나 공주 방면에서 경북으로 가는 빠른 길은 충북 보은과 경북 상주를
거치는 길이다. 옛날 삼국시대에도 이 길은 전략상으로 매우 중요했다고 한다.
충남지역의 백제와 경북 지역의 신라간의 쟁투가 이 길위에서 일어났으니까.
얼마 안가서 피반령 고개가 나타난다.
고개 초입에서 재미난 장면을 보았다.
"베트남 국제결혼 전문" 이라 쓰여진 플래카드가 길옆에 걸려있고,
그 밑을 지게진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있다.
지게를 사용하는 깡시골에도 베트남 처녀가 시집 올 까?
어쨋든 요즘의 최첨단 풍속도(베트남 국제 결혼)와 옛것(지게)이 만나는 장면이다.
피반령고개를 오르다보니, 1단 체인링밖에 쓸 수 없는 내 잔차도 아쉬울 게 없다.
작은 디카 가방을 케이블 타이를 이용해 핸들 스템에 고정시켰는 데, 정말 편리하다.
어제의 사고에도 디카는 멀쩡했고... 무엇보다 디카 꺼내고, 집어넣기가 넘 편리하다.
허리벨트에 착용할 수 있는 작은 디카 가방을 7,000원에 샀는 데,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
딸려온 어깨끈은 내 허리쌕에 달았다. 양쪽 어깨에 엑스자로 어깨끈을 다니까, 허리색의
단점인 흘러내리고 제 멋대로 돌아가는 등의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 허리색에서 물건 꺼내고,
다시 매고 하는 데 있어서는 좀 불편하지만... 어깨 통증을 유발하는 배낭보다는 훨 났다.
피반령을 넘으니, 얼마 안있어 또 비슷한 정도의 고개길이 나타난다. 수리티재이다.
수리티재를 넘으니 바로 보은읍이다. 이어서 삼년산성이 나타난다.
등산용 전국지도를 보면, 경북과 충북의 경계를 이루는 것이 흔히 말하는 백두대간이다.
옛날 백제와 신라의 국경도 이 자연적인 백두대간이었는 데
(넘기도 힘들고, 어쩌다 넘어도 보급이 어려워 다시 퇴각해야 하니까)...
어찌 백두대간을 넘어 충청도 땅에 들어선 신라가 온 국력을 들여 쌓은
난공불락의 성이 이 삼년산성이다. 이로써 신라는 충청도땅에 백제 중심부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강력한 전초기지를 마련한 것이다.
줏어들은 역사지식을 되새기며, 나름대로 공원화된 삼년 산성을 한번 돌아보고 나왔다.
가다보니 서원계곡 표지가 보인다. 가서 계곡물에서 더위 좀 식히고 싶었지만,
1단체인링에 고정되어 굼벵이가 돼버린 잔차가 마음을 급하게 한다.
구병산 초입의 한 휴계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등산인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산으로, 속리산과 연계되어, 충북알프스로 불리는 산이다.
보은을 지나 상주에 들어섰다. 백두대간의 고개하면 다 험난한 줄 안다.
그런데... 동네 뒷동산같은 백두대간 고개가 있었으니... 바로 화령이다.
백두대간 고개고, 이름에 "령"자가 있는 데... 이렇게 시시하다니... 높이 표시도 물론 없다.
힘든 업힐을 예상했는 데... 허무했다.
길옆의 강에서 잠깐 멱도 감고, 상주 자전거 박물관도 구경하다보니 어느덧 상주시내다.
상주시내에서 한 일반 자전거포에 들렀다. 주인 할아버지께서 망치와 집게로 한 5~10분정도 뚜딱거려서
휘어진 체인링을 바로 펴버렸다. 체인링을 교체해야 할 줄 알았는 데... 그래서 별 기대도 안했는 데...
기어변속등에 아무 문제 없었고, 튀거나 하지도 않았고 잡소리도 없다.
근데, 굳이 돈을 안 받으신다. 현재 인터넷 잔차 판매업자와 전쟁중이라고 하신다.
당장의 값은 비싸도, 동네 가게에서 사면 무료 수리를 받을 수 있다는 걸 홍보하시는 중이라고...
MTB 샵들도 이런 치열한 경쟁을 겪게되면, 소비자입장에서는 더 좋은 가격에,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게 된다.
상주시내를 빠져나와 경천대를 향한다. 경천대에 야영장이 있다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미리 확인했던 터다.
가는 길에 전사벌왕릉을 만났다. 능이름을 풀이하면 사벌국 국왕의 무덤이라고 전해져 온다는 뜻이다.
여기서 아는 척을 좀 하자면, 사벌국은 삼국시대 이전 부족국가시대(삼한시대)의 한 국가이다.
당시에 수많은 부족국가들이 있었는 데, 문헌상에 이름만 나올 뿐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유독 사벌국이 현재까지도 능과 토성등의 유적을 남기고 있는 것은
처음에는 신라와 비슷한 정도로 세력이 컸으며, 기원 후 3~4세기까지도 존속했었기 때문이다.
경천대에 도착하니 오후 네시반이다. 야영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경천대 야영장은 비교적 싼 가격(입장료 포함 2,000원)에 샤워나 취사시설이 좋았다.
샤워도 하고, 미숫가루 저녁도 먹고... 옷 갈아입고, 경천대 관광에 나섰다.
드라마 "상도" 촬영장 셋트도 구경하고...
무엇보다도 경천대에서 내려다 보는 낙동강 경치가 그야말로 일품이다.
지금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데...
조선시대 한 선비가 벼슬을 마다하고 여기에 은거하면서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청과
싸워야 한다는 뜻을 남겼다고 한다.
대의명분으로 따지면 임진왜란때 우리나라를 구원했고, 공자의 나라인 명을 따르는 것이
당시의 선비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야만의 나라로 배척하는 것이
마땅했을 것이고...
하지만, 이런 식의 대의명분때문에 병자호란을 겪고 나라가 절단났으며, 결국은 청을
섬겼다는 이후의 역사를 생각해보니....
정치는 역시 현실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날이 어두워져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는 데... 간간이 내리던 비가 폭우로 변했다.
3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산 싸구려 텐트가 버틸지 걱정이 되었다. 어쨋든 프라이를 치니 위에서는 비가 안샌다.
그런데, 바닥에서 물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얼른 판쵸를 바닥에 까니 훨씬 낫다. 판쵸를 펼치니
내 2~3인용 텐트 바닥을 다 커버한다. 야영할 거면, 우비대신 판쵸를 추천하고 싶다.
그런후 침낭속에 들어가니 잘 만하다. 천둥과 텐트를 사정없이 때리는 폭우속에 뒤척이다 잠들었다.
주행거리: 1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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